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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이 될 뻔한 사람." 이 말은 파스칼이라는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이며 문학자이며 철학자를 이야기할 때 가장 잘 나오는 말이다. 타고난 어린 천재 파스칼은 1623년 프랑스의 오베르뉴 지방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수학에 비상한 능력을 보였다. 어릴 때부터 허약했던 그는 과로하지 않도록 집에만 갇혀 있었다. 그리고, 파스칼의 아버지는 아들의 교육에 매우 신중해서, 너무 빠른 시기에 아이의 머리 속에 기성 지식을 채워 넣는 것은 좋지 않으므로, 먼저 파스칼의 눈을 자연 속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현상에다 돌리기로 하고, 라틴어와 그리스어는 파스칼이 12세가 될 때까지, 수학과 과학은 15세가 될 때까지 가르치지 않으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교육 방침이 적절했던지 자라면서 파스칼은 모든 현상에 흥미를 나타내었다. 그런데, 학습에서 수학을 배제시킨 것이 오히려 소년 파스칼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가정교사에게 기하학의 특성에 관하여 질문을 하고 노는 시간을 아껴서 수학 공부를 하는 등 수학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그 이후 청소년기의 파스칼의 수학적인 성취는 놀라운 것이었다. 13세 때 파스칼의 삼각형이라고 알려진 수의 피라미드를 발견하였다. 14세 때 파스칼은, 나중에 프랑스 학술원이 된 프랑스 수학자 단체의 매주 한 번 모이는 모임에 참여하였다. 16세 때 그는, 데카르트가 소년의 작품으로 도저히 믿을 수 없고, 아버지의 것임이 틀림이 없다고 추측한, 원추 곡선에 관한 작은 논문에서 중요한 정리를 발표했다. 파스칼의 정리라고 알려진 이 정리는 "한 원뿔 곡선에 내접하는 6각형의 대변의 교접은 동일 직선 위에 있다"라는 것이며, 사영 기하학의 기본 정리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그림 2를 참고하기 바란다. 17세 때, 그는 원뿔 곡선에 관한 한 논문에서 이 정리를 이용하여 400개의 명제를 유도하였다. 18세 땐가 19세 때에는 최초의 계산기를 발명하였는데, 그것은 르왕에서 정부의 회계감사를 하고 있었던 부친을 돕기 위하여 고안되었다. 21세 때 기압에 관한 토리첼리의 책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의 비범한 재능을 물리학에 사용하기 시작한 결과 유체의 압력과 부피에 관한 "파스칼의 법칙"이 오늘날 고등학교에서 물리를 배우는 모든 학생에게 알려지고 있다. 사람을 주눅들게 하는, 그의 12살부터 20대 초반까지의 업적은 마치 진정한 천재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마차 사고 파스칼이 "수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이 될 뻔한 사람"이라는 별명이 붙게 만든 것은 그의 허약한 체질과 약간은 광적인 종교적 명상이었는데, 1650년에 이르러 급기야 수학과 과학의 연구를 중단하기에 이른다. 파스칼이 이런 종교적 명상에 빠져 든 것은 17세기의 시대 상황과도 관계가 깊다. 이 시기는 유럽에서 기독교의 여러 종파가 생겨나고, 서로 격투를 벌이던 시기였다. 어쨌든 그 후 3년 간 연구를 중단했던 파스칼은 다시 수학으로 돌아온다. 이 시기에 그는 "수삼각형론"을 저술하였고 유체의 압력에 관한 여러 실험을 행하였으며, 페르마와 서신 왕래를 통하여 확률의 수학적 이론의 기초를 세우는데 노력했다. 그런데, 다시 수학적인 재능을 꽃피우려는 그 순간에, 그를 수학에서 완전히 떠나게 만드는 사건이 일어났다. 1654년 말 그는 사두마차를 타고 달리고 있었는데, 말의 고삐가 풀려 버렸다. 선두의 말은 뉘일르의 다리 난간으로 돌진했으나, 다행히 그는 가죽끈이 끊어지는 바람에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다. 이처럼 행운으로 참변을 면하였다는 사실은 파스칼처럼 신비주의적 기질을 가진 사람에게 병적인 자기 분석을 하도록 부추겼고, 그는 이 사건을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서 몸을 빼라는 하늘의 경고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는 조그만 양피지 조각에 신비적인 신앙의 감정을 써서 이후부터 그것을 몸에서 떼지 않고 지니고 다녔으며, 신학의 문제에 더욱 집착하게 되었다. 거기다가 만년에는 못을 박은 벨트로 몸을 감고, 육체를 괴롭히거나 자신의 신앙심이 충분히 경건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팔꿈치로 벨트를 때렸다고 한다. 위대한 치통 운명의 마차 사고 이후에 파스칼은 자기의 구원과 인간의 비참함에 관한 문제에 대해 몰두하면서 죽을 때까지 단 한번을 제외하고는 수학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단 한번 파스칼을 수학의 세계로 잠시 돌아오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지독한 치통이었다. 