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한 그루가 있다. 우리들 인생에 누군들 의미 있는 나무 한 그루쯤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 없겠지만, 내게도 나무 한 그루가 있다. 아니, 꼼꼼히 따지면 그럭저럭 여러 그루의 나무가 있을 것이다. 가령 어릴 때 내가 기어올라갔던 나무들, 그래서 밤이나 감이나 그 열매를 땄고, 또는 둥지에서 새알을 꺼냈던 나무들을 비롯하여 꽃에 취하거나 그늘을 찾거나 영검을 느끼거나 했던 나무들. 그리운 사람의 이름을 손톱으로 긁어놓던 나무들, 괴로운 마음으로 울먹이며 물끄러미 올려다보던 나무들, 가지를 꺾어 새총을 만들거나 지팡이를 만들거나 잣대를 만들던 나무들, 나무들, 나무들, 나무들. 그런데 나는 지금 용문산에 이르러 한 그루의 나무만을 말하고 있다.
“그 친구와 연관되는 덴 한 군데밖에 없어요. 그것도…….”
나는 그녀를 만나자마자 빠져나갈 궁리부터 했다. 그러면서 그녀가 용문산에서 나를 불러냈을 때부터 ‘그것도……’ 하고 망설였음을 알았다. 나는 그녀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조차 모호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 순간 나는 퍼뜩 한 그루의 나무를 기억 속에서 되살려냈던 것이다. 그렇지, 나무가 있었어, 나무가.
용문산에서 한 그루의 나무라면 단박에 저 유명한 은행나무를 떠올리는 게 당연할 테지만, 지금 내게는 결코 아니다. 용문산의 은행나무는 그 앞의 안내문에 적혀 있듯이 ‘세계에서 제일 큰 유실수’로서의 위용을 자랑하는 나무다. 흔히 옛날 신라 시대에 의상 스님이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놓은 게 뿌리를 내려 자라났다고들 하는데, 어떤 사람은 의상 스님이 아니라 마의태자라고 말하기도 한다. 신라가 망하자 추종자들을 거느린 마의태자가 정처없이 길을 떠나 금강산으로 들어가기 전에 월악산을 거치고 용문산에 이르렀을 때 꽂아놓은 지팡이라는 것이다. 어릴 적에 그 이야기를 듣고는 어른들은 거짓말도 잘한다고 여겼었다. 군밤에서 싹이 난다는 말과 무엇이 다를까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랜 뒤 어느 날 봄에 들로 나가 우연히 나뭇가지를 들고 다니다가 역시 우연히 아무 데나 꽂아놓은 게 며칠 지나 싹이 파릇파릇 돋은 걸 보고, 삶이란 것에는 얕잡아보아서는 안 될 무엇이 있구나 깨달았었다.
“아무 데나 괜찮아요. 그 사람이 단지 스쳐간 곳이라도요. 티끌 같은 뭐라도요. 예전에 같이 왔었다는 거길 가기만 하면 되니까요.”
역 앞의 작은 광장에서 나를 기다리던 그녀는 내가 머뭇거리자 또렷이 말했다. 생전에 그가 무슨 말끝에 나와 함께 용문산에 갔었다는 얘기를 그녀에게 했다는 게 화근이었다.
“여기 한 번 온 건 사실인데, 무슨 별다른 얘기가 있질 않으니…….”
나는 다시 꼬리를 뺄 수밖에 없었다. 사실 오래 전 학생 때 하룻밤 캠핑을 하겠다고 산에 오르기는 했어도 어디를 어떻게 밟았는지조차 도무지 감을 잡기 힘들었다. 녀석, 별걸 다 기억해가지고는…… 나는 혀를 찼다. 그러나 그는 이젠 녀석이라고 직접 불러볼 수도 없는 저세상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의 발자취를 따라보겠다고 나를 불러세운 것이었다. 티끌 같은 뭐라도…… 나는 그녀의 말에 기가 질리는 느낌이었다. 뭔가 악착같이 달라붙는 성격의 소유자에게 느끼게 되는 벽이랄까, 저항감마저 일었다.
열차를 타러 부랴부랴 청량리역에 나와서, 평일인데도 표가 입석밖에 없다는 걸 알고 낭패다 했을 때, 그 벽은 이미 내 앞에 다가선 것이었다. 하지만 알고보니 입석표만 해도 다행이었다. 청량리에서 오전 열시 열차를 타기가 만만치 않아진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었다. 방학 때야 학생들이 시도 때도 없이 중앙선 열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므로 그러려니 하겠지만, 이젠 방학이고 뭐고 아랑곳없었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웬만한 중늙은이들까지 꾸역꾸역 몰려드는 판국이었다. 정동진이라는 곳이 원흉이었다. 동해안에 자리잡은 그 별볼일없는 바닷가 마을이 얼마 전에 티브이에 방영된 <모래시계>라는 드라마의 배경이 된 뒤로 ‘떴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바닷가에서 아침 해돋이를 보는 게 유행이 되어 도나캐나 그저들 우우 몰려간다는 것이었다. 티브이 드라마를 보지 않는 나로서는 도무지 모를 일이었다.
그녀와의 약속만 아니라면 다음 열차를 타도 상관없는 노릇이었다. 열한시 열차 안동행, 열두시 열차 철암행. 이들 열차는 정동진이고 어디고 애초에 바닷가하고는 거리가 먼 내륙이 종착역이었다.
느닷없이 그녀로부터 용문에 와 있는데 한번 뵈었으면 한다는 전화를 받고 열차 사정은 깜박한 채 다짜고짜 시간 약속을 하고 만 것이 잘못이었다. 그녀 때문이라고 일방적으로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 나는 나대로, 마침 그 언저리 어디에 마련하려고 보아둔 땅이 계약 단계에 있어서 복덕방에 들러야 했던 터라, 이때다 싶었던 것이다. 하기야 입석이라고 해도 불과 한 시간이면 도착하는 거리였다.
