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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청아카데미 182주(2013.6.5)
노자 도덕경 읽기 (15)
이태호(철학박사/통청아카데미 원장)
Ⅰ. 도덕경 26장
(1) 원문
重爲輕根, 靜爲躁君. 是以聖人終日行, 不離輜重. 雖有榮觀, 燕處超然. 柰何萬乘之主而以身輕天下. 輕則失本, 躁則失君.
중위경근, 정위조군. 시이성인종일행, 불리치중. 수유영관, 연처초연. 내하만승지주이이신경천하. 경즉실본, 조즉실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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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躁) : 성급하다. 조급하다. 떠들다. 시끄럽다. 들뜨다.
군(君) : 임금. 지배자.
치(輜) : 수레. 짐수레. 관(棺)을 싣는 수레.
치중(輜重) : 어떠한 곳에 특히 중점을 둠.
연(燕) : 제비. 잔치. 주연(酒宴). 편안하다.
초연(超然) : 얽매이지 않고 태연하거나 느긋한 상태
만승(萬乘) : 만 대의 수레. 보통 황제, 천자를 가리킴
내(柰) : 능금나무. 어찌. 어떻게. 어찌하랴.
하(何) : 어찌. 무엇. 얼마.
내하(柰何) : 어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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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번역
무거움은 가벼움의 뿌리가 되고, 고요함은 들뜸의 주인이 된다. 그러므로 성인은 하루 종일 다녀도 식량을 실은 수레(생존에 필요한 물자에 무게 중심을 둠)를 벗어나지 않으며, 영화로움을 볼 수 있는 자리가 생겨도 그것에 들뜨지 않고 초연(고요)하다. 어찌 만승(萬乘)의 주인(큰 나라 임금)인데 자신의 몸을 천하보다 가볍게 여기겠는가? 가벼우면 근본을 잃고 들뜨면 주인을 잃는다.
(3) 해설
노자는 이 장에서 무거움과 고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가벼우면 근본을 잃고 들뜨면 주인을 잃는다고 하였다. 그런데 노자는 어떤 것을 무겁게 보고 치중하는가? 바로 생존에 필요한 식량이다. 이것에 치중하면서 식량을 실은 수레를 떠나지 않는다.
그러면 노자가 가볍게 여기면서 그것을 보고도 본체만체 초연한 것은 무엇인가? 영화로움을 누릴 수 있는 권력, 지위, 재산, 명예 등이다. 영화로움을 볼 수 있는 자리 중 최고의 자리가 만승의 주인인 큰 나라 임금이다. 그런 큰 나라 임금이라도 천하보다 자신의 몸(생존)을 더 중하게 여겨야 한다고 노자는 말한다. 그는 영화로움 앞에서 들떠있는 자는 가벼운 자이며, 이 자는 근본을 잃었기 때문에 오히려 영화로움까지 잃는다고 말한다.
(4) 참고 : 이(26) 장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12장과 13장에 대한 이해가 도움이 된다.
12장
五色令人目盲, 五音令人耳聾, 五味令人口爽, 馳騁畋獵令人心發狂, 難得之貨令人行妨, 是以聖人爲腹不爲目, 故去彼取此.
오색영인목맹, 오음영인이롱, 오미영인구상, 치빙전렵영인심발광, 난득지화영인행방. 시이성인위복불위목, 고거피취차.
오색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오음은 사람의 귀를 먹게 하고, 오미는 사람의 입을 상하게 하고, 말을 타고 달리며 사냥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발광케 하고, 얻기 어려운 재화는 사람다운 행위를 방해한다. 그러므로 성인은 배를 위하고, 눈을 위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
13장
寵辱若驚, 貴大患若身, 何謂寵辱若驚, 寵爲下, 得之若驚, 失之若驚, 是謂寵辱若驚, 何謂貴大患若身, 吾所以有大患者, 爲吾有身, 及吾無身, 吾有何患, 故貴以身爲天下, 若可寄天下, 愛以身爲天下, 若可託天下.
총욕약경, 귀대환약신. 하위총욕약경. 총위하, 득지약경, 실지약경, 시위총욕약경. 하위귀대환약신. 오소이유대환자, 위오유신, 급오무신, 오유하환. 고귀이신위천하, 약가기천하, 애이신위천하, 약가탁천하.
총애와 모욕에 놀라는 것 같이 하고, 대환을 귀하게 여기기를 자기 몸과 같이 한다. 무엇을 일러 총애와 모욕에 놀라는 것 같다고 하는가. 총애와 모욕은 (위 사람의 결정에 의해 나의 운명이 달려 있는) 아랫사람에게 일어나는 것이다. 이를 얻어도 놀라는 것 같고, 이를 잃어도 놀라는 것 같으니, 이것을 총애와 모욕에 놀라는 것 같다고 하는 것이다.
