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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슬산(琵瑟山) 돌아보기
글․사진 권 영 시<시인>
비슬산의 유래
비슬산을“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포산(苞山)이라 한다. 신라시대에 인도 스님들이 놀러왔다가 산을 구경하던 도중 이 산을 보고 비슬이라 이름 지었다. 비슬이란 인도의 범어(梵語) 발음을 그대로 음(音)으로 표기한 것이다. 비슬은 한자의 뜻이 포(苞)라고 해서 포산이라 한다. 포산은 수목에 덮여 있다는 뜻이다.
“유가사 창설내력”에는 산의 모습이 거문고와 같아 비슬산이라 한다. 산꼭대기 바위의 모습이 마치 신선이 앉아 비파를 타는 모습과 같아 비파 비(琵)자, 거문고 슬(瑟)자로 표기하였다.
또 다른 일설이다. 천지가 개벽할 때 세상이 온통 물바다가 되었으나 비슬산 정상의 일부는 물이 차지 않고 남아 있었다. 그 남은 부분의 형상이 마치 비둘기처럼 보여 “비들산”이라고 부르다가 “비슬산”으로 변하였다고 전한다.
한편, 유가에 대한 어원은 인도 범어인 요가(YOGA)에서 비롯되었다. 요가는 결합, 조화, 균형이라는 뜻이다. 불교 용어인 요가에서 유가라는 고장명칭까지 생겨났으니, 유가사(瑜伽寺)역시 지역 이름에서 붙여진 사찰 이름으로 유가종(瑜伽宗)의 본산이기도 하다.
비슬산 대견봉
비슬산 정상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면 양리와 가창면 정대리의 경계지 최정점이다. 더욱더 명확히 한다면 달성군 유가면 양리 산3-1번지로서 유가사 사찰림의 산정부이다. 해발 1,083.59m로 최고봉은 대견봉(大見峰)이다.
비슬산과 그 일원의 주변 산을 교남지(嶠南誌)에선 이렇게 기록한다.
“琵瑟山 一名苞山在郡東十五里自淸道大邱來一支南走爲火旺山一支西走爲昌寧小白山”,
“大見峯 在琵瑟山最高頂”, “照華峯 在琵瑟山南諺傳唐僧一行指此峯照中華云故名”, “石劒峯.天王峯.修道峯 幷在琵瑟山北”, “月先峯 在琵瑟山南”, “筆峯 在琵瑟山西...”
달성군지 2권(達城郡誌卷之二)에서는“琵瑟山在瑜伽面一名苞山自淸道大邱來一麓南走爲火旺山一麓西走爲昌寧小白山”
“大見山在琵瑟山最高頂”, “照華峰在琵瑟山南諺傳唐僧一行云此峰 照中華故仍稱焉...”
교남지와 달성군지를 비교해 본다. 교남지에서는 비슬산이 달성군(郡)에 있고, 달성군지에서는 유가면(瑜伽面)에 있는 산으로 기록되었다. 그 외의 주변 산에 대한 기록은 두 편의 내용이 거의 흡사하다.
위 기록으로 보아 비슬산은 동쪽으로 15리에 걸쳐 청도와 대구에 이르고, 남쪽으로 뻗어 화왕산, 서쪽으로 뻗어 창녕의 소백산을 이룬다. 이 산을 망라한 전체가 비슬산 임을 뜻한다. 비슬산의 최고 높은 정상을 대견봉 또는 대견산이라 하였다.
비슬산은 주봉에서 대구방향으로 유가에서 논공을 지나 옥포, 화원을 거쳐 삼필봉(468m)과 청룡산(794.1m), 대덕산(546m), 앞산(660.3m), 비파산(360m정도), 산성산(해발640m정도)을 형성하여 달서구와 남구 그리고 수성구 파동과 가창면 용계리에서 산자락을 마감한다.
대견봉에서 남쪽 방향으로는 조화봉(1,058m)과 관기봉(989.7m)이 있다. 달성군 지역에서는 마을 이름이 내포하듯이 끝 말자(末)가 들어 있는 유가면 본말리(本末里)에서 끝을 맺는데 그 꼬리는 달창지에 깊숙이 담겨졌다.
