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가 보편화되어 문화가 되면서 그만 세상과 혼합이 되고 맙니다.
미국 목사들이 미국교회가 이교도처럼 되는데 200년이나 걸렸는데
한국교회는 불과 수십 년 만에 문화화 되었다는 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건 교회에 각종 전문가들이 교회로 영입되면서 하나의 직업군이 되어
경건과 의와 상관이 없이 소위 달란트라는 미명의 명찰을 붙여준 탓입니다.
이번 빌리그레함 전도집회 50주년 기념행사에서 대회를 주관하는 목사가
프랭클린그레함의 설교를 두고 진리의 말씀을 증거해 주었다는 발언을 했습니다.
제가 볼 때에 그는 기초 복음을 전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설교한 것일
뿐 진리를 말하지 않았음에도 맞는 말이면 다 진리 운운하는 한국교회가 되었습니다.
진리(truth)는 하나님과 인간을 실제화 시키는 원리이므로 참(true)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진리의 성령에 의해 그리스도와 합일이 되어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비밀을
말하지 않음에도 지당한 말을 한다고 진리 운운해서는 교회의 앞날이 매우 어둡습니다.
Q.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는 자들의 보응이 무엇인가?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롬1:24)
문화적인 종교의 불의가 무섭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표방하지만 사실은
피조물을 경배하지요, 각종 그림을 그려 붙인다거나 어떤 형상을 마음에 두는 것입니다.
지금 온 세상에 만연한 기독교문화는 진리와 상관이 없는 불의이며 그로 인해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고 하나님의 의를 구하지 않게 되어 결국 불의를 행하는 자가 되어
그만 거룩한 성 밖에 던져지고 거기서 속았다는 억울함에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겁니다.
그러나 세상의 문화가 아무리 창궐하고 번창해도 창세기 1장을 보면 생육, 번성,
충만하라는데 까지 밖에 안 됩니다(제5일째)
세상의 지식이나 철학이나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정복과 다스림’은 되질 않습니다.
하나님이 처음부터 바다의 물고기와 고기들과 새들에게는 생육, 번성, 충만 하라(창1:22)
하는데 까지만 복을 주었어요. 그래서 지금 세상의 문명과 문화가 땅에 가득합니다.
따라서 교회가 세상의 문화를 받아들여 교회가 세속화 되어 가고 있는 중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들을 입은 사람들에게만
생육, 번성, 충만, 정복, 다스림의 복을 주셨습니다(창1:28)
하나님의 형상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뜻에 의한 복이기 때문에 생육과 번성 그리고 충만을 통해 정복, 다스림이 됩니다.
다시 말하면 진리의 지식을 받아 사랑에 이르러 왕 노릇하는 성도가 된다는 말입니다.
세상의 복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진리로 말미암아 얻는 복이 현격하게 다릅니다.
세상의 지식, 세상의 모든 것으로 충만해도 절대로 참 교회를 다스릴 수 없어요.
아니 다스릴 능력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 복을 세상에 주지 않았어요.
세상은 진리의 성령을 받지 못한다고 주님께서 미리 말씀하셨습니다(요14:17)
만일 진리의 성령이 없으면 자신이 깨닫지 못하는 가운데 세상에 속한 자가 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하나님의 자녀만 정복하고 다스리게 됩니다.
그런데 ‘무엇이든지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다’하십니다.
이 말씀은 인간들이 서로 아주 가치 없게 만들어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다윗이 ‘주여! 나는 의로운 중에 하나님의 얼굴을 뵈옵고 내가 깰 때에 하나님의
형상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겠습니다’(시17:15) 이는 굉장한 가치를 추구하는 기도입니다.
바울도 바로 이런 기도를 하는 하늘의 차원에 이른 사람입니다.
다윗은 세상에 추구할 마땅한 보배가 없으니 그 몸이 얼마나 가뿐하겠습니까?
저는 세상에 이치에 밝고 각종 시장적인 정보가 밝고 빠른 그리스도인들을
보면서 왜 이 사람은 보좌에 앉아 우리를 위해 항상 간구하시면서 그의 대속의
은총과 진리의 성령을 좇아가면 주실 주의 구원이 왜 궁금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여러 가지 유익을 주지만, 그 중에서도 고상한 인품입니다.
