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36 편
세례와 사십일
. 중도자 위원회
. 활동시기 : 26년 1월 (두번째 40일 기도)
. 장소 : 헤르몬 산
136:0.1 유대 민족이 메시아를 열심히 찾고 있을 때, 예수는 대중 활동을 시작했다. 예수는 세상에 따뜻한 위안을 주었고. 어느 정도 모범이 되었다; 요한은 위안도 주지 않았고, 모범도 되지 않았다. 비록 예수가 옛 서열의 선지자 중에서 요한이 가장 위대하다고 말했지만, 새로운 길의 큰 빛을 보고, 하늘나라에 들어간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작은 사람도 정말로 요한보다 위대하다고 말했다.
요한은 "뉘우치라! 다가올 진노를 피하여 달아나라" 는 것이었고, 예수는 '회개하라'는 훈계가 여전히 있었지만 언제나 복음, 새 나라의 기쁨과 자유에 대한 좋은 소식이 뒤따랐다.
1. 사람들이 기대하던 메시아 개념
136:1.1 대체로 유대인은 그들 민족의 역사가 아브라함과 시작되고, 끝에는 메시아가 와서 하나님의 나라를 연다고 믿었다. 초기에는 이 구원자가 “주의 종”, 다음에는 “사람의 아들”이라고 상상했고, 후일에는 메시아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언급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그 개념은 “주의 종”으로부터 “다윗의 아들,” “사람의 아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에 이르기까지 발전하였다.
학식있는 유대인들은 오실 메시아가 완전하게 된 대표적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관념을 개발했다. 이 인물 속에 선지자ㆍ사제ㆍ임금, 이 세 가지 직분을 “주의 종”으로 통합하였다.
모세가 기적으로 선조들을 이집트에서 구원한 것 같이, 메시아는 유대 민족을 로마의 지배로부터 구원하리라 믿었다. 랍비들은 성서로부터 거의 5백 구절을 한데 모았는데, 이것들은 서로 명백히 모순이 있는데도 이 구절들이 메시아의 오심을 예언한다고 단언했다. 메시아가 어떤 인물일 것인가에 대해 전혀 개념이 없었다. 메시아가 유대인의 실추된 위신을 다시 높이고, 유대 민족의 영광을 되찾기를 바랐다. 따라서 예수는 그들이 기대하던 종류의 메시아는 될 수 없었다.
유대인은 신의 모습이 나타난다는 신조를 믿도록 교육을 받고 자랐다. 유대인은 메시아가 저주를 없애고, 사람이 신의 은총을 다시 받게 만들 것이라고 가르쳤다. 사람들은 메시아가 본래부터 악한 본성을 가진 사람을 구원하러 오실 것이라 믿었다.
유대인의 대다수는 민족의 죄 때문에 로마의 통치를 받는다고 믿었다. 이 때문에 “뉘우치고 세례를 받으라, 하늘나라가 가까웠음이라”하는 요한의 설교가 호소력이 있었다.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은 메시아가 오신다는 것이었다. 하늘나라는 어떤 경건한 유대인에게도 오직 한 가지를 뜻하였으니, 메시아의 오심이었다.
136:1.6 미가엘의 수여에는 유대인의 메시아 개념과 관계 없는 인간의 본성과 신의 본성, 이 둘의 결합이었다. 창조자가 인간의 모습을 입고 육신이 되는 것은 계시된 적이 없었다. 세상은 그런 일을 전혀 몰랐다. 그리고 이것이 예수의 초기 제자들에게 큰 장애물이었다. 한 순간이라도, 인간의 본성과 신의 본성이 하나의 성격 안에 뭉친다는 개념은 생각하지 못했다. 창조자가 인간의 모습을 입고 육신이 되는 것은 이전에 계시된 적이 없었다. 창조 아들이 육체가 되어서 이 땅의 필사자 가운데 거하기까지, 세상은 그런 일을 까맣게 몰랐다.
2. 예수가 받은 세례
136:2.1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는 요한의 외침에 유대인 사회가 자기 반성에 들어갔고, 요한의 전도가 절정에 이를 때에 예수는 세례를 받았다. 유대인은 민족의 단결에 깊은 감각이 있었다. 세례받은 자들은 자신의 죄 보다는 민족의 죄를 용서받으려고 세례를 받았다. 예수는 회개하는 의식으로 요한의 세례를 받지 않았다. 다만 많은 경건한 이스라엘 사람의 모범을 따른 것이다.
