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둘레길로 간다. 해마다 몇 번씩 찾아가는 강변이지만 마음이 설레는 건 언제나 한결같다. 가을색으로 색칠되는 산과 들도 설렘을 부추긴다.
섬진강 둘레길은 섬진강과 강변 철길을 끼고 걷는 길이다. 철길과 나란히 걷고 때로는 조금 떨어져서 걷는다. 아예 철길 위를 걷기도 한다. 길도 숲속 흙길이다. 경사도 완만하다. 침목과 통나무로 놓은 다리도 정겹다. 강변길도 걷는다. 가족끼리, 연인끼리 뉘엿뉘엿 걷기에 맞춤이다.
| 호곡마을 줄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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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군 오곡면 오지마을에서 압록마을까지 이어지는 섬진강 둘레길은 지난 봄 개통됐다. 지난해 안전행정부의 '우리마을 녹색길사업'에 선정되면서 조성됐다. 길이 지나는 마을마다 간이역이 있는 게 색다르다. 총길이 15㎞에 이른다. 침곡마을에서 압록마을까지 9.6㎞ 구간이 가장 매력적이다.
침곡마을 침곡역이다. 강변 철길을 달리는 레일바이크를 타는 곳이다. 증기기관열차와 레일바이크가 다니는 철길과 17번국도가 나란히 놓여 있다. 그 옆으로 섬진강변을 이어주는 자전거도로가 나 있다. 얼굴에 와 닿는 강바람에서 가을이 묻어난다. 강변 공기도 달콤하다. 침곡역에서 합류하는 둘레길로 들어섰다. 숲길이다.
| 섬진강변을 달리는 기기관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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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밟아보는 흙의 감촉이 푹신하다. 왼편으로 강줄기가 함께 흐르고 있다. 샘터를 지나 얼마쯤 걸었을까. 강 건너편으로 호곡마을이 보인다. 섬진강에 하나 남아있는 줄배를 탈 수 있는 곳이다. 줄배는 아무라도 몸을 싣고 줄을 당겨 강을 건널 수 있는 나룻배다. 겨울인데도 물고기를 잡아 어머니의 소원을 들어준 마천목 장군의 이야기도 전해지는 마을이다.
도깨비공원도 보인다. 마천목 장군과 섬진강 도깨비에 얽힌 전설을 토대로 만들어놓은 공원이다. 자신의 키보다도 더 큰 도끼를 치켜 든 거대한 도깨비상이 섬진강을 지키고 서 있다. 덩치에 비해 인자한 모습이 눈에 선하다.
숲길에는 소나무와 편백나무, 상수리나무 무성하다. 몸에 좋은 피톤치드와 음이온이 흐르는 것 같다. 몸도 마음도 편안하다. 상수리와 도토리, 머루와 다래도 반갑다. 철길 옆에서 억새가 하얀 손을 흔들며 유혹한다. 듬성듬성 보이는 들꽃도 아름답다. 쑥부쟁이와 산국, 구절초가 보인다. 꽃향유, 수크렁도 가을을 노래하고 있다. 숲에 작은 계곡도 흐른다. 주홍빛으로 익어가는 대봉도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길섶 나무의자에 앉아 바라보는 강변 풍경이 여유롭다.
| 기찻길 위를 걷는 관광객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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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을 하면서 걷다보니 어느새 송정마을이다. 17번국도에서 만나는 전망대가 보인다. 숲길에서 잠시 벗어나 포토존으로 간다. 증기기관열차가 달리는 철길과 17번국도, 자전거도로와 섬진강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계절적으로 철쭉꽃을 볼 수 없는 게 흠이지만 풍경은 언제라도 멋스럽다.
뿌우우웅~. 때마침 증기기관열차의 기적소리가 들려온다. 섬진강변을 찾을 때마다 듣는 소리지만 매번 마음 설레게 한다. 전망대에서 증기기관열차를 내려다본다. 하얀 연기를 내뿜는 게 오래 전 모습 그대로다. 열차에 탄 여행객들의 표정도 잔뜩 들떠 있다. 저마다 차창을 올리고 강바람을 호흡하고 있다. 처음 만나는 얼굴들이지만 손을 흔들며 인사를 나눈다. 살가운 모습이다. 어릴 적 선망의 대상이었던 열차가 잠시 추억여행으로 이끈다.
