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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산림 대법회 제36강 - 2 (2013. 2. 5.)
大方廣佛華嚴經 卷第十四
淨行品 第十一
二. 文殊菩薩의 答
2. 正答其問(정답기문)
3. 偈頌答(게송답) - (1) 在家用心(재가용심)
(2) 出家受戒(출가수계)
(3) 坐禪時(좌선시)
(4) 行時(행시)
(5) 用便洗手(용변세수)
(6) 乞食(걸식)
具足衆善하며 當如普賢(당여보현)의,
구체적인 인물을 여기서 열거하자면 “보현보살과 같은” 그런 말입니다.
마땅히 보현의 色像第一(색상제일)하며, 생긴 것이 제일이며 또
一切行願(일체행원)이 皆得具足(개득구족)하며,
보현보살의 行願은, 모든 보살의 행원의 대표가 보현보살의 행원 아닙니까? 그래서 그것도 뭐 복잡한 것이 아니라, 보현보살의 10대 행원. 그것으로써 표현이 되는데요. 그런 일체행원이 다 구족하며, 또
於一切法(어일체법)에 無不自在(무불자재)하며,
모두 법에 있어서 자재하지 아니함이 없으며,
而爲衆生의 第二導師(이위중생제이도사)하리라.
衆生의 第二導師. 당연히 제1도사는 부처님이고, 부처님을 제외한 나머지 보현보살과 같은 제2도사가, 우리 모두가 다 그렇게 되는 길, 모든 보살이 그렇게 되는 길을 말하겠다 그 말입니다. 그런 길을 여기서 쭉~~ 소개합니다. 그것도 아주 시로, 넉자 시로써 141개의 시 형식을 통해서 나오는데요. 이 글은 아주 워낙 유명해서 우리에게 익숙하지요. 그야말로 화엄행자. 달리 말하면 보살은 자나 깨나 중생생각, 한 마디로 하면 그 겁니다. 밑에 내용이 그래요. 가나오나 중생생각, 앉으나 서나 중생생각, 총 141대원이 그야말로 보살의 대원이고, 深廣渺海(심광묘해) = 깊고 넓기가 저 태평양바다 보다도 넓다. 보살의 큰 원력은 저 바다보다도 더 넓다.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것을 여기 141대원에 다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다시 말씀드리면 한 마디로 오로지 보살, 화엄행자는 중생생각뿐이다. 무엇을 하든지, 코를 풀든지 세수를 하든지 손을 들든지, 밥을 먹든지, 침을 뱉든지 어떤 행위에도 오로지 중생생각 하나뿐이다. 그렇게 요약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자나 깨나 중생생각, 가나오나 중생생각, 앉으나 서나 중생생각 그것이 화엄행자의 정신이고, 대승보살의 정신이고, 대심범부의 정신이다. 이렇게 표현할 수가 있습니다. 그 다음 내용은 아주 쉽습니다. 우리 익히 알고 있는 내용들입니다.
3. 偈頌答(게송답)
佛子야 云何用心하야사 能獲一切勝妙功德고
佛子야
云何用心하야사, 어떻게 用心하여야
能獲一切勝妙功德(능획일체승묘공덕)고?
능히 一切勝妙한 功德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놓고,
(1) 在家用心(재가용심)
佛子야
菩薩在家에 當願衆生이
知家性空하야 免其逼迫하며
孝事父母에 當願衆生이
善事於佛하야 護養一切하며
妻子集會에 當願衆生이
怨親平等하야 永離貪着하야
若得五欲인댄 當願衆生이
拔除欲箭하야 究竟安穩하며
妓樂聚會에 當願衆生이
以法自娛하야 了妓非實하며
若在宮室인댄 當願衆生이
入於聖地하야 永除穢欲하며
着瓔珞時에 當願衆生이
捨諸僞飾하야 到眞實處하며
上昇樓閣에 當願衆生이
昇正法樓하야 徹見一切하며
若有所施인댄 當願衆生이
一切能捨하야 心無愛着하며
衆會聚集에 當願衆生이
捨衆聚法하야 成一切智하며
若在厄難인댄 當願衆生이
隨意自在하야 所行無碍니라
在家用心, 집에 있는 사람으로서의 用心.
佛子야
菩薩이 在家(보살재가)에, 在家할 수가 있지요.
보살은 출가ㆍ재가를 막론하고 표현한 말입니다. 특히 화엄경이나 이런 대승 경전에는 간혹 출가인을 상대로 한 표현도 많이 있습니다만, 대개는 출가ㆍ재가를 막론하고 표현한 것이지요.
1. 菩薩이 在家에 當願衆生(당원중생)이, 마땅히 중생이
知家性空(지가성공)하야, 집이라고 하는 존재.