열차가 양수리 철교를 지나면서 나는 승강구 쪽으로 나와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 다리 위에서 북쪽으로 바라보이는 풍경은 언제 보아도 내게는 예사롭지가 않았다. 갑자기 넓어진 강폭을 그득 흐르는 강물을 양쪽의 첩첩한 산이 그야말로 병풍처럼 둘러 웅대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깊은 산협(山峽) 사이에 드넓은 세계가 있다. 그리고 저 멀리, 경기도 일대에서는 가장 높은 용문산이 우뚝 솟아 있다. 천산(天山)과 같다. 용문산을 중앙아시아의 천산에 견주어 보는 눈은 땅을 보러 다니기 시작하며 얻은 것이었다. 해발 천백오십칠 미터밖에 안 되는 산을 사천 미터도 넘는 산에 견준다는 게 주제넘는 짓거리인지 모르는 바 아니지만, 내 눈은 어김없이 그렇게 보았다. 봄이 올 무렵 처음 그쪽으로 갔는데, 마치 이 보라는 듯 산봉우리에 흰눈이 눈부시게 덮여 있어서였을 것이다. 몽롱한 검은빛을 띤 산의 아랫도리와 대비되어 그 산봉우리는 하늘 높이 떠 있는 것만 같았다. 이제 어느덧 무르익은 봄빛에 그런 풍경은 멀리 가고 없더라도 나는 눈덮인 그 산봉우리가 눈에 어른거리기만 했다.
하지만 그녀와의 만남에서 천산이 갖는 의미는 없었다. 다만 현실적으로 살펴보자면, 내가 어줍잖게 어디 농사라도 지으며 살 만한 곳이 없는지 살펴보고 다닌 곳이 그곳이라서 그녀의 등장이 더욱 뜻밖의 일로 받아들여진다는 면은 있었다. 전혀 우연일 것이었다.
그곳에 땅을 마련하려고 한다 해서 요즈음 흔히 들먹여지는 귀농이라는 것에 도매금으로 끼워넣지는 말아주기 바란다. 귀농이라는 낱말 자체가 내게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 낱말은 농촌을 떠났던 사람이 다시 돌아감으로써 비로소 성립된다는 것, 다시 말해서 먼저 떠났었다는 사실이 앞서야만 되는 것이었다. 나는 애초에 농촌 출신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찌된 셈인지 매스컴에서는 그저 농촌으로 가서 농사를 짓고 산다는 단순한 뜻으로 ‘귀농’을 들먹이고들 있었다. 이른바 아이엠에프 시대의 허겁지겁한 현상일 터였다.
그러나 어쨌든 나는 어디 농사라도 지으며 살 만한 곳을 이미 점찍어놓고 있는 상태였다. 이제는 듣기에도 지겨운 아이엠에프라는 것과는 아무 상관 없이, 나는 오래 전부터 농사꾼으로서의 삶을 꿈꾸었었다. 농사란 천하의 큰 근본이니 어쩌니 하는 옛말하고도 먼 얘기로, 그저 나는 식물이 철따라 싹 트고 꽃 피고 열매 맺는 것 자체에 남다른 의미와 희열을 간직하고 있었다. 왜 그런가는 아마도 우장춘이나 현신규 같은 식물학자에게 물어봐야 할 듯도 싶다. 흔히 농사일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못 한다고 말해지고, 나도 그렇다는 것을 믿는다. 도시에서 아웅다웅 살기에 진력이 날 때마다 쉽게 내뱉는 말, 시골에 가서 농사나 짓겠다? ‘농사나’의 ‘나’에는 참으로 얼마나 깊은 함정이 있는 것일까. 가령 밥벌이 일이 어렵다고 엣다 모르겠다 다 팽개치고 대신 시‘나’ 짓겠다는 발상은 가능한 것일까. 여러 가지 의미에서 이 시대에 시처럼 피눈물 나는 예술은 없을진대, 게다가 ‘나’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농사‘라도’라고 말하고 있다. 『귀농에 성공하는 법』이라는 책에는 나 같은 엉거주춤한 도시인의 태도를 버려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씌어 있었다. 평범한 진리였다. 하지만, 말했다시피 나는 나대로 꿈이 있었다.
“용문산은 뱀이 유명하다고도 그가 말했어요.”
그녀는 용문에 와 있다는 말끝에 덧붙였었다. 그 친구가 웬 뱀? 나는 열차에 올라타고부터 그녀의 말이 귓바퀴에 맴돌았다. 아닌게 아니라 예전 직장 동료는 군대 생활을 마치자 까닭 없이 임파선 폐결핵에 걸렸는데 용문산에서 뱀을 몇 십 마리인가 고아먹고 감쪽같이 나았다고 했었다. 용문산 뱀탕을 먹기 위해 사람들이 그렇게들 많이 꼬여든다는 것이었다. 여름에 뱀탕을 시킨 뒤 계곡에 가서 물놀이를 하면서 화툿장을 두드리는 게 신선놀음이 아니고 무어겠느냐고 그는 껄껄 웃었다. 아낙네들도 많지. 그리고 밤에 남편들 괴롭히는 거지. 껄껄껄껄걸.
그 친구가 용문산의 뱀이 유명하다고 말한 것이 실제 뱀만을 말한 것인지 뱀탕까지 말한 것인지, 혹은 나아가서 그 뱀탕을 먹었다고까지 말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나는 다만 그가 용문산에 대해 무엇인가 말했고, 또 그 말에 따라 그녀가 용문산을 찾아갔다는 사실만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었다. 그녀가 그의 생전의 흔적을 좇아 벌써 일 년 넘도록 헤매다니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김해의 은하사나 허왕후릉, 모은암은 물론 지리산의 칠불사까지는 쉽게 짚을 수 있는 행로였다. 모두가 옛 가야국 김수로왕의 왕비 허씨와 연관되는 유적들이었다. 그가 왜 허왕비에 대해 그토록 깊은 관심을 기울였는지는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학교 때 우리 역사 연구를 한답시고 모여서 술깨나 축내며 눈에 핏발을 세웠던 문제들은 어느새 뒷전으로 밀쳐두고 별쭝맞게 가야국이니 김수로왕이니 왕비니 하는 케케묵은 이야기를 꿰어차고 다니는 꼴을 보면 한심스럽기도 했다. 어디 먹고살 일자리라도 없을까 하고 내가 경기도 안산의 시화공단 주변을 얼쩡거리며 살았던 무렵에도 그는 여전했었다. 내가 ‘우리’니 ‘역사’니 하는 것들에 넌덜머리를 낸다는 사실부터가 그에게는 오히려 자극제가 된다는 식이었다.
“왕비가 말야, 인도에서 왔다는 게 아직도 수수께끼래. 건 과연 예삿일은 아냐. 너도 인도 가봤지? 그 뜨거운 땅 말야.”
