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터면 가둘 뻔했다
서 옥 선
숲에 든다. 길섶 지나는 예초기의 거센 칼날에 잡다한 푸나무들이 동강이 나거나,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키 작은 초피나무의 머리채는 날아가고, 나뭇가지 몇 가닥이 간신히 살아남는다. 초피는 오밀조밀 달라붙은 이파리 끌어안고 옹송그린다. 키 큰 참나무, 넓은 품으로 초피나무를 품는다.
성냥갑을 포갠 듯한 아파트가 주는 편리함에 기대어 육아와 직장, 집안일 사이를 종종거리며 스물다섯 해를 보냈다. 시골 단칸짜리 사글셋방에서 엘리베이터가 있는 집에 들었을 때, 몸이 날아갈 듯이 달떴다. 설레발치는 일상도 꿈길을 걷는 느낌이었다. 꿈결 같은 시간도 오래가지 않고, 불길처럼 점차 사그라졌다. 나이 숫자가 늘어나니, 채마밭을 가꾸면서 흙과 더불어 지내는 여유로운 그림이 알른알른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우둥우둥 들고나는 시멘트 벽돌에 스며들어 지내 온 시간들은 아쉬움 없이 세월 속에 묻어 버렸다.
햇살 가득한 산자락 한 편, 집 안마당에 푸나무를 들인다. 내키지 않는 들판의 무법자도 함께 들어온다, 땅 위를 기는 한삼이나 메꽃 덩굴은 살캉거리는 호미가 우스운지 기세가 누그러지지 않는다. 땅속에서 긴 가르마를 타며 여기저기 불쑥불쑥 돋아나는 쇠뜨기, 이웃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의 발길을 붙드는 대표적인 무법자이다. 손발 묶어대는 놈들을 게우지 못할 바에야 애면글면하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서로서로 어우러지기로 마음먹는다.
“뚜둑뚜둑!”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를 들은 지가 까마득하다. 오늘도 햇볕은 구름을 욱여싸고 들판을 휘돌아 앞마당으로 파고든다. 앞산 뻐꾹새가 흘리는 “뻐꾹뻐꾹” 구슬픈 노랫가락에 하얀 눈덩이를 덮어쓴 듯한 찔레꽃이 흐늘흐늘 일그러진다. 볕살이 무거운 남새들은 절인 배추처럼 시들시들, 힘겨운 몸짓으로 웅얼거린다. 두꺼운 흙을 헤집고 나온 뾰족한 고갱이에 길쭉한 하트 날리는 토란, 하얀 별꽃 주렁주렁 달고도 알집까지 키우는 고추, 땅속에 담을 하얀 국수 가락 마디마디 뽑아대는 고구마 순이 목마름에 죽살이친다. 상추는 지난밤 꼬불꼬불한 이파리 펼쳐서 모은 이슬방울 몇 개로 갈증을 떨어낸다.
겨우내 사그라졌던 들판, 긴 앞다리를 치켜세우고 사냥감을 노리는 사마귀 같은 농기계가 무논을 써레질한다. 벼로 익어갈 모, 붙들라는 안다미를 쓴 논물이 찰랑거리는 소리가 맛깔스럽다. 농로의 가로등 불이 켜진다. 논둑에 갇힌 무논이 개구리들의 떼창으로 자분거린다. 귀담아들으면 똑같은 노랫말, 비슷한 곡조. “개굴개굴 개개굴” 논물에 갇힌 신세를 한탄하는 몸부림인 듯 사방을 에운다.
논에는 물이 넘쳐흐르지만, 집 안 텃밭은 심한 가뭄으로 바싹 졸아서 허옇게 말라간다. 수도꼭지에서 흘러내린 물이 “쏴아” 시원한 소리를 더펄거리며 꽃향기에 내려앉는다. 꽃분홍색 치맛자락 감아올린 작약꽃, 붉은 물감 머금은 병꽃, 자글자글 타들어 가는 수레국화, 쏟아지는 물세례에 꽃대가 옥시글거린다. 늴리리야! 자유를 찾아 몰래 울 바깥으로 나간 아이들은 울안의 친구들이 부럽기만 하다.
“삐익 삐리 삐리!” 허름한 농자재들을 모아둔 창고에서 새소리가 들려온다. 매년 딱새가 알을 낳아 새끼를 치던 모습을 돌아보며 사방을 살핀다. 창고 앞 전깃줄에는 딱새 부부가 나란히 내려앉는다. 딱새 새끼 소리에 대한 호기심 반, ‘낯선 침략자의 낌새에 놀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반으로, 숨죽이며 창고 안을 기웃거린다. 허락도 없이 둥지를 트고 새끼를 기르는 암컷 딱새는 긴 꼬리를 망치 두드리듯이 아래위로 흔든다. 입은 새끼에게 먹일 먹이를 물고 있다. 위험을 감지한 수컷 딱새는 눈딱총을 쏘며 나의 행동거지를 가로막는다. 내 처지가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딱새 가족이 창고 안쪽을 차지하고, 나는 바깥으로 내몰린 듯한 기분에 빠져든다. 나는 패잔병을 자처하고 집 안으로 물러난다. 집 밖 딱새의 동태가 어룽거려서 안절부절 견딜 수가 없다. 딱새 부부가 “안과 밖은 마음 안에 있나니~”하고 놀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TV가 부의 상징이던 시절이 있었다. 동네 아이와 어른들은 저녁 드라마 시간이 되면 TV 가 있는 부잣집으로 모여들어 함께 울고 웃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우리 집 안방에 커다란 TV가 꽤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앉았을 때, 우리 가족의 어깨는 한껏 올라갔다. 바보상자에 갇히기 싫다고 TV를 들이지 않는 집도 있었다. 지금도 그렇긴 하다. 언젠가부터 쪼끄만 휴대폰이 손안에 들어오더니, 인간의 이목구비를 단박에 사로잡아버린다. 작은 폰과 함께 시도 때도 없이 떠들고 울고 웃는다. 사람들은 때와 장소 가리지 않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휴대폰 앞에서 거리낌이 없이 머리를 조아린다. 휴대폰의 권위에 도전할 자는 없는 듯하다.
우주 만물은 마음속에 갇혀서 자신의 세계를 향유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우주 속을 유영하는 지구, 초록별에 얹혀사는 생명체들은 자신이 만드는 마음 안에서 울고 웃으며 살아간다. 작은 초피나무도 속으로는 날카로운 가시를 품고 알싸한 향내 드러낼 날을 기다리며 웅크려 있다. 딱새는 허름한 창고에 숨어서도 흐벅지게 사랑을 꽃피운다. 나는 손안에 든 쪼끄만 휴대폰이 없으면 안절부절 어쩔 줄 몰라 하며 자진해서 갇혀 산다. 그것에 갇히는 것은 가슴을 불질해대는 마음일 뿐 다른 심지가 없다. 숲이나 마당의 잡초나 푸나무도 말없이 세상사에 스며든다. 나의 마음이 이끄는 크고 작은 소소한 설렘과 희망의 일상!
하마터면 그 일상을 가둘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