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시작하는 말
2. 상실의 미학과 정체성의 확장
3. 집단적(공중적) 기억과 타자성
4. 탈민족주의적 정체성의 두 이상형: 다니엘 쇼도비예츠키와 미스터 샤타지
5. 마치는 말
■참고문헌
■Zusammenfassung
1. 시작하는 말
개인과 민족 정체성의 여러 유형들을 그 설정, 반박, 타협, 혹은 재현의 측면에서 탐구하는 것이 독일 문화연구의 핵심적 연구범위이다. 주변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은 민족국가의 설립, 국가사회주의에 의한 공민권 개념에 인종적 기준의 강요, 또한 제 2차 대전이후 민족국가의 분단 등은 ‘독일적Deutsch’이란 것의 정의가 왜 그토록 문제가 되며 동시에 우리 독일문화 연구자들에게 영속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는가를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들의 몇 가지 일례이다.
본고에서는 혼종성Hybridität, 민족이동migration, 디아스포라diaspora, 주변성Marginalität, 탈중심화Dezentrierung, 정체성의 복수화Pluralisierung 등의 문화이론Cultural Studies의 개념들을 원용하여 스스로 실향민으로서 문학적, 비문학적 글을 통해 탈민족주의적, 미래지향적 정체성 설정에 기여한 그라스의 경우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라스는 잃어버린 고향의 시적 복원, 그를 통한 정체성의 확장의 주장을 펴고 있고, 독일의 과거에 대한 집단적(공공적) 기억collective(public) memory의 현재적 의미를 문화적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다룸으로써 20세기말 미래지향적, 탈민족주의적 정체성 정립에 기여하고 있다.
제 2장에서는 고향의 상실과 시적 복원의 결과로서의 경계넘기 및 정체성의 확장을 그라스 문학의 근간으로 파악한다. 제 3장에서는 과거에 대한 집단적 기억과 타자성이 민족 정체성 와해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고, 마지막 제 4장에서는 다니엘 쇼도비예츠키Daniel Chodowiecki와 미스터 샤타지Mr. Chatterjee라는 그라스에 의해 언급되고 창조된 탈민족주의적 정체성을 지닌 두 인물을 살펴본다.
2. 상실의 미학과 정체성의 확장
처음 온 것은 루기인이었다. 그리고는 고트인과 게피트인이 오고, 그 후에 오스카의 직계 조상인 카슈바이인이 왔다. 그리고 곧 프라하 출신 아달베르트라는 폴란드인이 왔다. 이 사나이는 십자가를 가지고 왔는데, 캬슈바이인 혹은 프루쯔인에 의해 도끼로 살해당했다. 이 사건은 한 어촌에서 일어났는데 이 마을의 이름은 그다니쯔였다. 그다니쯔는 단치크가 되고 단치크는 단치히[Dantzig]가 되어, 이는 나중에 단치히[Danzig]로 철자가 바뀐다. 오늘날 단치히는 그다니스크라고 불린다.
Zuerst kamen die Rugier, dann kamen die Goten und Gepiden, sodann die Kaschuben, von denen Oskar in direkter Linie abstammt. Bald darauf schickten die Polen den Adalbert von Prag. Der kam mit dem Kreuz und wurde von Kaschuben oder Pruzzen mit der Axt erschlagen. Das geschah in einem Fischerdorf, und das Dorf hiess Gdyddanyzc. Aus Gdyddanyzc machte man Danczik, aus Danczik wurde Dantzig, das sich später Danzig schrieb, und heute heisst Danzig Gdansk.
무엇을 명명한다는 것은 그것을 소유함을 의미한다. 중세 이후로 독일 도시였던 단치히는 게르만과 슬라브 민족이 마주치는 단층선적 지역이었다. 이러한 단층선은 그라스 가계에 전형적으로 나타나있다. 그의 부친은 독일계이며 모친은 오랜 슬라브 소수민족인 카슈바이인이었다. 바익셀Weichsel 강의 어귀에 놓인 지정학적 중요성으로 인해 독일령 단치히는 베르사이유 조약으로 1920년 11월 15일 여타 독일로부터 분리되어 국제연맹의 통치 하에 놓이게 된다. 그 결과 단치히와 그 배후지역은 굴덴Gulden이라는 자체 화폐를 갖게되었고 폴란드의 관세구역에 속하였지만 이곳 높은 독일인 인구의 비율은 폴란드 영입을 불가능하게 했다. 동쪽으로는 발트해에 이르는 폴란드령 회랑을 사이에 두고 동프로이센과 떨어져 있어 지리적으로 제국과는 분리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국의 품으로Heim ins Reich”라는 구호로 대표되는 실지회복운동Irredentismus으로 독일 전역 평균이상으로 나치에 동조하는 투표율(50.03%)을 보여 1932년부터 국가사회당NSDAP은 단치히를 장악한다.
종교적 분포는 상황을 더 복잡하게 한다. 대부분의 폴란드인은 구교도이지만 모든 독일인이 신교도는 아니었으며, 독일 유대인뿐만 아니라 증가추세의 폴란드 유대인도 있었다.
유럽의 변방 도시로서 단치히는 언어적, 인종적, 종교적, 문화적 혼종화의 공간으로서 동유럽의 여타 도시, Vilnius(Wilno/Wilnius), Klaipeda(Memel) 등과 같이 지난 몇 세기에 걸쳐 성립된다. 이러한 도시들의 다문화적 정체성은 20세기에 와서 전쟁과 파괴 이로 인한 추방, 피난, 강제 민족이동의 역사로 대체된다.
1939년 9월 1일 이곳에서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였다. 1944년 고향으로부터 피난을 떠난 그라스는 ꡔ양철북Die Blechtrommelꡕ집필을 마무리하기 위해 피난 후 처음으로 1958년 그다니스크를 방문한다.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던 단치히를 폴란드 측이 지대한 노력을 기울여 복구 작업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라스는 이 복구된 도시 그다니스크에서 자신이 몸담고 생활하였던 예전의 단치히의 모습을 다시 발견하기 어려웠다. 그 이후로 그는 자신의 문학작품 속에서 단치히를 부활시킴으로써 정치적, 물질적으로 상실한 자신의 고향을 문학을 통해 복원한다. ꡔ고양이와 생쥐Katz und Mausꡕ(1960), ꡔ개의 날들Hundejahreꡕ(1961), ꡔ넙치Der Buttꡕ(1977)를 비롯해 ‘후기 인류post-human’시대를 다루는 ꡔ암쥐Die Rättinꡕ(1986)는 물론 ꡔ나의 세기Mein Jahrhundertꡕ(1999)에 이르기까지 그라스 작품은 단치히를 무대로 삼고 있어 중심이 아닌 주변으로부터의 글쓰기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1992년 만연하는 외국인 적대행위와 독일정부의 극우화 현상을 계기로 행한 연설인 ꡔ상실에 대한 연설Rede vom Verlustꡕ에서 그라스는 자신이 상실의 미학이라 명명한 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내 책의 대부분은 이제는 사라져 버린 단치히시와 그것의 구릉지고 평평한 교외, 그리고 약하게 파도치는 발트해를 문학으로 되살리고 있습니다. 또한 그다니스크도 세월이 지남에 따라 계속 쓰여지는 주제가 되었습니다. 상실은 나를 달변으로 만들었습니다. 오로지 완전히 잃어버린 것만이 열정적으로 끝없는 명명을 요구합니다. 사라진 대상을 그것이 다시금 나타날 때까지 이름을 부르는 광기. 문학의 전제로서의 상실. 나는 나의 이 경험을 논제로서 세상에 유포시키고자 할 정도입니다.