나사렛 예수는 완전하게 된 한 필사자로서 요단강에서 섰다. 예수의 인간 정신과 깃드는 영 조절자 사이에 완전한 교통이 이루어졌다. 미가엘이 우주의 지도자 자리로 올라간 후로, 조절자가 유란시아의 모든 정상 인간에게 깃든다. 예수의 조절자는 예외이며, 특별 사명을 위해 깃든 조절자이다.
보통 사람의 경우에는 이 때 조절자와 융합이 일어난다. 요한이 예수에게 세례를 주려고 손을 얹었을 때, 깃들던 조절자는 요수아 벤 요셉으로부터 완전히 떠나 있었고, 신별로부터 성격화된 조절자로서 네바돈 조절자들의 지도자가 되어 있었다. 이제 이 영은 “이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아주 기뻐하는 자라.” 말씀하였고, 요한, 예수의 두 동생이 함께 이 말씀을 들었다. 오직 예수만이 성격화된 조절자를 보았다.
예수는 가까이 있는 조절자를 우러러보면서 기도했다: “하늘에서 군림하시는 내 아버지여, 주의 이름이 거룩하옵소서. 주의 나라가 오소서! 주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기도하고 나자 “하늘이 열렸고” 사람의 아들은 이제, 성격화된 조절자가 제시한 환상을 보았다.
요한과 예수가 들은 것은 우주의 아버지를 대신하여 말씀하는, 성격화된 조절자의 목소리였고, 이는 조절자가 파라다이스 아버지로부터, 아버지로서 왔기 때문이다. 예수가 땅에서 살던 여생 동안 내내, 이 성격화된 조절자는 그가 어떤 노력을 했어도 그와 관련되어 있었다. 예수는 신분이 높아진 이 조절자와 항상 교통하고 있었다.
136:2.6 세례를 받았을 때, 예수는 잘못을 뉘우치거나 죄를 고백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분명한 부르심, 아버지의 일을 돌보라는 마지막 호출을 들었고, 이를 위해 40일 동안 은둔하려고 떠나갔다.
이 세례받은 날은 예수의 순전히 인간다운 삶을 종결하였다. 신성한 아들은 아버지를 발견했고 우주의 아버지는 육신화한 아들을 발견했으며, 그들은 다른 사람에게 그들을 말한다.
세례받을 때 예수는 서른한 살 반이었다. 이 해는 티베리우스의 통치 15년째, 서기 26년이었다. 그는 아우구스투스와 2년 반 동안 공동으로 황제였다. 또한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서 통치를 시작한 해였다.
3. 사십일
136:3.1 우주의 기록에 따르면 세례 받기 전 나사렛 예수는 헤르몬산에서 유란시아의 행성 영주가 되었다. 네바돈의 최고 주권자로 예정된 이 유란시아의 영주는 이제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하나님의 새 나라를 선포할 계획을 세우고 그 기법을 결정하려고 40일 동안 은둔에 들어갔다.
페레아 언덕에서 혼자 있던 이 기간에 지상 생활의 새로운 변화된 단계에서 어떤 정책을 추구하고 어떤 방법을 사용할 것인가 결정했다.
예수는 금식할 목적도 아니고, 모세와 엘리야, 아니 세례자 요한을 움직이지도 않았다. 파라다이스 아버지의 감독을 받았다. 유란시아에서 육신화에 들어가기 전에, 형 이마누엘의 지침을 이제 충분히 기억했다. 그는 한동안 조용히 명상하려고 떠나 있기를 바랐다.
산에서 가브리엘을 만났다. 임마누엘의 지시에 따라서, 옛적부터 계신 이들의 권한으로, 가브리엘은 네바돈의 주권과 루시퍼 반란의 종결을 선포하였다. 그의 우주를 다스리는 완벽하게 된 주권 획득은 세례받는 날에 이루어졌고, 자신 수여가 완전하고 완결되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루시퍼 반란의 종결은 헤르몬산에서 내려온 그날에 역사적 사실이 되어버렸다.