요즘이야 치과에서 간단히 치료를 받으면 되는 일이지만, 그 때 당시의 치과는 병원이 아니라 거의 대장간 수준이었다. 심약한 파스칼이 이발사의 핀셋에 치아를 맡기지는 않을 테고, 그냥 치통을 견디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어쨌든, 치통으로 밤잠을 못 이루던 어느 날(1658년) 밤에 파스칼은 사이클로이드를 생각하면서 고통을 잊으려고 했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이런 것을 생각하면 치통에 두통까지 생길 일이지만, 그는 이런 것을 생각하면서 고통이 사라지는 것을 경험했다고 한다. 그는 이것을 영혼의 일을 제쳐놓고 사이클로이드의 일을 생각해도 된다는 하늘의 계시라고 해석하고 생각을 진행시켰다. 8일간을 사이클로이드 문제에 몰두한 결과, 그에 관한 많은 중요한 문제를 푸는 데 성공하였다. 이 일은 인류 역사상 '치통'이 수학에 공헌한 처음이자 마지막 사건이다. 여기서 잠깐 사이클로이드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자. 그림 3과 같은 곡선을 사이클로이드(cycloid)라고 부르는데, 원이 직선 위를 구를 때 원 위의 한 점의 자취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수학적·물리학적 특성을 매우 많이 가지고 있는 이 곡선은 미적분학의 초기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갈릴레오는 이 곡선에 관심을 보인 최초의 사람으로 그것을 다리의 아치에 이용되도록 추천한 바 있다. 곧 바로 그 곡선의 한 아치 아래 면적이 구해졌고 접선을 작도하는 방법이 발견되었다. 이러한 발견으로 인하여 수학자들은 여러 가지 직선을 축으로 하여 사이클로이드의 한 아치를 회전시켜서 얻어진 회전체의 표면적과 체적에 관한 문제를 고찰하게 되었다. 그러한 문제들은 도형의 중심에 관한 다른 문제들과 마찬가지로 파스칼에 의해서 풀렸고, 약간의 결과가 다른 수학자들에게 난제로서 제시되었다. 파스칼의 풀이는 미적분학 이전의 불가분량법에 의하여 이루어졌고 오늘날 미적분학 강의 접하는 많은 정적분 계산과 동등하였다. 사이클로이드는 많은 매력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고 또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켜서 '기하학의 헬레네', '분쟁의 씨'라고 불린다.
도박꾼의 하찮은 질문 시간적인 순서로 따지면 마차 사고 이전에 있었던 일이다. 메레(Chevalier Mèrè)라는 유능하고 경험이 많은 도박꾼이 있었는데, 그는 이전까지 '득점의 문제'에 대한 그 때까지의 추론이 도박을 하면서 관찰한 자신의 경험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득점의 문제'란 일정한 점수를 따면 끝내기로 하고 도박을 시작했는데, 중간에 갑자기 그만두어야 할 때, 어떻게 판돈을 나눌 것인가에 관한 문제이다. 자기 일인 도박에 충실했던 메레는 좀 더 판돈을 공정하게 나누기 위해서 파스칼에게 이것을 질문했다. 종교적인 명상에 집착한기 시작했던 파스칼이 이 문제에 어떻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파스칼은 페르마와 서신 왕래를 통해서 서로 각기 다른 방법으로 이 문제를 풀었다. 두 사람이 1654년에 주고받은 편지는 파스칼과 페르마가 확률이라는 수학적 이론을 건설하는데 동등하게 기여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면, 이제 도박사의 이 하찮은 질문과 두 수학자의 해답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이해를 돕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예시적인 경우를 다루기로 한다. 같은 정도의 기술을 갖고 있는 두 경기자 A와 B에 대해서 A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2득점이 더 필요하고 B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3득점이 필요한 경기에서 판돈을 분배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이 문제에 대한 페르마의 풀이가 더 간단하고 직접적이므로, 먼저 이것을 살펴보겠다. 예시된 보기에서, 네 번 더 시행하면 경기 결과가 결정되는 것은 명확하기 때문에, 페르마는 A가 승리하는 시도는
파스칼은 득점의 문제를 '산술 삼각형(arithmetical trangle)'을 사용해서 해결했다. 산술 삼각형은 1653년에 씌어졌지만 1665년에야 출판된 그의 '산술 삼각형론'에서 논의된 수들의 어떤 배열이다. 그는 산술 삼각형을 그림 4에 나타낸 것과 같이 구성했다. (둘째 또는 그 이후의 행에 나타나는) 임의의 성분은, 그 성분의 바로 위에 있는 행의 성분부터 왼쪽 끝까지의 성분들을 더한 값과 같다. 따라서 넷째 행의 35는 35=15+10+6+3+1 이 되고, 다섯째 행의 35는 35=20+10+4+1 이 된다.