보고 싶다고 안산까지 온 그는 신비 체험에 들어가려는 신비주의자처럼 눈의 초점을 흐렸었다. 인도라…… 나는 오래 전에 유럽으로 가던 길에 불과 며칠 동안 그 땅을 밟았던 때를 회상했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땅이라는 느낌만이 강하게 남아 있었다. 한 가지, 어디론가 가던 길에 벌판에 커다란 소의 주검이 뒹굴고 있는데 그걸 뜯어먹는 들개들 옆에 독수리들이 기웃거리며 틈을 노리고 있는 광경을 보았던 것만은 웬일인지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독수리들은 큰 망토를 펄럭이며 『사자(死者)의 서(書)』를 외는 사제들 같았다. 여름이기도 했으려니와 정말 그곳은 뜨거운 땅이었다. 그뿐이었다.
그러나 예전에 용문산에 올랐을 때는 그나 나나 모두 아직은 ‘우리’니 ‘역사’니 하는 것들에 발을 들여놓기 전이었음은 분명했다. 우리가 그런 방면으로 무엇인가 찾으려고 왔었다거나 대화를 나누었다는 기억이 도통 없는 것이었다. 일행도 우리 둘말고 그 밖에 두세 명이 더 있었던 것 같은데 누군지 어렴풋했고, 어디로 해서 어디로 향했는지는 더더욱 깜깜이었다. 난감한 노릇이었다. 그렇지만 그녀에게 무엇인가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미 우리는 용문산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있었다.
나무가 비교적 선명하게 떠오른 것은 종점에 거의 다 와서였다. 그래, 그 나무는…… 그 나무는 그냥 나무가 아니라 불타오르는 나무였다. 활활 불타오르는 나무의 모습이 내게 거대한 화인(火印)처럼 다가왔다.
그렇지만 그녀에게 그 나무에 대해 무엇이라고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 나무가 활활 불타오르는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나한테만 해당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녀에게는 아무런 객관성도 없는 일이었다. 그녀가 굳이 그렇게 달라붙지만 않았어도 그 나무의 존재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 나무에 대해 설명하자면 ‘그 사람이 단지 스쳐가기만 한 곳’이라든가 ‘티끌만한 뭐라도’라든가 하는 말을 빌미로 삼지 않으면 안 된다. 그만큼 설득력이 없는 나무였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아무것도 아닌 나무였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나무가 있군요. 한 그루 나무.”
나는 그녀에게 말하면서, 그녀의 눈빛이 반짝 반응하는 걸 보았다.
“무슨 나무가요?”
“그건 아무 특징도 없어서 말하기가 매우…… 아주…… 어려워요.”
나는 말을 잇기가 어려웠다.
“왜요?”
“보통 평범한 나문데다가…… 사실 이제 와서 꼭 이 나무다 하고 짚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요.”
내가 그냥 한 그루의 흔한 나무일 뿐임을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내게 매달리는 눈치였다. 낭패였다. 공연히 들먹였구나. 어쩌지 못해 생각해낸 게 겨우 나무 한 그루였고, 답답한 나머지 불쑥 입 밖으로 튀어나온 것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살아온 방식에는 그런 약점이 있었다. 상대방의 처지를 생각해서 책임도 못 질 대안을 쓸데없이 제시한다. 그러고는 혼자서 끙끙 앓는다. 이걸 좋게 말해 분위기를 탄다고 하는 수도 있는 모양이지만, 나로서는 천만의 말씀이다.
“뭐든 그걸로 충분해요. 어디 있나요?”
그녀는 이마에 흐른 머리카락을 쓸어올렸다. 긴 머리카락이었다.
“산으로 가야 할 테니 점심부터 하기로 하죠.”
당장 찾아 나서겠다는 그녀의 태도에 나는 은근히 저항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긴 시계는 벌써 열두시 가까이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즐비하게 늘어선 식당들 앞에 놓여진 노천 식탁에 가서 앉았다.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는 둥 마는 둥 하던 그녀도 하는 수 없는지 맞은편에 오도카니 자리잡고 앉았다. 음식을 시키고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거의 말이 없었다. 내가, 침묵의 어색함을 깨려고, 여기 어디 와서 농사나 지을 마음에 몇 번 드나들었다고 말한 것 정도였다. 더덕불고기는 더덕과 소고기를 버무려 양념해서 쿠킹 호일에 구운 음식이었다.
“그 나무가 중요치 않다는 건 아시죠?”
먹기 시작하자는 말처럼 나는 말했다.
“알아요. 염려하지 마세요.”
그녀는 상추와 취와 치커리를 손으로 집어들며 말했다.
“또 한 가지, 문제는 그 나무가 있던 델 과연 찾을 수 있겠느냐는 겁니다. 찾더라도 그 나무가 있느냐는 것도 의문이고.”
“괜찮아요. 그가 이 세상에 없다는 것 자체도 내겐 문제가 아닌 걸 모르세요?”
어딘가 날카로운 말투라고 느껴졌다. 말을 마친 그녀는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의 죽음을 담보로 한 눈빛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겪어보지 못한 나로서는 받아내기 힘든 눈빛이었다. 나는 무엇인가 꼭 말해야 할 게 있는데 그게 뭘까 하고 억울한 느낌으로 그 눈빛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전 내년이면 마흔이에요.”
그녀의 눈빛이 내 눈꺼풀 위에 닿는다고 생각되었다. ‘마흔 살’을 굳이 앞세우는 뜻은 무엇일까. 이제는 세상을 알 만한 나이라고 강조하는 말일 테지만, 나는 사랑에 집착하는 마음을 읽고 있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막막해졌다. 사랑하는 사람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죽고, 그 흔적을 밟는 서른아홉 살의 여자가 있다…… 그런데 나는 겨우 이름 모를 나무 한 그루를 허공에 띄워놓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겪어보지 못한 애송이가 섣부른 짓을 하고 있다…… 갑자기 나무가 하얀 뼈다귀로 허공에 떠 있다…….
