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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손가락] 김순옥 - 시놉시스
1. 프로그램명 : “ 다섯 손가락 ”
2. 형식 : 미니시리즈 (70분 X 30회)
3. 작가 : 김순옥 (金淳玉)
4. 연출 : 최영훈
5. 기획의도
“알에서 깨어난 새끼는 처음 자신을 돌봐준 이를 무조건 ‘엄마’라고 믿는 본능이 있다”
“한번도 누군가의 사랑을 받아본 적 없는 사람은, 처음 그를 따뜻하게 품어준 사람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줄 만큼 사랑할 수밖에 없다”
“만일 나의 새엄마가 극도의 위태로운 상황에서, 자신의 친자식을 놔두고, 다른 여자가 낳은 나를 구해줬다면.. 나는 새엄마에게 진 빚을 어떻게 갚을까”
“모성이란 이름의 두 얼굴.. 내 자식한텐 가장 아름답고 위대한 모성은, 남의 자식한텐 가장 이기적이고도 잔인한 모성이라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극단화된 개인주의화와 더불어, 불특정 다수와 손쉽게 소통하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소셜미디어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족이니 핏줄이니 그 의미를 묻는다면 과연 헛된 일일까? 맞다. 시대착오적인 일일지 모르겠다.
그런데 여기. 한 집안의 가족이 되고 싶어 죽을 것 같은 한 남자가 있다. 엄마가 아닌 엄마에게, 아들이 되고 싶어 미칠 것 같은 남자. 동생이 아닌 동생에게, 형이 돼 주고 싶어 자신의 인생을 바치는 남자.
그 남자 이름은 유지상.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다.
그리고 그 남자를 사랑하는 순수한 여자 홍다미. 이 드라마의 여주인공이다.
유지상과 홍다미는, 17년 전에 일어난 ‘성북동 유회장 저택 화재사건’으로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게 되는 남녀주인공이다.
17년 전으로 세월을 돌려보자..
천하의 바람둥이 재벌 남편을 위해 한평생 지고지순하게 내조하고, 괴팍한 시어머니까지 지극정성으로 봉양해온 착한 며느리 채영랑에게는 초등학생인 두 아들이 있다. 한 아들은 유일한 혈육 유인하이고, 또 한 아들은 남편이 밖에서 낳아서 데려온 아들 유지상이다.
채영랑은 두 아들에게 똑같이 다정하고 품위있고 공평한 엄마였다. 결혼하기 전 전도유망한 피아니스트였던 채영랑은, 두아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기 시작하는데. 친아들 인하가 피아노에 남다른 끼를 가진 아이라면, 남편의 아들 지상은 비상한 절대음감과 압도적인 재능을 가진 피아노 천재였다.
그런 어느 날, 유회장 집에 엄청난 화재가 발생했다. 그 화재사건으로, 바람둥이 남편 유회장과, 유회장을 구하려고 뛰어들어온 벙어리 호떡장수 홍수표가 숨졌다. 그런데 특이한 일은, 부인 채영랑이 불길을 뚫고 목숨을 건 채 구해온 아이가, 자신의 친아들이 아닌, 남편의 아들 유지상이었다는 사실이다!
홍다미는, ‘성북동 유회장 저택 화재사건’으로 호떡장수였던 아빠 홍수표를 잃었다. 청각장애인이었던 홍수표는 심성 착하고 성실한 가장이었고, 아내를 너무도 사랑하는 좋은 남편이었다. 그런 그가 호떡집 단골이었던 할머니의 부탁으로, 유회장을 구하러 불난 저택으로 뛰어들었다 변을 당했다. 그 날 이후, 일곱 살에 아빠를 잃은 홍다미의 인생은 엄청난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졸지에 아빠가 방화범에 절도범으로 몰리면서 가정은 풍비박산 났고, 엄마는 충격으로 뱃속의 아이를 사산했다. 그러나 죽은 아빠는 수많은 의문만 남긴 채 말없이 한줌 재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유지상과 홍다미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 채영랑!