또 다른 동쪽으로는 달성군 가창면 용계리 가창면사무소 건너편 산자락에서 마감한다.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과 풍각면도 거쳤다. 경상남도 창녕군 성산면에서 앞서 나열한 달창 저수지가 있는 달성군의 본말리와 창녕군의 성산면 후천리에서 서로 만나는 지점을 끝으로 달성군 지역의 능선에서 비슬산의 맥은 끝을 마감한다. 청도와 창녕으로는 계속하여 준령을 이어가고 있어 창녕의 화왕산과 소백산 기슭까지 맥을 형성한다.
비슬산 정상에서 북쪽을 향하여 시선을 한 바퀴 돌려보자. 마치 시계의 시간 표시점을 가르치듯이 정확하게 1시 방향은 대구에서 제일 높은 팔공산(해발1,192.9m)이 눈앞에 솟아 자리한다.
동북쪽으로 가까이에는 2시 방향에 가창면의 최정산(915m)이 보인다. 멀리는 3시 방향으로 울산과 청도를 접하고 있는 가지산(1,240m)이 보인다. 6시 방향인 정남쪽에는 창녕의 화왕산(756.6m), 서남쪽 8시 방향에는 산청의 지리산 천왕봉(1,915.4m)이 보인다.
서쪽의 10시 방향으로서 가까이에는 합천의 가야산(1,430m), 멀리는 무주의 덕유산 향적봉(1,614m)이 보인다. 서북으로는 11시 방향에 구미의 금오산(976.6m)이 우뚝 솟아 자리한다. 이들 산을 시야에 넣으면 중앙부로 여겨지는 곳, 시계바늘 중심점에 뿌리를 깊숙이 내려 버티고 앉아 낙동강을 감싸고 있는 산이 바로 비슬산이다.
조화봉과 대견사지
비슬산에서 두 번째 높은 봉우리가 조화봉이다. 비슬산 대견봉에서 약 4km 떨어진 능선의 남령에 위치한다. 조화봉에 앞서 대견사지에 대하여 살펴보자. 대견사지에는 9세기 신라 헌덕왕 때 창건한 절과 석탑이 있다.
창건 유래 또한 이렇다. 중국의 당나라 황제가 절을 지을 곳을 찾았다. 마땅한 자리가 없어 늘 상심하고 있던 어느 날 세수를 하려고 대야에 물을 떠놓았을 때, 그 물 속에 경치가 아름다운 산이 나타났다.
황제는 이곳이 바로 신이 주신 명산임을 알았다. 그래서 방방곡곡을 찾게 하였으나 이루지 못하였다. 신하들에게 계속하여 비춰진 산을 찾도록 한 결과 당시 신라국인 이곳에서 발견하였다.
해발이 1,000여m나 되는 이곳은 왕지골 이라 불렀다. 황제가 하사한 곳이므로 계곡에 거대한 축대를 쌓고 가로막아 터를 닦았다. 필자의 실측에 의하면 축대의 높이가 6m, 길이가 40m나 된다. 이곳에 절을 짓도록 한 곳이 대국인 중국(大)에서 보였던(見) 절터라 하여 사찰의 이름을 대견사(大見寺)라고 칭하였다.
현존하는 축대는 거대한 암석을 모두 사람의 힘으로 쌓았다. 정교하고 가지런하게 쌓은 당시의 석축기술을 짐작케 한다. 산 정상부의 계곡에 운반하여 하나하나 축조한 자연석 축대야말로 인간의 위력에 무한한 가능성을 시사한다. 좌우후면 모두 온통 바위가 즐비하다.
더욱이 3층 석탑마저 절터에서 앞으로 튀어나간 암반 끝에 버티고 있다. 산 아래에서 보면 하늘에 떠 있는 탑의 모습으로 보인다. 직접 확인해 보지 않고는 실감이 나지 않는 유일한 장소에 위치한 탑이다. 남쪽을 향한 우람한 바위는 십 여 명이 들어갈 수 있는 동굴이 있다.