우리가 집에 산다 하면, 집이라고 하는 존재의 성품은 본래 공하다고 하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것을 알아 가지고서
免其逼迫(면기핍박)하며, 그 핍박 면하기를 원하라. 모든 중생들이 집이라고 하는 존재가 실체가 없이 공하다고 하는 사실을 알면 집이 크든 너르든 있든 없든 거기에 집으로 인해서 어떤 핍박받는 문제는 하나도 없을 것 아니냐? 공한데 아파트가 다섯 평짜리면 어떻고, 50평짜리면 어떻고, 500평짜리면 무슨 상관입니까? 콧구멍만한 암자면 어떻고, 큰 절이면 무슨 상관입니까? 아무 상관없다 이겁니다. 그런 의미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모든 중생이 그렇게 되기를 원하라. 자기 생각이 아닙니다. 중생생각입니다. 그 다음에
2. 孝事父母(효사부모)에, 孝事로써 부모를 모심에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이
善事於佛(선사어불)하야, 부처님을 잘 섬겨요.
부모 모시는데 부처님 섬기는 마음으로 護養一切(호양일체)하며,
일체 중생들을 보호하고 공양하기를 원하라. 그 다음에
3. 妻子集會(처자집회)에, 처자가 모여 있을 때에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怨親平等(원친평등)하야, 처자만 가까운 것이 아니라, 모든 중생들이 처자가 가깝듯이 일체 사람들을 전부 평등하게 그렇게 처자처럼 여겨서
永離貪着(영리탐착)하야, 貪着이 영원히 소멸하기를 원하라. 그 다음 네 번째, 이것을 게송마다 번호를 붙이면 좋아요.
4. 若得五欲(약득오욕)인댄, 이것은 5욕이 財色身命壽(재색신명수)가 아니고, 眼耳鼻舌身(안이비설신)의 5욕입니다. 불교에는 그래요. 財色身命壽는 이쪽에 유교에 와가지고 표현한 것이지요. 만약 오욕을 얻을 때,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拔除欲箭(발제욕전)하야, 욕망의 화살을 뽑아서ㆍ욕망의 화살을 뽑아가지고서究竟安穩(구경안온)하며, 구경에 편안하기를 원하라. 모든 중생들이 욕심의 화살에서 뽑혀져서 끝까지 편안했으면 하는 그런 마음을 가져라 이 말입니다. 그 다음에
5. 妓樂聚會(기악취회)에, 노래 부르고 춤추고 파티하고 할 때에, 그럴 경우도 있잖아요. 그럴 경우에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이
以法自娛(이법자오)하야, 법으로써, 진리의 가르침으로써 스스로 즐겨요.
진리의 가르침으로 스스로 즐겨서
了妓非實(요기비실)하며, 그 재주나 기교나 기생이나, 이런 것이 실다운 것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기를 원하라. 그 다음 여섯 번째,
6. 若在宮室(약재궁실)인댄, 만약에 궁실에 있거든,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入於聖地(입어성지)하야, 聖地 = 성스러운 땅에 들어가서
永除穢欲(영제예욕)하며, 영원히 穢欲 = 더러운 욕망 제거하기를 원하라.
좋은데 들어가면 그런 생각, 예를 들어서 우리가 고급 호텔에 어쩌다가 갔다. 그러면 호텔에 들어가서 ‘아~, 호텔 좋구나.’ 하고 정신 빠지지 말고, 중생 생각하라. 이 말입니다. 거기에 들어갔을 때도 중생 생각하면서 ‘아~ 중생들이 성스러운 땅위에 들어가서, 내가 이 고급 호텔에 들어왔듯이 성스러운 땅에 들어와 가지고서, 일체 물들고 더러운 욕망에서 멀리 벗어났으면...’하는 그런 마음을 가지라. 이런 뜻입니다.
이것이 말하자면 아까 보살이 상상 할 수 있는 최상의 인격자가 되는 길을 물었고, 거기에 대한 답으로써 평소에 이런 마음가짐입니다. 중생에게 그런 좋은 집을 제공해주라는 말은 아닙니다. 네가, 보살이 좋은 집에 살 수도 있다. 宮室같은데 살 수도 있다. 살 수 있을 때 거기 정신 잃고, 그것만 그냥 즐길 것이 아니라, 그 순간 바로 중생을 생각하라. 중생이 아~ 이렇게 정말 성스러운 집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그런 마음가짐, 그 마음, 그 통 큰 마음 한번 잘 쓰면 일체 수승하고 묘한 그런 공덕이 따라온다. 이런 뜻이지요. 그 다음에 일곱 번째는
7. 着瓔珞時(착영락시)에, 영락구슬,
아주 호화로운 금 은 보화를 둘렀을 때에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이
捨諸僞飾(사제위식)하야, 전부 거짓으로 꾸미잖아요.
뭐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 그래서 짝퉁을 막 그냥 사가지고 남에게 잘 보이듯이 하고, 치장도하고, 무슨 수술도하고, -T V를 보다 보니까 어떤 男兒(남아)가 참 예쁘게 생겼어요. 얼굴 수술을 한 여남은 번 했대요.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것 전부 僞飾이 아닙니까? 거짓으로 꾸민 것. 모든 거짓으로 꾸민 것을 버려서
到眞實處(도진실처)하며, 진실한 곳에 이르기를 원하라. 예를 들어서 보살이 좋은 시계도 차고 좋은 차도 타고, 좋은 고급스러운 것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그랬을 때 모든 사람들이 거짓된 장엄을 다 버려 버리고, 진실하게 살았으면 하는 그런 생각을 하라. 이런 뜻입니다. 여덟 번째는
8. 上昇樓閣(상승누각)에, 누각에 올라갔을 때는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昇正法樓(승정법루)하야, 정법의 누각에 올라가서
徹見一切(철견일체)하며, 일체 존재를 사무쳐 보기를 원하라.
