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의학 유적 답사기 4: 파스퇴르 연구소
여인석, in 연세의사학(醫史學), 제7권 제2호, 2003년 2월호, 133-141
- 여인석(1965-), 파리7대학,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의사학과
-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 1822-1895) 프랑스 의사, 박테리아 연구,
이 글은 제목이 말해 주듯이 학술논문이 아니라, 파스퇴르 연구소 답사기에다가 연구소에 대한 간략한 역사적 소묘,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연구자들의 연결 정도이다. 필자는 지나가듯이 이야기하지만 흥미로운 이야기도 첨가해 놓았다. 에이즈 바이러스 발견의 주도권 싸움이 국가 간의 외교문제까지 비화한다는 이야기가 그러하다. 몇 가지 내용과 더불어 파스퇴르와 연관 인명록을 덧붙여 놓았다. 나로서는 파스퇴르 연구소가 카나다에도 있는데 영국과 미국에는 없다. 그만큼 경쟁관계가 깊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다른 하나에서 생물의 진화와 분류의 학문도 라틴계와 앵글로색슨과의 대립은 여전하다. 게다가 사회학을 다루는 관점도 철학의 근본을 다루는 시각도 마찬가지로 차이가 아니라 차히인 것 같다. / 학문만큼이나 삶을 살아가는 방식도 다른 것 같다. 앵글로 색슨이 상품자유주의인데 비해 라틴계는 인성자유주의이고, 그 만큼이나 전자가 인간주의를 주장하는데 비해, 후자에서는 인도주의를 주장한다. 철학적으로 전자에서는 상층형이상학으로 세계와 인간의 지배를 꿈꾸는 듯하고 후자에서는 질료형이상학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 것을 노력한다. 우리, “평화통일 영세중립 코리아” 11자를 외우면서 새로운 삶의 터전, 즉 냉전세력에서 탈영토화와 새로운 환경을 만들면서 살려는 노력을 필요로 하다. 이 노력 어렵고 드물지만 그래도 지속해서 하는 수 밖에 없다고 할 때, 숙명과 같은 필연이 아닐까... (53NLB)
내용*****
프랑스 의학 유적 답사기 4: 파스퇴르 연구소
여인석(연세대 의학)
필자가 파스퇴르연구소 식당을 이용하게 된 것은 부인의 덕이라 한다. 그는 당시 갈레노스 텍스트를 번역한다고 연구소 도서관을 이용하고 있었다.
파스퇴르 연구소[1887년 설립]는 파스퇴르 개인 세운 사립 연구소이다. (135) [파스퇴르 연구소(Institut Pasteur) 생물학, 의학 연구를 실시하는 프랑스의 비영리 민간 연구 기관이다. 1887년 6월 4일 프랑스의 의학자인 루이 파스퇴르에 의해 설립되었다]
파스퇴르 박물관의 백미는 지하에 있는 그의 무덤이다. 생전에 이미 프랑스의 영웅이 된 파스퇴르는 정부로부터 프랑스의 위인들이 묻히는 팡테옹[만신전]에 묘를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으나 이를 거절하고 자신이 만든 연구소의 한 구석에 묻히기를 희망했다. (136)
도서관에서 식당으로 가는 길에 온실로 쓰는 건물이 하나 있는데 그 곳에서 점심시간마다 몇 사람이 모여 실내악 곡을 연습하곤 했다. 식사를 하러 가는 길에, 혹은 식당에서 돌아오는 길에 들려오는 음악소리는 딱딱한 연구소의 분위기를 한결 부드럽게 만들어주었다. 도서관 뒤쪽에는 에이즈 연구동이 있는데 에이즈 바이러스의 발견자인 뤽 몽타니에(Luc Montagnier 1932-2008) 교수가 아직도 일한다고 한다. 1980년대에 에이즈 바이러스의 발견을 둘러싸고 뤽 몽타니에 교수에 대한 일화가 있는데, 미국의 로버트 갈로(Robert Gallo, 1937-) 교수와 논쟁이 벌어졌다고 한다. 이 논쟁은 나중에 프랑스와 미국의 외교문제로까지 비화되었는데 결국은 몽타니에 교수의 판정승으로 일단락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논쟁에 관한 이야기를 처음 들은 것도 역시 미생물학 시간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려준 분은 존스 홉킨스에서 바로 그 갈로 교수에게 배우고 돌아와 당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에이즈 바이러스를 분리해낸 이원영 선생님이었다. 그러고 보면 미생물학 강의는 내게 적지 않은 의학사 지식을 가르쳐주었던 셈이다.(137)