과거 이 동굴 내에는 참선과 도량을 넓히려는 자들이 수년간씩 교대로 장기간 기거하였다. 주변 경관과 자연을 훼손하거나 오염의 원인이 되고 있었다. 일대는 달성군 유가면 용리 산1번지이다. 필자는 대견사지 일대를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할 것을 요청하였다. 94년 7월23일 이곳의 16,530㎡의 면적에 경상북도 문화재보호 조례 제13조의 규정에 의거 도 지정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당시 행정구역은 경상북도 달성군).
한편, 이곳에 절을 지을 당시 당나라 인들은 인근에 있는 봉우리에서 고국이 그리워 바라보니 중국이 비추어졌다고 전한다. 그래서 그 봉우리를 비췰 조(照), 아름다울 화(華), 조화봉이라 전한다.
앞서 기술한 교남지와 달성군지의 기록을 보자. 조화봉은 비슬산 남쪽에 있는 봉우리이고, “諺傳唐僧一行此峯照中華云故名”이라 하여 당나라 승려가 이곳에 왔을 때에 중국이 비춰져서 붙여진 이름으로 조화봉(照華峯)이라 명명된 지명임을 알 수 있다.
비슬산 주변 사찰
겨울철에 비슬산 능선을 따라 보자. 산의 정상부 곳곳에는 누런 억새풀밭을 많이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남쪽을 향하는 억세 밭, 그러니까 평평하게 보이는 지역은 대부분 사찰 터의 흔적으로 판단하여도 큰 무리는 아니다.
대표적인 현존 사찰로 도성암이 있다. 그 외 대견사지, 관기암지, 용봉동 석불입상, 염불암지, 보재암지, 각동사(角東寺)지 등은 산의 정상부근에 사찰이 있었다는 자체가 특이하다. 불교문화가 번성할 당시에 비슬산 일원에는 암자를 포함하여 99개나 있었다고 전한다.
필자는 93년도에 금수암(金水庵)의 절터와 석탑을 함께 발견하였다. 또 다시 염불암(念佛庵)의 절터와 석탑도 발견하였다. 모두 다 사찰의 터는 정교하게 짜여졌다. 축대와 사찰주위의 탑은 모두 화강암질이다. 대웅전, 산신각, 요사채 등의 부속 건물 형태의 축대와 부지의 터가 너무나 정교하였다
당시 석탑은 도굴꾼의 소행으로 도괴되어 바닥부위가 움푹 파헤쳐져 있었다. 기단부(基壇部)의 탱석과 상대갑석(上臺甲石)은 45도 각도로 기울어졌다. 그 밖에 무게가 만만치 않은 탑신과 옥개석(屋蓋石)은 가까운 산비탈에 버려졌다. 노반(露盤)과 상륜(相輪)은 멀게는 100미터 정도 아래 등산로의 참나무 낙엽에 묻혀 너딩굴고 있었다. 워낙 깊은 산중이라 반출이 어려워 운반 도중 포기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당시 문화재관리부서에 이 사실을 알리고 복원을 요청하였다. 그 이듬해인 94년도에 달성군에서 석탑2기를 모두 복원하였다.
비슬산은 경주의 남산 다음으로 불교문화가 번성하여 그 유적이 흔한 곳이라 할 수 있다.
삼국유사와 일연스님
삼국유사를 남긴 석 일연(釋一然)스님은 비슬산에도 인연이 깊은 사람이다. 삼국유사에서 포산이성(苞山二聖)이란 기록이 있다. 관기(觀機)와 도성(道成)의 두 성사(聖師)에 관한 기록이다.
관기선사가 도성선사에게 전할 말이 있을 때에는 관기봉 아래 관기암(庵)의 수도장에서의 관기선사가 도통바위를 향하면 포산의 수목은 일제히 그 쪽 방향으로 허리를 굽혔다. 도성선사가 이를 알아 차려 달빛 아래 조화봉에서 만났다. 반대로 도성선사가 관기선사에게 할 이야기가 있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관기봉 방향을 향하면 수목은 일제히 허리를 굽혔다.