높이 올라가면 밑이 환하게 내려다보이지 않습니까? 밑이 환하게 내려다보일 때 그때는 ‘아~ 모든 중생이 이처럼 정법의 누각에 올라가 가지고서 일체를 꿰뚫어볼 수 있었으면’ 하는 그런 아주 간절한 중생을 향한 마음을 가지라. 그 다음에
9. 若有所施(약유소시)인댄, 만약에 베푸는 바가 있을진댄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이
一切能捨(일체능사)하야, 일체를 능히 버려서
心無愛着(심무애착)하며, 마음에 애착하는 바가 없기를 원하라.
중생들이 그런 생각을 좀 했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지요.
T V나 신문이나 뉴스 같은데 보면 참~ 어떻게 요즘 사람들이 그렇게 아주 영악해가지고 못된 짓 참~~ 입에 담을 수 없고, 재차 거론하기도 싫은 그런 못된 짓들이 무수히 신문지상에 오르내리지 않습니까? 그럴 때,
‘왜 저렇게 어리석은 생각을 할까? 왜 저런 안타까운 짓을 할까?’ 자식이 부모를 죽이지를 않나? 그 돈 많은 사람들이 형제끼리 서로, 우리나라에서 제일 돈 많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그것도 적다고 형제끼리,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만도 수10조인데 그것도 또 적다고 형 것인가 동생 것인가를 또 나눠먹자고 그렇게 소송을 한다든지, ‘어떻게 저렇게 살아야 되는가?’ 하는 생각을, 참 안타까운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우리 화엄행자ㆍ진정한 보살은 그런 상황을 보고도 마음에 애석해하고, 불쌍해하고, 연민심을 가지라하는 그런 내용이기도 하지요.
10. 衆會聚集(중회취집)에 當願衆生이
捨衆聚法(사중취법)하야 成一切智(성일체지)하며 ←(‘이 구절은 그냥 건너뛰시는데 어찌하여 한 분도 말을 않으실까?’)
11. 若在厄難(약재액난)인댄, 厄難을,
위험하고 아주 어려운 곳에 처해 있다면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隨意自在(수의자재)하야, 뜻을 따라서 마음대로 자유자재해서
所行無碍(소행무애)니라, (모든 중생이) 행하는 바가 걸림이 없었으면 하는 그런 마음을 가지라 이 말입니다.
(2) 出家受戒(출가수계)
捨居家時에 當願衆生이
出家無碍하야 心得解脫하며
入僧伽藍에 當願衆生이
演說種種의 無乖諍法하며
詣大小師에 當願衆生이
巧事師長하야 習行善法하며
求請出家에 當願衆生이
得不退法하야 心無障碍하며
脫去俗服에 當願衆生이
勤修善根하야 捨諸罪軛하며
剃除鬚髮에 當願衆生이
永離煩惱하야 究竟寂滅하며
着袈裟衣에 當願衆生이
心無所染하야 具大仙道하며
正出家時에 當願衆生이
同佛出家하야 救護一切하며
自歸於佛에 當願衆生이
紹隆佛種하야 發無上意하며
自歸於法에 當願衆生이
深入經藏하야 智慧如海하며
自歸於僧에 當願衆生이
統理大衆호대 一切無碍하며
受學戒時에 當願衆生이
善學於戒하야 不作衆惡하며
受闍黎敎에 當願衆生이
具足威儀하야 所行眞實하며
受和尙敎에 當願衆生이
入無生智하야 到無依處하며
受具足戒에 當願衆生이
具諸方便하야 得最勝法이니라
出家受戒, 출가해서 계를 받을 경우.
저것은(在家用心) 재가에서 마음 쓰는 것이고, 여기는 출가했을 경우.
12. 捨居家時(사거가시)에, 居家.
자기가 살고 있는 집을 버리고, 출가를 할 때에
當願衆生(당원중생)이, 마땅히 중생이
出家無碍(출가무애)하야, 집에서 나오는 데에 걸림이 없어서
心得解脫(심득해탈)하며, 마음에 해탈 얻기를 원하라.
13. 入僧伽藍(입승가람)에, 僧伽藍 = 가람이지요. 승가람에 들어갈 때에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演說種種의 無乖諍法(연설종종무괴쟁법)하며,
가지가지 乖諍이 없는, 어기고 다툼이 없는. 乖諍이 없는 그런 법 연설하기를 원하라. 乖諍의 반대는 화합이지요. 외부로 僧伽藍에 들어가면 우리가 승려가 된다는 뜻이니까, 승려라고 하는 것은 뭐지요? 화합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14. 詣大小師(예대소사)에, 큰스승이나 작은 스승에게 나아갈 때에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巧事師長(교사사장)하야, 師長 = 스승을 잘 섬겨서
習行善法(습행선법)하며, 善法을 익혀서 행하기를 원하며,
15. 求請出家(구청출가)에, 출가할 것을 청함에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得不退法(득불퇴법)하야, 不退法을 얻어서
心無障礙(심무장애)하며, 마음에 장애가 없기를 원하라. 그 다음에
16. 脫去俗服(탈거속복)에, 俗服을 벗어버리지요?