지나가는 말처럼 미리 밝혔듯이 그 나무는 불에 탔으며, 더군다나 우리의 잘못으로 그리 된 것이었다. 활활 불타는 나무란 조금치도 과장이 아니며, 무슨 상징은 더더구나 아니다. 우리가 불태워버린 나무를 그녀에게 제시한 내가 잘못이었다. 살아 있는 온전한 나무 한 그루가 그렇게 홀랑 불타는 광경을 나는 그전이든 그후든 본 적이 없었다. 그날 산밑에 이른 우리는 그 유명한 은행나무와 함께 용문사를 둘러본 다음에, 누구의 뜻에 의해서인지 용문산과 그 옆 중원산 사이의 골짜기를 흘러내리는 골짜기 물을 따라 올라가 캠핑을 하기로 했었다. 웬만한 앞뒤 이야기는 잊었어도, 골짜기의 이름이 조개골임은 나중까지 기억되었다. 누군가 그 이름이 여자의 사타구니에 견주어 붙여졌으리라 말했었다. 조개골에도 다시 윗조개골과 아랫조개골이 있었다.
그날의 산행이 어디서부터 꼬였을까. 우리가 조개골을 더듬어 오를 무렵에 날은 어느덧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낮의 따갑던 햇살이 사라지고 산그늘이 서늘하다 싶기가 바쁘게 으슬으슬 한기가 몰려왔다. 그 골짜기의 냇돌들은 제법 큼직큼직했다. 우리는 얼마쯤 올라 큰 냇돌 옆 적당한 곳에 자리잡고 텐트를 치는 쪽과 저녁을 짓는 쪽으로 두셋씩 갈려 캠핑에 들어갔다. 텐트가 세워지고, 밥과 꽁치 통조림 찌개가 끓었다. 밥 냄새와 찌개 냄새에 배가 몹시 고파왔다. 그러나 모두들 바쁜 마당에 무슨 까닭인지 나만은 맡을 일이 없었다. ‘무슨 까닭인지’ 하는 말은 틀렸다. 나는 그런 판이 벌어지면 언제나 그 모양이었다. 무엇이든 앞장서서 일을 해치우는 데는 무르춤하며 빠지고 만다. 나는 그런 내 태도가 늘 싫었다. 뒷걸음치는 게 싫으면서도 달겨들지 못한다는 그 점에서라면 ‘무슨 까닭인지’는 틀린 말이 아니다. 그래서 단체 생활은 내게 위안보다는 공포인 것이다.
캠핑이 제자리를 잡고 시간이 흐름과 더불어 나는 내 태도에 거의 끔찍한 절망감을 품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야기의 자세한 흐름은 알 수 없으나, 그 친구와 나 사이에 뭔가 장난처럼 오가던 말끝에 언성이 높아졌고, 내 입에서 그만 꽁치찌개를 엎어버리겠다는 말이 나오고야 말았다. 꽁치찌개는 우리의 희망이었다. 희망은 성취되지 않을 때 허망을 증폭시킨다. 그래서 우스갯말로 ‘혹시’가 ‘역시’를 벗삼듯이, 희망은 허망을 벗삼는다. 어떤 부부가 싸움끝에 아내의 입에서 죽겠다는 말이 나왔고, 그 말을 받은 남편이 죽을 용기나 있느냐고 비아냥거리는 걸 못 참은 아내가 그만 실제로 죽어버린 사건이 있었다. 엎어봐, 엎어봐, 어디 엎어봐. 이쯤 되면 결과는 뻔한 셈이다. 나는 우리의 희망인 꽁치찌개를 기세좋게 반짝 엎어버리고 말았다. 죽을 테면 죽어보라고 이죽거리는 입 앞에서 죽기까지라도 할 심사처럼 뒤틀려 있었다고, 이제 와서 나는 변명하고 사과한다. 그리하여 바글바글 다 끓어 우리를 기다리던 꽁치찌개는 하필이면 맛도 보이지 못한 채, 꽁치찌개 중에서 내가 유일하게 비극적이라고 기억하는 슬픈 꽁치찌개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마침내 나무로 옮아간다. 그러고 나서 밥을 어떻게 넘겼는지는 모른다.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일행 중 아무도 캠핑의 즐거움을 누릴 사람은 없어져버렸다. 그럴 즈음 냇가에 삭정이며 검불을 모아 모닥불을 놓은 것이 그 친구였다. 추위도 추위려니와 침울한 분위기는 환한 불을 필요로 하기도 했다. 가만히 웅크리고 있을 수 없게 된 나는 그의 옆으로 가서 나뭇가지를 주워다 모닥불에 얹어놓고는 했다. 잘못을 뉘우치는 행동이었을 터였다. 그렇지만 일은 더 엉뚱하게 번졌다. 그러던 어느 순간, 높아진 불길이 느닷없이 옆의 나무 잎사귀들로 옮겨 붙었던 것이다. 상당히 큰 나무였다. 어어, 하고 나는 놀랐다. 옮겨 붙은 불길은 무서운 기세로 번졌다.
그러나 면밀히 살펴보면 어떤 틈새가 있다. 어어, 하고 놀라던 내 마음이 그 틈새를 비집고 휙 선회하면서, 나는 온 나무가 다 활활 불타오르기를 염원했던 것이다. 그가 윗도리까지 벗어 휘두르려는 것을 나는 뒤에서 붙잡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얼마든지 잡을 수 있는 불이었다. 타게 놔둬. 나는 소리쳤다. 악마의 마음이었던가. 악마의 마음이 불어넣어진 나무는 어떻게 손쓸 겨를도 없이 삽시간에 불길에 휩싸였다. 무슨 나무인지는 몰라도 생나무에 그렇게 손쉽게 불길이 당긴다는 사실은 믿기 어려운 것이었다. 불타오르는 나무는 온 조개골을 온통 환하게 비추는 듯싶었다.
“조개골 조개가 다 익겠다. 히히히, 그치?”
누군가 꽁치찌개의 비극도 잊고 히죽거렸다. 하지만 나는 조금도 웃을 마음이 아니었다. 우리는 누구나 불을 보는 체험 안에서는 배화교도가 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고, 나는 감히 말한다.
