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당대의 여러 시대적 상황들을 살펴보노라면 위의 서수파 유물은 오늘날의 풍수와 그 관련성은 전혀없습니다.
따라서 오늘날의 풍수적 관점으로 그 잘잘못을 따진다는 것은 그야말로 넌센스적 코믹이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앞서 공자(孔子, BC 552∼BC 479 )의 예기편에 적시된 四象 역시도 전혀 아이러니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것은 그의 저서 주역(周易) 시경(詩經) 서경(書經) 예기(禮記) 춘추(春秋)라고하는 이른바 5경속에
오늘날 풍수에서의 여러 思惟들중 가장 핵심적인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서수파 묘소의 풍수적 무관함에 대한 여러 반증에 앞서
5경속에서 또다른 풍수관련 내용들을 개략적으로나마 살펴 볼까합니다.
물론 당나라때 정현에 의해 주가 달아지고 그 이전 한번의 수정이 있었다하나 그 내용에 대해서 정확히
알 수 없음에 현재에 알려진 서책들 내용으로 갈음합니다.
아래는 주역(周易) 계사전에 수록된 내용들 입니다.
在天成象 在地成形 變化見矣
하늘에서는 상을 이루고 땅에서는 형을 이루는데 여기서 변화가 나타난다.
是故,易有太極,是生兩儀,兩儀生四象,四象生八卦...
역에는 태극이 있고, 태극은 양의를 낳으며, 양의는 사상을 낳고, 사상을 팔괘를 낳는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13C644E570D1E3F33)
河出圖,洛出書,聖人則之。
하도와 낙서가 나와 성인이 그것을 본받았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11B0647570CD39A0C)
또한 예기 악언에서는 송나라때 주희가 통렬하게 비판했던 國音 즉 서양의 7음계 도,레,미,파,솔,라,시,도 와도 같은
궁중음악 국악에서 사용하는 宮,商,角,徵,羽에 따른 5음에 관련해서도 적시되어 있으며
서경에서는 아래의 홍범9조가 명기되어 있습니다.
1. 五行(水, 火, 木, 金, 土) : 만물의 근본원리.
2. 五事(貌, 言, 視, 聽, 思) : 나라를 다스리고 사람을 통솔하는 조건.
3. 人政(食, 貨, 祀, 司空, 司徒, 司寇, 寶, 師) : 국가운영을 위한 중요 부서
4. 五紀(歲, 月, 日, 星辰, 曆數) : 역년을 규정하여 일상생활의 순서규정
5. 皇極(皇建其有極, 斂時五福) : 임금의 크고 바른 도를 세움
6. 三德(正直, 剛克, 柔克) : 국정의 집행에 갖추어야 할 덕성
7. 稽疑(雨, 霽, 蒙, 驛, 克, 貞, 悔) : 점으로 의문를 해소하고 天意를 따름
8. 庶徵(雨, 暘, , 寒, 風, 時) : 자연현상에서 선악의 징후를 발견.
9. 五福(壽福, 康寧, 收好德, 考終命) : 백성의 행복한 삶
비록 번외이기는 하지만 한무제때의 사마천의 사기(BC 91년) 天官書에는 五星에 관한 내용이
자세하게 기록되여 있으며 東宮蒼龍 南宮朱鳥 西宮咸池 北宮玄武라 하여 그 방향을 지시했고
일설에 의하면 주(周)나라 주공단(周公旦)이 썼다고도 하고 혹은 공자의 제자인 자하(子夏)가
썼다고도 하는 이아(爾雅)에서는 靑爲 蒼天夏爲朱明 秋爲白藏 冬爲玄英 이라 해서 그 색(色)들 까지도 규정했습니다.
그리고 예기(禮記) 월령(月令)에서
孟春之月…其蟲鱗 孟夏之月…其蟲羽 孟秋之月…其蟲毛 孟冬之月…其蟲介 라 하여
그 계절까지 규정했고 이후 산해경에서도 여러 자료가 있습니다만
무엇보다도 아래는 한 태조 고황제 유방(漢 太祖 高皇帝 劉邦, BC 247년 ~ BC 195년)의 묘소 산도라고 전해오는데
이는 청오경이 나오기 무려 500여년전 그리고 위의 사마천의 사기등의 문헌의 기록보다도 더 오래된 것으로써
산도의 진위여부를 떠나서 그저 단순히 점혈한 곳들만을 살피건데 이는 四象만을 넘어선 수준 이상의
풍수적 이론이 있었음이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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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B/C 209년 진나라를 명망시키고 초나라 패왕이 된 항우의 祖父의 묘소이며
모두 삽짝풍수 카페에서 발췌한 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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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따라 그간에 정설로 되었던 풍수의 최 고전으로 청오자가 될 수는 없어 보입니다.
