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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위례문화청소년지킴이 원문보기 글쓴이: 민들레
여행을 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연령에 따라 사물을 보는 시각에도 변화가 온다. 이제는 눈부신 문명과 화려한 문화가 있는 곳보다 인간의 손길이 덜 미친 가장 자연스런 곳으로 가서 그대로 자연의 일부가 되어 보고 싶다. 이번 몽골여행이 내가 다녀 본 여행지 중에서 가장 그런 곳에 가까운 곳이 아닐까 싶다.
★ 눈부신 태양
몽골의 햇빛은 눈부시다. 마치 바닷가에 펼쳐진 모래밭 위에 서있을 때 눈이 시리도록 들어오는 햇빛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평소에 선글라스를 안 쓰던 나도 태양 밑에만 서면 선글라스를 찾아 쓰기 바빴다.
몽골 사람들이 드러낸 피부를 보면 갈색 말과 같은 색이라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다. 아이들의 빨간 얼굴을 보면 반짝반짝 코팅을 한 겹 입힌 것 같다.
몽골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두껍고 더워 보이는 델을 입고 모자를 꼭 쓴다. 우리는 썬그라스를 끼고 챙이 달린 모자를 쓰는 중무장을 하고 썬 크림까지 바른다. 그래도 날씨가 건조하여 입술이 빨갛게 트고 피부에 하얀 각질까지 생긴 사람도 있었다.
몽골에는 시력이 좋은 몽골 사람이라 하더라도 다른 나라 사람보다 녹내장이나 백내장 환자가 많다. 이는 강렬한 자외선이 원인이다. 그래도 나는 강렬한 이 태양이 참 좋았다.
★ 키작은 야생화
게르 옆이 온통 꽃바다이다. 빨강, 보라, 노랑, 분홍 등 어디다 발걸음을 옮겨야 할지 몰랐다. 너무 예쁜 꽃들이 다칠까 마음이 조렸다. 우리나라에서 눈에 익은 구절초 꽃도 보여 더욱 정다왔다. 영화에서나 보는 ‘에델바이스’도 지천이다. 에델바이스를 몽골어로 ‘차강 올’이라고 하는데 하얀산이란 뜻이란다. 확실히 야생화의 천국이다. 하지만 이 천국도 4개월뿐이다. 9월이 오면 짧은 가을이 되고 10월이면 벌써 눈이 내리기 때문이다.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넉넉해진다. 꽃꽂이를 안배웠어도 한웅큼을 병에 꽂으니 그대로가 한폭의 그림이 된다. 세찬 바람에 적응하기 위해 풀과 꽃들의 키가 작은 것 같다. 바람에 흔들릴 때 마다 내 마음도 같이 흔들린다. 바라보자니 천국이 따로 없다. 몽골의 야생화를 잊지 못할 것 같다.
★ 추억의 달동네
울란바토르 시를 버스를 타고 지날 때 보이는 연기 나는 굴뚝이 울란바토르에 있는 화력발전소이다. 이곳에서 발전되는 전기를 가지고 울란바토르 시민이 모두 이용한다. 이곳이 몽골에서는 유일한 전력 공급원이지만 겨울이 되면 화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연기가 오히려 공해가 되어 사람들을 괴롭힌다고 한다. 부유한 사람들은 요즈음 새로 짓기 시작하는 아파트에 많이 살고, 그보다 못한 사람들은 판자로 만든 집에 산다. 내 어렸을 적 보았던 판자집 그대로이다. 울란바토르 한 가운데도 게르가 보인다. 가축을 잃고 울란바토르 주변에서 사는 가난한 사람들이다. 문명이란 꼭 필요한 것일까. 자연의 일부분으로 태어나 불편하더라도 자연에 순응하며 살다가 바람처럼 갈 수는 없는 것일까.
★ 초원의 말
몽골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
“아들을 낳으면 아버지가 웃고, 딸을 낳으면 말이 웃는다.”
