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17:11-24
찬송가 545장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에스겔 17장에서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독수리와 포도나무, 백향목을 비유로 말씀하시며 유다의 정치적 현실과 시드기야 왕의 배신을 드러내십니다. 오늘 본문인 11절부터는 비유의 뜻을 좀 더 구체적으로 밝히십니다. 11-21절은 시드기야의 반역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설명하면서 심판을 피할 수 없음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22-24절에서는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처럼 보이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서는 다시 약속하십니다. “내가 친히 백향목의 높은 가지를 꺾어 심으시고, 새로운 나무를 자라게 하고 풍성히 열매 맺게 할 것이다.”
왕의 배반과 그 결과(11-21)
(11-13)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반역하는 족속에게 묻기를 너희가 이 비유를 깨닫지 못하겠느냐 하고 그들에게 말하기를 바벨론 왕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왕과 고관을 사로잡아 바벨론 자기에게로 끌어 가고 그 왕족 중에서 하나를 택하여 언약을 세우고 그에게 맹세하게 하고 또 그 땅의 능한 자들을 옮겨 갔나니
예루살렘을 침공한 바벨론 왕은 여호야긴 왕과 유다의 지도자들을 사로잡아 바벨론으로 끌고 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유다의 죄악을 경고하셨고, 바벨론의 침공을 통해 그들을 징계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유다 백성은 자신들의 죄를 돌아보기보다 눈앞의 정치적 상황을 바꾸는 데 관심을 두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향하여 '반역하는 족속'이라고 부르십니다. 그들은 단지 바벨론에 반역한 것이 아니라, 반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언약을 가볍게 여겼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려움이 찾아오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기보다 당장 문제를 해결할 방법부터 찾을 때가 있습니다. 상황을 바꾸는 것은 중요하지만, 상황만 바꾸고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태도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같은 문제가 반복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 앞에서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까?'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금 내 삶에서 무엇을 돌아보게 하시는가?'입니다. 말씀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돌이키는 것이 참된 신앙의 모습입니다.
13절에 왕족 중에서 하나를 택하여 언약을 세웠다는 것은 시드기야를 세운 사건을 가리킵니다. 느부갓네살은 여호야긴을 대신하여 그의 숙부 맛다니야를 왕으로 세우고 이름을 시드기야로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그와 언약을 맺고 맹세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훗날 시드기야는 느부갓네살에 대한 충성 맹세를 거듭 배반하면서 애굽 왕 바로를 의지하고 그와 동맹을 맺었습니다. 결국 느부갓네살에게 잡혀 두 눈이 뽑히고 죽을 때까지 바벨론의 감옥에서 지내게 됩니다. 언약 파기에 대한 대가였습니다.
(14-15) 이는 나라를 낮추어 스스로 서지 못하고 그 언약을 지켜야 능히 서게 하려 하였음이거늘 그가 사절을 애굽에 보내 말과 군대를 구함으로 바벨론 왕을 배반하였으니 형통하겠느냐 이런 일을 행한 자가 피하겠느냐 언약을 배반하고야 피하겠느냐
시드기야는 애굽에 사신을 보내 말과 군대를 요청했습니다. 말과 군대는 가장 확실한 군사력의 상징이었습니다. 시드기야는 출애굽의 하나님을 버리고 출애굽의 땅을 다시 의지한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은 “형통하겠느냐, 피하겠느냐, 피하겠느냐”를 반복하시면서 그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다고 강조하십니다. 우리도 어려움에 처하면 눈앞에 보이는 힘을 의지하고자 합니다.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 상황이 달라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대상이 될 때 우리는 시드기야와 같은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시드기야는 마치 영적 전투에서 구원의 투구를 쓰지 못함같이 하나님을 향한 바른 생각을 갖지 못하였습니다.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기보다 세상의 힘과 권력을 의지하고자 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길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생각대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는 영적 무장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고 결국 영적 전투에서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지금 내가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있는 영적인 ‘애굽’은 무엇인지를 늘 점검하고 돌아보아야겠습니다.
16절부터는 21절까지는 맹세를 저버린 왕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음을 재차 강조하십니다.
피할 수 없는 심판(16-21)
(16-18)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바벨론 왕이 그를 왕으로 세웠거늘 그가 맹세를 저버리고 언약을 배반하였은즉 그 왕이 거주하는 곳 바벨론에서 왕과 함께 있다가 죽을 것이라 대적이 토성을 쌓고 사다리를 세우고 많은 사람을 멸절하려 할 때에 바로가 그 큰 군대와 많은 무리로도 그 전쟁에 그를 도와 주지 못하리라 그가 이미 손을 내밀어 언약하였거늘 맹세를 업신여겨 언약을 배반하고 이 모든 일을 행하였으니 피하지 못하리라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과 맺은 맹세를 깨뜨린 일은 단순히 정치적 판단을 바꾼 것이 아니라, 자신이 책임지기로 한 약속을 배반한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과의 언약이기도 했습니다. 훗날 바벨론의 공격이 있을 때 애굽 군대가 예루살렘을 지키려고 했으나 결국 실패했습니다. 시드기야는 맹세를 가볍게 여겼고, 그 결과 자신이 의지했던 정치적 계산은 오히려 심판을 피할 수 없는 길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여러 약속이 있습니다. 가정에서 지켜야 할 약속, 공동체에서의 규정과 규칙, 학교와 직장과 사회에서 지켜야 할 여러 약속이 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상황이 달라지면 약속도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진심으로 약속했지만, 어려운 일이나 환경이 찾아오면 책임을 내려놓고자 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성숙한 믿음은 많은 약속을 하는가보다 얼마나 책임을 다하는가로 드러납니다.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사람은 설령 손해가 있더라도 약속과 책임을 끝까지 감당하려는 사람입니다.
