T.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연중 제30주일
그 무렵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많은 군중과 더불어 예리코를 떠나실 때에,
티매오의 아들 바르티매오라는 눈먼 거지가 길가에 앉아 있다가,
나자렛 사람 예수님이라는 소리를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치기 시작하였다.
눈먼 사람이,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르며,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외칩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자비를 베풀어 달라는 외침에 응답하지 않으셨던 예수님께서,
마침내, 그가 청하는 것을 들어주시며, ‘자비를 베풀어’ 주십니다.
예수님을 움직이게 만든, ‘다윗의 자손’ 이라는 호칭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다윗의 자손’이 어떤 이미를 지니고 있었기에,
예수님께서 기꺼이 자비를 베푸셨을까요?
‘다윗의 자손’이라는 칭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메시아’, 곧 ‘기름부음을 받은 자’,
‘전능하신 분의 뜻을 온전히 이룰 하느님의 대리자’ 를 의미했습니다.
구약성경에서는, ‘다윗의 자손’을 이렇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사야가 말하였다. “다윗 왕실은 잘 들으십시오!
여러분은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여 나의 하느님까지 성가시게 하려 합니까?
14그러므로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이사 7,13-14)
너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 부족들 가운데에서 보잘것없지만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미카 5,1)
예수님께서는 과연,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과 함께 사시듯’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셨고,
‘하느님을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리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사셨던 삶 전체를,
오늘 복음은,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분’으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자비를 베푼다’는 것은,
'상대방의 잘못을 용서한다' 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나에게 진 빚을, 조건 없이, 없는 것으로 해준다' 는 것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자비를 청해야 하는 이유는,
먼저, 하느님께서 우리의 창조주 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창조물
이라는 관계로부터 시작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창조물이기 때문에, 하느님께 생명을 빚진 사람으로서
하느님께 자비를 청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연장선 상에서, 우리가 하느님께 자비를 청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우리는, 하느님의 뜻에 의해 살도록 창조되었는데,
우리가 그분께서 주신 생명과 자유 의지로, 가끔 또는 자주,
그분의 뜻에 어긋나는 선택을 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너무나도 다행스럽게도,
하느님께서는 한없이 자비로우시며, 자비 그 자체이십니다.
만일 하느님께서,
당신 뜻에 맞는 삶을 살아가도록 창조하신 우리에게,
우리가 그렇지 못한 삶을 선택할 때마다
화를 내시고, 벌을 내리신다면,
과연, 우리 중에 온전 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
연도의 시편 기도 에서도,
주님께서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주님 감당할 자 누구이리까
오히려 용서하심이 주님께 있사와
더 더욱 당신을 섬기라 하시나이다
라고 기도하며, 하느님께, 당신께서 불러가신 이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기를 간절히 청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자비는, 우리가 생각하는, 우리가 상상하는
그러한 자비를 뛰어넘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자비는,
단순히,
우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시는 차원을 넘어서서,
적극적으로 우리의 행복을 바라시고, 우리의 행복을 위해
언제나 깨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상처 준 이들을 떠올려 봅시다.
우리에게 상처를 준 이들을, 우리는 ‘원수’라고 부르는데,
우리는 원수를 생각하는 것조차 힘들어 합니다.
그러니,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당신께 상처를 드리는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와 화해하시려고 다가오시는 것도 모자라,
우리가 당신께 청하는 그 어떤 것도
기꺼이 들어주시고, 이루어 주십니다.
오늘 눈먼 거지가 예수님께,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외치는 그 소리에는,
그러한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 인간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지극한 자비가 녹아 있습니다.
그리고, 눈먼 거지에게 자비를 베푸셨던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께 자비를 청하도록 애원하십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다고 움츠리지 말고,
우리가 잘못을 했다고, 당신께로부터 멀어지려 하지 말고,
오히려, 그럴수록, 당신 앞에 엎드려
자비를 청하라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자비를 청할 때, 우리는 자비를 입게 되고,
비로소, 하느님이 누구이신지를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자비로우신 분이시고, 자비 자체 이십니다.
우리의 신앙 여정은,
우리가 하느님 앞에 얼마나 부족한 존재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얼마나 자비로우신 분이신지를
깨닫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깨달은 사람은,
결코 좌절하지 않고,
넘어지더라도 하느님의 자비를 깨닫고, 다시 일어서게 됩니다.
그것이 곧 신앙이고, 우리가 찾는 행복의 전부 입니다.
하느님께서 자비로우신 분이시라는 것이
얼마나 감사드릴 일인지
자주 묵상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자비로우신 분이시라는 사실에,
더 자주, 더 깊이 감사드리도록 합시다.
그 무렵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많은 군중과 더불어 예리코를 떠나실 때에,
티매오의 아들 바르티매오라는 눈먼 거지가 길가에 앉아 있다가,
나자렛 사람 예수님이라는 소리를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치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