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8월 15일이 오면 나는 심훈의 〈그 날이 오면〉을 떠올린다. 서가에서 낡은 책을 찾아 시를 다시 읽어본다. 읽을수록 그 진정성과 끓어오르는 격정에 마음이 녹아내리는 것만 같다. 얼마나 그 날이 그리웠을까!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 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恨이 남으오리까.
그 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 울며 뛰며 딩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저항시라면 프랑스 시인 폴 엘뤼아르의 〈자유〉도 뻬놓을 수 없다. 나는 〈자유〉를 세계 제2의 저항시로 평가한다. 제1은 물론〈그 날이 오면〉이다. (프랑스인들은 내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그들의 '자유'이다.) 엘뤼아르는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때 독일에 저항해 레지스탕스로 활동하면서 이 시를 썼다.
나의 초등학교 시절 노트 위에
내 책상 위에, 나무 위에
모래 위에 눈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내가 읽은 모든 책의 페이지 위에
흰 종이 위에
돌과 피, 종이와 재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부유의 허상 위에
병사들의 총칼 위에
제왕들의 왕관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중략)
파괴된 내 방공호 위에
무너진 내 등대 위에
내 권태의 벽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소망 없는 부재 위에
벌거벗은 고독 위에
죽음의 계단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중략)
그 한 마디 말의 힘으로
나는 내 일생을 다시 시작하고,
너를 알기 위해서
너의 이름을 불러 주기 위해서 나는 태어났다
오, 자유여.
엘뤼아르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7년 지난 1952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심훈은 1930년에 쓴 〈그 날이 오면〉을 발표하지도 못했고, 나라가 1945년 독립을 되찾는 것도 보지 못하고 서른다섯 젊은 나이로 1936년에 타계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심훈보다 훨씬 오래 산다. 어떤 그날을 기다리는지도 불분명한 채 엉뚱한 일에 “더덩실 춤”을 추며 살아간다. “오, 자유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