증기기관열차의 뒷모습을 보고 다시 숲길을 걷는다. 침목다리와 통나무다리를 건너 조금 걸었는데 금세 가정역이다. 증기기관열차가 멈춰 서 있다. 열차 여행객들은 섬진강 출렁다리를 오가며 강바람을 쐬고 있다. 강변 자전거도로도 단아하다. 느릿느릿 흐르는 강물결을 따라 자전거가 하늘거리고 있다. 강변에 야영장과 섬진강천문대도 보인다.
| 봉조마을에서 농촌체험을 하는 학생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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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역 앞 도로변 간이 장터에도 사람들이 모여 있다. 산마, 고사리, 도라지, 표고버섯이 나와 있다. 대봉, 밤, 사과, 홍시, 석류도 눈길을 끈다. 모두 산골마을 사람들이 자연에서 직접 채취한 것들이다.
여기서부터 둘레길은 폐선이 된 기찻길을 걷는다. 1933년부터 1999년까지 익산과 여수를 잇는 전라선 열차가 지나던 길이다. 여행객들이 삼삼오오 철길 위를 걷고 있다. 철길의 레일 위에 서서 걷는 사람들도 보인다. 줄타기를 하는 것처럼 두 팔을 벌려 균형을 잡는 게 재밌다. 연인과 손을 잡고 레일 위에서 100걸음을 내디디면 오래 행복하게 산다던가. 나의 발걸음도 어느새 레일 위에 올라가 있다. 모처럼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 것 같아 흐뭇하다.
봉조마을 입구 철길에서는 기차 조형물과 만난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사진 한 장을 찍고 간다. 폐선이 된 철길을 걷는 낭만적인 코스는 이정역까지 2㎞ 남짓 계속된다.
이정마을에서 압록마을까지는 철길에서 내려와 강변을 따라간다. 17번국도를 건너 강변의 흙길과 돌길을 만난다. 왼편에 섬진강을 두고 강물과 함께 흐른다. 김용택 시인의 표현대로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이지 않고 모여 흐르고 있다. 생동감 넘치는 그 물살이 마음속 갈증까지 씻어준다. 물고기들이 물 위로 뛰어오르는 모습도 호기심을 자아낸다. 강변을 따라 강물과 함께 흐르는 것도 색다른 체험이다. 가던 길을 멈추고 뒤돌아서서 보니 강변 풍경도 낭만적이다.
섬진강 둘레길이 끝나는 압록마을은 섬진강과 보성강이 만나 몸을 섞는 곳이다. 하나 된 섬진강물은 이제 남해바다로 흘러간다. 섬진강변과 전라선 철로변을 따라 숲길과 마을길, 기찻길과 강변길을 걸어온 사람들도 다음 목적지를 향해 간다.
이돈삼 여행전문 시민기자ㆍ전남도 대변인실
| 농촌체험장에서 도자기를 빚는 학생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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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
호남고속국도 곡성나들목에서 구례방면으로 도림사 입구와 곡성읍을 지나면 섬진강기차마을이다. 여기서 17번국도를 타고 구례구방면으로 가다보면 레일바이크를 타는 침곡역과 만난다. 내비게이션은 곡성군 오곡면 침곡리 45-6.
●먹을 곳
진한 국물에 시래기와 민물참게를 넣고 푹 끓이는 참게탕이 맛있다. 통나무집(362-3090), 새수궁가든(363-4633), 용궁산장(362-8346), 청수장(362-8382)이 소문나 있다. 흑돼지 숯불구이는 돌실회관(363-1457)과 석곡돼지한마리(362-3077)가 맛있다. 한정식과 백반은 궁전회관(362-1539)이 으뜸이다.
●묵을 곳
섬진강기차마을에 열차를 고쳐 만든 레일펜션(362-9712)과 마을펜션(362-5600)이 있다.
심청이야기마을에 한옥펜션(363-9910)도 있다.
기와집 6동, 초가집 12동이 있다. 도림사와 압록유원지에 오토캠핑장(363-6224)도 있다.
캠핑장 40면과 캐러밴 10동, 캐빈 14동을 갖추고 있다. 가정 녹색농촌 체험마을(363-1637)과 두계산골 외갓집 체험마을(362-6773), 봉조 농촌체험학교(362-5268)에서 체험숙박도 할 수 있다.
●가볼 곳
숲길이 아름다운 도림사와 태안사가 가깝다. 도림사는 곡성읍 월봉리에, 태안사는 죽곡면 원달리에 있다. 3일ㆍ8일에 서는 기차마을전통시장에도 들러볼만 하다. 기차마을 치즈체험장과 입면 지은목장에서 치즈 만들기 체험도 가능하다.
●문의
곡성군 관광안내소 061-360-83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