불이 다 타버리자 사위는 칠흑 같은 어둠뿐이었다. 그 밤을 어떻게 보냈는지는 도통 모르겠지만, 그로부터 그와 내가 얼마 동안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지낸 것만은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꽁치찌개니 불태운 나무니 뭐니 하는 것들이 과연 그 일로서만 내 뇌리에 새겨져 있는 것일까. 여기서 나는 한 가닥 부끄러운 실마리를 풀어놓아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그것은 한낱 꽁치와 나무에 지나지 않는다. 비록 생명을 ‘한낱’이라고 한다고 비난받을지라도 말이다. 단칼로 말해서, 거기에 한 여자가 있었다. 내가 사귀던 여자였다. 그런데 용문산으로 캠핑을 가기 얼마 전, 나는 그 여자가 나를 떠나 그와 밤을 보냈음을 알았던 것이다. 불행은, 내가 그 사실을 아는 것을 그가 모르고 있다는 데 있었다. 꽁치찌개를 뒤엎고 드디어 나무를 불태운 것은 그런 맥락에서의 내 열등의식의 결과였다. 바로 이 비열함 때문에 나는 활활 불타오르는 한 그루의 나무를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그녀를 데리고 그 나무의 기억을 더듬어간다는 발상 자체가 어줍잖은 짓이었다. 그 나무는 내게는 그런 대로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단순한 모닥불이었다. 그러므로 그녀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용문사의 거대한 은행나무라면 또 모른다. 아프리카의 바오밥나무, 미국의 유칼리나무, 인도의 용수(榕樹), 하다못해 일본의 삼나무라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나무 이름도 모르며, 게다가 그때 불타서 죽어버렸기 십상인 나무였다.
“그러고 보니 그 친구하고 우리 셋이서 진도에 갔던 게 생각나는군요.”
조개골의 입구에서 발을 멈추고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그와 내가 그녀까지 동반하고 여행을 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돌던 그가 마침내 그녀와 함께 살기로 작정한 무렵이었다. 결혼을 작정한 게 아니라 ‘살기로’작정했다는 표현을 나는 쓴다.
“아아, 그랬었죠.”
그녀가 엷게 미소를 띠었다. 그녀의 미소를 처음 본다는 착각이 들었다. 그 미소는, 진도에 가서 어느 마을에선가 씻김굿을 보았을 때, 그녀가 눈물을 훔치던 모습을 떠오르게 했다. 그리고 그곳에도 공교롭게 ‘나무’가 있었음을 깨달았다. 긴 무명 천 위에 상여가 저승길을 가는 장면에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나무야, 나무, 나무, 나무, 나무, 나무야’ 하고, 천도(薦度)하는 무당의 소리는 아닌게 아니라 귀기(鬼氣)를 띠고 구성지게 흘렀다. 곡 소리는 높아가고, 저승 가는 데도 노잣돈이 필요하다고 돈들을 놓으라며 ‘나무’는 길게 길게 이어졌다. 나무야, 나무, 나무, 나무, 나무, 나무야…… 나무야, 나무, 나무, 나무, 나무, 나무야…… 그 ‘나무’가 ‘나무〔南無〕’임을 안 것은 훨씬 나중이었다.
한 그루 불타버린 나무의 불똥이 엉뚱한 나무〔南無〕로 번져 진도까지 넘겨다보게 된 나는 혼란스러웠다. 나무〔南無〕란 불교에서 부처에게 돌아가 의지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이 낱말 뜻을 두고 나 나름으로는 뭘 느껴서 제법 패러디한답시고 ‘불타는 불타(佛陀)의 나무’라든가 ‘나무〔南無〕 나무’ 등의 제목으로 시를 끄적거린 적도 있었음을 여기에 곁들여 적어놓는다. 퇴물 시인의, 별 소득이 없는 시들이었다. 이쯤에 이르면 짐짓 ‘나무아미타불’ 하고, 인류의 한 스승인 부처를 향해 공경례를 갖추어도 좋은 것이겠다.
“바위가 많은 산은 뱀이 많다죠, 아마.”
나는 골짜기의 돌들을 가리켰다. 그가 용문산의 뱀에 대해 아무 뜻이 없이 말한 건지 아니면 뜻이 있이 말한 건지 그것도 궁금했다. 그러나 그녀는 뱀은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 그 대신 그녀는 사월인데도 벌써 덥다며, 위에 걸쳤던 자켓을 벗어 팔뚝에 걸치고 담배를 피워 물었다. 풋담배가 아님이 분명하건만, 그녀가 담배를 입에 문 모습은 처음이었다. 어쩌다 골초인 내가 남이 담배 피우는 모습을 바라보는 쪽이 되었단 말인가, 나는 내가 무척 객관화되어 있다는 느낌에 자신이 생소했다. 그리고 골짜기의 어디를 어떻게 더듬어 갈지 더더욱 막막해졌다.
나무는 무슨 나무, 골짜기뿐만 아니라 산 전체가 전혀 오리무중이었다. 봄 땅 냄새에 새싹 움트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 계절은 확연히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한 그루의 나무는커녕 내가 여기 온 적이나 있었던가 싶었다. 꼬였어도 단단히 꼬인 것이었다.
“이리 올라가는 게 맞아요.”
나는 나 자신을 부추겼다. 등산로도 낯설기만 했다. 이왕 내친 걸음이니 어디라도 찾아가야 한다. 우리는 걸음을 옮겨놓았다. ‘그 사람이 단지 스쳐가기만 한 곳’이라는 편한 조건을 그녀 쪽에서 먼저 던져놓고 있었다. 그러니까 아무 부담이 없는 산행임에 틀림없었다. 나무 따위야 없어도 그만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 자신 그 나무를 한번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언제부터인가 점점 고개를 들고 있었다. 그와 나와 한 여자가 만든 이야기도 한때의 에피소드였다. 그와의 관계를 털어놓으며 울던 여자는 곧 누군가와 결혼해서 미국인가 캐나다로 떠났다.
그런데 ‘티끌’이 나를 붙잡았다.
이제야 밝히지만, 나는 처음부터 티끌이라는 말이 걸렸었다. ‘티끌’을 정말 티끌처럼 불어버릴 수 없었다. 티끌을 검불이나 먼지 같은 말로 바꿔도 마찬가지였다. 얼마 전에 한 강연회에 가서 들은 말이 귀에 맴돌고 있었던 것이다. 연사는, 신라 시대 의상 스님의 게(偈)에 있다는 말로 강연을 시작했다. 하나의 티끌도 온 세계를 품고 있다(一微塵中 含十方)는 말이었다. 연사는 이 말과 윌리엄 브레이크의 시에서 ‘하나의 모래알에서도 우주를 본다’는 구절과 대비하여 강연을 이끌어가고 있었다. 매우 평범한 강연이라고, 나는 로비에 나와 담배를 피우며 시간을 때웠다. 그 강연을 주관한 모임의 사람들과 만날 약속이 있어서였다. 일미진중 함시방이라. 티끌, 모래알, 세계, 우주, 좋은 말이군.