여기서 잠깐 파스퇴르 연구소의 역사를 살펴보자. 이미 당대에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파스퇴르는 세계 각국의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1888년 11월 14일에 파스퇴르 연구소를 설립하였다(문서상의 설립 시기는 이것보다 조금 빠른 1887년 6월 4일이다). 파스퇴르 연구소의 명성은 물론 일차적으로는 파스퇴르 자신의 위업에 근거한 것이지만 그의 뒤를 이은 학자들의 업적도 파스퇴르를 세계적인 연구기관으로 만드는 데 크게 공헌했다. 파스퇴르 연구소에서는 모두 6개의 노벨상을 받았다. 일개 사립연구기관에서, 그것도 단일 분야에서 6개의 노벨상을 받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말라리아 원충을 발견한 라베랑(Alphonse Laveran, 1845-1922), 파스퇴르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는 요구르트의 이름으로 더 유명한 메치니코프(Metchnikoff, 1845-1916), 페스트의 원인균을 발견한 예셍(Alexandre Yersin, 1863-1943), BCG를 만든 칼멧과 게링을 비롯하여 최근에는 오페론 이론으로 분자생물학의 토대를 마련한 자크 모노와 프랑수아 자콥에 이르기 많은 학자들이 이곳에서 훌륭한 연구업적을 남겼다. 파스퇴르 연구소는 세균연구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그 전통을 살려 세균학 외에도 기생충이나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질환, 그리고 이와 관련된 면역학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137-138)
파스퇴르 연구소는 일찍부터 해외에 분소를 설립했다. 최초의 해외분소는 파스퇴르 연구소가 설립된 지 불과 3년 후인 1891년 베트남의 사이공에 세워졌다. 이어 1893년에는 튀니지에, 1895년에는 다시 베트남의 나트랑에, 1896년에는 세네갈의 다카르에 세워졌다. 이후 계속해서 각 대륙에 파스퇴르 연구소가 설립되어 현재는 20개가 넘는 파스퇴르 분소가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다. 내년에는 우리나라에도 파스퇴르 연구소 분소가 설립된다고 한다. 초창기에 분소가 세워진 지역은 대부분 당시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곳이다. 이처럼 풍토병 연구의 역사는 식민지 경영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더운 지방의 풍토병 연구가 주로 당시 활발하게 식민지를 경영하던 프랑스와 영국과 같은 국가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영국에서는 'London School of Hygiene and Tropical Medicine'이 열대의학 연구에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식민지 의학과 관련하여 해외에 설립된 파스퇴르 연구소의 역할이 컸기 때문에 현재는 해외의 파스퇴르 연구소에 대해 연구하는 의사학자들도 여럿 있다. (138)
다른 분야도 비슷하지만 의학에서 우리나라와 프랑스의 교류는 그다지 활발하지 않은 편이다. .. 해방 이전에 프랑스에 유학을 한 한국인 의사는 없었다. 한국인으로 프랑스에 유학한 최초의 의사는 서울의대 생화학 교수로 있던 이기녕.선생이다. 선생은 1952년 12월부터 1956년 5월까지 파스ㅌ퇴르 연구소에서 ... 1954년 당시 국립중앙방역연구원에서 근무하던 김규현 선생이 파스퇴르 연구소에 갔다. ... 이근배 선생(생화학), 이영택 선생(의사학) .. 윤정구 선생(종양면역학) .. 민득영 선생(기생충학) .. (139)
프랑스 대학은 영미의 대학과는 달리 동문회라는 것이 없다(프랑스의 엘리트들이 가는 그랑제콜은 예외이다).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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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앞부분 잘려나갔지만(펌 방법을 몰라서), 파스퇴는 파리의 만신전(판테옹)에 들어가 있지 않다. 그의 무덤은 파스퇴르 연구소에 있다.(51NKG)]
[흥미로운 점은 파스퇴르 연구가 세계 각지에 퍼져있는데, 영국과 미국에는 없다. 카나다에는 있으며 우리나라에도 있고, 베트남에는 두 곳이나 있다. (51NKG)]
참조********
위생과 열대의학 연구소(The London School of Hygiene & Tropical Medicine (informally the LSHTM) 영국 1889년 설립(London School of Tropical Medicine). 1924년 본명칭으로 개칭. 설립자는 맨선(Patrick Manson, 1844–1922), 스코틀랜드 의사, 기생충학.