또한 우리 각자가 하나님과 했던 약속이 있을 것입니다. 말씀 생활에 대한 약속, 기도 생활이나 헌신에 대한 다짐이나 약속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누군가를 용서해야겠다는 다짐이나 그 외 하나님과의 여러 약속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한 하나님과의 약속, 그리고 사람과의 약속을 얼마나 신실하게 지켜나가고 있는지 늘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약속에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19-21) 그러므로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가 내 맹세를 업신여기고 내 언약을 배반하였은즉 내가 그 죄를 그 머리에 돌리되 그 위에 내 그물을 치며 내 올무에 걸리게 하여 끌고 바벨론으로 가서 나를 반역한 그 반역을 거기에서 심판할지며 그 모든 군대에서 도망한 자들은 다 칼에 엎드러질 것이요 그 남은 자는 사방으로 흩어지리니 나 여호와가 이것을 말한 줄을 너희가 알리라
하나님은 시드기야가 바벨론에게 한 맹세를 “나의 맹세”라고 부르십니다. 시드기야가 바벨론과 체결한 언약, 충성 맹세를 깨뜨린 것은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자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힌 행위라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혹독한 심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시드기야의 죄를 물으시되 그물을 치고 올무에 걸리게 하고 바벨론으로 끌고 가서 그곳에서 또 심판을 받게 하십니다. 마치 사냥꾼에게 쫓기는 무기력한 짐승으로 비유하십니다. 실제로 시드기야는 예루살렘이 함락당할 때 밤중에 몰래 성 밖으로 빠져 도망갔지만, 여리고 평지에서 붙잡혀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통해 ‘나 여호와가 이것을 말한 줄을 너희가 알리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에스겔서에서 반복되는 중요한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통해서라도 그분의 말씀과 주권을 드러내시겠다는 뜻입니다. 죄가 있는 곳에서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는 피할 수 없습니다. 때로 우리에게 들려오는 징계의 말씀 역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한 사랑의 메시지임을 알고, 깨닫고 즉시 돌이킬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제 본문의 마지막 단락에서는 심판 이후 행하실 새로운 회복을 말씀하십니다.
아름다운 백향목(22-24)
(22-24)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백향목 꼭대기에서 높은 가지를 꺾어다가 심으리라 내가 그 높은 새 가지 끝에서 연한 가지를 꺾어 높고 우뚝 솟은 산에 심되 이스라엘 높은 산에 심으리니 그 가지가 무성하고 열매를 맺어서 아름다운 백향목이 될 것이요 각종 새가 그 아래에 깃들이며 그 가지 그늘에 살리라 들의 모든 나무가 나 여호와는 높은 나무를 낮추고 낮은 나무를 높이며 푸른 나무를 말리고 마른 나무를 무성하게 하는 줄 알리라 나 여호와는 말하고 이루느니라 하라
앞선 비유에서 독수리가 연한 가지를 꺾어 갔다면, 이제는 하나님께서 “내가” 꺾어 심겠다고 하십니다. 인간 왕들이 실패한 자리에서 하나님이 직접 일하십니다. “연한 가지”는 약하고 보잘것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연한 가지를 “높고 우뚝 솟은 산”, 곧 이스라엘의 시온산에 심으십니다. 이 말씀은 이사야 11장 1절의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예레미야 23장 5절의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와 연결됩니다. 다윗 왕조는 시드기야에게서 끝난 듯 보였지만, 하나님은 새로운 가지를 통해 약속을 이루십니다. 곧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성취입니다.
본문의 결론으로 24절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정의하고 그것을 세상 모든 나라와 민족이 보고 알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곧 하나님은 높은 자를 낮추시고 낮은 자를 높이시는 절대 주권자이심을 선언합니다. 이 내용은 한나의 기도와 마리아의 찬가에서도 등장합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자신을 높이는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자를 높여 주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말씀하신 바를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심을 다시금 강조합니다. 시드기야의 맹세와 언약은 깨어졌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이루신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은 눈앞의 형편이 어떠하든 신실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당장의 유익을 위해 약속을 깨뜨리지 않고, 높은 자리에 있다고 교만하지 않으며, 낮은 자리에 있다고 절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심으시고 자라게 하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기억하시며, 오늘도 눈에 보이는 세상의 것들을 의지하려는 신을 벗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주어진 약속을 또한 신실하게 지켜나가는 믿음의 사람들로 드려지는 귀한 한 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말씀으로 저희를 깨우쳐 주시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가볍게 여기고 배반의 길을 걸었던 시드기야를 반면교사로 삼아 우리 삶에서 주님과의 약속뿐 아니라 사람과 공동체 안에서의 약속을 또한 신실하게 지켜나가는 저희 삶이 되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겸손히 자신을 낮추는 자를 높여 주시는 하나님을 늘 의식하며,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자들로 살아가게 도와주시옵소서. 친히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아름다운 백향목처럼 새들의 그늘이 되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늘 거하며, 그 안에서 풍성한 생명을 누리는 복된 한 날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시드기야는 하나님과의 언약, 느부갓네살과의 약속을 가볍게 여기고 배반했습니다. 혹시 하나님 앞에 드렸던 다짐과 약속을 소홀히 했던 경험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2. 시드기야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세상의 힘을 더 바라보고 의지하고자 했습니다. 나의 삶에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려 했던 것들은 무엇입니까?
3. 하나님은 높은 자를 낮추시고 낮은 자를 높이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를 낮춘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을 뜻하는지 묵상해 봅시다.
4. 오늘 하루 신을 벗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무엇을 결단하시겠습니까?
(작성: 최정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