Die meisten meiner Bücher beschwören die untergegangene Stadt Danzig, deren gehügelte wie flache Umgebung, die matt anschlagende Ostsee; und auch Gdansk wurde im Verlauf der Jahre zu einem Thema, das fortgeschrieben sein wollte. Verlust machte mich beredt. Nur was gänzlich verloren ist, fordert mit Leidenschaft endlose Benennungen heraus, diese Manie, den entschwundenen Gegenstand so lange beim Namen zu rufen, bis er sich meldet. Verlust als Voraussetzung für Literatur. Fast neige ich dazu, diese Erfahrung als Thema in Umlauf zu bringen.
그라스는 독일이 스스로 전쟁을 발발시킨 죄에서 연유된 실향은 되돌릴 수 없는 상실이라는 주장을 60년대 이래로 펴왔다. 그는 기민․기사당 연정의 조국 통일과 1937년 국경 회복약속은 고향으로부터의 추방자Heimatvertriebene라 불리는 슐레지엔, 동포메라니아, 동프로이센 출신의 실향민들을 무마하기 위한 제스쳐이며 기만이라 비판하고, 1970년 독일-폴란드간의 바르샤바 협정을 계기로 실향의 문제에 “지리적 손실을 문화적 이득으로 회복한다den geographischen Verlust durch kulturellen Gewinn wettzumachen”는 인명적, 지리적 손실을 뛰어넘어 문화라고 하는 새로운 차원을 실향의 담론에 도입시킨다. 즉, 그라스의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입장은 실지회복운동적, “평화적 재탈환”, “향토권” 등을 “내용 없는 미사여구”로 규정하고, 이를 “역사적 사실을 무시함을 미덕으로 삼는 우매함”에 근거한다고 비판한다.
이에 반해 상실의 시학으로 불려질 수 있는 그의 입장은 신민족이동의 시대에 민족 정체성 설정에 이바지하게 된다.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분단이 야기한 독일의 민족 정체성의 결함을 그라스는 문학과 문화적 투영을 통한 새로운 정체성 정립으로 극복한다는 것이다. 국가민족Staatsnation과 대비되는 문화민족Kulturnation으로의 지향은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경계긋기demarcation/ Grenzziehung가 아닌 문학적 문화적 경계넘기transgression/Grenzüberschreitung를 통한 정체성을 추구함이다. 이것은 다름 아닌 민족의 정체성 구축에 있어서 정치에 대비되는 독일 역사에서의 문학적 우위라는 전통의 계승이다.
지난날의 제후들과 오늘날의 정치가들이라는 사람들의 민족 문제에 대한 착상이란 것이 국가적 분권주의 아니면 과대망상적 민족주의에 불과하였습니다. 이에 비해 로가우와 레씽, 헤르더와 하이네를 거쳐 뵐과 비어만에 이르는 작가들이야말로 항상 더 나은 애국자였던 것입니다. 그들이야말로 애국자인 동시에 세계시민들로서 민족주의적 절규나 소심한 경계긋기 없이 그들의 조국을 노래하였고, 조국의 여러 사회계층을 재현했으며, 민족의 언어를 풍요롭게 했습니다. 그로써 비판적 시각으로 다시 말해 맹목적이 아닌 면밀한 자세로 조국을 사랑한 것입니다. 그들의 통일을 향한 외침은 힘의 집합이 아니었으며, 그들의 위대함에 대한 요구는 결코 패권을 추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들의 풍요함이란 독일 민족들의 문화적 다양함이었습니다. 독일 역사에서 그들의 충고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 나라의 파국적 과정을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Den Fürsten damals und heute fiel oder fällt zur Frage der Nation immer nur kleinstaatlicher Separatismus oder grössenwahnsinniger Nationalismus ein. Hingegen sind die Schriftsteller, von Logau und Lessing, über Herder und Heine bis zu Böll und Biermann stets die besseren Patrioten gewesen. Patrioten und Weltbürger zugleich, die ohne nationales Geschrei oder ängstliche Abgrenzung ihr Vaterland beschworen, in seinen sozialen Schichtungen dargestellt, dessen Sprache reich gemacht, es kritisch gesehen, das heisst, auf genaue Weise und nicht blindlings geliebt haben. Ihr Ruf nach Einigkeit meinte nicht Machtballung. Ihr Verlangen nach Grösse strebte nie Herrschaft an. Ihr Reichtum war die kulturelle Vielfalt der deutschen Völker. Dass man nie auf sie gehört hat, belegt die deutsche Geschichte und deren katastrophaler Verlauf.
그라스의 산문 ꡔ뇌산, 혹은 독일인은 멸종하고 있다Kopfgeburten, oder Die Deutschen sterben ausꡕ(1980)에서 언급되고 있는 “문학적 개념으로서의 독일Deutschland - ein literarischer Begriff”이란 분열과 분단의 독일 역사를 가로질러 이를 극복하며 나름대로 민족의 정체성을 지켜온 것은 오로지 독일 작가들의 공로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오직 문학(과 그리고 그 안감으로서의 역사, 신화, 죄의식, 그리고 여타 침전물)Einzig die Literatur (und ihr Unterfutter: Geschichte, Mythen, Schuld und andere Rückstände)”이 독일의 정체성을 구현한다는 그라스의 문화민족 개념은 단순한 정치적 통일의 부재에 대한 대안이 아닌 (민족이동으로 특징 지워지는) 탈민족주의 시대의 정체성 확장에 기여하게된다.
ꡔ한밤의 아이들Midnight's Childrenꡕ ꡔ악마의 시The Satanic Versesꡕ 등의 작품을 쓴 봄베이 출신의 영국의 저명한 작가 샐만 루시디는 그라스를 자신의 문학적 스승이라 공언하고 있다. 그는 20세기의 문학을 실향과 강요된 민족이동 시대의 문학으로 규정하면서 그라스를 “이주의 20세기”의 주자라 칭한다.
그는[그라스]는 따라서 민족이동 시대의 문학에서 중심적 인물이다. 아마도 이주자야말로 20세기의 중심적이며 척도역할을 하는 인물이 아닐까 한다. 살던 도시를 잃어버린 많은 이주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라스도 자신의 도시를 그의 가방 속에서 다시 찾아 오랜 양철통에 넣어두었다. 밀란 쿤데라의 프라그,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그라스의 단치히: 망명자, 피난민, 이주자들은 이 이주의 세기에 그들의 가방 속에 많은 도시들을 넣고 다닌다.
