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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정 큰스님께서 불사하신 중국 사찰 순례기
굉진(청하, 영월 망경산사 당가)
1) 관정 큰스님 출국일에 함께 중국 순례
- 2002년 11월 12일(화요일)
나는 북한산 영취사에서 큰스님 초청법회 때 관정 큰스님을 처음 뵈었고, 이듬해 2002년 가을 우리 절 망경산사에서 ‘중국고승 관정대법사 초청 선지식 친견법회’ 때 가까이서 큰스님을 시봉할 수 있었다.
그 이후 큰스님이 지방에서 법회를 하시고 서울로 올라오셔서 인사동에 있는 여래선원에 머무실 때 오랜기간 정우 스님과 함께 지근거리에서 큰스님을 시봉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인산인해로 몰려들어 매우 북적거리는 인사동이지만 우리가 머무는 빌딩의 옥탑 여래선원 수행처는 이상하리만치 조용하고 그윽하였다. 바로 지척의 혼잡거리에서 방금 여래선원에 방문한 사람들이 모두 놀랠 정도였다.
북쪽으로는 인사동 너머로 멀리 북한산 보현봉과 가까이 청와대 북악이 조망되고, 동남으로는 낙원동 옛 원각사지 탑골공원 숲과 그곳의 원각사지 탑이 건네다 보였고, 남쪽에 종로통 너머로 명동과 남산 정경이 펼쳐지고, 서쪽으로 인사동 관훈동 등 대소의 건물군과 특히 종로타워 빌딩에 조형물로 세워진 금색 다층탑이 우리쪽 방향에 있어 쉽게 시선에 들어오며 석양 때 아름다운 노을이 펼쳐지는 곳이었다. 우리 스님들은 과거에 이곳은 조선시대 세워진 원각사 대가람터에 속하여 혹시 법당 터였을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하기도 하였다. 큰스님은 여래선원에 머무시는 것을 좋아하셨다. 혼잡한 인사동을 쉽게 다녀오시고, 근처의 세운상가에 가셔서는 중국에 가서 나눠줄 선물을 준비하시기도 하였다. 특히 가까이 있는 하나빌딩에 은행이 있어 환전하시거나 중국에 송금하기에 편리하시다고 하였다.
큰스님께서는 법회 일정이 없을 때는 거의 인사동 여래선원에 오셔서 한동안 머무셨다.
어느 날 큰스님께서 중국 현지에서 당신이 불사하시는 사찰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다가 뜻밖의 말씀하셨다.
“너희 제자들도 나와 함께 중국에 가서 내가 불사한 사찰순례 여행을 하면 어떻겠느냐?”
우리는 큰스님이 중국에서 불사를 많이 하셨다는 말을 자주 들었기 때문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 큰스님이 출국하실 때 함께 따라가기로 결정하고 나를 비롯하여 등원 . 등인 . 정우 스님과 거제도 오송암의 굉송 스님이 함께 순례여행 떠나기로 하고 급히 출국준비를 하였다.
나는 당시까지 외국에 나가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여권을 만들고 비자를 받는 과정이 낯설고 힘이 들었다. 우선 여권을 신청하면서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사항을 써넣어야 하기 때문에 출가한 뒤 한 번도 소식을 취한 적이 없는 속가의 인연들에게 연락을 해야 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비자문제였다. 출발 전날 다른 스님들은 비자를 받아 여권이 다 나왔는데 내 비자만 늦어져 대사관에서 여권이 나오지 않은 것이다. 비자발급 대행하는 여행사에서 출발하는 당일 날 오전에 나온다고 했다. 나도 여행준비를 다해가지고 일행 스님들과 함께 인천공항으로 나갔다. 모두들 짐을 부치고 좌석표를 받아서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도 내 여권은 아직도 도착하지 않았다. 이 때 한국과 중국을 많이 드나든 통역 강거사님이 한마디 하였다.
“오늘 출국하는 것은 어렵겠네요.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만일 출발할 수 있다면 내 손에 장을 지집니다. 포기하세요!”
그러나 모든 일을 추진하는 등원 스님은 가능하다고 애기했다.
등인 스님은 ‘만일 여권이 도착하지 않아 함께 못가더라도 마음을 비우도록 하라’고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나에게 위로를 해주고, 관정 큰스님을 비롯하여 일행은 출입국 관리실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등원 스님과 남아서 여권이 도착되기를 기다렸다. 안으로 들어가는 일행은 자꾸 뒤를 돌아보며 초조하게 기다리는 우리를 지켜보며 염려하는 눈길을 보냈다. 그리고 등원 스님도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나만 남겨두고 출국심사장으로 들어가려는 찰라 드디어 여권이 도착하였다. 정말 영화에서 보는 것 같은 한 장면이 벌어진 것이다. 손에 장을 짓는다고 호언장담한 강거사님이 혀를 내둘렀다. 나의 첫 외국여행이고, 우리 스님들과 함께하는 뜻깊은 순례여행이 가능하게 되어 크게 한숨 돌렸다.
비행기가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하여 3시간 만에 중국 복건성 샤먼공항에 도착하였다. 입국심사장에서 나와 공항대합실에 들어서기 바쁘게 우릴 마중 나온 사람을 찾느라 큰스님이 바빠지셨다. 한국에서의 조심하고 조용하던 분위기와 초조한 모습이 확 바뀌어 얼굴에 화색이 돌고 몸의 움직임에 생기가 돌았다. 전체적으로 말씀하시는 톤이 크게 높아졌고 이곳저곳 누비며 찾아다니시는데 몸동작이 무척 빠르시다.
제자에게 차를 가지고 마중 나오라고 했는데 안 보인다고 하시면서 한동안 찾아 헤매시다가 급기야 큰소리로 외치신다. 대합실에서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쳐다보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시며 구석구석을 누비신다. 한 반시간여 찾으시다가 마침내 포기하시고 누구에겐가 전화를 하시며 한바탕 소란을 끝내셨다.
이번 여행은 무작정 큰스님을 따라왔기 때문에 모든 것을 큰스님께서 하시는 대로 따라야 하는 형편이었다. 그런데 큰스님은 한국말을 모르고 우리는 중국말을 전혀 할 줄 모르는 매우 특이한 방문단이었다. 우리가 큰스님과 할 수 있는 대화는 한문으로 하는 필담이 소통의 전부였다. 등원 스님이 노트를 한 권 준비하여 중국어가 아닌 한자로 글을 쓰면 큰스님이 그 노트에 답을 쓰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큰스님이 노트에 이렇게 쓰셨다.
“對不起, 結連係人連錯”
연계한 사람이 연계가 잘못되어 차가 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기서 등원 스님은 ‘對不起’를 운전수가 ‘일어나지(起) 않아서(不)’ 그렇다고 짐작 하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말은 ‘뚜이부치(對不起)’라고 해서 ‘미안합니다’라는 나주 초보적인 중국어 회화라고 하였다. 어쨌든 우리는 차를 가지고 마중 나오기로 한 사람이 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할 수 없이 공항에서 좋은 승합차를 한 대 비싼 값으로 대여하여 출발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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