단정해지고, 점잖아지고, 자상해 지고 몸가짐이 그렇게 변화되어갑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시편 1편의 말씀을 통해 자신을 매일 한 번씩 점검하세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말씀이 내 속에 임하면 겨와 같이 좌충우돌 하며 허둥대는 삶이 없어져요.
주 안에서 평상심을 얻어 안정이 됩니다. 크게 바쁜 것도 답답함도 없어져요.
우리가 비록 꺼져가는 심지와 같고 상한 갈대와 같았을지라도 그리스도 안에
부름을 받아 하나님의 권속이 되어 그 영광의 보좌를 향해 나아가는 복을 받았습니다.
그런 복을 받아 놓고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향방 없이 허둥댈 수는 없습니다.
Q. 왜 그리스도인들의 몸들이 망가질까요?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롬1:25)
A. 사람들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해서 그렇답니다.
그런데 누구보고 ‘너, 하나님보다 그걸 더 좋아하지?’ 하면 펄쩍 뜁니다.
실제로는 지은 자보다 지은 것들을 더 좋아하면서 극구 부인합니다.
이와 같이 계시가 없으면 아주 방자해져요. 눈에 보이는 것만 추구해요.
언젠가는 주님보다 주님의 것들을 더 사랑하고 있다는 자신이 드러나야 합니다.
구약 같으면 말씀을 떠나면 전쟁이 오고 그 다음 기근이 오고 마지막으로 질병이 옵니다.
지금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신의 자리를 떠나면 맨 처음 성격이 나빠집니다.
그 다음에 인간관계가 고장이 나기 시작합니다. 그대로 가면 질병을 앓게 됩니다.
주님을 저주 맹세까지 부인하고는 고기잡이를 하러 간 베드로에게
주님이 찾아 오셔서 이 사람들보다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곤란한
질문을 세 번이나 할 때에 베드로는 호언장담했던 기개가 꺾이고 무너졌습니다.
왜 베드로가 고기를 잡지 못했을까요? 이미 주님께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말씀하셨지 않습니까?(마4:19) 주님께서 말씀하시므로 베드로의 운명은 결정이 났습니다.
더 이상 고기는 잡히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주님보다 피조물인 고기를 더 사랑하는
베드로를 다시 찾아 내 양을 먹이고 치고 먹이라고 사명을 다시 챙겨주셨습니다.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챙기는 우리들을 주님은 오늘도 찾아 오셔서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럼 진리의 성령을 보내겠다는 나의 말을 믿느냐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새 계명이 발효되는데
그 계명을 지켜 내 사랑 안에 거하고 있느냐 정녕 네가 나를 사랑하고 있느냐 물으십니다.
그런데 사람도 낚고 고기도 잡는 혼합주의가 바른 신앙인 줄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다른 종교도 구원이 있다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아니라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기는 변질이 된 기독교 신앙의 포스트모더니즘이 더 무섭습니다.
다이아몬드가 두려운 건 금이나 진주가 아니라 가짜 다이아몬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고 단박에 찬송을 합니다.
찬송은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속의 언어를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찬송은 ‘하나님이 복의 근원이시다’는 뜻입니다. Bless the O my soul!
지금 사도 바울이 찬송하는 뜻은 사람들이 어찌되든 ‘나는 오직
하나님만 복인 줄 알고, 하나님만 붙잡고 있겠습니다’하는 각오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토록 복이 되시는 분이다’ 이 말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영원한 복입니다. 따라서 만일 주님 사랑해요 또는 내 영혼아
주를 찬양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찬양하라 하고 목젖을 젖히고 마음껏 사랑을
고백하지 못하고 크게 찬양하지 못하면 하나님과 사이에 만물이 끼었다는 증거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거의 모든 이들이 환난과 고난을 통해 인내를 배워야만 비로소
자신을 깨끗하게 하여 그리스도 안에 주어진 소망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의를
사모하므로 그로 인해 하나님과 화평하게 되어 그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하게 되는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속에 계신다는 믿음은 이미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과연 나의 보배인가 답안지에 정답을 쓰듯 대답하는 믿음이 아니라 나의
가치관이 땅의 영광에서 하늘의 영광을 추구하는 자리로 돌아섰는가 하는 점입니다.
거기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내가 달게 지고 나를 부인하고 주님을 좇아
따르므로 그 생명의 충만함에 이르게 되어 주를 목 놓아 찬양하게 되는 겁니다.
첫댓글 아멘!
할렐루야 알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