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8.공감5시
제목: 율전리 무후제
1. 오늘은 율전리 무후제에 대해서 소개해 주신다고요. 율전리, 상당히 생소한 데요. 어디 있는 동네인가요?
율전리는 홍천군 내면에 있는 마을입니다. 이곳 내면은 오래 전에는 강릉에 속해 있었고, 나중에는 인제군에도 속해 있다가, 홍천군으로 편입이 된 곳입니다. 그래서 홍천, 인제, 강릉, 평창, 양양을 접하고 있는 지역이지요. 이렇게 여러 지역을 접하고 있는 지역인 탓에 오늘 얘기할 무후자 주인공 이건국도 이곳을 터전으로 삼아 장사를 했던 것입니다. 율전리는 밤 율(栗)자 밭 전(田)를 쓰는 것으로 봐서 이곳에 밤나무가 많아서 지명으로 불러졌다고 볼 수 있지요. 마을이 참 아담하면서 농토가 널찍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2. 농촌의 전형적인 풍경을 간직한 마을처럼 다가오는 데요. 그런데 무후제의 뜻이 무엇인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아요?
무후제는 그 명칭이 여럿 있습니다. 무후제, 무후자제, 무연고제, 무후사제, 무후자제향 등 많은 이름이 있는데, 저는 무후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무후제는 말 그대로 없을 무(無)자에 뒤 후(後)자 제사 제(祭)자를 써서 뒤가 없는 곧, 자손이 없는 사람의 제사라는 것입니다. 이 제사는 아주 많습니다. 강원도에만 제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100여 곳이 넘을 정도입니다. 읍․면 단위로 지내는 것만 50여 곳이 넘고, 마을별로 지내는 곳도 50여 곳이 넘는 걸로 조사되었습니다. 알려지지 않은 지역까지 있고, 앞으로 계속 생겨날 것이라 봅니다.
3. 상당히 많은 지역에서 무후제를 지내고 있네요. 그러면 자손이 없는 사람은 모두 지내주나요?
무후제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이 있습니다. 자손이 없다고 해서 모두 지내주는 것이 아닙니다. 홍천군 화촌면 무후제의 축문에 보면 “生而勤業 死后餘財喜捨 面民福祉”라 해서 살아서는 부지런히 생업에 힘쓰고, 죽은 후에는 면민의 복지를 위해서 남은 재산을 희사했다고 했습니다. 이런 내용은 다른 지역의 축문에도 거의 다 들어가 있습니다. 그러니 자손이 없다고 해서 살아서 방탕하지 않고 마을사람들과 공동체를 이루고 생업에 부지런하여 남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남은 재산은 마을이나 면단위에 희사를 해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조건은 일종의 미풍양속을 진작하기 위한 뜻도 있다고 봅니다.
4. 그러면 무후제의 역사는 어떻게 되나요?
이 무후제의 역사가 아주 오래됐습니다. 처음 기록은 여제(厲祭)라 해서 옛날 뭇귀신들을 제사하는 제도가 있었는데, 그 여제의 항목에 무자귀신(無子鬼神)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러고 각 마을마다 거리제사 해서 마을입구에서 지내는 제사가 있습니다. 이 제사는 행려자사(行旅者死)라 해서 떠돌이귀신을 제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통 개를 잡아 놓고 지내기도 하는데, 이런 귀신들이 마을로 들어오지 못하게 마을입구에서 그들을 먹여 돌려보냅니다. 이들이 마을로 들어오면 무서운 돌림병을 퍼뜨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이 거리제사에서도 무자귀신이 포함됩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나이가 들어도 장가나 시집을 가지 못하면 짝을 찾아주고, 결혼 비용을 대 주기도 했습니다. 그러고 자식이 없으면 양자를 들이도록 했고요. 그래도 자식을 둘 수 없으면 나라에서 그런 사람들을 장사지내 주었습니다. 이런 기록은 조선조 후기에 나온 <김신부부전>이란 소설에도 보입니다. 가난해서 장가들지 못한 김희집이란 총각과 신 씨 처녀를 혼인 시키는 이야기입니다. 나중에 이를 대본으로 <동상기>라는 제목으로 신랑달기를 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희곡이 나옵니다. 지금 시골에 가면 하는 것과 같은 내용으로 <동상기>에서도 진행됩니다.
또 조선왕조실록 경종3년 임자년 1월 21일자에 보면 궁중에서도 무후제를 지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곧, “無後한 大君․王子․公主․後宮을 위해서 壽進宮에서 제사를 했다.”고 나옵니다. 그러고 보면 이 무후제는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음을 알 수 있지요.
그런데 참 희한한 것은 유독 강원도에만 다른 지역에 비해서 많음을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원인이 분명히 있겠지만, 생각하기에 강원도 사람들의 넉넉한 인심이 마을공동체를 따뜻하게 이끌어가고자 하는 데서 비롯했다고 보입니다.