그녀에게서 티끌이라는 말을 듣자 무심코 흘려버렸던 강연 내용이 되살아났다. 건성으로 흘렸던 말이 다시 미늘처럼 나를 꿰고 있는 까닭을 알 수 없었다. 그녀가 말한 티끌은 그만큼 예사롭지 않게 들렸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도 일 년이 거의 넘었건만, 그 티끌 같은 흔적일지라도 놓치지 않고 붙좇는 여자가 내 앞에 있었다.
“그가 왜 정사를 제의하지 않았는지 알 수 없어요.”
그녀가 풀숲에 버려져 있는 나뭇가지를 주워들며 말했다.
“정사?”
“그래요. 정사, 정을 나누며 나란히 죽는 거 말예요.”
그녀가 나뭇가지를 주워드는 걸 본 나는, 나도 장난 삼아 나뭇가지를 지팡이처럼 들고 가서 땅에 꽂아놓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마당에 그녀의 말은 야릇하기보다 메마른 느낌으로 들려왔다. 그 말을 할 때의 음색은, 파릇파릇 새순이 돋아나는 계절에도 지난해의 마른 가랑잎을 떨켜가 없어 그대로 달고 있는 나무가 내는 소리 같기도 했다. 정을 나누며 나란히 죽는 거 말예요. 바스락바스락바스락바스락…….
“그 점에서 그 사람은 저를 배반한 거예요.”
나는 그가 자살을 했다는 사실을 새롭게 깨닫는 듯했다. 그는 목을 매달지도 않고, 동맥을 끊지도 않고, 열차에 부딪치지도 않고, 수면제를 먹지도 않고, 바다에 몸을 던져 죽었다. 정사라는 말을 듣자, 얼떨떨한 동시에 나 자신의 경우에 비춰 비린 웃음이 머금어졌다. 나야말로 여자에게 정사를 제의한 적이 있었더랬다. 여관방에 들어가 허겁지겁 일을 치르고 난 다음 나는, 우리 이대로 같이 죽어버리면 어떨까 하고 말했었다. 엄밀히 말해 제의랄 것도 없었다. 일을 치르고 나서 담배를 피워 물고 멀뚱히 누워 있으려니, 그제서야 혼자 욕심만 차렸다는 생각에 미안했고, 그래서 부담감을 조금이나마 덜겠다고 불쑥 나온 게 그 말이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전혀 책임 못 질 말이었다. 내 친구와 밤을 지냈다고 눈물을 짰던 바로 그 여자는 하는 수 없다는 듯, 결혼할 사람이 생겼으며 미국이나 캐나다로 가서 살 계획이라고 밝혔던 것이다. 나무를 불태운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나로서도 여관방에서 그 여자와 나란히 누워 숨이 끊어진 채 발견된다는 건 참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알몸이라면, 알몸으로 캐나다까지 좇아가는 것보다 끔찍한 일일 것이었다.
그리고 배반의 문제……는, 좀 복잡한 양상을 띤다. 인생살이의 단맛, 쓴맛을 꽤나 맛보아왔다고 자부하는 나로서는 그것이 인생 전체로 보아서는 상당히 긍정적인 맛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다. 즉, 모든 배반이란, 그렇다고 해서, 인생 자체를 배반하는 것은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달에서 물이 발견됐다는 걸 신문에서 봤어요. 또다른 별에서도요. 어떤 혜성이 부딪칠 때 거기서 옮겨진 거라구요. 지구의 물도 옛날에 그렇게 생겼다죠? 모르겠어요.”
머나먼 이야기였다. 나도 조개골의 골짜기를 흘러가는 봄물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혜성이 옮겨다준 물이라는 투로, 정말 까마득히 모를 이야기까지 연상하기에는 봄물 소리는 정겨운 것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물이 발견되었다는 것은 생명체가 있을 수 있다는 증거가 된다고, 신문에서는 떠들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견디는 사람은 머나먼 낯선 별까지 생각이 간절하게 닿아 있는 것일까, 나는 망연했다.
“그럼 말이에요. 그럼, 그 혜성에는 물이 어떻게 있었을까요?”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말할 수 있다면 신문 보도를 그대로 되풀이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신문 보도를 넘어선다 해도, 그 혜성에 물이 있는 건 또다른 혜성이 부딪치면서 옮겨진 거고, 또다른 혜성에 물이 있는 건 또또 다른 혜성이 부딪치면서 옮겨진 거고……그리하여 또또또, 또또또또, 또또또또또…… 하고 무한대로 나가야만 하는 말에 지나지 않음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살아오는 동안 너무나 많은 말장난에 지쳐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느니, ‘말은 존재의 집’이라느니 하는 말들도 결국은 ‘말로써 말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로 마감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저 우주 공간 어디에 물이 있어서, 생명을 만들어내고 이른바 우주적 사랑을 구현한다 해도, 그 근본을 모르는 한 모든 것은 말장난이었다. 말하자면 근본을 모르는 게 근본이라는 셈이었다.
“그 별들에 있는 물방울들은 누군가의 영혼이 증류되어 맺혀진 이슬 같은 거라고 생각해봤어요.”
“영혼이…… 뭐라고요? 증류?”
“예, 증류. 우리들 삶에서 사랑이 젤 먼저 수증기가 되어 날아가는 건, 사랑이 젤 휘발성이 강하기 때문이에요. 순수하면 순수할수록 휘발성이 강하죠. 사랑이 휘발되면 삶은 그저 하루하루 꾸역꾸역 지나가는 거예요. 수증기는 하늘을 떠돌다가 이슬로 맺혀요. 그 이슬이 살별에 실려 머나먼 다른 별로 가죠. 거기서 다시 생명이 되는 거죠.”
모든 생명의 수수께끼는 밝혀졌다. 보통 때 같아서는, 무슨 정신 나간 소리냐고, 나는 얼굴을 돌렸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 이상한 이론에 웬일인지 반박하고 싶지 않았다. 반박은커녕, 윤회니 환생(還生)이니 하는 엄숙한 낱말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알라딘이 얻은 램프 속에 들어 있는 거인도 결국 똑같은 상상력의 소산이구나 하고 엉뚱한 생각까지 떠올랐다. 증류니 휘발이라는 말 때문이었다. 램프 속에 든 것은 당연히 증류된 기름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일찍이 석유는 생명체의 주검에서 생성된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그 수증기가 맺힌 이슬이 생명이 아닐 수가 없었다. 알라딘의 램프 속 거인은 오늘날 아라비아의 램프뿐 아니라 전 세계 어디서나 거인이 된다는 점에서 『아라비안 나이트』의 상징성은 놀랍기만 한데, 어쨌든 나는 그녀 옆에서 봄날 늦은 햇빛도 ‘휘발성’이 강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 나무가 있던 곳은 어림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물가에 텐트를 칠 만한 공간이 어디쯤이었을까. 내가 두리번거리는 걸 본 그녀가 걸음을 멈추고 가방에서 담배를 꺼냈다.