가브리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 에덴시아의 별자리 아버지가 나타나서 말했다: “기록이 완성되었습니다. 미가엘 611,121번이 네바돈 우주를 다스리는 주권은, 완전히 획득하여 우주의 아버지의 오른 편에 보존되었습니다. 임마누엘이 당신을 수여에서 해방한다는 것을 내가 알립니다. 지금이나 어느 때라도 네바돈을 제한 없이 자유롭게 통치할 수 있습니다. 앞날에 죄와 반란에 대하여 제한 없는 권리를 당신에게 부여한다는 초우주의 기록이 끝났다는 것을 옛적부터 계신 이들의 권한으로 또한 증언합니다. 이후의 길은 당신이 선택할 문제입니다.”
136:3.6 에덴시아의 최고 아버지가 떠났을 때, 예수는 우주의 복지에 대하여 가브리엘과 오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마누엘에게 안부를 전하면서, 수여 이전 부여된 책임과 관련하여 그가 받았던 충고를 늘 염두에 두겠다고 확언을 주었다.
혼자 있던 이 40일 동안 내내, 세베대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를 찾는 일에 열중했다. 여러 번 그가 거하는 장소에서 멀지 않은 곳까지 왔지만 결코 그를 발견하지 못했다.
4. 대중 사업을 위한 계획
136:4.1 산 위에서 날마다, 예수는 남은 수여 생애를 위하여 계획을 세웠다. 요한과 같은 시기에 가르치지 않기로 작정하였다. 예수는 요한의 두려움 없고 분별 없는 설교가 곧 집권자들의 두려움과 적의를 일으킬 것을 잘 알았다. 예수는 민족과 세계의 이익을 위하여, 그의 광대한 우주에 두루, 사람 사는 모든 세계를 위하여, 대중에게 봉사하는 계획을 분명히 세우기 시작했다. 필사자로 미가엘이 자신을 유란시아에 수여했지만 이는 네바돈의 모든 세계를 위한 것이었다.
예수는 이마누엘의 지시를 검토했다. 어떤 것에도 글을 쓰지 않았다. 다음에 나사렛을 방문했을 때, 보존되어 있던 그의 글을 모조리 없애버렸다. 어떤 경제ㆍ사회ㆍ정치적 태도에 이마누엘의 충고를 곰곰이 생각했다.
예수는 혼자 있던 이 40일 동안에 금식하지 않았다. 먹을 것이 없이 지낸 기간은 처음 이틀이었고, 그땐 깊은 생각에 빠져서 먹는 것을 잊어버렸다. 그러나 사흘째에 먹을 것을 찾아 갔다. 이 기간에는 어떤 악한 영이나 반란에 가담했던 성격자들의 시험을 받지도 않았다.
이 40일은 인간의 지성과 신의 지성 이 두 지성이 이제 하나가 되어 처음으로 활동하는 때였다. 이 중대한 명상 시간으로부터 생긴 결과는, 신의 지성이 인간의 지능을 이기고 영적으로 지배했음을 확고히 보여주었다. 비록 인간 지성의 자아가 늘 자리에 있었어도, 영적으로 변화된 지성은 “내 뜻이 아니라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로 말한다.
이 중대한 시간에 처리한 것들은 굶고 허약해진 지성에 황홀한 환상을 본 것이 아니다. 이 기간은 유란시아에서 자신의 생애 전체에 대하여 생각하고, 한편 반란으로 고립된 모든 다른 구체를 개선하는 데 무언가 이바지할 수 있도록 봉사하는 계획을 조심스럽게 세우기 위한 것이었다. 안돈과 폰타의 시절부터 아담의 직무 불이행을 거쳐서, 또 살렘에 있던 멜기세덱의 봉사에 이르기까지, 예수는 유란시아에서 인간 생활의 폭 전체를 생각해 보았다.
136:4.6 유란시아에 한동안 머무르기로 작정했다면, 무엇을 하든지 우주의 주권이나 루시퍼 반란의 종결과 상관이 없다는 것이 예수에게 뚜렷이 전달되었다. 세계에 봉사하는 두 가지 길은 다음과 같다:
1. 자신의 길 ― 이 세상에서 당면한 필요의 관점, 그리고 당장 자신의 우주를 교육시키는 관점에서 볼 때 가장 즐겁고 유익하게 보일 수도 있는 길.