출가하면 속복 다 벗어버리고, 부목들이나 경비도 줘버리고 그럴 때,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이
勤修善根(근수선근)하야, 부지런히 선근을 닦아서
捨諸罪軛(사제죄액)하며, 죄의 멍에, 모든 죄의 멍에를 버리기를 원하라.
울력 복 입고 울력하다가, 울력 복벗어버리고 승복 입을 때도 그런 생각을 하라는 것이지요. 출가하면서 속복 벗어버린 때는 더 말할 나위도 없고요. 일체 행위가 전부 중생을 위한, 오로지 중생만을 향한 그런 마음가짐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17. 剃除鬚髮(체제수발)에, 수염과 머리를 깎을 때에 = 剃除할 때에,
이것을 우리가 무명초라고 그러지요. 머리를 우리가 “무명초” 그렇게 합니다.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이 뭐라고요?
永離煩惱(영리번뇌)하야, 번뇌 무명이지요. 번뇌 무명을 영원히 떠나서
究竟寂滅(구경적멸)하며, 究竟에 寂滅하기를 원하라.
머리 깎을 때도 항차 그런 생각을 하라 이 말입니다. 그 다음 열여덟 번째
18. 着袈裟衣(착가사의)에, 가사를 입을 때에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이
心無所染(심무소염)하야, 마음에 물든 바가 없어서
具大仙道(구대선도)하며, 大仙道 갖추기를 원하라.
大仙 = 부처님이지요. 불도 갖추기를 원하라.
19. 正出家時(정출가시)에, 바로 출가할 때에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이
同佛出家(동불출가)하야, 부처님이 출가하는 것과 같이해서
救護一切(구호일체)하며, 부처님은 그래서 출가해서 일체중생을 다 구호하잖아요. 그럴 때 일체 중생을 다 구호하기를 원하라.
20. 自歸於佛(자귀어불)에, 스스로 부처님께 귀의할 때에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이
紹隆佛種(소륭불종)하야, 부처의 종자를 이어받아,
佛種을 이어가는 것이지요. 우리가 紹隆三寶(소륭삼보) = 삼보를 잇사올제, 그렇게 하잖아요. 이어갈 때,
發無上意(발무상의)하며, 최상의 뜻 發하기를 원하라. 釋鍾. 우리가 석종이라고 그러잖아요. 그리고 釋씨라고 그러고요. 귀족이고요. 또 우리는 불족입니다. 부처의 종족이고ㆍ釋씨의 종족이고, 그래서 출가한 스님들은 무조건 성을 釋씨로 써야 된다는 것이지요. 그전에 언젠가 제가 말씀드렸지요.
청담스님이 이청담이라고 명함을 찍어가지고 대만에서 세계승려대회인가 할 때, 가서 명함을 돌렸어요. 육환장 떡~ 짚고 가사장삼입고, -그 스님은 폼을 잘 잡잖아요. 그렇게 딱~ 하고는 ‘내가 이런 사람이다.’ 하듯이 명함을 돌리니까 저~~ 밑에 처사들 앉는 자리로 안내하지요. 보니까 이청담이지, 석청담이 아니거든요. 대만 사람들 철저하거든요. 그래가지고 저~~ 밑에 처사들 앉는 자리에 쫓겨나서 앉아서 대회에 참석했다고 하는 그런 웃지 못 할 일이 있었습니다. 개인이야 중노릇을 잘하건 못하건 그것은 덮어놓고라도, 사실은 명함이라든지, 만약에 성씨를 써야할 경우라면, 법적인 경우는 안 되지요. 법적인 경우는 속성을 써야 되지만, 그렇지 아니한 경우는 항상 우리는 釋씨 성을 써야 됩니다. 그것이 紹隆佛種입니다. 부처의 종자를 이어가는 것이기도 하지요. 우리는 무조건 釋씨이고ㆍ釋鍾이고ㆍ佛族(불족), 부처의 종족. 부처의 가족. 그런 내용입니다. 또
21. 自歸於法(자귀어법)에, 스스로 법에 귀의할 때에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이
深入經藏(심입경장)하야, 經藏, 경장ㆍ율장ㆍ논장, 그러잖아요.
經藏에 깊이 들어가 가지고서
智慧如海(지혜여해)하며, 지혜가 바다와 같기를 원하라.
22. 自歸於僧(자귀어승)에, 스스로 승에 귀의할 때에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이
統理大衆(통리대중)호대, 대중을 統理하는 겁니다.
스님들 대개가 다 주지를 살거나ㆍ중요한 소임을 살거나 연세도 모두 있지, 그러니까 무조건 승려는 본래 타고나기를, 승려가 되면 무조건 좋든 싫든 지도자입니다. 좋든 싫든 불교계의 지도자라고요. 불교계의 인재입니다.
인재로서, 또는 지도자로써 그것을 당연히 갖춰야 됩니다. 그런 뜻입니다.
마땅히 중생이 大衆을 統理호대,
一切無碍(일체무애)하며, 모든 일에 걸림이 없기를 원하라.
