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ck you 小傳
대명천지 이십세기
일천구백년 하고도 구십오년 춘삼월
아메리카합중국 캘리포니아주
빅베어 골짜기 마을에
지미 카슨인가 지미 캡틴인가
아니면 그냥 지미 떠그럴인가 허는
멕시칸 농꾼이 하나 살았는디
50만평의 땅에 타조도 키우고
멜론농사도 부치는 이 농꾼은 얼굴빛이
보길도 예송리 깻돌처럼 가무잡잡허고
눈빛은 삼지구엽초 먹고 자란
고금도 흑염소 눈빛을 영락없이 닮았것다
단옷날 상씨름꾼 태운 부사리 걸음걸이하며
아무데서나 코 핑핑 풀어대는 모습하며
영락없는 우리 전라도나 함경도 농꾼 모습인디
이 농꾼이 어찌해서
오늘날 태평양 건너 고요한 아침의 나라
한 시쟁이의 사설그물에 걸렸는고 허면
그 바로 옆집에
전라도 보성사람 박득만씨가 이민 와서
사과농장 펼쳐놓고 이웃사촌 된 지가
한 십년 지났는디
아, 보성 허면 강산제 소리요
강산제 소리 허면 또 소리꾼 박유전을
일류로 쳐주것다
박유전이 을마나 고명한 위인인고 허니
당대 귀명창 흥선 이 대원군의 소리동무라
경술년에 나라가 벌떡 망하자
나라 잃은 놈이
소리는 무슨 싸가지 없는 소리
허면서 어느 겨울 전라도 산그늘에서
얼어 죽었것다
그 위인됨이 이리 강개충절할진대
아 이 박득만씨가 바로
명창 박유전의 고손자뻘 살붙이가 아니것든가
그래서 이따끔 동네 멕시칸들
흑인들 백인들 LA 사는 교포까지 불러놓고
한바탕 소리 잔치를 펼쳐놓는디
함평 천지 늙은 몸이
광주 고향을 보랴 허고
걸걸한 입심으로 호남가 한 자락을 펼쳐내것다
모여든 사람들 어 좋다! 잘허요!
추임새를 메기는디
나중에는 이 지미 카쓴인가
떠그럴인가 하는 친구도 한 마디씩 거들었것다
거들되 조선말은 생전에 어두운지라
꼭 지 나라 말 양말로 허는디
제주 어선 비러 타고 팍큐!
해남으로 건너올 제 팍큐!
흥양에 돋은 해는 보성에 비쳐 있고 팍큐! 팍큐!
한 자락이 끝날 적마다
팍큐 팍큐 내뱉는디
그 가락이 어언 얼쑤! 소리와도 맞아떨어지고
어 좋다! 소리와도 맞아떨어져서
모여든 사람들 종내에는 내남없이
그냥 팍큐 팍큐 함께 내뱉었것다
뒤에 알고 보니 이 멕시칸 친구
별호가 바로 팍큐로구나
이 친구 아침에 일어나
해장 담배 찾으면서도 팍큐
타조 먹이 주면서도 팍큐
아들놈 학교 보내면서
잘 다녀와라 팍큐
텔레비전 보다 미국 대통령 얼굴 나오면 팍큐
지 좋아하는 펄벅을 읽다가도 팍큐
LA다저스가 야구에 이겨도 팍큐
몰수패를 당해도 팍큐
시간당 임금 4불 20센트를 말하면서도 팍큐
늦잠 자는 마누라 볼기짝 때리면서도 팍큐
자동차 휘발유가 떨어져도 팍큐
눈이 와도 팍큐 비가 와도 팍큐
옆방 뻐꾹시계가 울어도 팍큐
허야튼 무슨 말만 나오면 팍큐 팍큐 허는디
어느날은 박득만씨가 정색을 하고
여보 친구,
그놈의 팍큐소리 제발 듣기 싫으이
자네 이름 지미 카쓴인가
지미 떠그럴인가를 우리 조선말로 풀이허면
‘니미 텐’이라는 말인디
고것이 무슨 뜻인고 허면 바로 팍큐 아니것든가
했더니 들고 있던 몽키스패나 곧추세우고
한나절은 팍큐 팍큐 하며 쫓아다녔것다
그런디 이 친구 본시 심성은 착한지라
골짜기 안에 누군가 새로 전입이라도 올라치면
제일 먼저 달려가서
철조망 치는 일도 도와주고
펌프샘 파이프 박는 일도 거들어주고
조립식 지붕 천장 씌우는 일
변기 붙들어매는 일 다 도와주는디
못질 한번 하면서도 팍큐
삽질 한번 하면서도 팍큐
담배 한 모금 빨면서도 팍큐 팍큐
허는 버릇만은 여전했것다
하루는 박득만씨가 텔레비전을 보는디
그날이 무슨 날이었는고 허니
바로 성수대교 무너진 날이라
다리 위를 지나가던 봉고차들 택시들
시내버스들 무슨 부나방처럼 다리 위에서
강물로 퍽퍽 떨어지는디
갑자기 현관문이 쿵쾅 울리며
이 지미 떠그랄 친구 허겁지겁 달려왔것다
문을 열자마자 눈알이 오리알만해짐시로
저, 저, 코리아 브리지 팍큐! 팍큐!