무엇을 일러 대환을 귀하게 여기기를 자기 몸같이 한다고 하는가. 나에게 대환이 있는 까닭은, 나에게 몸이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몸이 없음에 이르게 되면 나에게 무슨 재앙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몸을 귀하게 여기기를 천하같이 하면 그에게 천하를 맡길만하고, 몸을 사랑하기를 천하같이 하면, 그에게 천하를 부탁할만하다.
문제제기
1. 자신의 몸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것은 이기적이 아닌가?
2. 무겁고 고요함을 좋아하면 인생이 재미없지 않는가?
Ⅱ. 도덕경 27장
(1) 원문
善行, 無轍迹. 善言, 無瑕謫. 善數, 不用籌策. 善閉, 無關楗而不可開. 善結, 無繩約而不可解. 是以聖人常善求人, 故無棄人. 常善救物, 故無棄物. 是謂襲明, 故善人者, 不善人之師. 不善人者, 善人之資. 不貴其師, 不愛其資, 雖智大迷, 是謂要妙.
선행, 무철적. 선언, 무하적. 선수, 불용주책. 선폐, 무관건이불가개. 선결, 무승약이불가해. 시이성인상선구인, 고무기인. 상선구물, 고무기물. 시위습명, 고선인자, 불선인지사. 불선인자, 선인지자. 불귀기사, 불애기자, 수지대미, 시위요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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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적(轍迹) : 바퀴자국. 흔적. 행적
하적(瑕謫) : 나무랄 허물. 흠 잡다.
주책(籌策) : 수를 세는데 쓰는 막대기.
관건(關鍵) : 빗장과 자물쇠.
승약(繩約) : 묶을 줄. 줄로 묶다.
습명(襲明) : 밝음을 이음
요묘(要妙) : 오묘함의 요체. 묘함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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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번역
길을 잘 가는 자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말을 잘하는 자는 흠잡을 데가 없다. 계산을 잘하는 자는 계산도구를 사용하지 않는다. 잠그기를 잘하는 자는 자물쇠를 사용하지 않는데도 열리지 않게 한다. 묶기를 잘하는 자는 줄을 사용하지 않는데도 풀 수 없게 한다. 그런 까닭에 성인은 (잘 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을 구별하지 않고, 구분이 된다 하더라도 상호간에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아) 항상 사람을 잘 구하므로 사람을 버리는 일이 없고,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별하지 않고, 구분이 된다 하더라도 서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아) 항상 물건을 잘 건지므로 물건을 버리는 일이 없다. 이것을 일러 (常을 아는) 밝음을 잇는다고 한다. 그러므로 잘하는 사람은 못하는 사람의 스승이며 못하는 사람은 잘하는 사람의 자산이다. 그 스승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그 자산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비록 지혜가 있다 해도 크게 미혹되게 된다. 이것을 일러 오묘함의 요체(묘함을 잡는다)라고 한다.
(3) 해설
길을 가면서도 전혀 흔적을 남기지 않을 수 있는 것은 흔적을 남길 길(영화로움을 추구해서 자신을 드러내는 길)을 가지 않는 것이다. 흠 잡을 데가 없는 말을 완전히 할 수 있는 것은 흠 잡힐 말(다툼을 유발할 수 있는 단정적인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복잡한 계산을 계산도구 없이 완전히 할 수 있는 것은 복잡한 계산을 해야 할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어떤 열쇠로도 풀 수 없게 잠글 수 있는 것은 열 필요가 없게 안을 비워두는 것이다. 아무도 풀지 못하게 끈을 묶을 수 있는 것은 묶을 것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無爲而無不爲 ; 무위로 하면 하지 못하는 바가 없다.)
정말 잘하는 사람은 나쁘게 될 싹을 만들지 않는다. 나쁘게 될 싹이 없으면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이 생기지 않게 되어 모든 사람을 구한다. 그리고 이 원리는 물건에도 통한다. 좋은 물건 나쁜 물건을 구분해서 비교 우위의 서열을 정하니까 나쁜 물건이 생기는데, 구분해서 서열을 정하는 일(싹을 튀우는)을 하지 않으면 모든 물건이 쓸모 있어 버릴 것이 없다.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비교우위가 없다. 그래서 만물 중에 버릴 것은 당연히 없다.
