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와 달과 별이 머무는 수성못
대구 시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수성못은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誌)」에 의하면 원래 대구군에 있는 4개의 큰 수리지(水利地) 가운데 하나인 둔동제(屯洞堤)였다.
둔동제(屯洞堤)는 개척농민으로 대구에 온 미즈사키 린따로가 조선총독의 도움으로 12,000엔(현재 10억 엔)의 공사비로 10년 세월에 걸쳐 수성못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 수성못이 조성되기 전만 하더라도 한발과 홍수로 많은 피해를 입었는데, 수성못 조성이 자랑스러웠던 미즈사키 린타로는 임종 무렵 수성못이 보이는 뒷산에 자신을 묻어 달라고 했고, 그런 연유로 현재 그의 묘소는 한일친선교류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1925년 수리조합비를 거둬들일 목적으로 만든 못이지만, 이 수성못을 조성한 사람이 일본인이라는 사실은 일제 치하에서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간난의 세월을 겪은 우리 민족에게 묘한 기분을 불러일으킨다.
미즈사키 린따로의 무덤은 수성못 가 도로에서 약 150미터의 거리에 있는 산책로 바로 가에 있다. 현재 그의 묘앞에 2층의 레스토랑이 들어서 묘지에서 수성못이 바로 보이지는 않는다.
일제 강점기 대구지역 관개용수 확보를 위한 저수지(현재 수성못) 조성에 힘을 쓴 미즈사키 린따로 묘소에서는 해마다 일본과 한국에서 찾아온 이들이 정중한 묘사를 지낸다. 묘소 앞에는 관련 사진이 전시되어 있고, 방문객들의 기념식수와 현판과 기념 석들도 있다.
수성못 아래에 있어 수성들 혹은 수성평야라고 불리던 논밭들은 이제 대부분 음식점과 주택으로 바뀌었다. 들안길을 중심으로 150여 개의 음식점이 들어서 있으며, 이면 도로까지 친다면 200여 개의 음식점이 들어선 거대한 먹거리촌으로 변하고 말았다. 이제 수성못은 대구 시민들의 휴식처로 거듭나고 있다.
젊은 날 그 누구라도 수성못에 들러 추억 한 가지 만들어 보지 않은 사람이 있으랴! 언제부턴가 잘 닦인 수성못 둘레길은 산책하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수성테마파크와 분수쇼 등 보고 즐길 거리도 많다. 위의 사진은 수성못 오른쪽 산아래에 서있는 20층 높이(평지에 있으면 30층 높이)의 두산동 수성화성파크드림 7층에서 찍은 설경(雪景)의 모습인데, 낮의 풍경보다는 야경이 더 아름답고 또한 밤의 분수쇼를 집에서 음악소리와 함께 본다는 것은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즐거움이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수성못을 조성하는데 힘을 쓴 미즈사키 린따로의 묘 반대편에는 일제에 항거한 저항시인 이상화의 시비가 있다는 사실이다. 모든 시간은 흘러가는 것, 어둡고 암울했던 과거 역사일지라도 기억할 것은 기억하고, 과거를 넘어 오늘에 맞게 발전시켜 나아갈 지혜를 가져야 될 듯하다. ---2012 수성페스티벌 들안길 1㎞ 김밥축제 팜프렛 글 중에서---
수 성 못
반야선원 명산 효종스님
남풍
비슬산 넘어와
황금물결로 춤추던 곳
쪽빛 가르마를 닮았다던
그 논길
어디로 갔나
붉게 취한 태양
기웃기웃 저물면
바람으로 일렁이는 수성못
수면의 캔버스에는
높이 솟은 아파트 불빛이
쌍둥이 처럼 춤추고
연리지 나무 아래
젊은 연인
꿈꾸며 걷는 호반의 로맨스
세월 흘러
이념도 바래어가는 수성못 쉼터
시버 앞에 우뚝 선 노신사
세월 읊으니
먹향 천리로
시 한편 출렁인다.
-名品 수성Suseong 2014년 4월호에서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