유지상의 새엄마이면서, 홍다미 아빠의 죽음과 관련이 있는 인물이다. 극선과 극악을 넘나들며, 위대하면서도 잔인한 모성애로 주인공들을 감당할 수 없는 불행에 빠뜨리는 미스테리한 여자다.
바람둥이 남편 때문에 자신의 인생과 꿈이 비참하게 망가졌다고 믿고, 오직 자식을 위해 참고 기다리는 삶을 산다. 자신이 낳은 아이가, 남편의 자식을 보기좋게 이겨주는 것만이, 남편에 대한 완벽한 복수라고 믿는데서 모든 불행이 시작됐다. 그녀 안에 숨겨진 엄청난 야망이 점차 드러나면서, 유지상과 홍다미 인생은 파국으로 치닫게 되고..
천재 피아니스트 유지상과, 긍정적 에너지를 가진 명랑소녀 홍다미는, 가족을 위해 자신의 꿈을 희생해야 하는 공통점을 가졌다. 또 어린 시절에 겪었던 화재로 치명적인 트라우마를 가졌다는 점도 닮았다.
그런 주인공들이 자신에게 닥친 불행과 상처를 극복하고, 다시 자신의 꿈과 사랑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또한, 위대한 모성이란 궁극적으로 무엇이며, 누구에겐 아름답고 고귀한 모성이, 또다른 누구에겐 더없이 잔인하고 폭력적인 이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음 한다.
6. 주요 등장인물
< 유지상의 집 >
유지상 : 남자주인공.
부성그룹의 큰아들이자, 유회장이 지명한 부성그룹의 후계자.
현재는 국내 최고대학 음대 작곡과 대학원생.
후엔, 부성그룹에 입사. 전략기획팀 본부장으로 일함.
절대음감에, 피아노에 천재적 재능을 가진 남자.
혼자서도 빛이 날 만큼 특출난 재능으로, 어딜 가나 화제를 몰고 다닌다.
음악에 대한 주체할 수 없는 열정과 선구자적인 실력 때문에, 주변사람에 게 열패감을 주고, 그만큼 시기하는 사람도 많다.
늘 밝은 모습으로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고, 남자답고 강인한 성격.
평소엔 남에 대한 배려와 다정한 면모를 가지면서도, 음악에 관해선 거칠고 까칠한 양면성을 지녔다.
겉만 보기엔 남부러울 거 없는 부유함과 천재성에 완벽한 남자로 보이지만, 내면엔 뼛속깊은 외로움과 가족에 대한 큰 상처를 갖고 있다.
남에겐 자신의 고민이나 괴로움을 토로하지 않고, 혼자 속으로 삭힌다. 엄마인 영랑이 아무리 밟아도 죽지않고 되살아나는 잡초 같은 강인함 때 문에, 더욱 영랑의 미움과 분노를 사게 되는 슬픈 운명의 남자.
미용사인 다미와 피아노를 인연으로 운명적인 사랑을 한다.
유년시절을 도우미 할머니와 함께 외롭게 지내다, 열 살 되던 해, 아버지 라는 남자가 느닷없이 찾아와 아버지의 집으로 데려와 키웠다.
매사 친절하고 공평하고 지적이고 아름답던 새엄마.
그런 새엄마를 지상은 진심으로 사랑했다. 처음으로 날 칭찬해주고, 걱정해주고, 따뜻하게 안아준 사람이 새엄마였다.
그러던 어느 날 덮쳐 온 화재사건.
그 화재로 아버지가 숨졌고, 새엄마는 목숨을 걸고 불길 속에서 자신을 구해냈다. 친아들 인하가 아니라, 남편의 여자가 낳은 원수 자식을!
그 날 이후, 새엄마와 동생은 지상에게 목숨이었고, 인생을 다 걸고 지켜줘야 될 삶의 전부였다.