2. 아버지의 길 ― 온 우주의 파라다이스 행정부에 있는 높은 성격자들이 상상한 대로, 사람의 일생의 이상, 멀리 내다보는 이상을 모범으로 보이는 것.
이 두 길은 각기 좋다고 볼 수 있는 무엇이 있었다. 이미 우주의 주권은 온 우주의 기록에서 결정되고 인정된 사항이다. 예수가 언제나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여 땅에서 육신화 생애를 끝마친다면 크게 만족할 것이라는, 형 임마누엘의 지적이 있었다. 이렇게 혼자 사흘째, 예수는 땅에서 생애를 마치기 위하여 세상으로 돌아가 언제나 아버지의 뜻을 택하리라고 다짐하였다. 그리고 그 결심에 언제나 충실하게 그는 땅에서 여생을 끝까지 살았다. 쓰디쓴 마지막 날까지 최고의 뜻을 하늘 아버지의 뜻에 변함없이 복종시켰다.
산에서 지낸 40일은 큰 시험을 받은 것이 아니라 주가 큰 결정을 내린 기간이었다. 이 기간동안 성격화된 조절자도, 개인 수호 천사도 없었다. 모든 위대한 선지자와 인간 지도자들이 공적 사역을 시작할 때 금식과 기도로 하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에, 앞서 헤르몬산에서 투쟁했던 토막 이야기들과 큰 시험이 있었다는 전통이 후일에 연결되었다.
136:4.11 땅에서 여생을 보내는 이 모든 계획에서, 예수는 두 가지 상반되는 행동 과정 때문에 언제나 그의 인간 마음 속에 갈등이 있었다:
1. 민족이―그리고 전 세계가―그를 믿고 영적인 새 하늘나라를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려는 강력한 소망을 품었다. 오시는 메시아에 관하여 그들의 개념을 잘 알고 있었다.
2.아버지가 승인할 것을 알고 곤경에 빠진 다른 세계들의 이익을 위하여 일을 처리하고 하늘나라를 세우는 일을 하면서 계속 아버지를 드러내고 아버지의 사랑하는 신성한 성품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 중대한 기간 내내, 예수는 오래 된 바위 동굴 안에서 살았고 이곳은 언젠가 베이트 에디스라고 부른 마을 가까이, 산 옆에 있는 피난처였다. 예수는 이 피난처 가까이 있는 산 옆에서 나오는 작은 샘물에서 물을 마셨다.
5. 처음 내린 큰 결정
136:5.1 성격화된 조절자와 함께 이 회의를 시작한 지 사흘째에 12 군단의 세라핌 및 다른 지적 존재들의 환상을 보았다. 유란시아에서 대중 사업과 연결하여 이 막강한 성격자들을 이용할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것이었다.
아버지의 뜻이 명백하지 않는 한, 어떤 성격자도 쓰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이 결정을 내렸는데도, 이 무리들은 여생 동안 내내 함께 있었고, 군주의 뜻이 실오라기만큼 표현되어도 복종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산에서 내려오기 전, 시중드는 우주 성격자 집단의 통솔권을 성격화된 조절자에게 넘겨 주었다. 모든 부서의 우주 성격자들은 4년이 넘게 성격화된 조절자의 지혜로운 인도를 받으며 온순하고 공손하게 활동하였다. 이 조절자는 아버지가 간섭하지 않는 한 예수의 생애를 위하여 자신들을 드러내지 않겠다고 다짐하였다. 또한 예수도 어떤 초인간적 협조도 받지 않겠다고 자진해서 포기하였다.
성격화된 조절자는 비시간 존재로, 그의 공간 통제는 완벽하지만, 시간 제한은 부과할 수 없다고 지적하였다. 조절자는 말했다: “당신의 지상 생애와 관련하여 우주 지성들이 시중드는 것을 내가 금할 것이다. 당신의 신성과 인간의 의지로 시간 관련하여 땅의 질서를 벗어나는 선택을 내리거나 행동할 경우, 나는 무력하여 통제할 수 없으니, 당신의 명령은 집행될 것이다. 당신의 소망은 시간의 단축일 터이고, 따라서 시간에 관련된 어떤 일에도 나는 당신이 지은 생명존재들을 제한할 수 없다.”
