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 음악이 만들어내는 마술같은 순간들을 담았어요
〈우리 영화음악을 만나다〉음반 낸 배우이자 영화감독 방은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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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림 객원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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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에서 영화감독, 연기를 가르치는 대학교수, 라디오방송 DJ,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진행자로 끊임없이 변신해 온 방은진 감독. 그가 이번엔 우리 영화음악 이야기를 들려줄 음반을 들고 우리 앞에 섰다. 최근 한국 영화음악사에 남을 오리지널 스코어를 담은 〈우리 영화음악을 만나다〉(아름다운 동행)라는 음반을 낸 방은진 감독을 홍대 앞 ‘대안공간 루프’에서 만났다. 이번 음반은 방은진 감독이 진행하고 있는 TBS FM <밤으로의 여행> 3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된 것이다. 출발은 미미했지만 결과는 의외로 커졌단다. 그도 그럴 것이 1990년대 이후 한국 영화음악의 계보를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한국의 대표적인 영화음악가의 작품이 총망라되었기 때문이다. 이제껏 이런 오리지널 스코어를 담은 작업이 없었다는 점에서도 한국영화를 아끼는 이들에게는 참 반가운 소식일 것이다. 4장의 CD로 구성된 이번 음반을 통해 조성우・김준석・심현정・김상헌・박기헌・원호경・정세린・최용락・김준성・이희승・김홍집・이창희・이종교・추교일・한재권・김양희・김준범・신민섭・김수진 등 한국의 대표적인 영화음악가 19명을 만날 수 있다. 이 음반을 듣다 보니 영화 속으로 슬며시 스미는 느낌이 든다. “사람들이 영화를 볼 때 감정을 움직이는 것은 배경음악의 힘이 커요. 물론 이창동 감독이나 라스 폰 트리에 감독처럼 음악을 전혀 쓰지 않는 분도 있지만요. 전 이제 두 번째 장편영화를 준비하는 감독이라 방준석・정재형 음악감독과 일을 해본 정도지만, ‘우리 영화음악이 정말 다양해졌구나’ 느낍니다.” 영화음악을 한곡 한곡 선별해 음반을 만들 때 어떤 느낌이었을까? “방은진과 영화음악의 수줍은 만남이랄까. 제 취향에 꼭 맞는 건 아니지만, 책을 읽으면서 혹은 일을 하면서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들을 주로 골랐어요. 제 성장기를 잠식했던 게 엔니오 모리코네의 영화음악이었거든요. 지금은 〈디 아더스〉 음악처럼 무언가를 끌어내는 음악을 좋아해요. 요즘엔 음반시장이 좋지 않아 영화 OST를 잘 내지 않는데, 영화가 막을 내리면서 함께 묻히는 음악들을 건져 올렸습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영화에서 음악이 마술 같은 힘을 발휘할 때가 분명 있다고 한다. 배우의 연기와 풍경, 음악이 절묘하게 어우러졌을 때다. 감독으로서 ‘이 장면을 어떻게 담을까’ 고민할 때 음악이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기도 한다는 것. “배우는 연기하면 끝이에요. 중간 과정이 없어요. 아아…, 그래서 제가 연출을 좋아하는가 봐요. 저는 영화를 만들 때 세공하듯 꼼꼼하게 작업하는 과정을 좋아해요. 영화는 다양한 분야 사람들의 협업으로 만들어지는데, 감독은 그것을 하나하나 세심하게 살피고 조정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의 완성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즐기는 것 같아요. 그런데 관객을 끌어들이느냐 밀치느냐 하는 역할은 영화음악이 하는 것 같아요.” ‘음악이 배우 이상으로 연기를 하는구나’ 하고 깊이 깨닫게 한 영화는 빔 벤더스 감독의 〈파리 텍사스〉(1984)였단다. “음악을 들으면 주인공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어떤 행동을 할지 알 것 같았어요. 영화음악에 푹 빠져 한때는 〈올드 보이〉의 음악을 제 휴대전화 벨소리로 썼을 정도예요.” 두 번째 장편영화 〈이화에 월백하고〉 준비 중 연극과 영화에 출연한 연기자로, 화제가 됐던 영화 〈오로라 공주〉의 감독으로, 다시 서울예술대학 영화과 겸임교수, 라디오방송 〈밤으로의 여행〉 DJ,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휴먼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진행자로 변신을 거듭해왔지만, 방은진은 어디에 있든 방은진만의 색깔을 낸다. 창가 쪽 손바닥만 한 화단 아래 앉아 있던 그에게 촬영을 위해 자리를 옮기자고 했더니 “이 꽃, 제가 좋아하는 꽃이에요” 하며 아쉬워했다. “극락조화예요. 제가 좋아하는 화초인데, 혹시 꽃 보셨어요? 참 보기 어려운 꽃이죠. 몇 년에 한 번씩 피는데 극락조를 닮았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대요.” 극락조화는 남아프리카가 원산지인 여러해살이 풀인데 6년 이상은 키워야 겨우 꽃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성급히 꽃을 피우지 않는 극락조화처럼 방은진은 열정을 가득 품고 있다가 관객 앞에 서곤 했다. 방은진은 항상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거라는 기대감을 저버린 적이 없다. 연기자로서 그는 〈태백산맥〉 〈수취인불명〉 〈301 302〉 〈미쓰 홍당무〉에서 그만의 개성을 내뿜었고, 2005년에 만든 영화 〈오로라 공주〉는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신인감독상과 황금촬영상 신인감독상 등을 받았다. 요즘 그는 조선시대의 <섹스 앤 더 시티>라 할 만한 장편영화 〈이화에 월백하고〉(가제)를 준비 중이다. “지금 각색 중인데, 이병우 음악감독님과 함께 일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이병우 감독님이 내용을 보시더니 이토록 말랑말랑하고 예쁜 이야기도 있냐고 하세요.” 그의 표현에 따르면 자신은 꿈을 복제하는 사람이 아니라 꿈을 증식시키는 사람인 것 같단다. 한 번도 ‘나는 다 이루었다’라고 생각한 지점이 없이 계속 꿈을 확장시켜왔다고 한다. 요즘은 라디오방송을 진행하느라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스스로 낮아질 수 있었다고 한다. 끝없이 꿈을 증식시킨다는 그에게 스스로 어떤 사람이라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런 사람 있잖아요. 이정표 없이 길을 가다 도중에 ‘어라, 이 길이 아니네!’ 하고 깨닫지만 돌아가지는 못하고 그냥 앞으로 쭉 가는 아이? 그게 저예요. 스스로 뒤돌아서기 어려울 때까지 몰아가죠. 이곳이 어딘지는 모르지만 ‘잘한 거야’라고 스스로를 지지하기도 하고요. 제 주변에 격려도 해주고 야단도 쳐주는 어른들이 많았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그는 앞으로도 쭉 이 길을 갈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언젠가 자기만의 길 위에 있으리라. 내면에 열정을 오랫동안 품고 있다 단번에 꽃을 피우는 극락조화처럼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