“좀 엉뚱한 얘기였나요?”
그녀가 라이터를 켜며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
나는 덕분에 생명의 수수께끼가 밝혀졌다고 말하려다 자칫 농담처럼 들릴까봐 입을 다물었다.
“여기 어디서 농사를 지으실 거라고요?”
“농사라고 하긴 뭐하지만.”
“그 사람도 농사를 지으며 살고 싶어했는데. 여기 무슨 연고가 있나요?”
“없어요. 다만…….”
그때 홀연 천산이 머리를 스쳤다. 땅을 보러 오가다가 바라보았던 눈 덮인 산이 이제까지와는 또다른 천산으로 바뀌고, 그 아래 오아시스 마을에서 청포도를 가꾸며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어른거렸다. 살아오면서 나는 늘, 아무도 모르는 머나먼 땅에 홀로 떨어져 외롭게 사는 내 모습을 그려보곤 했었다. 외로움만큼 나를 나답게 하는 것은 없다고 나는 믿었다. 외로움이야말로 삶이 증류되어 맺힌 가장 순수한 이슬이었다. 내 삶의 원류가 거기 있었다. 그 동안 내 삶으론 전쟁도 지나갔고, 혁명도 지나갔고, 크고 작은 여러 파탄도 지나갔다. 죽음에 이르리라던 사랑도 지나갔다. 내 안에서 들끓던 정신과 육체의 갈등도, 영웅과 민중의 갈등도 회고의 책갈피 속에 끼워놓은 단풍잎처럼 얇게, 고이 잠들었다. 그리하여 남은 것이 관념뿐이라면, 그 모든 사태는 내 순수의 이슬들을 휩쓸어 격랑을 이루어 흘러간 것이었다. 한 방울, 한 방울의 이슬이 격랑을 이루도록 모질게도 살아온 인생 앞에 스스로 조금은 공손할진저!
그렇다 하더라도 이제까지와는 또다른 천산은 어떤 천산이란 말인가. 여기서 내가 인도의 북쪽 설산(雪山)이나 그 어름 어딘가에 있다는 수미산(須彌山)을 겹쳐 떠올렸음을 나는 굳이 부정하지 않는다. 내가 ‘다만……’ 하고 말을 잇지 못한 것은 그녀에게 그와 같은 엄청난 산 얘기는 지나치다고 여긴 때문이었다. 사랑하는 남자의 흔적을 좇아 강산을 헤매다니는 여자에게 천산이며 설산이며 수미산은 웬 뜬구름 잡는 얘기일 것인가. 자기가 불행하다고 여기는 사람에게는 아웅다웅 살아가는 생활의 모습이나 미래에 대한 자자분한 설계 따위가 마냥 부럽고 고깝게만 보여, 인내심을 괴롭힌다.
잠시 대화는 끊어지고 우리는 말없이 담배를 마저 피웠다. 땅바닥에 담배꽁초를 비벼 끈 그녀는 걸음을 옮기며 뭘 기를 것인가 물음을 던졌다. 귀농을 택하는 사람들이 가장 신경을 써야 하는 게 작물의 선택이라는 것이었다. 신문에서 보았는데,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귀농 설명회에 참가했다가 사기꾼들이 선전하는 특수 작물에 속아 퇴직금을 몽땅 날리는 일도 흔하다고 그녀는 그녀답지 않게 생활적으로 덧붙였다. 나도 신문에서 읽은 내용이었다. 하지만 말했다시피 ‘귀농’과는 아예 인연이 없는 나였다. 또 직장을 잃어서 새로운 살길을 찾는다는 식의 농사도 아니었다. 거듭 말하건대, 그것은 오래 전부터의 꿈이요, 식물에 대한 내 경건한 귀의의 발로였다. 어려운 현실을 타개하겠다는 것은 둘째치고 그것은 믿음인 것이다. 바야흐로 나무〔南無〕인 것이다. 이 마음 상태를 설명하는 데는 얼마쯤 어려움이 따른다. 왜냐하면, 내 꿈이 거기 있고, 꿈이란 꽃처럼 보호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어디가 어딘지, 이거 어디.”
나는 대답 대신 사방을 둘러보았다. 나무를 찾는다는 건 글러버린 일인 듯싶었다. 캠핑 장소고 뭐고가 오리무중이었다.
“걱정 안 해도 돼요. 그 사람이 여기 왔었다는 것만으로도요.”
오히려 내가 위로를 받는 형편이었다. 그렇다면 그녀의 목적은 이미 이루어졌다고 해도 좋았다. 그러나 용문산은 그렇다치고 더 나아가 앞으로 그녀가 언제까지 그러고 다닐 것인지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이었다. 미친 사람 소리 듣기 마춤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내가 왜 그녀의 질문에 대답을 어물쩡 미루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어물쩡’이 아니었다. 그녀가 내가 점찍어놓은 땅에 대해 묻거나 퇴직금을 몽땅 날린 사람에 대해 들려주거나 하는 것이 그녀에게는 아무런 흥미도 없는 일일 것이었다. 시시콜콜한 생활에 대한 복안은 그녀를 고깝게 할 것이 틀림없었다. 더군다나 내가 꿈꾸는 농사는 정확하게 말해 원예였다. 언제부터인지 갑자기 시장에 나오기 시작한 야생화가 내 첫 목표였다. 그걸 위해 나는 양재동과 종로 5가 꽃시장은 물론 여러 식물원들을 뻔질나게 들락거렸고 이창복 박사와 김태정 박사의 책을 비롯하여 식물도감 종류를 거의 몇 번씩 읽어냈던 것이다. 얼레지, 처녀치마, 바람꽃, 연령초, 개불알꽃, 돌단풍, 앵초, 하늘매발톱, 바위취, 비비추, 꿩의다리, 진범, 노루오줌, 톱풀, 용담, 속새, 박새, 미나리아재비, 노루귀, 조개나물…….
“그 친구 있었으면 여기 어디서 같이 농사 지으며 살자고 했을 텐데.”