새엄마가 자신 앞으로 된 재산을 모두 빼앗아갔을 때도, 인하가 자신이 작곡한 악보를 교묘하게 빼돌려 촉망받는 작곡가로 이름을 날리게 될 때도, 지상은 뼈를 깎는 고통 속에서도 모든 걸 덮어줬다.
그러다 차츰 새엄마의 엄청난 비밀을 알게 되면서, 가족이란 미명 아래 철저하게 속았던 지난 세월에 격분. 작곡가로서 잃어버린 자신의 이름과 자존심, 그리고 사랑을 되찾기 위해 무섭게 음악에 파고든다.
새엄마가 그토록 지키고 싶어 했던 아들 인하를, 새엄마의 손으로 망가뜨리도록 조용히 하나씩 준비하기 시작하는데..
채영랑 : 우리나라 재계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부성그룹 유회장의 부인.
유회장이 죽은 후, 부성그룹 총수 자리에 오른다.
명문여대를 졸업하고 피아니스트를 꿈꾸며 유학을 떠났으나, 집안이 망하면서 피아노의 꿈을 접고, 후견인이었던 유회장과 결혼.
완벽하게 내조에만 전념하며 현모양처의 삶을 산다.
남편이 밖에서 낳아 데려온 아이를 친아들과 똑같이 정성을 다해 키워주고, 어떤 모욕도 다 참아내며 묵묵히 유회장의 그림자 노릇을 한다.
그러나 그녀의 인생은 유회장의 죽음을 기준으로 철저하게 두 모습으로 나눠진다.
유회장이 살아있을 땐, 조용하고 헌신적인 현모양처의 모습이었다면, 유회장이 세상을 떠난 후엔 얼음처럼 차갑고 냉혹하며, 일에 열정적인 기업인의 모습으로 변화한다.
마치 남편의 죽음을 기다리고, 준비하고 있었던 사람처럼!
사실 그녀는 매우 야망있고, 사업가로서 능력도 출중한 여자였다.
언젠가 남편이 잘못되면, 자신의 아들을 후계자로 세우고, 자신이 회사 경영의 전면에 나서리라 치밀하게 플랜을 세우고, 본심을 들키지 않기 위해 완벽하게 두 얼굴로 살았다.
그러나 남편이 지상을 후계자로 지명하면서, 남편과 격렬히 싸우게 되고.
마침 치매 걸린 시어머니가 촛불놀이를 하다 불을 내자, 남편을 서재방에 가둬버리고, 친아들 인하만을 안고 간신히 집을 탈출한다.
그러나 자신이 데려온 아이가 인하가 아닌, 남편의 아들 지상이란 걸 알고 경악한다.
온몸에 화상을 입은 친아들의 병실을 지키며, 죄책감으로 화상보다 더한 고통에 시달리는 영랑.
그리고 결심했다. 내 자식이 남편의 자식을 보란듯이 이기고 성공하도록 기필코 내가 만들고야 말겠다고!
한 기업의 오너가 된 영랑은, 그 날부터 자신의 청춘과 인생을 망가뜨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무서울 만큼 복수심을 보여준다.
치매기를 보이던 시어머니는 요양원으로 보내지고, 시어머니의 유언장을 고쳐서 지상이 대주주가 되지 못하도록 막고, 지상을 표절작곡자로 몰아 음악계에서 퇴출당하도록 교묘하게 일을 꾸민다.
그러나 차츰‘성북동 유회장 저택 화재사건’의 베일이 드러나면서, 분노한 지상과 충돌하게 되고, 다미 가족한테도 서서히 압박을 당하는데..
자신의 친아들을 지키려는 어긋난 모성 때문에, 결국 자기손으로 친아들을 망가뜨리고 모든 것을 잃게 되는 비극적인 인물.
유만세 : 부성그룹 회장.
채영랑의 남편이자, 유지상과 유인하의 아버지.
