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조가 낳은 인물 중에 군인은 이순신을 정치가로는 황희를 첫 손가락에 꼽는다. 이순신에 관한 내용은 이미 '한민족참역사 위인방'에 기술하였으므로 오늘은 황희 정승의 숨은 매력을 올린다.
황희의 출생이나 정치 행적은 많이 알려졌기에 생략하고 지금까지 전해져 온 그의 일화 둘을 가지고 그를 평할까 한다.
첫째. 이른바 검은 소 노랑 소에 관한 일화를 더듬는다.
이 내용은 워낙 유명한 일화인지라 모두가 알겠지만 혹여 모르는 학생이 찾을까 하여 간단히 옮긴다.
어느날 황희 정승이 길을 가는데, 한 농부가 검은 소와 노랑 소를 한데 묶어 쟁기질을 한다. 이때 황희가 농부에게 묻는다.
"검은 소가 일을 더 잘하는가? 노랑 소가 일을 더 잘하는가?"
농부는 쟁기질을 멈추고 황희에게 다가와 이르기를.
"노랑 소가 일을 더 잘합니다."
"어찌하여 그 말을 여기까지 다가와서 하는가?
"소도 귀가 있는데, 자기가 일을 더 못한다고 하면 서운하지 않겠습니까?"
황희는 무릅을 치며 그 자리를 떴다.
이 내용에서 주목할 점은 농부가 진짜로 쟁기질을 멈추고 속삭이듯 말했는가 이다. 나는 이를 황희가 지어낸 얘기로 이해한다. 왜냐하면 아무리 농부의 마음이 천사표라도 쟁기질을 멈추고 논두렁까지 다가와 그 말을 했을 거라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황희는 왜 이런 일화를 남겼을까?
역사서를 보면 황희의 정치역정을 파란만장 그 자체이다. 고려가 멸망하자 두문동으로 숨었다가, 이성계 부자의 간청에 못이겨 정계로 돌아온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나머지 얘기는 각 사이트에 올라있는 황희 편을 직접 검색하기 바란다.)
황희는 구설수를 굉장히 두려워 했음을 보여주는 일화라는 생각이다. 당시 이방원이 살아있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 충분히 이해가 될 것이다. 따라서 이 일화는 황희를 가르치기 위해 농부가 행한 일이 아니라 황희 자신이 누군가를 훈계하기 위해서 지어낸 얘기라는 생각이다.
둘째. 너 말이 맞고. 너도 옳고. 당신의 말이 옳구려.
황희가 어느날 외출에서 돌아오자 계집종이 쪼르르 달려와 고자질을 한다. 누구누구와 싸웠는데, 어쩌고저쩌고 했다고...
이 말을 들은 황희 왈.
"니 말이 옳다."
이번에는 다른 종이 달려와 억울하다며 하소연이다. 이때 황희가 한 말.
"니 말도 옳다."
그를 보고있던 황희의 부인이 한마디 거든다.
"영감, 둘 중 하나의 말이 옳을 진대. 어찌하여 둘 다 옳다는 것이요?"
이 말을 들은 황희가 웃으며 한 말.
"당신 말도 맞구려."
이 일화는 황희의 열린 마음을 대변하는 각별한 일화라는 생각이다. 대저 황희라는 인물은 어느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으려 애쓴 분이라는 증거라는 뜻이다. 그렇지 않다면 일개 계집종이 달려와 하늘같은 정승 황희에게 하소연을 할 꿈이나 꾸겠는가.
이게 내가 황희를 이조 최고의 정치인으로 여기는 결정적 이유이다.
보라! 어떤 정치인이 이처럼 이해당사자의 마음을 하나도 손상시키지 않고, 웃게 만든 적이 있는가?
그가 18년이나 영의정을 지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 바로 이처럼 열린 마음.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않으려는 세심함. 천한 노비까지도 속내를 털어놓을 정도로 넓은 자비심. 그리고 18년 동안이나 영의정을 지냈음에도 자신이 죽자 상제비가 없어 왕으로부터 하사받은 재물로 장례를 치른 인물.