챙피하고 화난 박득만씨가
이런 지미 떠그럴 하고 처음으로
순 조선 성조의 육두문자를 사용했것다
그 뒤에도 한 둬 달은
박득만씨를 만날 적마다 이 친구
코리아 브리지 팍큐를
무슨 인삿말처럼 내뱉었는디
그러구러 해 넘기다보니 어찌어찌 좀 조용해졌는디
아 글씨 오사럴 지난 6·29 때는 말이시
그놈의 삼풍백화점이 우루루 무너져내리지 않았나벼?
오메 정말 속이 뒤집히고
남사스러워 문밖 출입을 헐 수 없는디
첫 뉴스가 나가자마자
다시 쿵쾅 현관문 부서지는 소리가 나며
눈알이 게사니알만해진
지미 떠그럴 친구
오 코리아 백화점 팍큐!
오오 코리아 코리아 백화점 팍큐!
이번에는 박득만씨 대꾸도 못하고
그냥 멀거니 쳐다보고 서 있었것다
벼락같이 달겨든 이 친구
박득만씨를 한달음에 껴안으며
오 내 친구 불쌍한 내 친구 팍큐!
오오 내 형제 불쌍한 내 형제 팍큐!
박득만씨 이 멕시칸 친구의 가슴에 안겨
이눔아 언제 내 너 같은 형제
둔 적 있드냐 허면서도
함께 껴안고 속 쓰린 눈물 석 섬은 쏟았것다
그 뒤로 이 친구 박득만씨 볼 적마다
그 인삿말이
오오 코리아 백화점 팍큐! 로 바뀌어졌는디
사과나무 가지 전지를 할 때에도
살며시 다가와 오오 코리아 백화점 팍큐
트랙터로 멜론밭 갈고 있을 적에도
오오 코리아 팍큐 백화점 팍큐
암탉이 쌍달걀 낳았다고 좋아하다가도
코리아 백화점 팍큐
우체부가 한국에서 보낸 편지 떨구고 간 뒤에도
총알같이 달려와서
오오 코리아 백화점 팍큐
박득만씨 그만 앞발 뒷발 다 들고 말았는디
그로부터 또 시간이 강처럼 흘러
이 날은 무슨 날인고 허니 8월 15일이라
바로 50주년 되는 광복절이었것다
미국인들로 치자면 바로 전승기념일이라
박득만씨 어찌 이 날을 그냥 보내랴 싶어
골짜기 안 멕시칸들 흑인들 백인들
LA 사는 친척까지 다 불러들여
소리 한 바탕 막 펼칠 참인디
텔레비전에서 우라질 또 한국 소식 흘러나왔것다
이날 메뉴가 무엇인고 허니
징역살이 세계 최고 장기수 김선명옹의 출소라
CNN 뉴스 진행자가
43년 10개월 만에 코리아의 한 노인네가
0.75평의 독방생활을 청산하게 되었다고 말하자마자
이 멕시칸 친구 눈알이 타조알만해지며
43년 10개월? 팍큐!
코리아 교도소 팍큐! 팍큐!
이 때 CNN 진행자가 다시 고상허게
한 말씀 덧붙이는디
넬슨 만델라는 27년간의 징역살이 끝에
노벨평화상을 받았는디
아즉까지 한국 정부에서는 김선명옹에게 줄
마땅한 훈장을 찾지 못했노라 꼬집지 않았것나
방안에 잠시 침묵이 고여 흐르는디
이 멕시칸 친구
갑자기 정색하며 박득만씨에게 묻기를
보소, 친구
0.75평이면 타조를 몇 마리 키울 수 있나?
보소, 형제
0.75평이면 멜론을 몇 그루 심을 수 있나?
처음으로 말끝에 팍큐를 붙이지 않았는디
박득만씨 그때 식탁을 벌컥 치며 일어나
이 지미 떠그럴놈아
0.75평에 타조가 놀기는 몇 마리 놀아?
반 마리도 못 놀제
멜론을 심기는 몇 그루 심어?
멜론씨 두세 개만 놓으면 그만이제
허면서 그때부터 팍큐타령을 시작하는디
화장실에 가면서도 팍큐!
아참밥을 먹으면서도 팍큐!
먼산을 보면서도 팍큐!
바람이 불어와도 팍큐!
자동차를 몰다가도 팍큐!
골짜기 안에 누군가 이사를 와도 팍큐!
미국 친구를 만나도 팍큐!
고향에서 이모님 찾아와도 팍큐!
사과장수 찾아와도 팍큐!
편지 건네는 우체부에게도 팍큐!
길에서 만난 교육위원에게도 팍큐!
허야튼 매사에 팍큐 팍큐 팍팍큐!
그날로부터 지금까지
박득만씨 입에서 팍큐 소리 끊이지 않는다더라
더더욱 놀랄 일은
박득만씨 팍큐 소리에 질려
옆집 살던 멕시칸 친구
거짓말처럼 말끝에서 팍큐 소리 싹 떼어냈는디
어느날은 술 한잔씩을 걸친 둘이
어깨동무를 하며
빅베어 골짜기를 갈짓자 걸음으로 옮기다가
아서라 세상사 팍큐!
볼 것 없다 팍큐!
그때 처음으로 둘이 뜻 맞아
팍큐 소리 한번 시원하게 쏟았다더라.
- 곽재구 시집 <참 맑은 물살>(창작과비평사) 중에서
첫댓글 긴데도 끝이 깔끔하네요
시 너무 재밌어요 ㅋㅋㅋ
와.. 팍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