Er ist damit eine Gestalt von zentraler Bedeutung in der Literatur der Migration, und vielleicht ist der Migrant die zentrale oder die masstabsetzende Gestalt des zwanzigsten Jahrhunderts. Und wie viele Migranten, wie viele Leute, die eine Stadt verloren haben, hat er sie in seinem Gepäck wiedergefunden, verstaut in einer alten Blechdose. Kunderas Prag, Joyce' Dublin, Grass' Danzig: Exilierte, Flüchtlinge, Migranten haben viele Städte in ihrem Gepäck herumgetragen in diesem Jahrhundert der Wanderungen.
루시디에 의하면 그라스에게서 볼 수 있는 지리적, 언어적, 사회적 단절 등 3 중으로 자신의 뿌리로부터 단절된 경계넘기적 문학의 특징은 이주자들이 갖는 은유적 시야라는 것이다(전의Übertragung의 의미로서의 은유Metapher). 또한 절대적 지식에 대한 회의적인 입장은 물론 이견에 대한 관용은 그라스와 같은 이주자의 또 다른 특징이라는 것이다. 그라스의 조형미술가로서의 특징에서 유래한다고도 할 수 있는 그의 문학에서의 구상적 특징Bildlichkeit/ Anschaulichkeit을 루시디는 이주자의 본질적 성격으로 이해한다. 왜냐하면 잃어버린 고향을 떠올리기 위해서는 “구상적으로” 사고함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스스로를 “유랑인”으로 간주하며 “한 곳에 뿌리박기”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그라스에게 실향의 경험은 또한 “이질자를 향한 호기심”을 강화시켰으며 경계를 넘는 정체성을 추구하게 해주었다.
작고 큰 세습토지에 사는 사람에 비해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시야는 더 넓게 퍼져있습니다. 그 어떤 이데올로기도 나의 상실을 고양시킬 수 없으므로 - 왜냐하면 그 어떤 근원적으로 독일적인 것이 사라진 것도 아니며, 근원적으로 폴란드적인 것이 재탈환된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 나는 나 스스로를 독일인으로 파악하는데 그 어떤 민족주의적 지팡이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Dem Heimatlosen sind die Horizonte weiter gespannt als den Bewohnern kleiner und grösserer Erbgrundstücke. Da keine Ideologie meinen Verlust übersteigerte - denn nicht Urdeutsches ging verloren; nichts Urpolnisches wurde zurückgewonnen -, bedurfte ich nicht der nationalen Krücke, um mich als Deutscher zu begreifen.
이와 같은 경계넘기는 독일인에게 결핍된 현상으로서 독일인의 유랑인적 특징의 부족에서 오는 보상심리는 다름 아닌 경계 내의 타자에게로 투영된다. 독일인은 경계넘기에 익숙한 타자들의 국제적 성격과 가동성Beweglichkeit을 부러워하게 되는 반면, 그 타자는 바로 이 같은 속성으로 인해 두려움과 증오의 대상으로 변해 독일인에 의해 핍박을 받게되는 것이다.
독일인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아마도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그들이 이질적이고 그렇게 보이기 때문에 우리가 두려워하는 바로 그들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들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하여 증오로 답하는, 그 증오는 이제 와서는 일상적 폭력으로 돌변하는, 바로 그들이 우리에겐 부족하다. 아마도 우리에겐 경멸적 가치척도의 최하단에 위치한 그들이 바로 부족하다: 관습적으로 집시라 불리우는 로마와 신티가 바로 그들이다.
Was mangelt uns Deutschen? Vielleicht fehlen uns diejenigen, die wir fürchten, weil sie fremd sind und fremd aussehen. An denjenigen herrscht Mangel, denen wir aus Furcht mit Hass begegnen, der dann in Gewalt umschlägt, mittlerweile alltäglich. Und vielleicht fehlen diejenigen uns besonders, die in abschätziger Wertskala tiefzuunterst zu finden sind: die Roma und Sinti, herkömmlich Zigeuner genannt.
그라스가 “가장 오래된 유럽인”이라 지칭하는, 흔히 집시라 불리는 로마와 신티는 그라스에게 캘커타의 거리 주거자pavementdweller와 불가촉 천민Unberührbare/ Untouchable과 같은 기능을 갖는다. 그들의 타자성은 독일인의 정체성의 본질을 성찰케 하며 문제시 삼는다.
그들은 다르기 때문이다. 다르다 못해 다른 것보다 더 다르기 때문이다. 도둑질을 하며 안절부절못하며 이리저리 집시 짓을 하며, 악한 눈빛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우리를 추하게 보이게 하는 생소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또 그들의 존재는 우리의 가치체계를 의문시하기 때문에. 또한 기껏해야 그들은 오페라나 소(小) 가극에나 쓸모가 있을 뿐이며, 사실을 말하자면 - 그것이 너무 심한 표현이며, 무엇인가 끔찍했던 일을 연상시킨다 해도 - 그들은 반사회적이고, 변종일뿐더러, 무가치하기 때문에.
Weil sie anders sind, schlimmer noch: anders als anders. Weil sie klauen, unruhig hin und her zigeunern, den bösen Blick haben und überdies von jener befremdlichen Schönheit sind, die uns hässlich aussehen lässt. Weil sie unser Wertesystem durch blosse Existenz in Frage stellen. Weil sie allenfalls für Opern und Operetten taugen, doch eigentlich - auch wenn das schlimm klingt und an irgend etwas Schlimmes erinnert - asozial, abartig, unwert sind.
집시의 타자성은 어느덧 사라져버린 경계를 뛰어넘는 독일인의 정체성 확장의 잠재력을 기억시켜주고 환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타자는 독일인이 그쪽으로 나아가야 할 지표인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많은 손실 뒤에 우리에게 이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에게 경계란 얼마나 무용한 것인가 가르쳐 줄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신티와 로마는 경계를 모른다. 집시에게는 유럽 그 어느 곳이나 자신의 고향이며, 그들이야말로 우리가 스스로 자처하는 타고난 유럽인인 것이다.
Sie wären Gewinn für uns nach so viel Verlust. Sie könnten uns lehren, wie nichtig Grenzen sind; denn die Roma und Sinti kennen keine Grenzen. Die Zigeuner sind überall in Europa zu Hause, sie sind, was wir zu sein vorgeben: geborene Europäer!