건설과 유통으로 재벌가를 이룬 선친 덕에 평생을 어려움 없이 살았다.
매사 독선적이고, 거만하고, 제멋대로다.
대학생이던 영랑을 마음에 두고 유학을 보내줬으나, 영랑이 미국에서 다른 남자를 사랑했다는 사실에 엄청난 질투심과 배신감을 느낀다.
영랑과 결혼해 옆에 두고 괴롭히는 것으로 비뚤어진 애정표현을 한다.
그러면서도 영랑이 도망칠까 두려워, 강제로 피아노를 못치게 하고 집에 들어앉혀서, 날개를 꺾어놓는다.
결혼 후 대단한 여성편력을 보이며 여자 문제를 일으키면서도, 부인한테 미안해하기는커녕 늘 호령호령 해댄다.
밖에서 낳아 데려온 아들 지상을 끔찍하게 위해주고, 부인이 조금이라도 지상에게 소홀하면 집안이 발칵 뒤집힐 정도로 난리를 친다.
그가 화재사고로 죽자, 가까운 지인들까지도 마누라한테 평생 죄짓고 살더니 천벌을 받았다고 수군거릴 정도로 인심을 잃은 남자다.
부인한테는 죽어도 아깝지 않은 남자였지만, 자신의 어머니한테는 더없는 효자였고, 아들들한테는 원하는 건 뭐든 들어주는 호탕한 아버지였다.
유인하 : 부성그룹의 둘째아들. 유만세와 채영랑 사이에서 낳은 친아들.
부성그룹의 계열사인 부성악기의 기획실장.
고등학교 때 유학을 떠나 작곡과를 졸업했지만, 작곡에 신통한 재능을 안 보이자 귀국해 부성악기에 입사했다.
아버지를 닮아 지는 걸 죽기보다 싫어하고, 피아노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지만, 늘 형인 지상에게 타고난 재능에서 밀려 열패감이 심하다.
천부적인 절대음감을 가진 형을 한번이라도 이겨보는 게 소원인 남자.
외아들로 가족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자랐는데, 어느 날 느닷없이 아버지 손에 끌려온 멋없게 생긴 놈이 내 형이란다.
거기다 할머니와 아버지의 전폭적인 애정 공세를 받는 것도 모자라, 피아노는 또 귀신처럼 쳐댄다.
피아노 배틀에서 단 한번도 이자식을 이겨본 적이 없다. 괴물 같다.
열손가락에 굳은살이 배이도록 밤새 연습하고 죽을듯이 노력하는 사람은 난데, 콩쿠르 대상도 칭찬도, 모두가 그 자식 몫이다.
형이 우리집에 오지 않았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데.. 화재사건 때 엄마는 그 자식을 구해냈다. 친자식인 나를 놔두고 그 원수놈 자식을!
그 덕에 난, 왼손에 치명적인 화상을 입었고.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되겠다는 꿈은, 그 날로 처참히 박살나 버렸다.
더구나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랑한 여자까지도, 그놈한테 맘이 있단다.
사랑도, 성공도, 모두 형한테 뺏길 것 같은 패배감과 질투심에 점점 이성을 잃어가는데..
그 때, 뜻밖의 기회가 왔다. 형이 작곡한 악보가 내 손에 들어온 것.
이 악보만 있으면.. 최고의 피아니스트는 아니더라도 최고의 작곡가는 될 수 있다. 이 악보만 있으면..!
민반월 : 유만세 회장의 어머니. 채영랑의 시어머니.
출생은 찢어지게 가난한 집의 맏딸로 태어났지만, 부잣집 마나님에, 효자 아들을 둔 덕에 도도함이 몸에 배였다.
말투나 행동은 거칠지만, 나름 따뜻한 속정을 갖고 있는 인물.
며느리 채영랑과는 처음부터 이상하게 안 맞았다.