또한 위의 산도 처럼 점혈후 葬事를 하기 앞서 풍수에서는 공자의 5경 내용들과 함께 두가지 정도의 큰 줄기의 흐름이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하나는 『禮記』 檀弓편의 한 내용에 따라 葬事를 했다는 것입니다.
공자는 그것이 死者대한 禮로써 적시했기 때문입니다.
즉, 舜葬於蒼梧之野(순장어창오지야) : 순임금을 창오의 들에 장사하였다 에 의거해서 평야에 장사를 한 것입니다.
순임금의 묘소는 찾을 길이 없으나 홍범9주를 우왕에게 전했다는 기자의 묘소는 아래 사진처럼 들판에 있습니다.
산동성 조현에 있는 기자묘
또 한 증거로써 한나라 한 무제(BC 156~BC 87)는 태학이라는 교육기관를 통해 5경박사라는 칭호를 주고
각기 박사 아래 50명의 사제자까지 두고 유학을 장려했었음에
그는 5경속 위 禮記의 말씀을 따라 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734374257109AEC13)
위의 사진은 한나라 수도 서안의 평야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여러 피라미드형태의 무덤입니다.
그들중 아래 중앙 빨강점은 한무제 묘소로 역시 평야에 위치합니다.
우측의 빨강점은 투후 김일제 묘소로 신라 김알지 선대 묘소임이 근래에 밝혀졌습니다.
인근의 황색표시는 한무제 선대들부터 시작해서 그의 앞대까지도 조공을 바쳐온 흉노를 정벌해 큰 공을 세운
위청 및 곽거병 묘소입니다.
천하라 했던 한족들이 흉노에게 정복 당한 후 화해로써 그들에게 조공을 받쳤던 것입니다.
이에 잠깐 번외로 빠져볼까 합니다.
투후 김일제는 위의 흉노족 휴도왕의 아들로써 한나라의 침공으로 나라가 멸망하자 귀화한 후
한나라에서 여러 큰 공을 세웁니다.
한나라 영웅 곽거병 과 함께 한무제 자신의 후임 안위를 친히 부탁까지할 정도로 신임이 두터웠습니다.
때문에 장지까지도 한 무제 묘소 옆으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후손들이 한무제의 후대 平帝을 폐하고 신나라를 건국후 제왕에 오른 왕망을 크게 도왔는데
십여년만에 왕망이 패망한후 다시 후한 광무제(BC6~AD57)가 들어서게 됩니다.
이때 멸족이란 죽음을 피해 사로국 경주에 까지 숨어 들어오게됩니다.
김유신 역시 위의 김일제 사촌 김윤의 후손이 김수로왕이다는 설득력있는 주장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현재의 경주 계림의 여러 큰 묘소들은 김일제 후손들이 한나라 시절 익히 5경을 능히 깊게 접했을 터인 즉
그에 따른 禮로 선대를 위의 한무제 묘소처럼 그리고 그들의 선조 김일제처럼 들판에 장사를 지낸것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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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빨간점이 위의 묘소 위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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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위 사진들의 묘소입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25ECF3B570FAED309)
![](https://t1.daumcdn.net/cfile/cafe/21588735570FAF6C17)
위의 우측 토체 묘소가 근간에 까지는 전해오지 않은 김알지 묘소가 분명합니다.
부려 그는 황금 궤짝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오고 있음에 묘소의 모양 조차도 궤짝의 형태로 처음부터
봉분을 만들었든 아니면 어느정도 시간이 지난뒤 후세들이 변형을 시켰든간에 궤짝을 표식한 형태임이 분명해보입니다.
다만 미추-내물왕릉이 들어오면서 왕릉쪽으로 예의가 더 진득해져서 그간에 까지 미확인 묘소로 방치되어 온 듯 합니다.
봉분 역시도 한나라 왕릉처럼 나름 크게 만든 것도 그 영향이지 않겠냐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긴글 읽으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근간에 계속해서 잇겠습니다.
첫댓글 글을 잘 읽어봤습니다. 위에서 말씀하신 鄭玄은 127-200년에 살았던 後漢시대의 사람입니다. 당나라의 때의 사람은 아니며, 그 유명한 유비의 스승이죠..쓰시다보니 오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혹은 유비의 스승이 아니라고 하기도 하는데, 후대에 꾸며낸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오해 없으시길..
그런데 제일 하단에 있는 사진의 우측 토체로 생긴 묘소가 김알지의 묘소가 분명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유물이 나온것도 아니고, 표지석이 나온 것도 아닐텐데..? 단순히 모양체로 그렇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말씀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