3. 집단적(공중적) 기억과 타자성
독일의 1980년대를 한마디로 특징짓자면 그것은 기억의 시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981년 베를린에서의 프로이센 전시에서 시작하여 1990년에 거행된 프리드리히 II세 유골의 상수시 성(城) 이장에까지 20세기 독일 역사의 주요 사건의 기념일들이 80년대를 수놓고 있었다. 대부분의 기념일들은 독일 역사의 어두운 부분에 대한 기억의 재현으로서 1983년 히틀러의 집권과 분서행위의 50주년, 1985년 나치 독일의 패망 50주년, 1988년은 수정의 밤Kristallnacht 50주년 되는 해였고, 다음해인 1989년은 2차 대전 발발 50주년, 그리고 1991년은 나치의 소련침공Unternehmen Barbarossa 50주년 기념 해였다. 여기에 가세해 여러 해를 거쳐 공중의 토론 대상이 되었던 독일 역사박물관 건립문제와 유명한 ‘역사가 논쟁’으로 대표되는 과거의 기억과 그 현재적 의미는 공중의 기억은 물론 제도적 기억의 성격을 띈다. 독일역사의 “정상화Normalisierung”라든지, 헬무트 콜이 언급하여 일약 80년대의 시대정신으로 부상한 “후대에 출생하게 한 신의 가호Die Gnade der späten Geburt” 역시 떨쳐버릴 수 없는 독일 근대사가 현재에 드리우고있는 그늘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1985년의 콜과 레이건의 나치 친위대가 매장되어 있는 비트부루크 묘지와 베르겐 벨젠 수용소 방문에서부터 1988년 당시 독일 하원 의장인 필립 예닝어의 수정의 밤 50주년 기념 의회 연설에서 큰 사회적 오해를 불러일으킨 “간접화법indirekte Rede”으로 일관된 나치시대의 묘사에 이르기까지, 재현, 매체, 메시지 나아가 시뮬레이션이 갖는 직접적 결과는 과거 기억의 현재 전유를 통한 독일의 민족적 정체성의 형성과 수정이다.
정체성, 특히 민족 정체성, 그것도 재통일된 독일의 정체성의 불안정한 과정적 성격Prozesshaftigkeit을 우리는 1997년 10월 독일 서적상 거래소 조합에서 수여하는 저명한 평화상 수상자인 쿠르드 족 출신의 터키의 작가 야사 케말Yasar Kemal을 위해 프랑크푸르트 파울스키르헤Paulskirche에서 낭독된 그라스의 축사에 대한 공중의 반응에서 엿볼 수 있다. 그라스는 자신의 축사에서 케말 문학의 상이한 문화사이의 경계를 극복하는 기능을 강조하면서 문학적 타자성Alterität이란 다름 아닌 이질화된 자아의 표현이라고 주장한다.
나름대로 많은 여행을 했습니다만 아나톨리아에는 가보지 못했습니다. 다만 나는 독자로서 책과 책을 통하여 당신의 나라를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질적인 것은 그 모든 냄새와 함께 나에게 익숙해졌고 소작농의 곤궁에 대한 것까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언어의 힘이란 바로 그런 겁니다. 문학은 지리적 거리를 좁혀줍니다. 문학을 통한 점유는 종이 위에만 써 있는 인물들을 우리들에게 친숙하게 해줍니다. [...] 문학은 지도 위에 그은 경계선뿐 아니라, 우리의 의식을 가르는 경계를 넘게 해줍니다. 문학은 타자가 된 이질화된 나에게 다다르는 다리를 놓아줍니다. 문학은 우리들을 서로 묶어줍니다. 문학은 우리들 공범으로 만듭니다. 문학은 우리를 서로 교감케 해줍니다.
Sonst viel gereist, bin ich nie in Anatolien gewesen, und dennoch habe ich mir als Leser von Buch zu Buch Ihr Land angeeignet. Was fremd war, ist mir mit allem Gerüchen vertraut und bis in die Nöte der landlosen Bauern einsichtig geworden. Wörter können das. Die Literatur hebt die Entfernung auf. Literarische Landnahme bringt uns Menschen nah, die nur auf Papier stehen. [...] Sie hebt auf Landkarten gezogene, auch unser Bewusstsein schneidende Grenze auf. Die Literatur schlägt die Brücke zum anderen, zum fremdgegangenen Ich. Sie verkuppelt uns. Sie macht uns zu Mittätern. Die Literatur zieht uns in Mitleidenschaft.
독일과 터키 두 문화간의 “책과 책” 사이의 소통으로서의 문학은 “흐르는 시간에 거역하여” 각 민족의 역사적 과실을 재현해야한다고 그라스는 주장한다. “순수 혈통”을 고집하는 인종적 광기와 “열등 인종”의 박해는 케말의 작품 ꡔ바다의 분노ꡕ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순수혈통의 터키인과 열등 인종인 쿠르드인, 라젠, 유대인, 체르케센인들이 거론됩니다만, [케말의 작품을 읽고 있노라면] 국제적으로 배역이 된, 물론 독일어권의 술집단골손님들의 거칠 줄 모르는 발설을 듣는 듯 합니다. 그토록 파쇼적으로 말을 하는 자는 경찰들만이 아닙니다. 얼마 전 “독일 민족의 잡종화”를 경고했던 것이 높은 지위의 독일 정치가가 아니었던가요?
Zwar ist von reinrassigen Türken und minderwertigen Kurden, Lasen, Juden, Tscherkessen die Rede, doch kommt es den Lesern vor, als spreche sich ein international besetzter, also auch deutschsprachiger Stammtisch so hemmungslos aus. Nicht nur Polizisten reden derart faschistisch freiweg; war es nicht ein deutscher Politiker von Rang, der vor einiger Zeit vor der "Durchrassung des deutschen Volkes" gewarnt hat?
당시 바이에른 주지사였던 기사당 소속 에드문트 슈토이버Edmund Stoiber가 90년대 초 대(對)외국인 적대감이 팽배해 있을 무렵, 우익적 성향의 선거권자를 겨냥하여 타 인종에 의한 독일 사회의 잠식을 “위협적인 독일 인종의 잡종화drohende Durchrassung des deutschen Volkes”로 표현했음을 그라스는 상기시킨다. 뿐만 아니라 연정 파트너인 기민당의 대부분 정치인들의 공범자적인 침묵에서 그라스는 독일 집권당에 기본법과 같은 민주주의의 근본 질서를 위반하는 반인륜적인 성향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잠재적 외국인 증오에서 기인한 관료주의적 예로서 그라스는 정치적 망명권 신청이 거부된 피난민들에 대한 비인간적 강제 퇴거관례를 들고 있다.
터키, 알제리, 나이지리아로부터 온 4000명이 넘는 피난민들이 그들에 대해 그 어떤 범죄사실도 입증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강제퇴거 수용소 감옥에 유치되어 있습니다. 신 독일어로 그들은 ‘쉬블링’이라 불립니다. 이로써 우리 모두는 또다시, 이번에는 민주주의라는 미명하에 행해지는 야만행위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하는 증인이 된 것입니다.
Über viertausend Flüchtlinge, aus der Türkei, Algerien, Nigeria, denen nichts Kriminelles nachgewiesen werden kann, sitzen in Abschiebelagern hinter Schloss und Riegel, Schüblinge werden sie auf neudeutsch genannt. - Es ist wohl so, dass wir alle untätige Zeugen einer abermaligen, diesmal demokratisch abgesicherten Barbarei sind.
