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19세기~현재)
현대 국어 ‘엄마’와 동일한 형태는 19세기말 중국어사전에서 처음 나타났다.
‘엄마’는 ‘어미’에 호격 조사 ‘-아’가 결합한 ‘어마’에서 제2음절의 초성 ‘ㅁ’의 영향으로 제1음절의 종성에 ‘ㅁ’이 첨가되어 나타난 형태가 아닐까 하고 추정은 하고 있으나 그런 형태의 단어가 흔한 것도 아니고 그 이전에는 그런 형태를 띄지 않았다가 19세기 말에서야 나타난 이유가 무엇인지는 아직도 설명하지 못하고 있으며 아이들 용어에 어른들의 용어인 '어미'라는 말을 개입시켜 설득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
1894년에 발발한 동학혁명군을 1895년에 진압하고 1895년 청일전쟁 마저 승리한 일본세력은 안하무인으로 경복궁을 드나들었고 1896년 2월에 고종과 순종은 러시아공관으로 극비리에 피난을 하여 일본의 영향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러자 일본세력은 청나라 사신을 영접하던 영은문과 모화관을 철거하고 1896년~1898년 동안에 독립문을 세웠는데 이 건축사업의 비용을 모금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가 조선계 미국인 필립 제이슨(서재필)을 회장으로 한 독립협회다. 이때 초대 회장은 필립 제이슨이었으나 독립협회 초대 이사장이면서 기부금을 가장 많이 낸 사람 중에 한 명이 바로 이완용인데, 독립문에 독립문이라는 현판글씨를 쓴 사람도 이완용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그해 1895년 이준영 정현 등이 한국어를 한자로 풀이한 國漢會話라는 중국어사전(한중사전)에서 처음 나타난 이 표제어는 단지 ‘엄마’에 대해 ' 乳兒呼母 阿媽 젖먹이 아이가 어머니를 부르는 말'로만 설명하고 있어서 아이들이 사용하던 호칭이라는 것까지는 판단을 해줬지만 어원에 대한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서양 선교사의 활동이 궁중을 비롯하여 각지에서 활발하던 이 시기에 이 단어가 나타난다는 점에 주목하여 영어의 "마마, 마미"의 영향을 받은 중국어 호칭 "아마"의 영향은 어느 정도였을지 추정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어마, 엄마
엄마 乳兒呼母 阿媽≪1895 국한회화國漢會話 213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