129 갈레노스(Claudius Galenus, gr. Κλαύδιος Γαληνός, 129-199경) 고대 로마의 의학자, 철학자. 페르가몬에서 출생하였으며 스미르나·알렉산드리아 등지에서 의학을 배운 후 출생지에서 의료 활동을 시작했는데, 후에 로마로 이주하여 유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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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2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 1822-1895) 프랑스 의사, 박테리아 연구,
[1822 멘델(Johann Gregor Mendel, 1822-1884), 체코 카톨릭 수도사, 식물학자.
[1825 샤르꼬(Jean Martin Charcot 1825-1893) 프랑스 신경학자 살페트리에르(Salpêtrière)에서 병리 해부학 교수였다.
1932 뤽 몽타니에(Luc Montagnier 1932-2008) 파스퇴르 연구소 교수, 에이즈 바이러스의 발견자.
1937 로버트 갈로(Robert Gallo, 1937-) 미국 의학생물학자. 에이즈 바이러스의 발견자.
[1843 로베르트 코흐(Robert Heinrich Hermann Koch, 1843-1910) 독일의 의사, 미생물학자.. 탄저균(1877년), 결핵균(1882년), 콜레라균(1885년) 등을 발견하여 '세균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1891년 베를린 국립전염병연구소의 초대 소장. 결핵균의 발견으로 1905년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
1843 맨선(Patrick Manson, 1844–1922), 스코틀랜드 의사, 기생충학.
1845 알퐁스 라베랑(Charles Louis Alphonse Laveran, 1845-1922) 프랑스 군의관 1907 노벨의학상. est un médecin militaire et parasitologiste français, pionnier de la médecine tropicale, connu pour avoir découvert, en 1880, le parasite protozoaire responsable du paludisme.
1845 메치니코프(Ilya Ilitch Metchnikov, francisé en Élie Metchnikoff, 1845-1916) 러시아 동물학자 박테리아 연구자. 파스퇴르 연구소 부소장.
1863 예르생(Alexandre Yersin, 1863-1943), 의사, 박테리아연구자, 탐험가. 파스퇴르 연구소 연구원 à Nha Trang (protectorat d'Annam, actuel Viêt Nam), est un médecin, bactériologiste et explorateur franco-suisse.
1863 칼멧(Albert Calmette, 1863-1933) 프랑스 의사 생물학자. 게링(Camille Guérin 1872-1961) 프랑스 수의사 생물학자. 두 파스퇴르 연구소 연구자는 BCG 접종 발견
1910 자크 모노(Jacques Lucien Monod, 1910-1976) 프랑스의 생화학자, 1965년에 효소의 유전적 조절 작용과 바이러스 합성에 대한 연구로 프랑수아 자코브, 앙드레 르보프와 함께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했다
1920 프랑수아 자콥(François Jacob, 1920-2013) 프랑스 병리학자, 유전학자. 1965년에 효소의 유전적 조절 작용과 바이러스 합성에 대한 연구로 앙드레 르보프, 자크 모노와 함께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했다. 1965 : André Lwoff, François Jacob et Jacques Monod reçoivent le prix Nobel po
이원영(李沅永, 1936?, 내과학 교실) 55년 연세의대 입학, 미국 유학후 결핵연구 69년 모교에 부임
1965 여인석, 연세의대 의사학과 교수로, 연세대학교 의학사연구소 소장 및 동은의학박물관 관장을 겸임하고 있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기생충학으로 의학박사학위를, 파리7대학에서 갈레노스에 관한 연구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양고대의학과 한국근대의학사에 관심을 두고 있다.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1996(역서), 『의학사상사』(2006), 『생명과학의 역사에 나타난 이데올로기와 합리성』2010(역서), 『의학, 놀라운 치유의 역사』2010(역서), 『히포크라테스 선집』2011(역서)
(51NKG) (4:9, 재정리51NLB)
논여인석2003파스퇴르.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