(예를 들어) 세상에 스승이 있다는 것은 제자가 있기 때문이다. 스승이 스승인 이유는 모르는 것이 있는 제자에게 가르칠 것이 있기 때문이다. 제자가 스승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자기에게 필요한 부분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신의 필요한 부분이 귀하다는 데 근거한다. 스승이 제자를 사랑하는 것은 제자가 자신을 스승으로 여김으로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높여주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신이 잘 하는(제자보다 더 알고 있는) 부분을 제자가 필요로 함에 근거한다. 즉 제자가 자신의 잘 하는 부분을 필요로 함을 자산(資産)으로 스승이 성립된다.(高下相傾 ; 높고 낮음은 서로 기울기 때문에 성립된다.)
그러므로 자신이 잘 난 부분이 있더라도 뻐겨서는 안 되고, 못난 부분이 있더라도 위축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상호 연결되어 있으면서 비교우위가 성립되지 않는다. 존재의 근원에서 보면 이분법이 성립되지 않고 가치도 동일하다. 가치우위가 없다. 그래서 모든 것을 포용해서 버릴 것이 없다.
(4) 참고 : 습명(襲明)을 알기 위해서는 16장의 내용을 알 필요가 있고, 요묘(要妙)를 알기 위해서는 1장의 내용을 알 필요가 있다.
16장
致虛極守靜篤, 萬物竝作. 吾以觀其復, 夫物芸芸, 各復歸其根. 歸根曰靜, 是謂復命. 復命曰常, 知常曰明. 不知常, 妄作凶. 知常容, 容乃公. 公乃王, 王乃天. 天乃道, 道乃久, 歿身不殆.
치허극수정독, 만물병작, 오이관기복. 부물운운, 각복귀기근, 귀근왈정, 시위복명. 복명왈상, 지상왈명. 부지상, 망작흉. 지상용, 용내공. 공내왕, 왕내천, 천내도. 도내구, 몰신불태.
텅빔의 극에 이르러 고요함의 돈독함이 지켜지는 곳에서 만물이 그것(고요함)과 함께 생겨난다. 나는 그 돌아옴(만물이 다시 생김)에 주목함으로써, 무릇 만물은 아무리 무성하여도 제각기 그 뿌리(태어난 곳)로 되돌아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뿌리로 되돌아감을 고요함이라 한다. 고요함이 돈독하게 지켜질 때 만물이 생기기 시작하고, 만물이 번성할 때 고요함으로 돌아가는 것을 일러 돌아갈 운명(復命)이라 한다. 돌아갈 운명을 일러 늘 그러한 이치(常)라 하고, 늘 그러한 이치를 아는 것을 일러 현명(明)하다고 한다. 늘 그러한 이치를 모르면 일을 그르쳐 흉하게 된다. 늘 그러한 이치를 알면 그 이치를 받아들이게 되고, 이치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사사로움에서 벗어나 공공의 입장에 서는 것과 같고, 공공의 입장에 선다는 것은 왕의 마음과 같고, 왕의 마음은 하늘의 기운과 같고, 하늘의 기운은 도와 같고, 도와 같으면 오래간다. 그래서 몸이 끝나는 상황(죽음 앞)에서도 위태롭게 여기지 않고 태연할 수 있다.(잠자는 것처럼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1장
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 無名天地之始. 有名萬物之母. 故常無欲以觀其妙. 常有欲以觀其徼. 此兩者同出而異名.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
도가도비상도. 명가명비상명. 무명천지지시. 유명만물지모. 고상무욕이관기묘. 상유욕이관기요. 차양자동출이이명. 동위지현, 현지우현, 중묘지문.
도라 할 수 있는 도는 늘 그러한 도는 아니다. 불릴 수 있는 이름은 늘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 이름 없음이 천지의 시작이고, 이름 있음이 만물의 어미다. 그러므로 항상 분별하려는 마음이 없음으로써 그 오묘함을 보고, 항상 분별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음으로써 그 경계(境界 : 定義, 한정형식)를 본다. 이 양자는 같은 곳에서 나온 다른 이름이다. 같은 곳을 일러 깊다고 한다. (이 곳은) 깊고 또 깊으며 여러 오묘한 문(들어오고 나가는)이다.
문제제기
1. 노자가 잘 하는 자(善行, 善言, 善數, 善閉, 善結)는 어떻게 한다(無轍迹, 無瑕 謫, 不用籌策, 無關楗, 無繩約)면서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높이 평가하는 것이 맞다면 스승과 제자의 예는 잘못이지 않는가?
2. 어떤 것을 잘하는 자와 못하는 자 사이에 서로 필요하기 때문에 평등하다는 입 장을 취하면, 어떤 분야이든지 잘 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일은 무가 치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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