관기봉은 정상부위 전체가 거대한 암석으로 이루어졌다. 필자는 관심이 있어 직접 그 크기를 또 실측하였다. 높이가 28m이고 둘레가 120m이다. 정상부엔 가로23m, 세로13m 넓이의 삼각형 평활석면(平闊石面)이 있다. 이곳을 찾는 등산객의 쉼터가 된다. 북편으로 암석 골(谷)을 잡으면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봉우리가 청도군과 경계를 이룬다. 주변에는 관기스님이 수도하던 관기암이 있다고 전한다. 자료에 의거 연꽃무늬 석조하대석(石造下臺石)을 찾고 싶었다. 차례에 걸쳐 주변을 탐색하 결과 찾지 못했지만 포기하진 않았다.
일연은 고려 희종2년인 1206년에 장산(獐山: 지금의 경산)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인 낙랑군부인(樂浪郡夫人) 이씨가 꾼 꿈의 기록이다. 햇빛이 부인의 방에 들어와 그의 몸을 따라 다녀 비추었고, 그 이후 일연이 태어났다. 하늘의 정기와 땅의 정기를 결합해 인간을 잉태시킨 비범스런 태몽이라고 전한다. 속성은 김(金)이며 이름은 견명(見明)이었다.
9살에 어머니를 따라 무등산의 무량사에 들어갔다. 14살에 승려가 되려 양양의 진전사로 갔다. 44세에 정림사 주지가 되었다. 남해 길상암을 거쳐, 55세에 임금님의 부름으로 강화도에 갔었고, 영일 오어사도 거쳤다. 59세에 비슬산 인홍사(仁弘寺:仁興寺)로 내려와 보당암, 묘문암, 무주암, 통천사 등에서 수도하며 71세까지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
충열왕의 명에 의거 운문사로 옮긴다. 경주에 몽진 와 있던 왕을 모시면서 국사로 책봉되었다. 다시 개성으로 올라가 머물면서 효성이 지극한 일연은 연로하신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인각사로 내려왔다. 여기에서 삼국유사를 완성하고 세상을 떠났다. 보각이란 시호를 받았다.
자연휴양림과 삼림욕
자연휴양림은 산림이 갖고 있는 유익한 것. 즉 울창한 숲과 맑은 공기, 깨끗한 물,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경관 등의 모든 기능을 살려 산림 내에서 휴양과 휴식에 필요한 최소한의 기본시설을 설치하여 국민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마련한 국민 휴식공간이다.
쉽게 산림을 탐방하고 숲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또한 자연학습장으로 활용되어 국민보건휴양과 정서함양에 크게 기여한다. 대상지역의 성격, 시설규모, 개발수준 측면에서 공원이나 유원지, 도시림 등과는 구분되는 독자적인 위상을 갖는 성격의 산림이다.
이용객들에게는 일상적 도시생활에서 긴장감과 번잡함을 벗어나 산림 내에서 편히 쉬어 긴장감을 이완시킨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휴식을 취하게 함으로써 건강을 유지 향상시킨다. 심신 단련으로 심리적 만족과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숲 속에서 배우고 익히는 교육적 측면에서도 창조적 역할을 수행한다. 자연적이고 비도시적인 산림환경에서 휴양공간으로 이용되도록 자연생태계를 최대한 유지 보전하면서 체계적이고 질서 있는 개발로 휴양공간을 조성하여 일반에게 제공되는 산림이다.
결과적으로 자연휴양림의 역할과 그 기능은 이용자들에게는 긴장완화, 기분전환과 자기개발을 통하여 사회적 유대 증진과 구성원들 간의 결속, 사회
<금수암(金水岩 : 금빛샘)에서 본 비슬산>
적 통합에 기여한다. 휴양림으로 제공되는 산림은 각종시설의 설치로 수원함
양과 조절, 토사유출방지, 풍치보전, 대기정화, 야생동물 보호, 기후완화 등 환경보전을 위한 간접적인 효용도 가지게 된다. 지역주민에게는 도로개설 등 사회간접자본 시설이 확충되고 환경개선을 통하여 주민소득증대와 고용효과를 거둘 수 있다.
