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측에 존재하고 있는 대북지원 민간단체들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곳 가운데 하나인 '우리민족 서로돕기 운동(이하 서로돕기운동)'. 지난해로 출범 10년째를 맞이한 서로돕기운동은 출범 11년째를 맞아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민간단체 운동은 북한의 어려운 경제 상황을 돕기 위한 인도적 지원이었다고 할 수 있다. 서로돕기 운동의 고민은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북을 돕는 운동이 단지 어려운 고비를 넘기기 위한 지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북이 그 도움으로부터 재생산 구조를 갖출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일시적으로 쌀과 비료, 약 등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북이 스스로 농업생산량을 늘리고, 약을 직접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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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의 이용선 사무총장 ⓒ민중의소리 이재진 기자 |
이런 이야기를 듣기 위해 이용선 사무총장을 만났다. 이용선 사무총장은 말 그대로 ‘눈코 뜰 새’없이 바빠 보였다. 활발하게 활동을 펼치고 있다는 것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었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기자는 고민이 생겼다. 제한된 시간 내에 많은 이야기를 듣기 위해 많은 질문을 해야 했는데, 이용선 사무총장의 대답이 너무나 길어 많은 질문을 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기사를 작성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이용선 사무총장의, 그리고 함께 서로돕기 운동을 꾸려가는 사람들의 고민이 그만큼 많고 풍부하다는 반증이 된다. 풀어내고 싶은 이야기가, 자랑하고 싶은 이야기가, 알리고 싶은 이야기가 많으면 간단명료한 대답이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용선 사무총장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리고, 그가 풀어놓는 ‘변화를 모색하는 고민’은 그만큼 풍부했다. 그리고 자신감이 넘쳤다. ‘여타 복지단체들처럼 10만명을 모아보는 것이 꿈이지요’라고 말하는 그의 눈에 모든 고민과 자신감의 빛이 여과 없이 드러났다.
말 그대로 ‘최선을 다한다’가 이용선 사무총장에게서 받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는 겸손함도 잊지 않았다. 사무총장을 맡으면서 고민은 없었냐고 물었더니 “내가 특별한 비전과 전망을 제대로 갖고 있지는 않았지만 ‘상황이 요구하니까 회피할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는 대답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10년째 사무총장직을 맡고 있는 사람다웠다.
2.13합의 이후, 다시 활력을 찾고 있는 ‘우리민족 서로돕기 운동’의 변화를 조금이나마 자세하게 들여다 볼 수 있었던 시간. 그 시간을 풀어본다.
- 사무총장은 언제부터 했나? 96년 11월경에 시작했다. 그 당시에는 이렇게 오래할 줄 모르고, 기존에 준비하고 있던 사람들을 돕는 차원에서 결합했다. 96년 강릉 잠수함 사건 이후 남북관계가 상당히 어려워졌고, 그런 상황에서 북을 돕는 운동을 조직하기 힘들어졌다. 당연히 대북지원운동은 위축되었고, 당시 초대 사무총장을 지냈던 분이 정세에 영향을 안 받을 수 있는 종교계 단체로 가셨다. 이후 사무총장이 공석으로 있어서 요청을 두어 달 받았는데 고민을 하다가 맡게 되었다.
- 고민이 쉽잔 않았겠다. 정세도 어려워지고 당시 북이 최악의 상황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기도 하고 경제가 파탄지경이라고 이야기했다. 그야말로 20세기 최대의 비극이라고 이야기할 정도의 상황이어서 이런 문제들에 대해 책임 있게 대응하려는 입장과 자세가 없이는 맡을 수 없는 것이었다.
인도적 지원을 통해 북의 경제적 어려움을 완화시키는 노력과 더불어 북에 대한 오랜 냉전의 벽을 허물어 화해를 이루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은 공감을 했지만, 내가 이 일에 몸을 담아야 하는가는 판단을 못하고 고민을 많이 했다.
결과적으로 하게 되었는데, 과제를 회피하기 어려웠다. 내가 특별한 비전과 전망을 제대로 갖고 있지는 않았지만 ‘상황이 요구하니까 회피할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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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바쁜 활동은 많은 고민의 반증이기도 하다. ⓒ민중의소리 이재진 기자 |
-작년으로 서로돕기운동이 출범한지 10년이 되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는데, 서로돕기 운동도 올해부터 새로운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지금까지 어떤 활동들을 해 왔고, 어떤 변화를 준비하고 있나. 우리민족 서로돕기 운동의 첫 출발은 인도주의 운동을 국민운동으로 확산시키고 문을 여는, 일종의 물꼬트기, 창구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통해 남과 북의 대중적인 화해기반, 교류의 물꼬, 흐름을 만드는 것이다. 그 결과, 정부 간의 관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 한 상태에서 그야말로 남북 관계의 실낱같은 길을 열어왔고, 그를 통해 대중들의 화해와 협력의 기운들을 만들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 운동은 개별단체라기 보다는 연대운동체나 연합기구적 성격을 띠었다. 그러던 것이 시간이 지나고 남북관계의 물꼬가 터지면서 종단과 각 기관들이 교류, 협력, 지원의 직접적인 주체로 나서면서 우리는 점점 개별단체의 성격이 강화되어 왔다.