23. 受學戒時(수학계시)에, 계를 受學할 때에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이
善學於戒(선학어계)하야, 계를 잘 배워서
不作衆惡(부작중악)하며, 온갖 악 짓지 않기를 원하라. 그 다음에
24. 受闍黎敎(수사리교)에, 사리의 가르침을 받을 때에,
우리가 교수사ㆍ삼화상ㆍ칠증사. 교수도 아사리인데요. 아사리도 번역하면 교수라고 하기도하고 그래요. 그래서 화상ㆍ아사리 이런 표현도 하고요. 수계식에는 당연히 등장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아사리의 가르침을 받을 때에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이
具足威儀(구족위의)하야, 중생들도 위의를 具足해가지고
所行眞實(소행진실)하며, 행하는 바가 진실하기를 원하라.
마음자리를 내가 무엇을 하든 오로지 중생을 향한 그 마음, 그 마음으로 전부 회향하라는 것입니다. 또
25. 受和尙敎(수화상교)에, 여기 아사리교하고 和尙敎하고 달리 해놨는데요. 화상과 아사리.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화상의 가르침을 받을 때, 우리는 일반적으로 삼화상ㆍ칠증사. 해가지고 전계사ㆍ갈마사ㆍ교수사 ←이렇게 해서 3화상하고 그 다음에 칠증사는 尊證師(존증사)라고 해가지고 일곱 분의 證師를 해서 구색을 그렇게 갖춥니다.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이
入無生智(입무생지)하야, 생멸이 없는 지혜에 들어가서
到無依處(도무의처)하며, 無依處에 이르기를 원하라.
26. 受具足戒(수구족계)에, 구족계를 받을 때에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이
具諸方便(구제방편)하야, 모든 방편을 갖추어서
得最勝法(득최승법)이니라. 最 勝 法 얻기를 원하라.
그 다음에 좌선할 때입니다.
(3) 坐禪時(좌선시)
若入堂宇ㄴ댄 當願衆生이
昇無上堂하야 安住不動하며
若敷床座인댄 當願衆生이
開敷善法하야 見眞實相하며
正身端坐에 當願衆生이
坐菩提座하야 心無所着하며
結跏趺坐에 當願衆生이
善根堅固하야 得不動地하며
修行於定에 當願衆生이
以定伏心하야 究竟無餘하며
若修於觀인댄 當願衆生이
見如實理하야 永無乖諍하며
捨跏趺坐에 當願衆生이
觀諸行法이 悉歸散滅이니라
坐禪時, 좌선할 때에도
27. 若入堂宇(약입당우)ㄴ댄, 선방에 들어간다. 이 것이지요. 그럴 때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이, 내가 선방에 들어가는데, ‘내가 선방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중생들이’
昇無上堂(승무상당)하야, 最上, 최고로 높은 당에 올라서
安住不動(안주부동)하며, 편안히 住해서 動하지 않기를 원하라.
예를 들어서 위빠사나는 뭐지요? 우리가 한발ㆍ한발 움직일 때마다 내가 발 움직이는 것. 그것을 생각하도록 되어있습니다. 심지어 호흡을, 하루가운데 그 많은 호흡을 하는데도 하나도 놓치지 말고, 그 호흡을 “예의주시하라.”그렇게 되어있습니다. 그것은 지극히 소승적인 것이지요. 여기 대승은 어떤 행위를 하든지에, 호흡을 하든지ㆍ법당에 들어가든지ㆍ선방에 들어가든지ㆍ화장실에 들어가든지, 어디를 가든지 간에 항상 중생을 생각하라.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위빠사나는 “자기하는 행위를 보라ㆍ예의주시하라.” 이렇게 되어있는데, 화엄경에서는 “중생을 주시하라ㆍ항상 중생의 마음을 꽂고 있으라.”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마땅히 중생이 安住不動하기를 원하라. 그 다음에 스물여덟 번째
28. 若敷床座(약부상좐)댄, 방석을 펼 수도 있지요. 좌선을 하려면 방석을 펴야지요. 床座를 많이 펴는데, 그럴 때도 중생, “상 펴는 곳에 마음을 두라.” 위빠사나는 그렇게 가르치는데, 화엄경은 아닙니다. 상을 펼 때 상 펴는 것 생각하지 말라. 무엇을요?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이
開敷善法(개부선법)하야, 좋은 법을 펴서
見眞實相(견진실상)하며, 진실한 모습 보기를 원하라. 마음이 거기에 가있으라. 이 말입니다. 상 펴는데 가있으면 안 됩니다. 그 다음에
29. 正身端坐(정신단좌)에, 몸을 바르게 하고 단정히 앉았을 때에,
그 때도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이
坐菩提座(좌보리좌)하야, 菩提座에 앉아서, 부처님이 깨달음을 성취하신 그 菩提座에 앉아서 心無所着(심무소착)하며, 마음에 집착하는 바가 없기를 원하라.
30. 結跏趺坐(결가부좌)에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이
善根堅固(선근견고)하야, 선근이 견고해져서
得不動地(득부동지)하며, 不動地 얻기를 원하라.
31. 修行於定(수행어정)에, 선정을 수행함에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이
以定伏心(이정복심)하야, 나만 선정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중생이 선정으로써 마음 항복받아가지고
究竟無餘(구경무여)하며, 究竟에 남음이 없기를 원하라.