나 자신 속의 타자를 인식하고 존중함은 - 카톨릭 프랑스에 의해 박해받던 위그노파를 받아들인 - 독일인이 역사상 보여준 타자에 대한 관용정신에서 잘 나타나 있다고 하면서 무엇보다 자신의 문화를 풍요롭게 하는 타자의 기능을 강조함이 그라스의 축사의 주된 논지였다. 하지만 이 축사에 대한 반응은 정치적 사건으로 비화되어 집권당의 사무총장의 “그라스는 이 연설로써 비중 있는 작가의 대열에서 제외되고 말았다Grass hat sich mit seiner Rede aus dem Kreis ernstzunehmender Literaten verabschiedet”는 발언으로 치달았다. 축사에서 문제가 된 대목은 “민주주의라는 미명 하에 행해지는 야만행위” 및 쿠르드족과 전쟁을 치르는 터키정부에 독일정부로부터의 무기공급을 지칭하며 언급한 “나는 단순히 경제입지조건으로 전락한 나의 조국을 수치스러워한다. 이 나라의 정부는 죽음을 부르는 상거래를 허용하면서 박해받는 쿠르드족에게는 망명권을 거부한다Ich schäme mich meines zum blossen Wirtschaftsstandort verkommenen Landes, dessen Regierung todbringenden Handel zulässt und zudem den verfolgten Kurden das Recht auf Asyl verweigert”라는 대목이었다. “야만”과 “수치” 두 단어는 독일을 찬․반 양 진영으로 나누기에 충분하였다. “야만”이란 단어에 대한 알레르기적 반응의 이유는 다름 아닌 “나치의 야만Nazibarbarei”이라는 개념에서 연유된 나치시대의 만행과의 연상작용에 연유한다. 통일 후 7년이 지난 독일사회의 정체성은 과거 유대인을 비롯한 인종적 타자에 대한 만행과, 현재 독일내의 또 다른 인종적 타자인 망명자와 피난민과의 독일인의 관계설정을 기준으로 결정되고있는 것이다.
4. 탈민족주의적 정체성의 두 이상형: 다니엘 쇼도비예츠키와 미스터 샤타지
한 집단의 구성원이 한 “장소Ort”에 대하여 공유하는 언어, 종교, 전통, 혹은 정서와 같은 문화적 속성을 인종성Ethnizität라 부른다. 이러한 인종성이 현대에 와서 날로 축소하는 시간과 공간의 두 좌표 속에서 기억과 역사, 서술을 통해 재현됨으로써 정체성으로 발전한다.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가 “상상적 지도imaginary geography”라 지칭하는 것은 시간과 공간이 일치된 장소라는 개념과는 구별되는, 장소와 시간적 요소로부터 분리된 공간의 개념을 염두에 둔 말이다. 이러한 “상상적 지도”로서의 단치히/그다니스크에서 그라스는 탈민족주의자의 전형으로 역사적 인물인 쇼도비예츠키와 허구적 인물인 샤타지라는 두 인물을 재현시킨다.
4.1. 다니엘 쇼도비예츠키
그라스는 탈민족주의적 다문화주의의 이상형으로서 단치히 출신의 로코코 시대 소묘화가이자 동판화가인 다니엘 쇼도비예츠키(1726-1801)를 소개한다. 쇼도비예츠키는 최근까지 각기 국수주의로 무장한 독일과 폴란드간의 관계와 역사적 대비를 이루는 국가의 경계를 넘는 “유럽인”의 전형이다. 1991년 6월 통일독일과 폴란드간의 오더-나이세Oder-Neisse 국경을 확정짓는 선린조약을 계기로 행한 「쇼도비예츠키의 예를 들자면」이라는 연설에서 그라스는 이 단치히 출신의 예술가를 소개함으로써 유럽의 계몽주의 정신에 입각한 새로운 고향의 개념을 정립한다. 1989년 이후의 유럽통합은 독일통일과 마찬가지로 경제적 이해관계로만 규정되어 “문화적 개념”이 상실되고 있다고 그라스는 비판한다. 폴란드인 아버지와 스위스 칼빈교도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그는 훗날 프로이센의 관리로서 “베를린 학술원 회장직을 훌륭히 해냈고” “학술원을 개혁함은 물론, 계몽주의자로서 자신이 폴란드 출신임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1773년] 단치히에 머무는 동안 아침복장을 하고 있는 영주, 불란서 개혁 교회의 합창 지휘자 훔베르트 그로스 씨, 우아한 산책용 스틱을 든 영국 상인, 시장 콘라디 씨, 외출복 차림의 단치히 숙녀들, 포도스카 백작부인의 손등을 입맞춤하는 지사(知事) 레디코프스키, 열정적으로 기도 드리는 폴란드인과 쉼스키라 불리는 폴란드 뗏목꾼, 쇼도비예츠키의 하일리겐가이스트 가(街)에 위치한 아름다운 박공이 있는 친가, 종파에 구별을 둠이 없이 몇몇 목사, 신부 및 검은 옷을 입은 승려들을 그렸습니다. 이렇게도 잘 혼합되고, 이렇게도 잘 다양한 문화들에서 자양분을 받아, 이 도시는 바로 그 도시가 프로이센의 지배 하에 들어가 일률화 되기 이전에 예술가에게 그토록 유럽적으로 비쳐진 것입니다. 그 이래로 그 얼마나 크나큰 손실입니까!
Während seines Aufenthalts in Danzig porträtiert er den polnischen Fürstenprimas im Morgenhabit, Herrn Humbert Gros, den Kantor an der französisch-reformierten Kirche, einen englischen Kaufmann samt elegantem Spazierstock, Herrn Conradi, den Bürgermeister der Stadt, Danziger Damen in Strassentoilette, den Starost Ledikowski, wie er der Gräfin Podoska die Hand küsst, inbrünstig betende Polen und polnische Flösser, Schimsky genannt, sein schön gegiebeltes Elternhaus, in der Heiligengeistgasse und etliche Prediger, Pfaffen und Schwarzmönche, ohne gross auf die Konfession zu achten. So bunt gemischt, so gut genährt aus vielfältigen Kulturen, so europäisch gab sich die Stadt dem Künstler zu erkennen, kurz bevor sie preussisch und uniform wurde. Wieviel Verlust seitdem!
그라스는 공간의 배타적 점유를 근간으로 하는 1992년 유럽의 신민족주의의 시점에서 1773년의 단치히의 유토피아적 다문화주의를 눈앞에 그림으로써 미래의 유럽이 지향해야 할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즉, 영토의 상실과 복구의 요구를 거듭하는 민족주의적 사고는 지양되어져야 하며, 민족 간의 공존은 상호 영토 포기의 자세를 전제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불의는 불의에 기인하였고, 추방은 또 다른 추방을 가져오며, 살해는 살해로 갚아졌다. 아직도 그 끝이 보이지 않Unrecht fusste auf Unrecht. Vertreibung hatte Vertreibung zur Folge. Totschlag wurde durch Totschlag vergolten. Und noch immer ist kein Ende abzusehen.”기 때문이다.