오직 시간에 관련된 그런 문제를 제쳐놓고 다채로운 존재들이 대중 봉사에 참여하지 못하게 했다. 물론 “아버지의 뜻”에는 어떤 제한을 둘 수 없다. 시간 기적을 방지하기 위해서 예수는 항상 시간 의식이 필요했다. 시간 의식의 착오가 생기면, 이 창조 아들의 생각이 집행되게 되어 있었다.
136:5.6 성격화된 조절자의 감독과 통제로, 미가엘은 공간의 활동을 제한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시간에 관해서는,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제한하기가 불가능했다. 나사렛 예수가 유란시아에서 대중에게 봉사를 시작하려고 나섰을 때 이것이 그의 실제 상태였다.
6. 둘째 결정
136:6.1 예수는 이제 생각을 자신에게 돌렸다. 이 창조자 특권을 가지고 무슨 일을 할 것인가? 혼자 명상에 잠긴 사흘째가 되어서 인간의 몸은 배가 고파졌다. 먹을 것을 찾아서 나설 것인가, 창조 능력을 써서 창조할 것인가? 너희에게는 하나의 시험으로서, 가상(假想)의 적들이 “이 돌로 하여금 빵 덩어리가 되라 명령하라고” 도전했다고 묘사되었다.
예수는 땅에서 정상으로 존재하는 길을 추구하기로 하였다. 자연 법칙에 따라 기존의 사회 조직과 조화되게 구성되고 실행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결정했다. 다시 그는 만사를 파라다이스 아버지의 손에 맡기었다.
예수는 이 세상과 거기에 사는 인간에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는 방대한 우주의 다양한 생명존재들 가르치고 영감을 주도록 고안된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는 필사자로서 아버지의 뜻에 절대로 의존하기로 결정하였다. 익숙한 성서의 말씀 속에서 결론을 내렸다. “사람은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것이다.” 사람의 아들은 식욕에 관하여 이러한 결론을 내리면서 육체의 모든 다른 욕구에 관하여, 마지막으로 선언하였다.
초인간 능력을 남을 위하여 쓸 수 있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하지 않았다. “저가 남은 구하였으되, 스스로를 구할 수 없도다”하고 사람들이 놀리는 말을 했을 때―그가 그렇게 하려고 하 지 않았기 때문에―종말까지 이 정책을 줄곧 따랐다.
136:6.6 유대인은 모세보다 더욱 큰 이적을 행할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수는 자기 이익을 위해서나 동료 인간을 위압하기 위해서, 자신의 법칙을 뛰어넘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주는 최종 결정을 내렸다.
예수는 자기 민족의 처지를 슬퍼했다. 유대인은 메시아가 기적 같이 풍성한 시대를 개시할 것이라 믿었다. 히브리인은 기적의 전통과 이적의 전설에 오랫동안 젖어 있었다.
그는 빵과 포도주를 몇 배로 불리려고 오는 메시아가 아니었다. 땅에 있는 자녀들에게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드러내러 왔고,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 위해 땅에 있는 자녀들을 이끌려고 애썼다.
이기적 이익과 영광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팔아넘기는 것이 어리석고 죄가 된다는 것을 구경하는 우주에게 보여주었다. 바로 그것이 루시퍼와 칼리가스티아의 죄였다.
필사자로 사는 데에는 더 높은 가치―지적 통달과 영적 성취―가 있고 이것은 사람의 필요한 충족을 훨씬 초월한다. 사람이 천성으로 부여받은 재능과 능력은 더 높은 정신 및 영 능력을 개발하고 높이는 데 주로 바쳐야 한다.
136:6.11 이렇게 예수는 인생에서 상급의 도덕적 가치, 그리고 공간 세계에서 진화하는 인간으로 존재하면서 심오한 영적 만족을 얻는 방법을 우주의 인간들에게 드러냈다.