32. 若修於觀(약수어관)인댄, 만약에 觀. 止觀(지관) 할 때 관이지요?
위빠사나, 관찰하는 것, 예의주시 하는 것, 또 마음 챙김, 이런 표현도 하지요. 그럴 때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이
見如實理(견여실리)하야, 如實한 이치. 모든 존재의 實相과 같은 이치를 보아서 永無乖諍(영무괴쟁)하며, 영원히 어기고 다툼이 없기를 원하라.
모든 존재의 실상대로, 실다운 이치대로 그러면
33. 捨跏趺坐(사가부좌)에, 가부좌를 풀고 일어날 때가 있지요. 가부좌를 풀 때에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이
觀諸行法(관제행법)이, 모든 행법이 悉歸散滅(실귀산멸)이니라.
모두 散滅로 돌아간다. 散滅로 돌아가지 아니함이 없다. 라고 하는 그런 것을 관찰하라. 관찰하기를 원하라. 그랬네요. 모든 중생이 그렇게 관찰했으면 하는 그런 서원을 가지라. 이런 말입니다. 그 다음에 行時라고 했습니다.
(4) 行時
下足住時에 當願衆生이
心得解脫하야 安住不動하며
若擧於足인댄 當願衆生이
出生死海하야 具衆善法하며
着下裙時에 當願衆生이
服諸善根하야 具足慚愧하며
整衣束帶에 當願衆生이
檢束善根하야 不令散失하며
若着上衣인댄 當願衆生이
獲勝善根하야 至法彼岸하며
着僧伽黎에 當願衆生이
入第一位하야 得不動法이니라
34. 下足住時(하족주시)에, 발을 내리고 서 있을 때에,
우리가 서 있을 때입니다. 그럴 때에도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이
心得解脫(심득해탈)하야, 마음에 해탈을 얻어가지고서
安住不動(안주부동)하며, 安住不動하기를 원하라. 그 다음에
35. 若擧於足(약거어족)인댄, 만약에 발을 들 때,
어디 가려면 발을 들어야 되겠지요? 그 때에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이
出生死海(출생사해)하야, 생사의 바다에서 벗어나가지고
具衆善法(구중선법)하며, 온갖 선법을 갖추기를 원하며, 그랬습니다. 이것 일일이 생각하면 더욱 좋고, 그렇게 낱낱이 우리가 나누지 않더라도 뭡니까? 자나 깨나 중생생각ㆍ가나오나 중생생각ㆍ앉으나 서나 중생생각. 그렇게 요약할 수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
36. 着下裙時(착하군시)에, 그랬습니다. 아랫도리, 아랫바지를 입을 때에, 밑에 바지를 입을 때에도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이
服諸善根(복제선근)하야, 모든 선근을 입어서
具足慚愧(구족참괴)하며, 부끄러움을 구족하기를 원하라. 그 다음에
37. 整衣束帶(정의속대)에, 옷을 단정히 하고, 고르고 허리띠를 묶을 때에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이
檢束善根(염속선근)하야, 선근을 檢束 = 묶어가지고서
不令散失(불령산실)하며, 하여금 散失지 않기를 원하라.
38. 若着上衣(약착상의)인댄, 만약 윗옷을 입게 된다면 그 때도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獲勝善根(획승선근)하야, 수승한 선근을 얻어서
至法彼岸(지법피안)하며, 저 법의 彼岸에 이르기를 원하라. 그 다음에
39. 着僧伽黎(착승가리)에, 승가리는 대의라 그러지요. 5조, 7조,
5조는 소의, 7조는 중의, 9조에서 25조까지를 대의라 그래요.
승가리를 입을 때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이
入第一位(입제일위)하야, 제 1위에 들어가 가지고, 모든 중생이 전부 제 1지위에 들어가 가지고서
得不動法(득부동법)이니라. 움직이지 않는 법 얻기를 원하라. 원할지니라. 늘 중생을 향한 마음입니다. 그 다음에 用便洗手입니다.
(5) 用便洗手(용변세수)
手執楊枝에 當願衆生이
皆得妙法하야 究竟淸淨하며
嚼楊枝時에 當願衆生이
其心調淨하야 噬諸煩惱하며
大小便時에 當願衆生이
棄貪瞋癡하야 蠲除罪法하며
事訖就水에 當願衆生이
出世法中에 速疾而往하며
洗滌形穢에 當願衆生이
淸淨調柔하야 畢竟無垢하며
以水盥掌에 當願衆生이
得淸淨手하야 受持佛法하며
以水洗面에 當願衆生이
得淨法門하야 永無垢染이니라
用便洗手, 용변 보고 세수하는 일입니다.
40. 手執楊枝(수집양지)에, 손으로 버드나무 가지, 옛날에는 칫솔이 없었잖아요. 그래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서, 그것이 충치예방도 되고 또 부드러워서 치아 칫솔질 하는데 버드나무 가지로 썼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선방에서 그런 칫솔을 썼었습니다. 칫솔 나온 지가 얼마 됩니까? 또 소금가지고 쓰기도 하고요. 또 모래가지고 쓰기도 하고요. 이렇게 여법하게 하는 스님들 보면 楊枝를 꼭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것이 쉽게 닳지도 않습니다. 하나 만들어 놓으면 한참 씁니다. 부드러운 버드나무 가지를 잘라서 끝을 톡톡톡 망치를 가지고 두드려요. 두드리면 그 속에 연한 부분은 다 빠져나가고, 좀 견고한 부분이 실올처럼 남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치아 사이에 끼어있는 음식물도 훑어내기도 하고, 그렇게 합니다. 그래서 楊枝를 씹어요.