그 다음부터는 프로젝트 컨소시엄 역할로 발전해왔는데, 좋은 사업을 기획하고 뜻있는 단체나 기관들을 컨소시엄으로 묶고, 우리는 기획과 운영을 하는 것으로 역할이 변모한 것이다. 초기에는 이렇게 많은 대중과 단체, 지자체들이 대북지원과 협력의 주체로 나서도록 견인한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정상회담 이후로 남북교류가 여러 영역으로 넓어졌다. 당국교류, 민간교류, 기업 교류부터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과 같이 남북 교류와 협력의 틀이 확 넓어진 것이다. 그 속에서 우리 역할이 무엇인가를 고민해왔던 과정이 있다.
현재 북은 지정학적 조건과 내부의 경제문제, 체제 문제 등 때문에 인도적 위기들이 단시일 내에 극복되기가 어렵다. 이런 상황을 구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길이 없나 고민하다가 2004년부터 경제적 위기와 인도적 어려움을 개선할 수 있는 담론을 조금씩 고민해왔다. 그것이 북의 개발을 지원하는 문제다. 물론 인도적 지원과 병행 추진하는 것인데, 구조적인 개발로 발전시킬 수 있는 담론과 실험들을 추진하게 된 것이다.
즉, 먹고사는 문제, 건강 문제와 직결된 농업과 축산, 보건의료, 제약 사업 등의 분야를 정부가 정책적, 제도적으로 결합해서 이것을 체계적이고 구조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을 모색하도록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다.
작년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 10주년을 맞아 지난 10년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10년을 생각하면서 던진 고민의 화두가 그것이었다. 장기적으로는 남과 북의 정치 경제적 통합을 추구해야 하는데, 경제통합과 사회통합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성숙되지 않고는 정치적, 군사적 통합이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북한의 경제적 낙후성을 극복할 수 있는 경제개발이 필요하다고 본다. 또, 경제 재건 과정에 또 하나 중요한 영역이 사회적 분야인데, 인간의 삶과 직결된 분야에 개발지원을 해서 인도적 위기를 구조적으로 극복해 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이 북의 근본적인 경제개발과 연결될 때 자연스럽게 궤도에 진입할 것이다.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춰보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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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환하게 웃고 있던 이 사무총장은 인터뷰가 진행되는 내내 진지함을 잃지 않았다. ⓒ민중의소리 이재진 기자 |
이런 일을 하기 위해서는 남이나 북이나 준비가 있어야 한다. 의식과 제도, 관행, 시스템, 인재양성 등이 준비되는 정도에 맞게 성숙되고 발전할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북을 오래 상대하고 여러 문제의식과 신뢰의 기반을 가진 우리가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데 대한 하나의 요체로 보고 있다. 현재는 정책 운동체인 평화나눔센터를 중심으로 평화적 구조들이 안착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그것을 위해서 시민사회와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담론과 방향을 꾸준히 모색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담론 수준을 뛰어넘어서 현재와 미래를 연결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부의 각 부처들이 남북의 경제통합 관점에서 변화발전 시킬 정책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알고 있기로는 북한 사회는 제로 베이스(zero-base)로 놓고 계획을 짜고 있다. 일방적인 계획이고, 현실성이 많이 떨어진다고 본다.
또, 북핵 이후 모든 것을 유보시켜 놓았는데, 북핵의 해결이라는 것은 장기적 과정이다. 이전과 이후로 두부 자르듯이 잘라놓을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단계적으로 계단을 밟아나갈 수 있는 연결전략 관점이 필요하지 않나. 그것을 구체화 하는데 나름대로 아이디어와 정책을 개발해 나가고 있다.
- 구체적인 사업에 그런 문제의식을 녹여내는 것이 필요할텐데. 현재 하고 있는 사업은 크게 몇 가지 분야가 있다. 농업, 축산, 보건의료, 제약, 교육 분야 등등. 최근에는 연대사업으로 겨레의 숲이 산림녹화 사업을 하고 있다. 이를 발전시키는 것인데, 예를 들어 농업분야의 경우 소위 지자체와 공동 협력의 틀을 만들고 여러 가지 실험을 많이 하고 있다. 벼농사의 경우, 남쪽의 기계화된 농법과 연계해서 북의 현지적합성 실험을 하는 것이다.