7. 셋째 결정
136:7.1 신변의 위험에 부닥쳤을 때 어떤 태도를 가질 것인가? 정상으로 조심하지만, 초인간적 힘을 사용하지 않기로 작정했다. 이 결정을 내리고 있을 때, 예수는 앞에 벼랑이 있는 바로 거기에 툭 튀어나온 바위 선반 위에, 어느 나무 그늘 아래에 앉아 있었다. 유란시아에서 일을 집행하는 데 하늘 지성 존재들을 부르지 않겠다는 처음 큰 결정과 자아 보존을 위한 둘째 결정을 취소한다면, 몸을 다치는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잘 깨달았다.
자신의 민족들은 자연 법칙을 초월할 메시아를 기대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가 배운 성서 말씀은 '어떤 악도, 전염병도 너에게 오지 않으며, 천사들이 너를 맡아서 지킬 것이라. 네 발이 부디치지 않도록 너를 붙들리라.' 이런 주제점은 태도가 정당한 것인가? 표징을 구하는 유대인들이 아무리 흡족해 하더라도, 이것은 오히려 아버지를 계시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확립 된 법칙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가 물 위로 걷거나 물질적 질서를 짓밟는 어떤 일도 하지 않았음을 너희가 분명히 안다. 성격이 된 조절자의 시간 통제력 부족으로 그를 완전히 해방할 수 있는 방법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음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땅에서 전 생애를 통하여, 예수는 이 결정에 한결같이 충실했다. 표적을 보이라는 바리새인들에게나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는 구경꾼들의 야유 소리에도 이때 내린 결정을 변치 않고 고수하였다.
8. 넷째 결정
136:8.1 유대인들을 만족시키려고 어떤 방법으로든 우주 권능을 써야 할 것인가? 그래서는 안 된다고 결심하였다. 시간 단축으로 수많은 자비 행위가 나타났을 때에도, 치료받은 자에게 입을 열지 말라고 변함없이 타일렀다.
그는 단순히 이적(異蹟)을 행하는 자가 되지 않으려 하였다. 오직 한 가지 일에―하늘나라를 세우는 데―전념하기로 결의하였다.
기적을 행하지 않는다면 유대인들이 그를 메시아로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 뻔했다. 의심스런 인간 본성에 신의 지성이 이렇게 양보하는 것이 “아버지의 뜻”과 일치될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결정했다.
예수는 로마ㆍ알렉산드리아ㆍ다마스커스를 여행했던 것을 회상하였다. 하늘나라를 세우는 데 세상의 지혜, 타협, 재력의 영향도 받지 않기로 결심하였다. 아버지의 뜻에 순전히 의존하기로 작정하였다.
얼마 안 있어 예루살렘에서 사람들이 유월절을 축하할 터이고 그 도시는 방문자들로 들끓을 것이었다. 그는 성전의 꼭대기에서 내려와서 놀란 군중 앞에서 공중에서 걸을 수 있었다. 신의 목적을 이루는 길, 자연스럽고 느리고 확실한 길보다 더 앞서 가려고 애쓰는, 칼리가스티아의 방법이 쓸모 없음을 알았다.
136:8.6 예수는 권력이 이기적이고 사사로운 목적에 사용되지 않기 위한 큰 시험을 지금 거치고 있었다.
사람의 아들의 일생과 체험을 고려할 때, 1세기 인간의 지성 속에서 육신화되었다는 것을 늘 기억해야 한다. 그의 인간 지성은 그 시절에 살던 인간의 환경 밑에서 참된 필사자의 지성이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행동했다.
피땀 흘리지 않고 인기를 위한 목적, 정치적 위신에 신의 속성을 팔 려 하지 않았다. 죄, 악과 타협하기를 거절하였다. 주는 땅에서의 모든 것 위에, 아버지의 뜻에 충성하는 일을 올려놓았다.
9. 다섯째 결정
136:9.1 자신과 자연법칙 및 영적 능력에 대한 원칙을 해결하고 나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세우는데 어떤 방법을 선택할 것인가? 어떻게 요한의 사명을 이어받을 것인가? 유대인의 메시아로서 활동할 것인가?