手執楊枝에, 버드나무 가지를 손으로 잡을 때에,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皆得妙法(개득묘법)하야, 다 妙法을 얻어서
究竟淸淨(구경청정)하며, 구경에 청정하기를 원하라. 그 다음에
41. 嚼楊枝時(작양지시)에, 楊枝를 씹을 때에, 칫솔질 하는 겁니다.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이, 사미계에도 나오지요,
其心調淨(기심조정)하야, 그 마음이 고르고 청정해서
噬諸煩惱(서제번뇌)하며, 씹을 噬자입니다. 모든 번뇌를 씹어서 없앰.
없애기를 원하라.
42. 大小便時(대소변시)에, 대소변을 볼 때에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棄貪瞋癡(기탐진치)하야, 탐 진 치를 버려가지고서
蠲除罪法(견제죄법)하며, 罪法을 모두 버린다. 모두 제거한다. 라고 하는 그런, 중생이 좀 제발 그렇게 했으면, 탐 진 치를 좀 버렸으면, 내가 대소변을 버리듯이 모든 중생이 좀 탐 진 치를 이렇게 버렸으면 하는 그런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43. 事訖就水(사흘취수)에, 일을 마치고 물에 나아갈 때에 當願衆生이
出世法中(출세법중)에, 출세하는 법 가운데
速疾而往(속질이왕)하며, 빨리 가기를 원하라.
대소변 보고, 세수하고, 양치질하고, 일체 일들을 이렇게 그냥 하지 말라는 겁니다. 오로지 중생만을 생각하는 그 마음으로 하는 것이 보살이다.
그 다음에
44. 洗滌形穢(세척형예)에, 더러운 것을 洗滌할 때에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이
淸淨調柔(청정조유)하야, 청정하고 調柔해서, 부드럽고 우아해서
畢竟에 無垢(필경무구)하며, 필경에 때가 없기를 원하라.
우리가 뒷물하잖아요. 뒷물하는 이야긴데요. 이런 것들도 그냥 무심코 하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중생과 연결시켜서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참 복 지을 마음이지요. 이것이 복 지을 用心입니다. 우리는 돈 안 들고 마음만 그렇게 썼는데, 그것이 一切勝妙功德(일체승묘공덕)으로 돌아온다. 앞에서(36-1)그런 이야기 했잖아요. 勝妙한 功德으로 돌아오는 마음 씀씀이다. 이것은 마음만 쓰면 되는 것이지, 밑천 드는 것은 아니잖아요. 밑천 들려야 들 것도 없고요 또. 가진 것도 없으니까요.
45. 以水盥掌(이수관장)에, 물로써 손바닥을 씻음에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이
得淸淨手(득청정수)하야, 화장실에 갔다 오면 우리가 손을 씻잖아요.
그 때도 모든 중생이 청정한 손을 얻어서
受持佛法(수지불법)하며, 불법을 受持하기를 원하라.
자기 손 씻으면서, 자기 손은 어디 가버리고 오로지 중생이 청정한 손으로 불법을 受持했으면, 그런 마음을 가지라는 겁니다.
46. 以水洗面(이수세면)에, 물로써 얼굴을 씻음에 當願衆生이
得淨法門(득정법문)하야, 청정한 법문을 얻어서
永無垢染(영무구염)이니라. 영원히 구예가 없기를 원할지니라.
그 다음에 乞食입니다.
(6) 乞食(걸식)
手執錫杖에 當願衆生이
設大施會하야 示如實道하며
執持應器에 當願衆生이
成就法器하야 受天人供하며
發趾向道에 當願衆生이
趣佛所行하야 入無依處하며
若在於道인댄 當願衆生이
能行佛道하야 向無餘法하며
涉路而去에 當願衆生이
履淨法界하야 心無障碍하며
見昇高路에 當願衆生이
永出三界하야 心無怯弱하며
見趣下路에 當願衆生이
其心謙下하야 長佛善根하며
見斜曲路에 當願衆生이
捨不正道하야 永除惡見하며
若見直路인댄 當願衆生이
其心正直하야 無諂無誑하며
見路多塵에 當願衆生이
遠離塵坌하야 獲淸淨法하며 ← 36-2
↓ 36-3
見路無塵에 當願衆生이
常行大悲하야 其心潤澤하며
若見險道인댄 當願衆生이
住正法界하야 離諸罪難이니라
47. 手執錫杖(수집석장)에, 밖으로 나갈 때는 錫杖을 손에 들고 나가지요. 소위 “육환장”이라고 해가지고 이 錫杖이 이 화엄경에부터 실려 있는 걸로 보면 상당히 오래전부터 스님들은 석장을 짚었던 걸로 생각이 듭니다.
늙은이가 아니라 하더라도 손에 석장을 듦에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이
設大施會(설대시회)하야, 큰 施會. 베푸는 회. 요즘 더러 그런 것.
