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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주(소설가) / “우리 곁의 나무어머니보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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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나 깨나 자식을 위해 사시는 분 집에 계신 어머니가 바로 ‘부처님’
수십 년 간의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남도 산중으로 들어왔을 때, 마침 내가 머물고 있던 산중 처소 아래 천년 고찰 쌍봉사가 있어서 나는 새벽마다 예불을 보러 내려갔다. 깊은 신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산중으로 들어온 이후, 내 나름의 질서를 흩뜨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현재의 나를 들여다보게 하는 새벽예불은 방일을 경계하게 하고, 하루 일과 동안 무엇을 하건 긴장을 유지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나는 도회지에 계시던 칠순의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살게 되면서부터 차츰 새벽예불에 나가지 않게 되었다. 긴장이 풀어져 게을러진 것이 아니라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예나 지금이나 나를 걱정하시는 어머니가 바로 관세음보살이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내가 바라건 바라지 않건 오직 나를 위해 사시는 분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법당은 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가 계시는 내 산중 처소가 바로 법당이라는 깨달음이 들었다.
불재가중(佛在家中). ‘부처는 집안에 있다’라는 말인데, 당나라 때 양보(楊補)란 사람이 남긴 유명한 말이다. 그 말이 생겨난 사연은 이렇다.
양보가 사천성의 무제보살(無際菩薩)을 찾아가다가 한 찻집에 들러 찻집 주인과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찻집 주인이 “어디로 가는가?” 하고 묻자, 양보가 “무제보살을 만나러 갑니다. 그분을 만나 부처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찻집 주인이 “부처가 되고 싶으면 부처를 만나면 됐지 왜 보살을 만나러 가느냐?”고 책망하자, 앙보가 다시 “주인께서는 부처가 있는 곳을 알고 계십니까?” 하고 물었는데 그때 주인이 “지금 집으로 돌아가면 신발을 거꾸로 신은 채 맞이하는 사람이 있을 걸세. 바로 그분이 부처님이라네”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집 나간 아들을 보고 반가워서 신발을 거꾸로 신은 채 달려 나올 사람이 어머니 말고 또 누가 있겠는가. 그래서 양보는 그 길로 집으로 돌아와 ‘부처는 집안에 있다’고 깨달았다고 한다.
최근에 나는 오랜만에 〈야반삼경에 촛불 춤을 추어라〉라는 좀 긴 제목의 구도소설을 냈다. 추운 겨울 동안 잠시 도회지로 나가 계시는 늙은 어머니에게서 뜬금없이 전화가 왔다. 어머니는 소설의 반응이 누구보다도 궁금한 모양이었다.
마침 나는 점심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르게 들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숟가락을 들다 말고 긴장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식의 인생 응원가였다. 간밤에 꾼 어머니의 꿈 이야기였다.
어머니가 밟는 걸음자리마다 사람 똥이 사방에 깔려 있더라는 것. 어머니는 길한 꿈이니 너에게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바람을 잡는다. 다른 사람의 얘기라면 틀림없이 나는 숟가락을 놓고 짜증을 냈을 법하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가 나의 관세음보살인 줄 알기 때문에 추임새 같은 맞장구를 치며 방편으로 들었다.
눈을 뜨고 있을 때나 잠을 자면서나 늘 기도하시는 분이 어머니라는 것을, 나는 나이 오십 줄에 들어서 더욱 절감하고 있다. 그렇다. 내 산중 처소의 살아 있는 부처는 바로 어머니시다. 나만이 아니다. 이 세상 모든 어머니는 다 관세음보살님이시다. 나무어머니보살!
정찬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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