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들 깨 향
심 영 희
딸네 집 발코니 빨간 화분 속에는 심지도 않은 들깨 한 포기가 자라고 있다. 양지바른 곳이라 많지 않은 화분이지만 꽃 색깔은 태양을 머금고 선명한 색으로 피어난다. 가끔씩 딸네 집에 가면 화분에 물을 주는데 어느 날 내 눈이 멈춘 곳은 들깨에 빠져있었다. 어느새 싹이 트고 자라서 키도 20cm는 되고 잎도 일곱 장이나 나왔는데 그것이 들깨라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늘 습관처럼 마른 흙에 물을 주는 의례적인 행사였는데 오늘은 내 손이 그 들깨나무를 건드린 것이다. 들깨 향이 나를 향해 달려온다. 깜짝 놀라 자세히 보니 틀림없는 들깨였다. 심지도 않은 들깨가 언제 여기에 자리를 잡았을까, 흙도 매년 있던 그 흙이고 들깨를 집안에서 만진 적도 없는데 그렇다고 바람을 타고 날아와 앉을만한 위치도 아닌데 어쨌던 들깨는 자라고 있다.
나는 그 들깨 향에 매료되어 딸네 집에만 가면 들깨를 흔들어 깨운다. 그때마다 들깨 향은 누구를 유혹하려는지 진하고 맛있는 향내를 뿌리며 집안을 배회한다.
유년시절부터 들깨는 흔하게 보아온 식물이다. 또 들깨로 짠 들기름도 많이 먹고 자랐다. 그러나 그 들깨 향이 이렇게 좋다고는 느껴보지 못했다. 미역국이나 황태국을 끓일 때 기름으로 볶다가 물을 부으면 우유가루를 풀은 듯이 뽀얀 국물이 된다. 들기름을 듬뿍 먹은 미역국이나 황태국은 들기름 덕분에 들깨 향만큼이나 식욕을 돋우어 준다.
예전에는 등 뜨시고 배부르면 아무 걱정 없다고 하였다. 별 의미 없는 말 같지만 큰 의미의 말이다. 먹을 것이 있고 등이 따뜻하게 누울 수 있는 집이 있어야 근심걱정이 없다는 얘기다. 집 있고 먹을 것 있는데 무슨 걱정일까, 그러나 5~60년대의 우리나라 사정은 그렇지 못했다.
내가 중학생일 때도 학교에 도시락을 싸오지 못하는 친구가 있었고 단칸 셋방에서 많은 식구가 웅크리고 사는 집도 많았다. 그러니 향기 짙은 들기름이나 참기름도 마음껏 먹을 수 없었을 것이다.
마침 KBS1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인간극장에서는 외국에서 사업을 하던 여자가 경기도 연천에 있는 남자를 만나러 왔는데 처음으로 둘이 만나던 날 들깨농사를 짓던 시골 농부가 일하던 채로 들깨 향을 풍기며 약속장소에 나갔는데 그 여자는 첫만남에서 그 들깨 향에 취해 그 남자와 결혼을 하고 들깨농사를 지어 기름을 짜서 들기름을 판매하며 벌써 6년째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나온다.
그 방송을 보며 실감했다. 도시에 살던 사람이 들깨 향이 얼마나 좋았으면 첫눈에 반해 결혼까지 하게 되었을까. 들깨 향이 맺어준 부부는 늘 깨소금을 볶듯이 고소한 향내를 풍기며 살지 않을까 싶다. 올 봄에 처음으로 내가 느꼈던 들깨 향을 다시 한번 음미해 보았다. 슬그머니 들깨 향이 추억을 불로 일으킨다.
농촌이던 우리 집은 밭에 들깨도 심었는데 그 깨가 자라서 깨 가루와 들기름이 되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깻잎이 무성할 때는 잎을 따다 반찬도 해먹고 가을이면 대를 베어다 깨를 털면 깨알도 쏟아져 나오지만 웬 벌레가 그렇게도 많던지. 깨를 바로 먹어야 하기 때문에 농약을 칠 수 없었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그 벌레들도 들깨 향에 이끌려 모여들었을지도 모른다.
어머니께서는 키로 찌꺼기와 벌레를 날려 버린 후 물에다 여러 번 씻어서 말린 후 방앗간에 가서 들기름을 짜오셨다. 이렇게 매년 새로 짠 들기름을 먹으면서도 들깨 향이 좋다고 느끼지 못했는데 올해 새삼 들깨 향에 취하고 말았다.
문득 내년에는 화분에다 들깨를 심어놓고 라벤더 향을 맡듯이 맡아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향수냄새보다 더 향기로운 들깨 향 왜 예전에는 그 많은 들깨를 보고도 이런 향기를 느끼지 못했을까,
예전의 좋은 환경에서 맑은 공기 중에는 들깨 향이 멀리 퍼져나가며 사람들의 코를 자극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즈음은 탁해진 공기에 그것도 아파트 발코니라는 좁은 공간에서 자연의 향기를 내뿜는 들깨 향은 내 코를 자극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들깨 잎을 다시 흔들어 본다. 향내가 코를 향해 달려온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자연산 향수를 뿌려줄 들깨를 보며 향기는 누구에게나 환영 받는 존재이기에 행복하리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