이것을 보면 말에게는 사람의 몸무게가 얼마나 큰 짐인지 알 수 있다. 처음 말잔등에 올라 말이 움직이자 꼭 떨어질 것 같아, 또 어디를 잡아야 할지 몰라 ‘어머어머’ 소리만 해대고 있었다. 하지만 곧 몸에 익숙해지자 슬며시 달리고 싶은 생각이 마음 한구석에서 비집고 올라왔다. 일주일만 타면 나도 바람 속을 헤치며 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세상에 이런 변화가 오다니. 말 잔등에 삐딱이 앉아 말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고삐를 잡은 아이가 마냥 부러웠다. 말은 ‘지능은 있지만(생후 3-4살 아이의 수준) 이해력이 없다.’고 한다.
몽골과 말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말은 마치 가족과 같은 존재다. 그들의 의식주가 말에서 비롯되기 때문일 것이다. 몽골 사람들이 음료수처럼 마시는 수태차부터 월동하는 양식에 이르기까지 말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말을 존중하고 다른 동물보다 더 큰 의미를 부여해서 자신들의 생활 속에 가족으로 등장시킨다.
몽골사람들은 왜 울타리를 치고 말을 기르지 않는 것일까. 몽골 사람들이 유목 생활을 하는 이유는 일손 부족 때문이다. 방목하면서 장소를 옮기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란다.
100 마리의 말을 방목하는데 1년 내내 한 사람이면 족하지만 100 마리를 겨울 동안 먹이기 위해서는 건초가 24만 5천7백 킬로그램이 필요하다. 차라리 풀이 있는 겨울 영지로 이동하는 것이 몇 백 배 효율적이다.
* 말, 말, 말, 사랑, 사랑, 사랑
몽골 사람들의 말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자신이 기르는 말을 타고 밤에는 외출하지 않을 뿐 아니라, 기르던 말을 잡아먹거나 다른 사람에게 팔 때에는 말총을 잘라 끈에 묶어 게르에 묶어 놓는다. 이 끈을 ‘아도니’라 하는데 게르마다 천장에 노끈으로 매달아 놓았다.
몽골의 전통 음악을 연주할 때 말 달리는 모습이나 말의 울음소리를 연상시키는 부분이 많고, 오칭(양금)으로 빠른 박자를 연주할 때면 말의 발굽소리를 떠올리게 된다. 특히 전통악기인 마두금에 얽힌 전설이나 마두금 연주의 마지막 부분을 말 울음소리로 끝맺을 때면 더욱 그렇다.
1961년 몽골은 월맹을 돕기 위해 말을 월맹에 원조했다고 한다. 그런데 월맹으로 보낸 말 중에 한 마리가 탈출해서 몽골로 돌아온 것이다. 몽골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도 잊지 않고 다시 돌아온 것에 대해 진한 감동을 느꼈을 것이다. 마치 우리의 진돗개 백구가 주인을 멀리 떠난 뒤에도 잊지 않고 다시 찾아온 것에 감격하는 것처럼. 사람과 동물의 진한 사랑이 느껴진다.마르코폴로가 쓴 ‘동방 견문록’에 보면,몽골의 병사들은 말위에서 내리지도 않고 이틀 동안 먹고 잔다고 기록되어 있다. 몽골사람은 말과의 끈끈한 정으로 세계를 정복하는데 한몫하지 않았을까.
* 몽골의 음식-허르헉
TV에서만 보았던 몽골의 전통음식 ‘허르헉’이 우리 식탁에 올랐다. 여행을 하는 묘미 중의 하나가 그 지방 고유의 음식을 맛보는 것이다. 양철로 된 커다란 우유통 같은 곳에 뜨거운 돌과 양고기를 넣어 익힌 것인데 별 양념이 없어도 담백한 것이 먹을 만 하였다. 양고기라면 맛도 안보고 먹을 시도조차 안하는 사람이 있지만, 이것도 의미 있는 문화체험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먹었다. 우리는 기름기가 없는 살만 조금 먹지만 유목민들은 기름기 있는 부분을 더 좋아한다. 왜냐하면 이 기름기는 추운 겨울을 견딜 수 있는 에너지원이기 때문이다. 몽골 사람들은 배가 나온 사람이 많다. 그 원인 중의 하나는 이렇게 섭취하는 기름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내가 서울에 가면 언제 양고기를 또 먹으랴. 있을 때 많이 먹어둬야 지.