북의 협동농장 체제는 여러 가지 비효율성도 있지만 효율성도 있다. 지금 남측의 소농들은 나이든 노인들이 대부분인데, 운영에 어려운 부분이 있지 않나. 대농, 부농이 아니면 기계화가 되기도 어렵고. 그래서 농가의 부채가 생긴다. 그런데 북은 집단주의 영농시스템이라 기계와 연결이 되면 남측의 소농시스템이 갖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생산성의 증대효과 뿐 아니라 생산체제와 농업기계가 접맥되는 경험도 축적할 수 있다. 이런 것들에 대한 보다 정책적인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축산분야 같은 경우도 개인이 개별적으로 닭이나 돼지를 잘 키우는 방법도 있겠지만 산업적인 차원으로 발전시키기 어려운 부분이 있지 않나. 그런 것들을 국가적 차원에서 해결하려면 축산 경협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조그만 축산시설을 지어준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 사료의 조달 시스템, 협력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건 의료 분야도 단지 제약 공장 사업을 하면서 단지 공장을 지어주는 것이 아니라 재생산 구조를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북이 자체 제도 내에서 백 퍼센트 자구 못하는 것을 협력 방식으로 스스로 재생산 구조로 갈 수 있도록 실험하는 사례들을 만들어가고 있다.
IT분야도 기초는 든든하나 세계 시장과의 접촉이 별로 없어 응용분야가 뒤져 있다.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교육센터를 만들어 북에 응용기술들을 이전하고 교육시키면,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교수 인력으로 확산시키는 일도 하고 있다.
이런 여러 사업들을 통해서 북이 개혁개방을 하는데 있어 일정한 단서와 문제의식을 제공하고 준비하는 데에 일조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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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설명은 앞으로의 서로돕기 운동본우의 활동에 많은 기대를 갖게 했다. ⓒ민중의소리 이재진 기자 |
- 그런 활동을 하는데 있어 어려움은 없나. 어려운 점이기도 하고 과제이기도 한데, 북은
복지사업에 접근하는 것을 좀 꺼려한다. 고아원이나 급식 사업 같은 것인데, 북도 하나의 국가고 아이들 급식 등은 자신들이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의 경우 그런 것을 지원해야 호응도 높고 참여도 쉬운 상호 입장 차이가 있다.
개발 사업 같은 경우 북은 어차피 그 길로 가야 하니 긍정적인데 남측의 일반 국민들이 볼 때는 무거운 주제지 않나. 당장 아이들이 굶어죽고 있으니 식량을 주자, 약을 주자 그러면 호응이 좋은데 북은 별로고, 그런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제약 사업을 복원하자는 식의 접근을 좋아하는데 그러다보니 일반국민들의 참여는 저조해진다.
또, ‘정부가 대규모로 지원을 하니까 경제적인 어려움은 다 해결된 것이 아닌가’, 이런 식으로 국민들 관심도가 떨어지는 것도 또 하나의 어려운 요소다. 북은 북대로 어려움이 있고, 남은 남대로 어려움이 있다. 이렇게 되니 뜻 있는 큰 손들의 참여는 있으나 개미군단의 참여가 미진하다. 이런 것이 답답함이고, 어려움이다.
그래서 북도 설득하고, 남도 설득해서 많은 개인들이 인도주의적 협력과 활동에 나설 수 있도록 넓혀볼 수는 없을까 고민하고 있다. 복지 자선단체들 보면 10만명도 조직하고 하는데, 그런 것이 우리의 꿈이다.
- 그래도 많은 보람을 느낄 것 같다. 놀라운 기적이라는 것이 있지 않나. ‘자고 나니 세상이 바뀌더라, 신분이 바뀌더라’, 이런 것 말이다. 97년에 북 돕기 운동을 하면서 ‘
우공이산’이라는 것을 느꼈다. 당시 YS정부에서 북 돕기 운동에 대한 규제가 있었다. 북도 남측 정부에게 손을 안 내밀었고. 그 와중에 개미군단들이 북돕기 운동을 펼쳐서 3~400만의 국민들이 그 운동에 참여했다.
불과 몇 달 전에 간첩 잡는다고 궐기대회를 하는 등 살얼음판 이었음에도 죽어가는 동족을 살린다고 수많은 일반 국민들이 참여하는 놀라운 기적을 보면서 ‘작은 개인의 행위가 본인의 생각과 나라 전체의 정책을 바꾸고 남북 간 상호 이해가 높아지는구나’ 생각했다. 그 때 이 인도주의 운동의 의미를 찾았다.
물론 북에 대해 상당한 비판이 있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더불어 살아야 하고, 보살펴야 하는 우리의 동족이라는 인식의 전환, 화해 협력이 시대의 추세가 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기적을 느낀다.
/ 김영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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