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 마 26:1-5, 14-16 (막 14:1-2, 10-11; 눅 22:1-6) 임박한 십자가 사건과 배반 찬송: 269, 270장
이제 예수님은 화요일의 모든 가르침을 마치시고,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에 십자가에 못 박히실 것을 제자들에게 예고하신다. “이틀이 지나면”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이때가 화요일 저녁으로, 유대인들에게는 수요일이 시작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금요일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데, 화요일 저녁 해질 때부터 수요일 저녁 해질 때까지가 하루로, 수요일에 해당하기 때문에, 목요일 해질 때에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실 때가 유대인들에게는 금요일, 바로 유월절 준비일이 시작되는 날에 해당한다. 그래서 목요일 저녁에 식사를 하신 후 다음 날 새벽에 예수께서 가룟 유다의 배반으로 겟세마네 동산에서 붙잡히시기 때문에 만 이틀이 지난 후에 예수님은 붙잡히시고, 해가 뜬 후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달리시게 된다. 그래서 이틀 후는 유월절 준비일이지만, 명절은 이때부터 지키게 되기 때문에, 준비일을 유월절의 시작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이 유월절 준비일은 유월절을 지내기 위하여 어린 양을 잡는 날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 날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은 유월절 어린 양으로서의 제물이 되신 것을 의미하며, 예수님의 모든 사역은 바로 이 날의 죽음을 위하여 달려오신 것임을 알 수 있다. 복음서에 기록된 대로 하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신의 죽음을 세 번 알려주셨다. 이 기록은 예수님의 사역 6개월을 남겨 둔 시점에서부터 시작하였으며, 첫 번째는 변화산에 오르시기 전 베드로의 신앙고백 이후 말씀하셨으며, 이후로 두 번 더 말씀하신 내용이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다.
왜 이런 내용을 상기하느냐 하면 예수님께서 화요일의 사역을 마치신 후 수요일에는 아무런 기록이 없기 때문에 어떤 사역을 하셨는지 알 수 없지만, 마태, 마가, 누가는 동일하게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를 했음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태는 3절에서 이 종교 지도자들을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라고 설명하며, 마가와 누가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내용들을 종합하면 아마도 그 당시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와 그의 장인 안나스가 함께 예수를 죽일 모의를 했고, 장로 겸 서기관들이 이에 가담한 것 같다.
이들의 모의는 명절을 지낸 후에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이려고 한 것인데, 그 이유는 민란이 날까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유월절에는 명절을 지키기 위해 많은 백성이 예루살렘에 모여 있었으며, 그 가운데에는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있어서 폭동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비밀리에 예수를 죽이고자 모의했던 것이다.
하지만 일이 긴급하게 흘러갔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고 종교 지도자들에게 와서, 본문 15절을 보면,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고 말하였고, 은 삼십을 달아 주었다고 이어서 기록하고 있다. 이 내용은 슥 11:12의 예언이 성취됨을 알려 준다.
슥 11:12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품삯을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그만두라 그들이 곧 은 삼십 개를 달아서 내 품삯을 삼은지라”
예수님의 목숨 값이 은 삼십 개, 즉 삼십 세겔밖에 되지 않는, 아주 하찮게 취급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가룟 유다의 마음이 어떠한가를 알려준다. 그것은 본문 14절이 어떤 단어로 시작하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14절은 “그 때에“로 시작한다. 사실 마 26:6-13의 나사로의 여동생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사건은 지난 토요일 저녁에 이미 일어난 사건이다. 그런데 마태가 이 사건을 유다의 배반과 연결하여 기록한 것은 14절의 “그 때에”라는 단어로 설명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요 12:5-6을 보면 가룟 유다가 말한 내용이 나온다.
요 12:5-6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이것을 보면 유다의 마음에는 이미 욕심으로 가득하였음을 알 수 있다. 어쩌면 그가 돈궤를 맡았을 때부터 자신을 위하여 착복했을 수도 있고, 다른 곳에 유용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그가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 생각할 수도 없었을 것이고, 오직 자신의 욕심을 위한 것만 생각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래서 가룟 유다가 “그 때에” 대제사장을 찾아간 것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즉 돈을 벌기 위하여 찾아간 것뿐이요, 다른 이유는 없는 것이다.
