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 1:7]"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얻었노라..."
개역 성경에는 '가르'('왜냐하면')가 생략되어 있다. 본절은 4절에서 바울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이유를 제시한다. 또한 바울은 감사의 근거로 인해서 앞절들에서 밝힌 '하나님께 감사하는 문제'에서 '오네시모의 문제'로 자연스럽게 옮겨가고 있다.
형제여 - 이것은 바울이 많이 사용하는 단어로서, 오네시모 문제를 빌레몬에게 권고하기 위해 부르는 애정어린 호칭이다.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 '마음'에 해당하는 헬라어'스플랑크나'는 본절 외에 12,20절에서도 나온다.
일반적으로 '불쌍함', '동정', '자비'를 의미하나 본서에서는 '감정의 자리'로서 '내면의 느낌'이나 '자아'를 뜻한다. '너로 말미암아'는 빌레몬이 성도들에게 베푼 사랑을 나타내는 것으로 바울은 빌레몬의 사랑으로 인해 기쁨과 위로를 얻었다. 한편 '평안함을 얻었으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나페파우타이'에 대해 혹자는 '일시적인 평안이나 안도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을 단지 일시적인 평안으로 해석할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에 의한 평안함은 일시적인 평안이 아니며, 또한 그 단어가 '주 안에서 죽은 자의 안식'에 대해서도 사용되기 때문이다 .
담력을 가지고
[몬 1:8]이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많은 담력을 가지고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 있으나.."
이러므로 - 이 말은 본절이 앞절까지 언급된 서론 부분과 관계를 맺어주는 접속사로서 바울은 오네시모 문제를 앞서 칭찬한 빌레몬의 사랑에 호소하고자 하는 의도를 나타낸다. 많은 담력을 가지고 - '담력'으로 번역된 헬라어 '파르레시안'은 문자적으로 '자유'나 '말의 특권'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바울은 이 용어를 두 가지 경우에 사용한다.
(1)사람들에 대한 자신의 '개방성'과 '솔직성'을 나타낸다. (2)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믿음에 근거한 '정직'을 나타낸다. 본절에 나타난 '파르레시안'은 전자의 의미로서 바울이 타인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마음을 열어 놓고 있음을 시사한다.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 있으나 - '마땅한 일'에 해당하는 헬라어 '토 아네콘'은 일반적으로 유용한 '도덕적 계명'보다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지켜야 할 의무'를 뜻하는 것으로, 뒤에 언급하고자 하는 오네시모 문제를 가리킨다. 한편 '명할 수'의 헬라어 '에피탓세인'은 바울의 사도적 권위를 암시한다.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자신이 사도로서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생활에 대해서 제정하고 가르치며 다스릴 수 있는 권위를 가지고 있음을 반복하여 밝히고 있다. 혹자는 앞서 언급한 '파르레시안'이 사도권을 암시한다고 보나 '에피탓세인'이 사도권을 가리킨다고 봄이 더 타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