말해놓고 나서 나는 아차 싶었다. 그녀에게는 조금도 위안이 되지 않을 말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밝은 얼굴로 그거 좋은 일이에요. 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은 아마 『삼국유사』에 나오는 꽃 같은 것만 기르는 꽃농사를 했을 거예요. 왜, 선덕여왕의 모란꽃, 암소 끌고 가는 노인의 철쭉꽃, 또 석남꽃…….”
그녀는 말을 멈추었다. 나는 그녀가 말을 멈춘 까닭을 알고 있었다. 『삼국유사』의 석남꽃을 내가 모를 리 없었다. 결혼을 앞두고 그만 애석하게 죽어버린 남자가 꿈에 석남꽃을 머리에 꽂고 나타나서, 이상한 예감으로 관뚜껑을 열어보니 다시 살아났다는 설화였다. 그래서 남녀의 사랑이 기필코 이루어졌다는 것이었다. 가슴 저리게 아름다운 설화였다. 머리에 꽃을 꽂고 그가 다시 살아오기를 기다린다? 설마 그럴 리야 없을 것이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설화에 지나지 않았다. 아니, 그녀의 꿈속에 그가 설령 그러고 나타난다 해도, 재가 되어 흩뿌려진 그에게는 열어볼 관뚜껑조차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얼굴빛에 석남꽃 빛깔이 어린다는 상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석남꽃을 본 적도 없으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에 용서를 바라면서 말이다.
꽃농사는 어느 틈에 그녀가 앞질러 말하고야 말았다. 꽃을 가꾸는 농사와 쌀, 보리, 콩 등을 가꾸는 농사 사이에서 나는 갈등을 느끼곤 했었다. 먹고살기에도 허덕이는 세상살이에 꽃의 사치가 어떻게 비집고들 틈이나 있는 것일까, 하는 물음이 거기 있었다. 언젠가 소련이 망하고 러시아로 갓 다시 환원되었을 무렵, 그 궁핍과 혼란 가운데서도 시장에 꽃 파는 양동이가 줄지어 있던 광경이 웬일인지 망막에 어른거렸다. 달러와의 환율 때문에 돈 가치가 곤두박칠쳐서 웬만한 사람들의 한 달 봉급이 홑 10달러밖에 안 되는 마당에 1달러에 두세 송이의 장미라…… 모스크바와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오가는 열차 ‘붉은 화살’에서 장미꽃으로 마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어쩌면 괴로운 노릇이기도 했다. 이런 갈등 때문에, 작은 마당에나마 내가 심는 꽃들은 용의주도하게 구황(救荒)식물이 주종을 이루고 있었다. 이를테면 나리와 백합이 그런 것들이었다. 뚱딴지도 거기에 속했다. 갑자기 세상이 뒤숭숭해져서 사람들이 라면이다 뭐다 사 쟁일 때도, 나는 참나리의 비늘줄기를 쪄서 왕고들빼기나 곰취 잎사귀에 싸 먹으며 며칠은 견디리라 했었다. 산마늘과 무릇과 씀바귀를 캐리라 했었다. 아니다. 마지막에는 애기똥풀이나 천남성이나 앉은부채 따위 독초를 씹으며 빠르게 최후를 맞으리라 했었다.
나무는 찾을 길이 없었다. 우리는 벌써 골짜기의 물줄기가 끊어져 어디론가 스미고 있는 곳까지 올라와 있었다. 그녀도 나무에 대한 미련은 버린 듯싶었다. 아니, 애초에 그녀는 그 나무를 본 것과 다름없는 마음자세였으므로 달리 이러쿵저러쿵할 무엇이 없었다. 나는 뒤돌아서서 우리가 올라온 길을 굽어보았다. 그러자 갑자기 현기증처럼 다가오는 풍경 앞에 머리가 어질거렸다. 나는 하마터면 ‘아!’ 하고 소리칠 뻔했다. 그것은 올라오는 동안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광경이었다. 나는 펼쳐진 광경이 사실인가 싶어 손으로 눈을 비볐다. 그래도 그 광경은 더욱 또렷해만 질 뿐이었다.
처음에 나는 그것이 마치 무수한 뱀들처럼 보였다. 용문산의 그 많다는 뱀들이, 몸은 누렇고 대가리는 초록색인 무슨 뱀들이 떼지어 꿈틀거리며 솟아오르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온통 초록으로 불타오르는 나무들의 행진이었다. 행진이 아니라 비산(飛散)이었다. 그것을 평범하게 초록빛 새싹들이 움트는 것쯤으로 폄하해서는 안 된다. 그 새싹들은 초록의 불꽃이었다. 내 눈이 순간적으로 어떻게 되었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 불꽃들은 활활 불타오르며 마치 이 세상에는 없는 어떤 우주적인 비밀 의식을 치르는 것만 같았다. 불타오르면서도 살아 있는 나무들은 높고 높은 천산 위 하늘을 날아 우주를 향해 생명의 빛을 뿜어대고 있었다. 천산 위 하늘, 설산 위 하늘, 수미산 위 하늘을 날아 그 나무들은 거대한 지팡이로 꽂혀 새로운 생명을 노래하는 듯했다.
“이제 그 사람을 향한 순례는 끝났어요.”
그녀의 말을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듣고 있었다. 그 ‘순례’는 그가 ‘단지 스쳐가기만 한 곳’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순례가 아니라, 이를테면 오래 전에 불타버린 나무를 되살리는 비밀 의식이었다. 그렇게 말하는 그녀에게서 예전의 그 인도의 왕녀의 모습을 본다고 나는 생각했다. 이 모든 것이 착각이든 환상이든 조금도 문제될 게 없다는 판단이었다. 문제는, 그녀가 간직하고 있는 사랑이었다. 그 사랑이 나로 하여금 도리없이 환각, 환청을 불러일으킨다 해도, 나는 달게 받으리라고 이미 각오하고 있었던 성싶었다. 남의 사랑에 내가 이토록 허물어질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한 노릇이었다. 불타서 죽은 나무가 사랑의 지팡이가 되었다가 하늘에 꽂혀 움튼 결과였다. 그녀가 하늘에 꽂은 사랑의 지팡이였다.
나는 그녀를 마주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녀의 주술에 의해 나 자신조차 불타오를 것만 같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나무야, 나무, 나무, 나무, 나무, 나무야……’를 계속 입 속으로 읊조리며 온몸을 죄고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