물론 유다의 마음에는 이미 사탄이 들어가 있어서 그를 유혹했는데, 우리는 이 부분을 보고 모든 책임을 사탄에게 돌리는 것은 잘못이다. 왜냐하면 모든 행동은 유다가 저지른 것이기 때문이다. 사탄은 그저 유혹을 했을 뿐이며, 예수님의 사역을 방해하고 결국은 죽음으로 몰아넣기 위한 작업을 하였을 뿐이다. 이에 동조한 유다가 모든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그런데 여기에서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가룟 유다의 배반으로 예수님의 죽음이 앞당겨진 것이다. 종교 지도자들은 명절을 지난 후에 예수님을 잡아 죽일 흉계를 꾸몄지만, 하나님은 유다의 배반을 허락하심으로 유월절 어린 양으로 죽으실 수 있게 시간을 앞당기신 것이다. 그래서 모든 사건이 신속하게 진행이 된다. 목요일 저녁 예수님께서 식사를 마치신 후 겟세마네 동산으로 기도하러 가셨을 때, 유다는 그 장소를 잘 알고 있었고, 새벽에 신속하게 예수님을 잡으러 왔던 것이다.
마 26:47을 보면 “말씀하실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큰 무리가 칼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고 되어 있듯이, 많은 백성들의 눈을 피하여 예수님을 신속하고 몰래 잡기 위해 많은 무리를 보내었고, 그 새벽에 바로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끌고 간 것이다. 이렇게 일이 신속하게 진행된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출애굽의 예언을 성취하기 위해서이다.
출애굽 때 제정된 유월절은 죽음의 사자가 넘어가 구원을 받았음에 대한 기념, 즉 죽음에서 해방되어 새로운 삶으로 태어났음에 대한 감사의 고백을 하는 절기가 바로 유월절이다. 그런데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유월절 이후에 죽이려고 했지만, 하나님은 이미 예정하신 대로 유월절 어린 양으로 예수님께서 붙잡히셔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 완벽한 구원을 선언하시고, 그분의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죽음의 사자가 넘어간 하나님의 백성이 태어나게 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이렇게 완성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유다는 자신의 욕심으로 예수님을 고발하여 붙잡히게 했고, 사탄은 유다의 욕심을 부추겨 예수님을 배반하도록 했지만, 유다나 사탄이나 하나님의 이런 원대하신 계획을 몰랐기 때문에 예수님의 죽음이 신속하게 진행되도록 했을 뿐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놀라우신 구원 계획이 이렇게 완성이 되었다. 그래서 마태는 이렇게 기록하였다.
마 26:24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이제 이틀이 지나면 예수님의 십자가가 현실이 된다. 사탄의 유혹과 유다의 배반과 종교 지도자들의 신속한 마음이 하나가 되어 예수님을 유월절 어린 양으로서의 죽음을 당하게 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출애굽 때 제정하신 유월절 절기가 지시하던 내용이 이 십자가에서 완성이 된 것이다.
그렇다. 유월절 십자가는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자들이, 죽음과 방불한 상황에 있었지만, 살았다고 자랑하던 애굽 사람들은 모두 죽었고(장자의 죽음은 모든 사람의 죽음을 의미), 그 가운데 죽음을 넘어선 새로운 민족이 해방되어 나와 홍해를 건너 새로운 민족으로 나타나게 되었음에 대한 완벽한 재연이요, 완성인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전날 금요일에 죽으셔야만 했던 것이다. 그것도 저녁에는 토요일, 즉 안식일이 시작되기 때문에 금요일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오후 3시에 죽으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경륜 가운데 완벽하게 모든 예언이 이루어진 것을 가르쳐준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은 세 가지 절기를 제시하셨다. 그것들은 유월절, 맥추절 또는 오순절, 그리고 초막절이다. 이미 알고 있는 대로, 유월절은 구속의 완성이요 영원한 완성을 위한 시작이요, 오순절은 구속의 적용이요, 초막절은 구속의 적용을 받은 백성들이 이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게 될 마지막 완성의 시기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계획대로 유월절 어린 양으로 죽으셔야만 했으며, 이에 유다의 배반은 이 일이 정확하게 이루어지도록 쓰임을 받은 것이다.
본문의 내용을 통해 우리는 유다가 어떻게 예수님을 배반할 수 있을까에 대해 너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에게 믿음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하나님께서 유다의 배반을 통하여 당신의 계획을 이루셨음을 보면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께서 하박국을 통해 배운 대로 악인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을 완성하신다는 사실을 아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그리고 이에 더하여 우리의 믿음이 어디에 이르렀는가를 주의 깊게 살펴서 우리의 믿음이 잘못된 길로 흘러가지 않도록 날마다 주의해야만 할 것이다. 이것이 믿음의 자리에 늘 있을 수 있는, 그래서 사탄의 유혹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
이제 수요일의 기록은 이것으로 끝이 났다. 이제 목요일로 넘어가서 낮의 가르침은 기록되지 않았으며, 저녁에, 유대인의 요일로 하면 금요일이 시작되는 저녁 시간에 마지막 식사룰 하신 후 붙잡히시기 전 요 14-16장의 마지막 설교를 하시고, 요 17장의 중보 기도를 하신 후 붙잡히신다. 이를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붙잡히시고, 고문을 받으신 후 십자가에 달리신다. 이 십자가가 바로 우리의 해방을 위한 것임을 기억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