그라스에게 쇼도비예츠키는 문화에 기초를 둔 탈민족주의적 유럽인의 정체성을 이상적으로 구현하고 있으며 이는 무엇보다 그의 작품을 통해 구상적으로 나타난다.
소묘화가이자 동판화가인 그는 폴란드인이면서 동시에 프러이센인이었다. 그의 스케치에는 루터교 폴란드인 노비옆에 목사가 서있다. 개혁 종교를 믿는 그는 유럽 계몽주의의 신봉자였다. 독일인과 폴란드인 모두 스스로 공언하는 유럽인, 쇼도비예츠키가 바로 유럽인이었다.
Der Zeichner und Kupferstecher war Pole und Preusse zugleich. Auf seinen Skizzen steht der lutherische Pastor neben dem polnischen Flissak. Reformierten Glaubens hing er den Ideen der europäischen Aufklärung an. Was Deutsche und Polen gerne beteuern zu sein, Chodowiecki war es: ein Europäer.
4.2. 미스터 샤타지
1986/87년 그라스는 6개월 간 인도 벵갈 지방의 캘커타에서 생활을 하며 타문화를 체험한다. 그 여행의 결과 그라스는 1988년 소묘, 산문, 시의 종합예술품인 ꡔ혀 보이기Zunge zeigenꡕ를 발표한다. 그라스가 인도체류 중 읽는 책에는 토마스 만의 “두꺼운 작품dickleibige[n] Schmöcker” ꡔ요셉과 그의 형제들Joseph und seine Brüderꡕ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라스는 1996년 5월 24일 뤼벡 시에서 토마스 만 상을 수여 받으며 행한 연설에서 인도 체류 중 자신의 독서 경험에 대해 언급한다. 「영속적 경험으로서의 타자Die Fremde als dauerende Erfahrung」라는 제목의 이 연설에서 그라스는 타지 인도에서, 타지로 망명한 작가가 쓴 타지에 처한 요셉에 관한 소설을 읽으며 스스로 불가촉 천민 출신의 이방인으로서 온갖 편견과 차별을 극복하고 이집트의 토착인을 구원하는 토마스 만의 요셉과 같은 혁신적 인물인 “벵갈의 요셉”을 그라스 스스로 착안해 낸 과정을 설명한다. 요셉과 같은 원형적 유랑인에게 고향의 상실은 고통이 될 수 없다.
사람들이 고향, 가족, 헛간 냄새, 보금자리의 온기라 부르는 것들을 잃어버리고 만 그는 뛰어난 조망력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그의 호기심에 찬, 새로운 것을 붙잡으려는 눈 때문입니다. 그는, 여기서 요셉은, 타지에서 옛 프랑켄 지방의 인습과 같은 것에 매달리지도 않으며, 그 어떤 소유욕의 망상도 그에게 거추장스러운 방해물이 되지 않습니다. 희극성에 대한 그의 감각으로는 이집트라는 나라는 우스꽝스러울 정도입니다. 만사에 거리를 두는 그는 미소를 띄우며 나일강가의 유치하게 보이는 소요를 지켜봅니다. 스스로 부자유의 몸이면서 그는 자유롭게 느끼며 따라서 남에게 훌륭한 조언을 줄 수 있습니다.
Er, der sich seiner Verluste, was man Heimat, Familie, Stallgeruch, Nestwärme nennt, schmerzlich gewiss ist, hat, dank seiner neugierigen und am Neuen haltsuchenden Augen, den besseren Überblick. Er, in unserem Fall Joseph, ist am fremden Ort nicht vom altfränkisch Hergebrachten beschwert, kein Besitzdünkel hängt ihm als Klotz am Bein, und seinem Sinn für Komik kommt das Ägypterland "drollig" vor. Lächelnd, weil aus Distanz, schaut er dem kindisch anmutenden Treiben am Nil zu. Selbst unfrei fühlt er sich frei und weiss deshalb gut zu raten.
이 요셉과 같은 유형의 인물이 독일통일 후 발표된 그라스의 첫 산문인 ꡔ무당개구리의 울음Unkenrufeꡕ(1992) 속의 숩하스 촨드라 샤타지Subhas Chandra Chatterjee이다. 1989년 11월부터 1992년 여름에 이르는 유럽의 격변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는 이 산문의 공간적 배경은 다름 아닌 그다니스크이다. 샤타지는 인도 벵갈 출신으로 “영국 국적”을 소유한 42세의 국제적 사업가이다. 그는 폴란드 노동자 운동의 시발점이자 이제는 문을 닫은 레닌 조선소를 출발지로 전 유럽에 걸친 자전거 인력거 제조 공장 및 운영 사업을 확장시킴으로써 유럽 대도시의 공해문제와 교통체증 문제를 해결하는 미래지향적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파키스탄 태생으로 그곳에서 피난 나와 봄베이에서 성장했으나 “자신의 친족이나 먼 친척들이 다카나, 캘커타에 사는 까닭에 캠브리지에서 영문학과 경제학을 공부하고 런던에서 첫 사업경험을 특히 운송업에서 집중적으로 쌓았지만 [그는] 스스로를 벵갈인이라 간주하는” 세계시민Weltbürger이다. 그는 유럽이 필요로 하는 “생동력의 아시아적 성장”의 대표주자로서 미래지향적인 사업가의 전형이다. 이 생동력의 아시아적 성장이란 동시에 인류사의 패라다임의 변환으로 미 대륙의 발견과 비교될 수 있는 서구 기독교 사회의 기본 질서에 도전하는, “유럽 요새Festung Europa”를 향한 “야만인들”에 의한 총 없는 공격인 것이다.
이미 그리이스인들도 알고 있었듯이 만물은 유전합니다. 우리는 올 겁니다. 와야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는 곳이 옹색해지고 붐비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서로를 밀어내게 되고 결국 이렇게 밀다보면 멈출 수 없게 됩니다. 그러지 않아도 수십 만 명이 길을 나섰습니다. 모두 올 수야 없겠지요. 하지만 또 다른 사람들이 끈을 동여매고 있습니다. 자, 보십시오. 우선 나부터가 선생님의 동포들이 갖는 자기중심적 공포상태를 말끔히 없애줄 미래 세계사회의 전령이나 선발꾼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심지어 폴란드인, 오로지 폴란드밖에 모르는 그들도 체헨스토카우의 검은 마돈나 옆에 또 다른 검은 신을 위한 공간이 충분하다는 사실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고 동시에 두려워하는 우리의 어머니 칼리도 같이 가져올 겁니다. 런던에선 벌써 칼리가 자리잡았죠.