노인들 모셔놓고 밥을 드린다든지 음식 제공하는 그런 일들을 우리가 사찰에서 많이 하지 않습니까? 그런 것이 大施會입니다. 대시회를 베풀어서
示如實道(시여실도)하며, 如實한 道 보이기를 원하라. 그 다음에
48. 執持應器(집지응기)에, 발우를 잡을 때에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이
成就法器(성취법기)하야, 法器를 성취해서, 우리가 밥그릇을 잡으면서도 ‘아, 중생이 법의 밥그릇을 성취해야 할 텐데ㆍ법의 그릇을 성취해야 할 텐데...’
受天人供(수천인공)하며, ‘법의 그릇을 성취해서 모든 중생이 인천의 공양 받아야 할 텐데...’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49. 發趾向道(발지향도)에, 발꿈치 趾자입니다. 發趾.
발꿈치를 發해서 길에 향할 때에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이
趣佛所行(취불소행)하야, 부처님께서 행한 바에 나아가서
入無依處(입무의처)하며, 의지함이 없는 곳에 들어가기를 원하라.
50. 若在於道(약재어돈)댄, 만약에 길에 있다. 저~ 기 밖에 나가서 길에 있다. 라고 할 때,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能行佛道(능행불도)하야, 능히 불도를 행해서
向無餘法(향무여법)하며, 無餘法향하기를 원할지니라.
51. 涉路而去(섭로이거)에, 길에 들어가서 갈 때ㆍ길을 걸어가고 있을 때,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履淨法界(이정법계)하야, 청정한 법계를 밟아서
心無障碍(심무장애)하며, 마음에 장애가 없기를 원하라. 또
52. 見昇高路(견승고로)에, 높은 길을, 가다보면 비탈길을 올라가게 되겠지요. 높은 길을 올라가게 됨을 볼 때에, 그 때는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이
永出三界(영출삼계)하야, (높이 올라가니까) 모든 중생이 삼계에서 영원히 벗어나서 心無怯弱(심무겁약)하며, 마음에 怯弱이 없기를 원하라. 그 다음에 내리막길을 보는 겁니다.
53. 見趣下路(견취하로)에, 내려가는 길에 나아감을 볼 때에,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其心謙下(기심겸하)하야, 그 마음이 謙하여서, 아~, 이것은 중생들이 좀 겸손하고 하심하고 사양하고 양보하는 그런 마음을 좀 가져가지고서
長佛善根(장불선근)하며, 부처님의 선근 기르기를 원하라. 그 다음에
54. 見斜曲路(견사곡로)에, 이것은 구부러진 길이지요.
비뚤어지고 구부러진 길을 볼 때에, 그 때도 또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이 그냥 있는 것이 아니고,
捨不正道(사부정도)하야, 중생들이 좀 부정한 길을 버리고, 좀 정직하게 살았으면, 구부러진 길을 보면서 아~, 중생들의 마음이 저렇게 구부러져 가지고 전부 속이고 사기치고 그저 부정부패 T V만 틀었다 하면 그저 그런 이야기고, 신문만 펼쳤다 하면 세상에 그런 이야기 아닙니까? 구부러진 길을 볼 때 마땅히 중생이 부정한 도업의 길을 버리고,
永除惡見(영제악견)하며, 영원히 악한 견해 버리기를 원할지니라.
55. 若見直路(약견직론)댄, 가다보면 곧은 길을 만날 수 있지요.
곧은 길을 보게 되면,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其心正直(기심정직)하야, 그 마음이 정직해가지고서
無諂無誑(무첨무광)하며, 諂誑 = 속이거나 거짓되거나 사기치고 부정과, 이런 일이 없기를 원하라. 길만 보고도 그런 생각을 떠올린다는 것이지요. 또
56. 見路多塵(견로다진)에, 길에 먼지가 많다 이 말입니다. 가물어가지고 먼지가 푹신푹신 날 수도 있지요? 그 때는
當願衆生이, 마땅히 중생들이
遠離塵坌(원리진분)하야, 온갖 티끌, 마음에 번뇌를 멀리 떠나서
獲淸淨法(획청정법)하며, 청정한 법을 얻기를 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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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若敷床座댄 當願衆生이 開敷善法하야 見眞實相하라...마땅히 중생이 좋은 법을 펴서 진실한 모습 보기를 원하라][見路多塵에 當願衆生이 遠離塵坌하야 獲淸淨法하라...길에 먼지가 많을 때에는 마땅히 중생들이 마음에 번뇌를 멀리 떠나서 청정한 법을 얻기를 원하라]..釋대원성 님! 수고 하셨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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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 _()()()_
云何用心 ,能獲一切勝妙功德...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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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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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
고맙습니다._()()()_
자나깨나 중생생각하라,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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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대원
;자나깨나 중생 생각,앉으나 서나 중생 생각.가나 오나 중생 생각
일체처 일체시에 當願衆生---
하~~ ... _()_
나무대방광불화엄경 정행 고맙습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手執錫杖 當願衆生 設大施會 示如實道
감사합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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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덕분입니다. 대방광불화엄경 ()()()
자나깨나 중생 생각,앉으나 서나 중생 생각.가나 오나 중생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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