명문여대를 나온 학력에, 지극한 효성에, 성격이며 내조며 뭐하나 나무랄 게 없는 며느리였지만, 속을 알 수 없는 한결같은 표정이 섬뜩했다.
옷자락 깊은 곳에 날카로운 칼날을 숨기고 있는 것처럼.
치매기를 보이면서, 하루종일 집에 갇혀 사는 걸 답답해한다.
생일케이크에 촛불불기를 좋아하고, 동네 초입에 있는 호떡장수 포장마차에서 호떡을 훔쳐먹는 일을 유일한 낙으로 안다.
호떡장수 홍수표와 친해져, 아들처럼 각별하게 대한다.
그러나 한밤중에 생일케이크 놀이를 하다 집안에 불이 나게 되고, 자신의 부탁으로 유회장을 구하러 들어온 홍수표가 연기에 질식돼 죽게 되면서, 죄책감으로 정신줄을 놓고 만다.
그리고 며느리 채영랑에 의해 낯선 요양원으로 옮겨지는데..
양동희 : 채영랑이 부리는 식모.
예쁘고 귀엽고, 애교가 많은 성격.
푼수끼는 있지만, 늘 눈웃음을 치고 다녀 미워하는 사람이 없다.
어릴 때부터 영랑이 딸처럼 키우면서 일을 가르쳤고, 영랑이 유일하게 자신의 넋두리를 할 수 있는 편한 대화 상대다.
< 홍다미의 집 >
홍다미 : 여자주인공.
한때 피아니스트를 꿈꿨으나,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포기했다.
루이 미용실의 미용사 보조.
언제 어디서나 밝고 긍정적이고 명랑 쾌활한 성격.
코믹하면서도 엉뚱한 언어 구사력과, 아무리 힘들어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는 씩씩함도 지녔다.
심성 고운 호떡장수 아빠와 예쁘고 싹싹한 엄마, 공부 잘하는 오빠와 행 복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돈은 없었지만 화목하고 늘 웃으며 살았다.
그러나 그 착한 아빠가 갑작스레 화재사고로 죽고, 절도범에 방화범으로 몰리면서 집안은 극심한 가난과 흉흉한 소문으로 쑥대밭이 되었다.
그런 그녀를 위로해 주는 건 가족과 피아노가 전부였다.
열손가락이 다 헤지고 피가 나도록 건반을 치고 또 쳤다.
그러나 신부전증에 걸린 엄마의 병원비와 의대생인 오빠 등록금을 위해,뼈를 깎는 아픔으로 음대 진학을 포기하고 미용실에 취직했다.
그런 다미에게 유지상이 생애 첫손님으로 찾아오고, 서로의 자전거가 바뀐 인연으로 두 사람은 묘하게 얽힌다.
그 인연은 사랑으로 이어지고..
후엔, 지상의 도움을 받아 부성악기에 입사해 악기제작이라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게 된다.
이제 다미의 꿈은,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피아노를 만들어 내는 것!
그러나 청천벽력처럼, 자신의 오빠 때문에 지상이 청력을 잃어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다미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악기는 전문가들로부터 극찬을 받지만, 정작 지상만은 그 아름다운 소리를 듣지 못한다.
결국 다미는 지상을 위해, 지상이 만들어내는 곡을 자신의 손가락으로 세상에 알릴 것을 결심하는데..
송남주 : 홍다미의 엄마. 홍수표의 아내.
봉사 활동으로 청각장애인인 홍수표를 도와주다,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하게 된다.
남편과 하루에 수십번 뽀뽀를 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속삭일 만큼 금슬이 좋다. 예쁜 얼굴만큼 마음도 더없이 예쁜 여자.
똑똑하고 모범생인 아들 우진과, 명랑 쾌활한 딸 다미, 그리고 뱃속에 곧 태어날 아이와 함께 가난하지만 꿈을 갖고 열심히 살아간다.
그러나 날벼락처럼 남편 홍수표가 유회장집 화재사건으로 숨지고, 집안은 풍비박산이 난다.