<그림4> 임의의 차수 산술 삼각형은 그림에 나타난 것과 같이 하나의 대각선을 그림으로써 얻어진다. 대학에서 대수학을 배우는 학생은 그와 같은 대각선을 따라서 놓여있는 수들을 이항 전개해서 나타나는 연속적인 계수임을 알게 될 것이다. 보기를 들면, 다섯째 대각선을 따라서 놓여있는 수들, 즉 1, 4, 5, 4, 1 등은
과 같이 그는 정확하게 설명했다. 다섯째 대각선을 따라서 놓여있는 성분은 각각
임을 쉽게 보일 수 있다.
승리하기 위해서는 A는 파스칼과 페르마는 1654년의 역사적인 서신 왕래에서, 세 사람 이상의 경기자가 있는 경우의 판돈 분배와 서로 다른 기술을 가진 두 경기자의 경우에 판돈을 분배하는 것과 같은, 득점의 문제와 관련된 다른 문제도 고려했다. 이 것을 계기로 확률에 대한 수학적인 이론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순수하게 우연한 상황에 적용시킬 수 있는 합리적인 법칙들을 확립하는 확률에 대한 수학적 이론을 수학자들이 발달시킬 수 있었다는 사실을 매혹적이며 동시에 약간은 놀랍다. 우수한 연구소에서 시행된 실험들과 매우 신뢰받는 보험회사들의 존재 및 사업과 전쟁에서 병참술에 의해서 입증된 것과 같이, 이 분야는 비실용적인 것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확률론에 대해서, 프랑스의 저명한 수학자 라플라스는, "비록 이 학문이 분명히 비천한 도박에 대한 고찰과 함께 시작되었지만, 이 학문은 인간 지식의 가장 중요한 분야 중 하나로 승화되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정작 확률의 수학적 이론의 최초의 개척자인 파스칼은 '득점의 문제'가 가지고 있는 이런 중요성을 알지 못했던지, 이 일에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있다. "이러한 사소한 일을 취급한다는 것은 번거롭다. 하지만 사소한 일을 갖고 놀 시간은 있다." 천재의 비극 지금까지 그의 어릴 때의 천재성과 몇 가지 사건들 그리고, 확률의 창시와 관련된 중요한 일화를 중심으로 파스칼의 수학적인 업적을 살펴보았다. 이젠 그의 죽음으로 가는 과정을 이야기할까 한다. 파스칼이 치통에 시달렸던 1658년에 그는 생애 중 가장 심하게 앓았다. 끊임없는 두통 때문에 거의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고, 이전보다 훨씬 고통스럽게 4년을 지냈다. 1662년 6월, 자기 부정의 행위로써, 그는 천연두에 걸린 가난한 가족에게 자기 집을 내주고 시집간 누이 집에 들어갔다. 같은 해 8월 19일, 그의 고통에 찬 생애는 경련 발작으로 막을 내렸다. 39세의 나이로 죽은 것이다. 사체 해부 결과 위장과 몇몇 중요 기관이 정상이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뇌에 중요한 외상이 있었음이 밝혀졌다. 대부분의 천재들은 천천히 그 재능을 꽃피운다. 이를테면 뉴턴, 오일러, 아인슈타인은 모두 신동이 아니었다. 그들은 수학에서조차 다른 학생들보다 특별히 뛰어나지는 않았다. 신동으로 태어나서 일생 동안 비상한 능력을 유지하면서 많은 업적을 남긴 드문 경우는 아르키메데스나 가우스 정도를 들 수 있다. 그는 분명히 재능만으로 따진다면, 아르키메데스나 가우스와 같은 수준의 천재였지만, 두 거인들이 일생을 건강하게 살면서 지속적으로 많은 업적을 남겼던 것에 반해서, 그는 일생을 고통 속에 살면서 아깝게 자신의 수학적 천재성을 낭비해 버렸다. 그는 분명 "수학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될 뻔한 사람"이었다. -수학사랑 통권 11호에서 발췌- 참고문헌 [1] E. T. 벨. (안재구 옮김). 수학을 만든 사람들 (미래 과학 3), 미래사 [2] 페트르 베크만(김인수 옮김), [3] Howard Eves(허민, 오혜영 옮김), 수학의 위대한 순간들(경문수학산책 시리즈 1), 경문사 [4] Howard Eves (이유영, 신항균 옮김), 수학의 역사, 창원사 [5] 플로리안 캐조리(정지호 옮김), 수학의 역사, 창원사 [6] 김용운, 김용국, 수학사대전, 우복???/font> [7] 야노 겐타로, 위대한 수학자들, 전파과학사 [8] 재미있는 수학이야기, 계몽사 |
출처 ; http://210.99.195.2/~jhso92/frame-men.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