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일전쟁 중이었던 1905년 7월 미국의 육군장관 윌리엄 태프트는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의 특사로 필리핀을 향해 가던 도중, 일본에 들러 내각총리대신 가쓰라 다로를 만나 비밀회의를 하고 7월 27일 주요 내용을 각서로 만들어 나누어 가졌다. 이른바 가쓰라 태프트 밀약인데, 주요 내용은 두 나라가 각기 필리핀과 한반도에 대한 지배권을 인정한다는 것이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7월 31일 이를 승인한다. 이로써 동아시아에서 미국과 영국, 일본 사이에 굳은 동맹 관계가 맺어지게 된다.
이미 조미수호조약이 체결되어 있던 상태여서 미국이 열강들의 위협 속에서 우리를 지지하고 지켜주리라 기대했던 고종을 비롯한 조선인들은 뜻밖에 뒤통수에 쇠망치를 맞는 것과 같은 참담한 배신을 당하고 만 것이다. 이후 일본은 한반도를 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결국 1910년 대한제국은 국권을 빼앗기고 만 것이다. 그때 밀약의 당사자였던 윌리엄 태프트는 미국의 27대 대통령(1909-1913년 재임)이 되어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러일 전쟁에서 일본이 우세해지자 이런 말도 했었다고 한다. '조선은 자기 방위를 위해 한 주먹도 내밀 수 없는 나라다. 우리가 무엇을 도울 수 있겠는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움직일 수밖에 없는 국제 관계에서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 동서고금의 수많은 역사적 사실들이 이를 보여준다. 우리는 이런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고, 남의 도움을 기대하기 앞서 스스로의 힘을 기르는 것이 무엇보다도 우선임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