삼림욕(森林浴)은 숲 속을 자연스럽게 산책하거나 쉬면서 숲으로부터 맑은 공기와 자연의 기를 접하는 곳이다.
식물은 특유한 방향물질(芳香物質)을 발산하고 있다. 이 물질은 주위의 미생물로부터 자기를 보호하기 위하여 저항하고 있다. 구 소련의 레닌그라드 대학의 B.T토킹 박사는 이를 피톤치드(PHYTONCIDE)라 하였다. 피톤은 “식물”이고, 치드는“죽인다.”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러시아어로 어원은 라틴어이다.
식물은 끊임없이 미생물의 표적이 되고 있다. 조금이라도 약해지면 공격을 당하여 곰팡이가 생기거나 썩어지게 된다. 따라서 식물은 살아남기 위해 미생물에게 저항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방향물질을 발산한다.
이 중에는 휘발성이 높은 테르핀(TERPENE)이라는 물질이 있다. 테르핀이란 C10H10 의 화학식을 갖는 불포화 탄화수소의 일군이다. 피부자극제, 소염제, 완화제로 이용된다. 사람에게 안정과 해방감을 주고 피로를 해소시킨다. 또한 심신을 상쾌하게 하고 피부를 윤택하게 하는 효과도 있다.
피톤치드는 나무의 생장이 왕성한 5월과 10월 사이에, 그리고 하루 중에는 오전10시에서 12시 사이에 발산량이 가장 많다. 잣나무, 소나무, 삼나무 등 침엽수는 거담 치료에 효과가 있다. 노송나무는 방부, 소염, 진통 등에 효과가 있다. 밤나무, 감나무는 핏속의 칼슘과 나트륨을 정화시켜 혈액조절기능을 강화시킨다. 물론 피부미용에도 효과가 있다.
삼림욕은 테르핀을 피부에 많이 접촉시켜야 하므로 가벼운 옷차림을 준비한다. 마음을 편하게 가다듬어 오랜 시간 가볍게 숲 속을 오르내린다. 조용할수록 그 발산이 강하기 때문에 오전중이나 저녁에 조용하게 산책을 즐기다 보면 삼림욕이 된다.
숲 속을 거닐면서 대자연이 주는 혜택을 마음껏 누려 건강하고 상쾌한 심신을 유지시켜 보자. 새로운 건강 증진법이므로 자연휴양림이야 말로 삼림욕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는 최적의 장소이다.
그래서 비슬산자연휴양림은 필자의 공직생활에서 가장 보람을 느낀 족적품이란 걸 주변에서 마음 뿌듯하게 달래준다.
비슬산의 자연환경
앞서 밝힘과 같이 비슬산 주봉은 대견봉(1,083.59m)이다. 휴양림의 주봉인 조화봉(1,058m)을 따라 대견사지와 톱(칼)바위가 있다. 대견봉과 조화봉을 거쳐 관기봉까지 능선부에는 진달래와 철쭉이 수없이 자생한다. 대견봉에서 용연사와 앞산 방향으로도 온 산에는 진달래와 철쭉이 주인인양 분포한다.
특히, 대견사지에서 조화봉을 포함하여 유가사 사찰 쪽으로 펼쳐진 면적은 광활하다. 크고 작은 진달래와 철쭉이 집단적인 군락을 이룬다. 역시 현장에서 도면을 펼쳐 측정한 결과는 30만평이었다. 그래서 마련한 고통스런 걸작품은 비슬산 참꽃축제였다.
그리고 마지막에 또 하나는 얼음동산이다. 처음 대나무 막대에 자연유하식을 이용한 얼음 얼리기, 그 당시를 생각하면 아직도 손발과 귀가 시리다. 계절의 리듬을 놓칠 수 없는 비슬산은 지금도 전국무대를 누빈다.
동․식물의 분포를 살펴본다. 먼저 하단부의 임상(林相)을 보면 천연 활엽수림으로서 참나무류가 많이 자란다. 굴참나무,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신갈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등이 있다. 산벚나무, 생강나무, 굴피나무, 고로쇠나무, 개암나무, 소태나무, 다릅나무, 때죽나무, 명감나무, 광대싸리, 병꽃나무, 조릿대, 화살나무 등도 자란다.
