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1:(2002년 6월) 21세기 첫 월드컵이 열린 대한민국 서울, 수백만의 인파가 모여 태극기를 흔든다. 젊은이들은 태극기를 흔드는 것도 모자라 얼굴에 태극무늬를 화장하고 모자에, 치마에, 반바지에 태극기를 그려 넣는다. 오랫동안 권위의 상징이자 경외의 대상이었던 태극기가 '오 필승 코리아'의 함성과 함께 패션으로 둔갑하자 모든 사람들은 애국심과 국가의식의 긍정적 변화라며 찬사를 보낸다.
장면 2:(2002년 8월) 오랫동안의 정체국면을 깨고 남북대화가 재개된다. 서해교전에 대한 유감표명과 함께 북한은 장관급회담 제의를 하고 9월로 예정된 부산 아시안게임에도 참가할 것을 약속한다. 합법적 참가국으로서의 북한 국기 게양문제가 대한민국 사회에 뜨거운 논란거리로 떠오른다. 일부 학자들과 언론은 인공기가 대한민국 도시에 나부끼는 것을 염려하며 엄연한 실정법 위반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분별 없는 젊은이들이 북한 서포터스를 조직해서 인공기를 들고 부산 시내를 활보할 지도 모른다며 두려워한다.
우리 사회에 때아닌 인공기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부산 아시안게임에 참가하는 북한 국기를 과연 부산 하늘에 나부끼게 해야 하느냐의 문제를 놓고 아직도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절대 그럴 수 없다며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인공기 게양과 인공기 응원이 대수롭지 않은 것이라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데도 이들 인공기가 두려운 사람들은 우리 사회의 이념적 혼란과 불안감을 운운하며 신중한 접근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6.15 공동선언에 명시된 민족화해의 정신과 국경과 이념을 뛰어넘는 스포츠 정신에만 비추어 보더라도 공식 참가국으로서 북한 국기가 게양되고 북한 응원단이 자국의 국기를 들고 응원하는 것은 오히려 이상할 게 없는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렇게 간단한 이치이기에 최근 한 여론조사 결과는 응답자의 64.7%가 인공기 게양과 북측 응원단의 인공기 응원을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연합뉴스·TNS 코리아 여론조사, 8월 28일)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일부 인사들이 북한의 국가적 실체를 인정할 수 없는 마당에 그들의 통일전선 전술에 말려들 수 있다면서 인공기 게양을 극구 반대하는 것은 차라리 笑劇에 가깝다. 단국대의 정용석 교수는 8월 9일자 한국일보에서 '부산 시가지에 인공기가 나부끼면 이념적 혼란과 불안감이 고조될 것'이라고 일갈하고, 북한이 인공기 게양을 문제삼아 대회운영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지 않느냐는 우려에 대해서는 '북한이 아시안게임에 참가해야만 대회가 성공하느냐'고 반문하며 오히려 86 아시안게임과 88 올림픽게임은 북한이 불참했지만 대회가 성공적이었다는 설명까지 곁들였다.
서해교전에 대한 유감표명은 사과가 아니라며 북측이 분명이 사과한다면 인공기 게양을 고려해볼 만하다는 정교수는 스포츠와 정치가 별개라는 지적에 대해서도 '북한 체육계가 노동당의 지시를 받고 있는 이상 정치현안과 연계시키는 것이 오히려 당연하다'고 반박했다. 우리 사회의 손꼽히는 북한전문가 중 한 사람인 정교수의 이같은 상황인식이야말로 인공기에 대한 무의식적인 공포의식, 더 나아가 북한에 대한 이유 없는 적대의식 말고는 도무지 설명할 길이 없는 듯 하다.
대부분의 우리 언론들도 인공기 논란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주문하고 나섰다. 민족화해와 남북관계 진전의 당위성에 눌려 내놓고 반대를 할 수는 없지만 국가보안법상 실정법의 위반문제를 거론하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너무 어정쩡한 입장때문이었는지, 8월 12일자 동아일보 사설은 국가보안법의 이적단체 찬양고무죄를 거론하면서 상식적인 사실에도 어긋나는 대목을 실어버렸다.
사설에서 동아일보는 '북한이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라며 '이적단체에 대한 찬양 고무행위는 중대한 범죄라는 점에서 우리의 고민이 시작된다'고 적고 있는데, 누구나 알 듯이 국가보안법상 북한은 이적단체가 아니라 '반국가단체'로 규정되어 있고 이적단체는 그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할 목적으로 조직된 단체를 의미한다. 인공기 게양문제가 얼마나 고민스러운 대목이었으면 초보적인 상식마저 헷갈렸을까 하는 안타까움마저 드는 대목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인공기'는 금기와 공포의 '人恐旗'였다. 인공기라는 말에는 항상 한국전쟁의 학살과 북한의 만행이 동시에 오버랩되는 두려움의 감정이 따라다녔다. 그러나 오랜 동안의 적대와 대결 대신 평화와 화해협력의 남북관계가 진전되면서 이제 북한에 대한 무의식적인 공포의식은 의식적인 민족화해 의식으로 대체되고 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도, 그리고 우리가 바라마지 않는 통일을 위해서도 남과 북이 적대적 대결관계를 청산하고 화해적 협력관계를 새롭게 꾸려야 함은 21세기 탈냉전 시대에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른다면 과거 태극기의 권위의식이 젊은 세대의 흥겨운 애국심으로 변화하듯이 이제 인공기도 두려움과 기피의 대상이 아니라 민족화해의 입장에서 북한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통로로 간주되어야 한다. 하물며 아시안게임의 공식 참가국으로서 북한 국기가 게양되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아시안게임에 북한이 참가하고 그들의 국기가 정식으로 게양되는 것이야말로 남북화해를 넘어 아시아인들의 평화와 화합의 스포츠 제전이라는 아시안게임 본래의 의미를 더욱 값지게 하는 일일 것이다.
물론 이 글을 마치는 지금에도 '자유민주민족회의'라는 단체가 인공기도 아닌 한반도기의 동시입장마저 반대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우리 사회의 냉전적 대결주의와 맹목적 반북의식이 얼마나 뿌리깊은 지를 다시 한번 실감하고 있긴 하다. 세상은 변화하는데 왜 이다지도 우리의 대북의식은 더디게 변화하는 것일까?
첫댓글본문에 등장하는 단국대 정용석 교수는 북한의 전술에 공포를 느껴 인공기 게양을 반다한다고 하니 이해를 하더라도 3.1절에 성조기를 흔들며 김대중을 타도하자는 족속들은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들로 보입니다..그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조갑제, 지만원, 이철승, 김동길, 정형근, 김용갑 등도 함께 받아야겠지요..
첫댓글 본문에 등장하는 단국대 정용석 교수는 북한의 전술에 공포를 느껴 인공기 게양을 반다한다고 하니 이해를 하더라도 3.1절에 성조기를 흔들며 김대중을 타도하자는 족속들은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들로 보입니다..그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조갑제, 지만원, 이철승, 김동길, 정형근, 김용갑 등도 함께 받아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