거기다 남편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미친듯이 뛰어다니다, 뱃속의 아이까지 사산하고 만다.
사산후유증으로 신장이 급속도로 나빠지고, 자식들의 생계를 위해 온갖 궂은일을 감당하지만, 쓰러지고 싶어도 쓰러질 수가 없었다.
억울하게 죽은 남편을 위해서도, 어떻게든 자식들을 보란듯이 키워내야만 했다. 절도범에 방화범이라는 말도 안되는 남편의 죄명을 기필코 벗겨줘야겠다고 결심했다.
세상에 법없이도 살 부처같은 아버지가 절대 나쁜짓을 할 리 없다고.
그 누명을 자식들이 꼭 풀어줘야 한다고!
홍우진 : 다미의 오빠.
홍수표와 송남주의 큰아들.
효성이 지극하고, 속이 깊고, 가족에 끔찍한 남자.
어릴 때부터 똑똑하고 공부 잘해서 집안의 기둥으로 불러졌다.
청각장애인이지만 누구보다 생각이 깊고 정직한 아빠를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며 자랐다. 아빠가 하는 말은 무엇이든 믿고 따랐다.
갑작스런 아빠의 죽음, 엄마의 사산, 극심한 생활고.. 모든 것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러나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직 힘없는 중학생이었고, 아빠의 억울한 죽음을 어떻게 증명해야 될 지 알 수가 없었다.
유회장 집에서 아빠는 불에 탄 채 발견됐지만, 보상은커녕 절도범에 방화범으로 몰려 조사를 받아야 했다.
우진은 이런 모든 울분을 공부에 쏟아 부었고, 명문대 의대에 합격해 엄마와 동생을 기쁘게 해줬다.
그러나 모든 게 허무했다. 대체 뭘 위해서 공부하는지 혼란스러웠다.
아빠 죽음의 진실은 밝히지도 못한 채, 가족들의 희생을 등에 업고, 자기 혼자 의사가 되면 뭐하고, 성공을 하면 뭐할 것인가.
결국 가족들 몰래 의대를 자퇴하고, 부성그룹 채영랑 회장의 뒤를 캐기 시작하는데. 조직에서 일하는 친구의 도움으로, 부성그룹과 사업적으로 얽혀있는 태양파 조직에 발을 들여놓는다.
그렇게 복수를 위해 점차 어둠의 늪으로 빠져들어가고..
그 조직에서, 채영랑의 첫사랑 김정욱 회장과 운명적인 만남을 갖는다.
끝까지 아버지 죽음을 파헤쳐서 영랑의 목을 죄여가는 인물.
< 하소율의 집 >
하소율 : 부성악기에서 스카우트한 실력파 팀장. 이태리 유학파.
아버지가 유명한 작곡가에 대학교수고, 그 교수의 외동딸이다.
지상과는 같은 대학 피아노과를 나온 친구.
유학 시절, 잘못된 결혼으로 불임이 되지만, 정작 자신은 알지 못한다.
한때 피아니스트를 꿈꿨으나, 예술가보다는 비즈니스에 더 재능이 있음을 알고, 이태리 악기제조학교에서 유학하며 실력을 쌓았다.
귀국해 부성악기에 입사, 열정적으로 일한다.
부성악기를 세계적인 악기회사인 스타인웨이나 야마하 같은 대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는 야망이 있는 여자다.
채영랑 회장의 브레인 역할을 하면서, 친구인 지상을 남자로 좋아한다.
후에 부성악기에 입사한 홍다미와 라이벌로 일하고, 유지상을 사이에 두고 연적 관계가 된다.
사랑에 대해 저돌적이고 솔직하다.
겉으론 강해 보이고 거침없어 보이나, 예술가 아버지 밑에서 외롭게 살아온 상처를 안고 있다.