중간부에는 함박꽃, 단풍나무, 팥배나무, 산사나무, 산딸나무, 다래나무, 산머루, 오미자도 있다. 상층부에는 소나무와 부분적으로 참나무류와 물푸레나무, 마가목, 미역줄이 자생한다. 능선부에는 진달래, 산철쭉, 조록싸리가 자란다. 자생수종이 아닌 밤나무, 낙엽송, 리기다소나무, 현사시나무도 인위적인 조림지의 성공적인 작품이다. 산림의 가치성과 휴양림으로서 휴식 공간 제공림으로 운치와 기능을 발휘한다.
매년 4월말과 5월초에는 비슬산의 정상에 진달래꽃 분홍빛이 등산객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보름정도 이후에는 철쭉꽃이 온 산천에 만발한다. 대견사지를 오르는 등산로 주변에 자생하는 대부분은 소나무와 참나무 아래 하층식생으로 자란다. 만개된 모습은 등산을 통하면 또 다른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야생초화류 노랑제비꽃은 항상 진달래와 먼저 피우기를 시샘 하듯 노랗게 피어 억새사이를 누빈다. 봄이면 양지꽃, 금낭화, 은방울, 돌단풍이 자리 잡고 있다. 여름이면 솔나리, 원추리, 동자꽃, 둥굴레, 노루오줌이 한창이다.
가을이면 두부메추, 쑥부쟁이, 산구절초 등 수많은 야생초들이 자태를 보인다. 고사리류와 바위손을 비롯하여 고란초까지 거대한 암석인 자연석의 허리를 붙잡아 자리한다. 비슬산은 산림자원의 유전자와 종 다양성을 지닌 자연생태계의 보고라 하여도 과언이 아닐 상 싶다.
야생동물의 서식분포를 보면 휴양림 정상부의 능선은 청도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데, 능선을 따라 멧돼지가 보금자리를 찾아 넘나든 흔적이 역역하다. 특히 관기봉 정상부의 억새밭에는 따사한 햇빛이 우르르 모여드는 한가한 날이면 새끼와 어우러진 가족들이 태양욕을 즐기는 곳이다.
산림내 요소요소 사찰 터의 샘터는 물론 수분이 축축한 곳이라면 어김없이 갈증을 해소한 자리가 보인다. 물을 찾아 땅을 파헤쳐 놓거나 몸을 비벼 토양욕을 한 흔적 또한 허다하다.
노루와 토끼, 꿩, 박새, 까치, 다람쥐, 청설모, 도롱뇽, 살모사, 칠점사, 독사를 비롯하여 천연기념물인 황조롱이도 있다. 필자가 96년도 봄날 렌즈에 포착한 야생동물은 야생염소 3마리와 황조롱이 이었다. 또 다른 날, 작은 몸집에 아름다운 목소리로 산의 고요를 움직이는 박새도 있었다. 참나무 낙엽 위에 포즈를 취하고 있는 도마뱀, 천연기념물인 희귀조류 큰오색딱다구리는 대박이었다.
큰오색딱다구리는 수컷으로 몸길이가 25cm였다.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른 큰오색딱다구리, 산란기를 맞아 썩은 나무의 둥지 속에서 알을 품고 있는 암컷에게 먹이를 가져다주고 있는 모습이 눈에 잡힌 것이다(96년 5월8일자 대구매일신문 보도).
그 밖에 하늘소, 장수풍뎅이 등 희귀 곤충류까지 다양하게 서식하고 있으며 해발 600m 산속에 버들치 물고기가 휴양림 계곡을 꿈틀이고 있으니 비슬산은 살아 움직이는 자연관찰원으로 영남지방의 유일한 생태계의 보고이기도 하다. 끝.
첫댓글 비슬산에 대한 권사무관님의 열정에 하염없는 찬사를 드립니다.
비슬산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분이시네요:)
그리운 친정에 대한 온 정열을 다하시는 모습에 감사를 드립니다. 활짝핀 4월의 꽃처럼 즐거운 시간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