Alles wird, wie schon die Griechen wussten, in Fluss geraten. Wir kommen. Wir müssen kommen, weil es bei uns ein wenig knapp und eng geworden ist. Jeder schiebt jeden, bis die grosse Verschiebung keinen Halt mehr findet. Einige hunderttausend sind übrigens schon unterwegs. Nicht alle kommen an. Aber weitere schnüren ihr Bündel schon. Sehen Sie, bitte, in mir einen Vorboten oder Quartiermacher der zukünftigen Weltgesellschaft, in der sich die ichbezogenen Angstzustände Ihrer Landsleute verlieren werden. Sogar die Polen, die nichts als Polen, immer nur Polen sein wollen, werden lernen müssen, dass es neben der Schwarzen Madonna von Tschenstochau Platz genug gibt für eine weitere schwarze Gottheit; denn unsere so geliebte wie gefürchtete Mutter Kali werden wir natürlich mitbringen - in London ist sie schon sesshaft.
샤타지로 표상되는 민족이동의 결과로 생성되는 세계사회Weltgesellschaft는, 소수 인종의 문화적, 종교적, 인종적 차이점과 그들의 권리를 부각시키는 현대 미국을 위시한 서구사회의 다문화주의와는 거리가 있다. 샤타지를 매개로 그려지는 이상사회는 오히려 문화간 공생Symbiose이란 평화적 과정을 통한 “도가니Melting Pot” 혹은 “샐러드 접시Salad Bowl”와 같은 진정한 의미의 무차별적 상황이다. 샤타지의 그다니스크 진출은 따라서 “아시아의 소리 없는 토지 점유Asiens lautlose Landnahme” 가 아닌 환영할 만한 미래상이며, 그 미래 사회에서는 “칼리와 마리아”의 이중 제단의 공생이 찬미된다. 이러한 의미의 “다문화사회”에서는 이민자들에 의한 토착 문화의 과다한 이질화Überfremdung란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민족들의 융합하는 과정을 통해 그는[샤타지의 대화 상대자인 산문의 주인공 레쉬케Reschke] 마침내 문화들의 교류를 희망한다고 하면서 샤타지 씨가 예상하는 세계사회란 그런 세계문화를 갖게될 것이라고.
Durch völkerverschmelzende Prozesse erhoffte er den endlichen Austausch der Kulturen. Der prognostizierten Weltgesellschaft des Herrn Chatterjee werde eine zukünftige Weltkultur entsprechen.
샤타지를 둘러싼 이러한 미래상이 유토피아적 이상향임은 이 산문의 시간적 서술장치를 통한 이중적 허구성으로 암시되고있다. 이 산문에서 문화와 문화가 만나는 “제 3의 공간”으로서의 단치히/그다니스크는 반면 여타 주인공들에게는 과거의 기억과 그로 인한 비애의 공간이다. 이 점에서 볼 때 시간과 공간은 단치히/그다니스크에서 상이하게 교차하고 중첩함으로써 상상적 지도의 성격을 띠는 것이다.
1993년 5월 그다니스크 대학으로부터의 명예 박사학위 수여를 계기로 행한 연설 「경계를 뛰어넘음에 대하여Vom Überspringen der Grenzen」에서 그라스는 또다시 단치히/그다니스크라는 상상적 지리에서, 한편으로는 경계를 뛰어넘는 다문화적 다양성의 기회와 다른 한편으로는 국수주의적 경계긋기의 서로 상이한 두 역사적 방향을 대조시킨다.
단치히/그다니스크 시의 역사는 하지만 통상적인 민족주의의 잣대로 산출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오래되고 풍요롭습니다. 수 백년간 이 도시는 폴란드 왕위에 예속되어 있었으나 한자 도시로서 개방적 도시였습니다. 프로이센에게 마지막 폴란드 분할이 이루어지면서 비로소 이 도시는 지방색을 띠며 주변화 하고 몰락하기 시작하였으며 위수도시화하였던 겁니다. 한 예를 들자면 쇼펜하우어 일가가 이 도시를 떠난 이유도 여기에 있었습니다. 반프러이센에다 공화주의적 신조를 가졌던 쇼펜하우어 일가에게 단치히는 더 이상 머무를 곳이 못되었습니다. 이후 독일 민족주의적 편협성은 이미 기정사실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민족주의의 광란이 유럽의 민족들을 뒤덮고 조급하게 만들기 이전, 이 도시는 항상 새로운 피난민들의 물결에 개방적이었습니다. 홀랜드의 메노니트 신자들, 스코트랜드인과 프랑스의 칼빈교도들이 이곳에 피난처를 구했습니다. 독일에서 30년 전쟁의 광란이 계속될 때에도 단치히는 슐레지엔의 시인들에게 평온한 장소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이곳에서 마르틴 오피츠가 서거했으며, 청년 안드레아스 그리피우스는 이곳에서 오늘날까지 그 빛을 잃지 않은 자신의 처녀작인 소넷트를 집필했던 겁니다. 이곳은 문화와 언어의 만남의 장소였습니다. 이 얼마나 특별한 종류의 자산입니까! 그 얼마나 많은 유럽 계몽주의 전통의 유물입니까. 다니엘 쇼도비예츠키를 한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Aber die Geschichte der Stadt Danzig und Gdansk ist länger und reicher, als mit der üblichen nationalen Messlatte errechnet werden kann. Während Jahrhunderten verlief sie, wenngleich der polnischen Krone verbunden, hanseatisch weltoffen. Erst als die Stadt mit letzter polnischer Teilung an Preussen fiel, wurde sie provinziell, begann ihr Niedergang, verkümmerte sie zur Garnisonsstadt, weshalb - um ein Beispiel zu nennen - die Familie Schopenhauer fortzog; weil antipreussisch republikanisch gesonnen, war für sie kein Bleiben mehr. Deutschnationale Enge war zukünftig vorgeschrieben. Doch bevor nationaler Wahn die Völker Europas ergriff und unduldsam machte, stand diese Stadt immer neuen Schüben von Flüchtlingen offen: Holländische Mennoniten, Schotten und fanzösische Calvinisten fanden hier Zuflucht. Während in Deutschland der Dreissigjährige Krieg tobte, galt Danzig schlesischen Schriftstellern als friedlicher Ort. Hier starb Matin Opitz. Hier schrieb der junge Gryphius seine ersten, bis heute gültigen Sonette. Hier begegneten Kultur und Sprache einander. Welch ein Reichtum besonderer Art! Wie viele Zeugnisse europäischer Aufklärung: Beispielhaft sei Daniel Chodowiecki genannt.
5. 마치는 말
그라스, 루시디, 쇼도비예츠키, 샤타지 이들 모두는 자신의 고향을 떠나 문화의 경계를 뛰어넘은 이주자들이다. 그들은 지방에서 대도시로, 제 3세계에서 제 1세계로의 민족 이동으로 은유되는 탈민족주의적 우리 시대의 대표적 인물들이다. 살만 루시디가 지적하듯이 은유의 희랍어 어원은 “bear across, meta (nach...hin), pherein(tragen) = woanders tragen”, “전위Übertragen”, “번역Übersetzen”으로서 그들은 자신의 고향을 망각하거나, 혹은 새로운 환경에 완전 동화함이 없이 혼종적 문화의 정체성을 획득한 타고난 전위된übersetzt 번역가Übersetzer이다.