5. 강원도의 인심이 좋기는 좋은 가 봅니다. 이웃을 챙기는 모습이 동네 조상까지 돌보는군요. 그럼 제의는 어떻게 지내나요?
제의형태는 마을에서 지내냐, 읍면에서 지내냐에 따라 다릅니다. 보통 마을에서 지내는 경우는 무후자가 많지 않은데, 읍면에서 지내는 경우는 보통 수십 명이 됩니다. 그래서 그 숫자만큼 메와 국을 제사상에 놓습니다. 아주 장관이지요. 그리고 홀기에 따라서 제의를 진행하는데, 보통 참가자도 수십 명에 이를 정도로 축제 분위기입니다. 마을에서 지내는 제사 비용은 무후자가 마을에 희사한 땅을 경작하는 사람이 제사를 차리고, 읍면에서는 시군에서 매년 제사비용을 보내줍니다. 그렇게 시군에서 제사비용을 대 주는 것은 시군에서 무후자가 희사한 땅이나 재산을 팔아 썼기 때문입니다. 날짜도 여러 명을 따로 지낼 수 없기 때문에 일정한 날짜를 정하기도 하고, 매년 날짜를 정하여 지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들 무후자의 묘는 일괄적으로 벌초를 해 줍니다. 그리고 한두 명일 경우는 제각이 따로 없지만 수십 명씩 되는 경우는 근사하게 제각을 지어 위패를 보관하고 그곳에서 제사를 진행합니다.
6. 그럼 율전리로 돌아가 볼까요. 율전리는 무후제의 상황이 어떤 가요?
율전리는 한 명이 대상이 됩니다. 바로 이건국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원래는 김건국인데 누군가 비석을 만들면서 김 씨를 이 씨로 잘못 적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분이 율전리 무후제를 받게 된 것은 율전리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땅 6만 평을 희사했기 때문입니다. 원래 이 분은 장사를 하던 사람이 라고 합니다. 그래서 장사를 오래해서 달인이 된 사람을 고원이라고 이곳에서는 했는데, 이분을 마을에서는 김고원이라 불렀답니다. 양양과 홍천 등지로 다니면서 장사를 해서 돈을 많이 벌었는데, 어떻게 해서 자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죽으면서 자신의 재산을 모두 내면에 희사를 한 것으로 이야기는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지방자치제도가 면단위에서 시군으로 되면서 이 땅이 홍천군 소속으로 넘어갑니다. 홍천군에서는 이 땅을 나누어 팔아서 군 경비에 충당을 하게 됩니다. 심지어 이 땅을 팔아서 현재 홍천군청을 지었다고도 마을사람들은 이야기 합니다.
그렇게 땅을 팔아 쓰고는 매년 50만원 또는 100만원씩 마을에 돈을 주어 제사를 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 때문에 이곳 율전리는 단 한 명의 무후자이면서 마을단위인데 면장이 제관이 되는 특이한 경우입니다.
제사 장소는 마을의 반장이 돌아가면서 준비를 하고, 날짜는 매년 음력 10월에 면과 마을사람들이 날을 받습니다. 묘도 새로 정비를 했고, 비석도 1990년도에 새로 해서 세웠습니다.
7. 제사 분위기는 어떤 나요?
그야말로 마을 축제입니다. 오전 9시쯤 되면 마을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게 됩니다. 그리고 남자들은 밖에서 차에 싣고 온 돼지를 잡아 손질을 합니다. 방에서는 각종 부치기며 고기며 제물을 준비하고요. 마당에 불을 해놓고 돼지고기를 구워 술을 한잔씩 하는 것은 당연하고요. 아주 시끌벅적합니다. 그렇게 제물이 준비가 되면 시간은 오전 11시 정도 됩니다. 그러면 방에다가 병풍을 치고 제상에다 제물을 차리고, 다들 모여서 제사를 지냅니다. 제사가 끝나면 각종 음식과 돼지국밥을 한 그릇씩 먹고 하루 종일 놉니다. 날이 궂지 않으면 마을 뒷산 가까운 곳에 산소가 있으므로 산소에도 갔다 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조사하러 갔을 때는 눈이 신발을 넘을 정도로 많이 와서 그냥 방에서만 제사를 지냈습니다.
이것을 지켜보면서 무후제를 앞으로 더욱 활성화 하였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주위를 둘러보면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무후제가 가지고 있는 좋은 점을 살려서 그분들이 돌아가시면 재산을 기부하도록 하여 좋은 곳에 쓸 수 있고, 또 자손이 없다고 해서 방탕하게 살지 않으면 마을공동체도 좋아질 수 있기 때문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