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한국 교회를 위한 카이퍼의 세상 읽기
박종한
대학교 2학년때 처음으로 카이퍼의 기독교 세계관을 접하게 되었다. 당시 무신론자였던 나에게 시대별 사상사에 대한 각론과 기독교 세계관은 진리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정직한 질문을 시작하게 해준 계기가 되었다.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기독교 세계관에 관한 고민을 지속하고 있는 이유는 나에게 허락하신 전문 영역에서 시대를 분별하기 위함이며, 어쩌면 다음 세대 교육에 대한 거룩한 부담감 때문일 것이다.
카이퍼의 영역주권론이란 삶의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주권이 존재하고, 하나님께서는 각 영역에 고유의 목적, 운영 원리, 방식을 부여하셨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 해서 그 영역에서의 주권을 당연하게 부여받은 것은 아니며, 믿지 않는 자라 할지라도 일반은총에 따라 그 영역의 목적에 걸 맞는 일들을 감당할 수 있고 열매 맺을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각 영역에서 ‘탁월한’사람이 됨으로써 하나님의 주권을 드러내야 할 사명을 부여받은 자들이라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한편 각 영역은 그 어떠한 권력과 권위에도 자유를 보장받아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왕정이든 민주정이든 어떤 정치 체제 안에서도 인간의 전적 부패를 고백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왕에게 절대 주권을 부여하신다 하더라도, 타락한 인간이기도 한 왕은 권력을 얼마든지 남용할 수 있다. 또한 대중 역시도 전적으로 부패했기 때문에 51%의 자유는 언제는 49%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 현시대의 민주주의 정치 제도하에서 우리에게 부여된 자유를 감사하게 누리는 한편, 언제나 인간의 전적 부패를 고백하며 견제와 균형의 역할도 반드시 필요함을 기억해야 한다.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 완전한 정치체제와 대리통치는 불가능하다.
우리가 지금 기독교 세계관에 대해 진지하게 연구해야 하는 이유는 앞으로 더욱더 분열화 되고 다원화되는 세상 가운데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굳건히 지키면서도, 각기 다른 세계관을 가진 타자와 공생하며 공공선에 기여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함이다. 다원주의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이라 말하기 더욱더 어려운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고 여기지 않은가? 그렇지 않다. 다원주의적 사회에서야 말로 기독교 세계관은 그 자체의 매력으로 더 나은 정치 사회적 비전을 제시할 수 있다. 하나님의 자리가 인간 이성으로 대체된 모더니즘 사회에서부터 기독교 세계관은 종교적이라는 이유로 공공영역, 공론장에서 철저하게 배제되어 왔다. 그러나 현대 다원주의 사회에서는 기독교 세계관은 하나의 사상 또는 세계관으로 공론장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태세를 전환할 시점이라는 의미이다.
갈수록 거칠어지는 기존 질서의 해체 시도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이란 무모한 용기를 내는 것만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정체성은 진리에 대한 바른 지식에 기반한 확신으로 드러내야하며, 사랑으로 진리를 전하기 위해서는 각양 각색의 세계관에 대한 이해도 수반되어야 한다. 앞으로 펼쳐질 사회에서는 각 세계관이 얼마나 공공선에 기여할 수 있는지, 얼마나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낼 수 있는지, 얼마나 세계관에 합당한 삶을 살아 내는지를 평가하며 각 세계관이 경합하는 사회가 펼쳐질 것이다. 기독교 세계관을 내세우는 그리스도인들의 양적 위축은 불가피 할테지만 반대급부로 공론장에 참여할 수 있는 티켓을 부여 받았다. 시대적 조류가 바뀌었다. 지금도 이미 꽤나 거칠지만 더 거칠어질것이다. 위기라 생각하면 위축될 뿐이다. 공론장으로 당당히 나아가,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가 왕이 되게 해야 한다.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기를 기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