이러한 인종성의 부흥을 기초로 한 문화적 혼종화와 정체성의 복수성을 우리는 한편으로는 전 세계적 획일적 보편주의와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적 분권주의로서의 상대주의라는 ‘비 동시성의 동시성die Gleichzeitigkeit der Ungleichzeitigkeit’으로 특징 지워진 세계화가 초래한 이분화를 극복하는 중개자이며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는 이분화 사이에 존재하는 틈새적 공간Zwischenräume/interstitial space/ in-betweenness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참 고 문 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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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차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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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usammenfassung
Heimat, Erinnerung und Identität bei Günter Grass
Yang, Tae-kyu
In der vorliegenden Arbeit untersuche ich, vermittels methodischer Ansätze der Cultural Studies, die Frage der transnationalen und zukunftsträchtigen Identitätsbildung bei Günter Grass. Als Flüchtling aus Danzig und als Kind einer Mischehe - der Vater ein protestantischer Deutscher, die Mutter eine katholische Kaschubin - hat sich Grass zeitlebens literarisch und ausserliterarisch mit dem Themenkomplex der verlorenen Heimat Danzig auseinandergesetzt. Danzig ist eine typische europäische Grenzstadt, wie etwa Vilnius(Wilna/Wilno) oder Klaipeda(Memel), in der sich seit dem Mittelalter Sprachen, Religionen, Nationalitäten und ethnische Traditionen mischten und einander zumeist fruchtbar bereicherten. Diese historisch multikulturelle, multiethnische Stadt ist im 20. Jahrhundert zu einer Gedenkstätte der Vertreibung, der Flucht und der Zwangsmigration geworden, in der die ehemalige Heimat der einen zum Zufluchtsort anderer Heimatloser wurde.
Grass verarbeitet diese tragischen Geschehnisse vermittels persönlicher Erinnerung an erlebte Geschichte und durch das Anschreiben mit fiktionalen 'Geschichten' gegen die vorherrschenden politischen Mythen und gegen die historischen Lügen der ideologischen Blöcke. Das wird beispielhaft sichtbar in der Blechtrommel, in Hundejahren und in Mein Jahrhundert. In der Fiktionalisierung von Geschichte entwickelt Grass seine Poetik des Verlusts: erst der Verlust seiner Heimat Danzig habe ihn beredt gemacht. Derart wird die gelebte und literarisch reproduzierte Erinnerung eines Schriftstellers zur Voraussetzung der kulturellen Wiederaneignung der verlorenen Heimat. Diese Poetik des Verlusts trägt unter anderem auch zur Identitätsbildung in dieser Zeit der Neumigration der Völker bei, indem sie gegen die grenzziehende politische und ideologische Identitätsbildung anschreibt und damit eine grenzüberschreitende literarische und kulturelle Identitätsbildung ermöglicht. Dieser grenzüberschreitenden, entwurzelten Literatur sind das Metaphorische, das Bildliche und "die Neugierde auf das Fremde" eigen. Das Fremde, das etwa durch die Zigeuner verkörpert wird, hat für Grass die Funktion, das vergessene Potential der Identitätserweiterung bei den Deutschen in Erinnerung zu bringen.
Wenn für Grass die persönliche Erinnerung an die verlorene Heimat zur poetischen Konstruktion einer grenzüberschreitenden kulturellen Identitätsbildung erweitert wird, legt dagegen die öffentliche Erinnerung (collective memory) an die Nazizeit aus der heutigen Sicht den prekären Zustand der nationalen Identität der Deutschen schonungslos an den Tag.
In seiner Laudatio für den kurdisch-türkischen Schriftsteller Yasar Kemal anlässlich der Verleihung des Friedenspreises des Deutschen Buchhandels 1997 weist Grass auf die grenzüberschreitende kulturelle Funktion der Literatur hin, wenn er behauptet, die literarische Alterität sei nichts anderes als der Ausdruck des "fremd gegangenen Ich". Die "von Buch zu Buch" kommunizierenden Literaturen der beiden Kulturen haben die Aufgabe, sich der "Zeit gegenläufig" zu stellen und speziell der jeweiligen Schuld der beiden Völker Ausdruck zu geben. Grass' Äusserungen im Hinblick auf die unmenschliche Behandlung der politisches Asyl in der BRD Verweigerten - "demokratisch abgesicherte Barbarei" und "sich schämen" - sind deutlich genug, um das nationale Selbstverständnis im vereinten Deutschland aus dem Lot zu bringen.
Anders als die poetische Erinnerung an die verlorene Heimat bei Grass stellt sich die öffentliche Erinnerung des Schriftstellers an die Vergangenheit nur auf den ersten Blick als "Flucht" aus der Gegenwart bzw. als Fluch aus der Vergangenheit dar. Endet der Prozess der Aufarbeitung tatsächlich mit der Erinnerung an die schreckliche Vergangenheit? Ist ein kritischer, aufklärerischer Umgang mit der Erinnerung und damit ihre Überwindung nicht möglich? Grass stellt uns zwei Figuren als Idealtypen einer transnationalen Identität vor: eine historische und eine fiktive im Ort Danzig/Gdansk als "imaginärer Geographie".
Der Zeichner und Graphiker aus der Rokoko-Zeit Daniel Chodowiecki verkörpert die interkulturell konstituierte Identität eines Europäers. Grass' Beschreibung der Zeichnung Chodowieckis des multikulturellen Danzig zum jetzigen Zeitpunkt der ausschliesslichen Grenzziehung von 1992 beinhaltet die utopische Projektion einer kulturell versöhnten Zukunft.
Mr. Chatterjee aus der Erzählung Unkenrufe, ein entwurzelter Kosmopolit, erweist sich dagegen als Retter der im Autoverkehr erstickten europäischen Metropolen. Diese Rettung versinnbildlicht sich in seinen Fahrrad-Rikschas. In Chatterjees Verkörperung des Prinzips Hoffnung in der maroden Leninwerft in Gdansk soll dieser Fremde aus den Bengalen als Vorhut der begonnenen Völkerwanderung in Richtung der Ersten Welt und einer sich utopisch-zukünftig konstituierenden multikulturellen Weltgesellschaft verstanden werden.
Grass und seine Figuren Chodowiecki und Chatterjee sind grenzüberschreitende Migranten. Mit dem Gepäck der Erinnerung an die Heimat beladen, haben sie weder diese Heimat vergessen, noch haben sie sich völlig an die jeweils neue kulturelle Umgebung assimiliert. Die ihnen eigene kulturelle Hybridität ermächtigt sie aber, als Vermittler zwischen den Kulturen Zwischenräume einer neuen, globalen Hoffnung abzuschreiten.
핵심어 Stichwörter
고향 Heimat
정체성 Identität
상실의 미학 Poetik des Verlusts
시적/문화적 복원 poetische/kulturelle Wiederaneignung
집단적(공중적) 기억 kollektive(öffentliche) Erinnerung
경계 넘기/경계 긋기 Grenzüberschreitung/Grenzziehung
타자성 Alterität
혼종성 Hybridität
틈새적 공간 Zwischenräume/interstitial space/in-betweenn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