* 별
하늘에 떠있는 별만큼이나 사람들에게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그러나 몽골 하늘에 보이는 별들은 내가 감탄할 만큼 많지도 않았고 별들이 쏟아질 것 같지도 않았다. 견우와 직녀가 건넜다는 은하수도 보이지 않았다. 집에서 바라볼 때보다 더 또렷하게 많이 보이는 것이 두드러진 차이랄까?
‘왜 사람들은 몽골의 별들에 감탄을 할까?’ 하고 생각해 본다.
먼저 우리는 너무 밝은 곳에서 생활하기 때문이 아닐까. 낮에는 해가 떠있어서 밝고 밤엔 전등을 환하게 켜서 밝다. 심지어 도심의 한가운데는 밤에도 광고라는 미명아래 환하게 밤을 밝히고 있다. 그러다보니 하늘에 떠있는 별이 웬만해서는 보이지도 선명하지도 않은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감동한 것에 대해 작은 실망을 했다. 너무 기대를 하고 보아서 그런가 하늘의 별이 쏟아진다고 했는데 별 보다는 차가운 밤공기로 머리까지 뒤집어 쓴 담요를 붙드는 손에 힘이 더 갔다. 아마도 건물에서 새어나가는 불빛조차 없는 순수 100%의 하늘에서 비치는 별들이기 때문에 그런가 보다.
몽골은 고도가 높아 별빛을 가리는 구름과 같은 방해물이 덜 나타난다. 몽골은 평균 고도가 1500m로 높은 편이다. 나는 이곳에 와서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실감을 하며 지냈다. 눈을 들어 어디를 쳐다봐도 하늘과 맞닿은 지평선이 둥근 선으로 내 앞에 다가선다.
<도종환>
사람들이 착하게 사는지 별들이 많이 떴다.
개울물 맑게 흐르는 곳에 마을을 이루고
물바가지에 떠 담던 접동새 소리 별 그림자
그 물로 쌀을 씻어 밥 짓는 냄새 나면
굴뚝 가까이 내려오던
밥티처럼 따스한 별들이 뜬 마을을 지난다.
사람이 순하게 사는지 별들이 참 많이 떴다.
* 흐미의 충격
적당히 살집이 있는 여자가 노래를 하러 나왔다. 갑자기 내 귀를 의심할 만한 이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흐미라는 노래란다. 어떻게 사람의 몸에서 그것도 여자의 목에서 그런 저음의 흘렁흘렁한 소리가 나올까. 흐미는 역사적으로 아주 오래전부터 몽골전통노래로 발전해온 것으로 누구나 흐미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란다. 1000명 중 1명만이 흐미를 할 수 있다고 몽골인들은 말한다. 수년간 단련을 해야지만 그런 소리를 낼 수 있다고 한다.
원하는 음악을 악기가 아닌 목소리로 표현하는 것인데 높은 소리와 낮은 2가지 소리를 동시에 내는 것으로 아주 독특하면서도 아름다운 소리가 난다. 한참을 듣고 있다 보면 마음이 잔잔해져오며 구슬픈 가락이 가슴속 어딘가를 돌아나오는 듯 하다.
지역별로 후미의 소리와 노래가 다르다고 한다. 신선한 충격이다.
몽골을 다녀와서 한동안은 그때의 감흥에 취해 피곤한 줄도 모르고 지냈다. 시간이 지나자하나 둘 미진한 것이 마음에 와 남는다.
우리는 정말로 마음을 다해 그들과 한 마음이 되었을까.------
문화를 그대로 유지하며 긍지를 지키는 사람들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는 않았을까------
몽골사람들은 자존심이 대단히 강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예리한 눈빛을 보면 느낄 수가 있다. 문득 그 눈빛이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