이처럼 고귀한 분이 우리의 선조였다는 사실이 행복한 일이다.
차제에 아니, 지금 당장이라도 화폐의 인물로 황희 정승의 초상화를 넣어야한다는 생각이다. 그 분의 공적이 율곡 선생이나 퇴계 선생에 조금도 뒤지지 않은다는 생각에서 올리는 글이다.
첫댓글 이조 표현 삼가 부탁합니다**
사실 제게는 이조나 조선이나 큰 의미가 있는 낱말이 아닙니다. 좋은 의미의 낱말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님께 부탁드리겠습니다. 왜 이성계는 국호를 화령(和寧)으로 삼지 못하고 조선을 사용하게 되었나요? 이에 대한 적절한 답을 주시면 이조라고 쓰지 않겠습니다.
조선왕조실록 기록을 보면 황희정승은 결코 검소하지도 않으며 재산도 많았습니다. 또한 그의 조카들 역시 비리사건으로 삼사에 적발된 기록도 있습니다. 황희정승이 너무 과장된 것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님을 '주요인물방 황희편'으로 안내합니다. 이는 제 주장이 아니라 역대 최고 명재상인 황희는 청백리의 표상이라는 것이 정설입니다. 저도 율곡 이이선생과 황희 정승을 청백리의 표상으로 여깁니다. 이유는 본문에 있고... 님의 댓글 중 황희 정승의 조카는 본문과 아무 관련이 없음을 밝힙니다. 조카의 비리를 아저씨가 책임질 의무는 없거든요. 단 그 조카를 황희가 적극 추전하여 중용되였다면 도의적 책임은 물을 수 있겠으나, 이 경우도 장래 조카가 비리에 연루될 것을 사전에 알 수 없는 터이니 어떤 경우에도 황희와 조카를 연계시키는 것은 안된다는 생각입니다.
'황정승 사위구하기'사건을 아시는지요? 황희의 사위(서달)가 표운평(시골 아전)을 죽이자, 표운평의 아내가 감사에게 고발하였고, 이후 황희는 맹사성에게 부탁하여 사건을 부마하였다. 그러나 세종에게 보고되었고 의금부에서 재조사하여 전모가 드러났다. 결국 황희와 맹사성은 이 사건으로 파면되었다가 1주일 후에 복직되었다..
황희 정승이 훌륭한 것은 맞습니다만, 교조적으로 역사적 인물을 숭상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완벽한 인간이 없듯이 황희 정승 역시 실수하는 인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정치를 했기에 존경하는 것이지, 완벽해서 존경하는 것은 아닙니다.
만중사님 견해처럼 그의 행정적수완으로 인한 "공"이 기타 사안으로 생긴" 과"를 덮고도 남음이 있었기에 세종임금께서 복직 시켰으리라고 보는 것이 무난하지 않겠는가 싶다.
황희는 3번 탄핵 받았던걸로 아는데, 과연 검소하고 청령했다고 하나 이조시대의 이씨 부풀리기가 컸다고 봅니다. 지금 화폐보면 전부 이씨... 과연 사람은 태어나서 선을 행하는게 당연한 이치이건만 나라를 책임지는 황희 정승은 핸디캡이라도 있었겠나 생각합니다. 물론 본받을 사람임은 인정합니다.
이조라는말이 거스립니다 정정바람
이조라고 해야하지 않나요? '이씨조선'
무엇이 뭐때문에 요동을가질 절호의기회를 말아처먹은 犬이성계가세운 나라를 높여부를필요가있습니까? 그놈을 말아 씹어먹어도 시원찮을판국에
제가 황희 정승 에 호 을 같이 씁니다 저도 몰랄써요 똑같은지 3 년전에 알아써요 제호을 지어주신분은 아름답고 꽃피고 그런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라다 해서 방촌 꽃방 자 에 마디촌 해서 방촌이라 지어 주어다 합니다 이점 양해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