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차상>
아득한 시간
-503번 버스의 시간
김슬기
귓가를 스치는 바람을 뚫고 503번 버스에 오른다. 버스에 올라서도 바람의 서늘한 기운이 가시지 않아 옷깃을 여미는데, 문득 어쩌면 이 한기가 옆자리에 앉은 엄마 때문은 아닐까 하고 스스로에게 농담 아닌 농담을 해본다.
버스 창밖으로 나와는 상관없는 타인들의 일상이 스쳐 간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엄마와 내가 왜 지금 이러고 있는 지나간 시간이 떠오른다.
나는 바늘 구멍 같다는 취업난을 뚫고 비교적 빨리, 취직했다. 제때 월급이 나오고 제때 쉴 수 있는 좋은 회사였다. 나는 빠르게 적응했고 처음 하는 회사 생활도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문제는 전혀 다른 곳에서 생기기 시작했다. 잔뜩 숨을 죽이고 있다. 불쑥 제 존재를 알려오는 글에 대한 열병 때문에 였다. 직장에서 돌아와 학생 때 쓰던 습작 노트를 펼치고 무작정 써 댔다. 그러나 퇴근 후에 짧은 글쓰기는 바닷물을 삼킨 것 마냥 목만 더 타게 할 뿐, 아무것도 해소시켜주지 못했다.
그 즈음부터, 직장을 그만두고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희미하게, 갈수록 더욱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늘 고민이 앞다투었다. 당장의 생활은 어찌할 것인지에 대한 현실부터 이 길이 내 길이 아니라면 깨달았을 때 너무 늦은 거리면 어찌 해야 하는지 답 없는 고민으로 몇 날을 앓았다. 마침내 고민 끝에 엄마에게 내 뜻을 알렸을 때 엄마는 소리를 지르거나 달래거나 꾸짖지 않았다. 그저 4년간의 공부로 할 만큼 한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더는 내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여러 차례 대화를 시도했지만 빈 허공에 내지른 메아리처럼 돌아 온 것은 내 울음 섞인 목소리 뿐이었다.
버스 정차에 몸이 흔들리자 나는 다시 503번의 고통스런 시간으로 돌아왔다. 나는 조심스레 엄마의 표정을, 가방을 쥔 두 손을 살핀다.
사실 내가 글에 대한 한없는 애정을 품은 것은 엄마의 영향이 컸다. 일을 마치고 돌아와 그 고단한 손에 연필을 쥐고 어린 내게 글을 가르치고 책을 읽게 해주었다.
엄마와의 대화를 포기한 몇 주 후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시급 5000원의 카페 아르바이트생이 되었다. 물론 엄마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그간 직장 생활을 하며 모아 온 돈과 카페 월급을 조금 보태 매달 엄마에게 드렸다. 그렇게 통장이 바닥을 보일 즈음 엄마가 카페를 찾아왔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창가에 앉아 사원증을 목에 건 내 또래의 수많은 여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일을 마치고 분노도 변명의 말도 없이 503번 버스에 오른 나와 엄마의 시간은 괴로움과 죄책감, 실망과 자책이 뒤엉켜 흐르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리자 엄마의 얇은 외투 자락이 바람에 휘날린다. 문득 떨군 고개 아래로 눈물이 떨어진다. 눈물을 닦으려고 고개를 들었을 때 엄마의 등이 보인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큰 딸에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 담긴 들이 보인다. 오랜 세월 나를 홀로 업었던 엄마의 들이 보인다. 나는 엄마 앞으로 달려가 엄마의 옷깃을 여며준다. 엄마는 나를 뿌리치지도 다시 등 돌려 가지도 않는다. 그때 나는 알았다. 이번에는 엄마가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리라고….
그리고 나도 말할 것이다.
언젠가 오늘 503번 버스를 타고 온 외롭고 서글프고 실망스럽던 30분의 시간이 아득하게 느껴질 날이 올 거라고. 내가 반드시 그렇게 하겠다고 말이다.
더이상 바람이 차지 않은 오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