유대 민족들은 기적 같은 권력으로 빈곤과 억압에서 자신들을 해방시키고 유대인을 세계의 통치자로서 세울 구원자를 상상하고 있었다. 눈부시게 번쩍 권력을 전시함으로 영적인 나라를 개시하는 것이 현명한지를 생각해 보았지만, 그러한 과정은 허락될 수 있고, 온전히 미가엘의 관할권에 속했다. 그는 이 계획을 완전히 반대하기로 결심하였고, 칼리가스티아의 혁명적 기법과 타협하려 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뜻에 복종함으로 잠재적으로 세상을 이겼고, 그가 시작한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아들로서 할 일을 마치기로 계획하였다.
그는 그러한 악을 섬기려 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뜻을 지키려 하였다. 그는 바라보는 우주에게 “너희는 주 너희 하나님을 예배하고 오로지 그를 섬길지니라”하고 선포할 것이다.
여러 날이 지나자, 점점 더 또렷하게 예수는 어떤 종류의 진리 계시자가 될 것인가 깨달았다. 그의 인간 체험에서 마실 남은 잔이 씁쓸하리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이를 들이키기로 결심했다.
그의 인간 지능조차 다윗의 왕좌에 작별을 알리고 있다. 한 걸음 한 걸음 이 인간의 지성은 신의 지성이 가는 길을 따라간다. 인간의 지성은 아직도 질문하지만 아버지의 영원하고 신성한 뜻을 행하는 데 조건 없이 항상 복종하면서, 세상에서 사람으로 사는 이 통합된 일생에서 신이 준 대답을 마지막 판결로 어김없이 받아들인다.
136:9.6 로마는 서양 세계의 여왕이었다. 지금 하늘 무리들을 장악하고 있는 사람의 아들은 유대인이 세계 정복을 성취할 마지막 기회였다. 그에게 오직 한 가지 목적은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 하늘나라를 세우는 것, 인류 속에서 하늘 아버지가 다스리는 것이었다.
전투ㆍ싸움ㆍ학살의 관념은 예수에게 싫은 것이었고, 그는 이를 거들떠보려 하지 않았다. 그는 사랑의 하나님을 드러내는 평화의 왕으로서 땅에서 나타나고 싶었다.
나사렛 예수는 히브리 성서, 부모의 훈련, 하잔의 가르침, 유대인의 기대, 인간적 야망을 싹 쓸어버렸다. 갈릴리로 돌아가서 조용히 하늘나라의 선포를 시작하고 그의 아버지(성격이 된 조절자)를 의지하고서 하루하루 과정의 세부를 해결해 나가려 하였다.
예수가 영적 문제의 증명을 위해서 물질적 분석을 이용하지 않으려 했을 때, 자연 법칙을 주제넘게 무시하려 하지 않았을 때, 그는 광대한 우주에 두루, 모든 세계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이 여러 가지 결정으로 훌륭한 본보기를 보였다.
세례를 받고 산으로 올라갔을 때, 사람의 아들이 자기의 사명과 그 성질에 대하여 어떤 의심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40일 뒤에 동료들에게 돌아왔을 때는 전혀 의심이 없었다.
136:9.11 아버지의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예수는 한 계획을 세웠다. 이적을 행하여 눈을 끌지 않을 것이다. 정치적 권한, 권능으로 세상이 영적 말씀을 받아들이도록 애쓰지 않을 것이다.
예수는 기대하는 유대인들의 눈에, 다가오는 나라를 돋보이게 하는 이 여러 방법을 모두 물리칠 것을 확신하였다. 초기의 추종자들이 그를 메시아로 언급하는 것을 막으려고 오랫동안 애썼다.
대중에게 봉사하는 동안 내내, 그는 항상 세 가지 상황을 처리할 필요성에 부딪쳤다. 먹여 달라, 기적을 행하라, 임금이 되어달라는 요구였다. 예수는 페레아 산 속에서 혼자 지내던 이 여러 날 동안 내린 결정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았다.
10. 여섯째 결정
136:10.1 이 기간의 마지막 날에, 사람의 아들은 마지막 결정을 내렸다. 이 결정을 성격이 된 조절자에게 다음의 말씀으로 전했다: “그리고 이제 결정되고 기록된 이 문제들과 같이, 모든 다른 문제에서도 내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겠다고 나는 당신께 서약합니다.” 이렇게 하고 산을 내려갔으며, 그의 얼굴은 영적 승리와 도덕적 성취의 영광으로 빛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