청각을 잃은 지상을 포기하지 못하고, 그를 자기 남자로 만들기 위해 무슨 일이든 다하는 열정적인 인물.
하윤모 : 하소율의 아버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이름 있는 작곡가며 대학교수.
주인공 유지상이 음악적으로 가장 존경하는 인물.
지독한 완벽주의자에, 엄청난 욕쟁이고 독설가.
유별난 결벽증과 예술가적 괴팍함 때문에 어떤 여자도 그의 비위를 맞추지 못해 도망쳐 버렸다.
외동딸 소율에 대한 마음은 극진하지만, 표현을 잘 못해 늘 부딪치고 삐거덕댄다.
유지상의 천부적인 재능을 알아보고 그를 자신의 후계자로 삼으려 하지만, 영랑의 방해로 예상을 뒤엎고 인하를 제자로 삼는다.
예술에 있어서는 어떤 타협도 없는 고지식한 인물이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만은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음악계의 대부.
평생을 음악과 함께 외로운 인생을 살다,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유지상에게 자신의 미완성곡과 딸 소율을 부탁한다.
< 그 外 인물 >
김정욱 : 태양파 조직의 1인자. 대외적으론 태양건설 회장.
채영랑의 첫사랑 남자.
채영랑과 미국에서 유학 시절 뜨겁게 사랑했다, 영랑의 집안이 파산하면서 일방적으로 헤어짐을 당했다.
영랑이 집안을 위해 부성그룹 유회장과 결혼한 후, 배신감에 죽을 생각을 했을 정도로 영랑을 지독하게 사랑한 남자.
우연히 조직의 대부인 김회장의 목숨을 구해주게 되면서 인연을 맺는다.
결국 김회장의 양아들로 들어가, 조직을 입수하고 우두머리가 된다.
사업적으로 부성그룹과 엮이면서, 자신의 존재를 숨긴 채 의도적으로 영랑 주위를 맴돈다.
조직에 홍우진이 들어오고, 그를 아껴서 자신의 후계자로 키우지만, 우진의 칼날이 영랑을 향하고 있음을 알고 갈등에 빠진다.
피도 눈물도 없어 보이는 냉철한 성격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사랑에 있어서는 완벽한 로맨티스트로서의 매력을 보여준다.
영랑을 망하게 할 것인가, 지켜줄 것인가, 고민하다 결국..
나계화 : 채영랑의 친정엄마면서 계모.
영랑의 아버지 재취로 들어와, 한때 부잣집 사모님으로 거침없이 사치를 즐겼던 여자.
하루아침에 남편의 사업이 망하고 집안이 몰락하자, 딸을 부잣집으로 시집보내려고 안달을 낸다.
영랑이 첫사랑을 버리고, 유회장과 결혼하도록 끝없이 부추긴 인물.
사위인 유회장이 살아있을 땐 온갖 구실로 돈을 뜯어갔지만, 딸이 회장이 되면서 오히려 돈줄이 막혀 쩔쩔맨다.
그러나 영랑에게 밀리지 않을 만큼 기가 센 여자다.
나중엔 짐을 싸서 무작정 영랑의 집으로 들어와, 자신을 부양하라고 큰소리치는 안하무인격 소유자.
영랑에겐 가장 천적인 인물. 중대한 사건의 키를 쥐고 있다.
최승재 : 변호사.
유만세 회장 때부터 부성그룹과 집안에 대한 모든 일을 봐주는 법무팀장 변호사.
머리가 비상하고, 치밀하고, 냉혹하고, 불도저 같은 성격.
병으로 사랑했던 부인을 잃은 후, 부인을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혼자 살고 있다.
변호사 일이 바빠, 부인이 아픈 것조차 몰랐고, 부인이 혼자 병원을 돌아다니며 진단을 받았다는 걸 알게 된 후 극심한 정신적 후유증을 앓는다.
유회장 사망 후, 채영랑의 오른팔 같은 존재가 된다.
채영랑의 지시로, 중증치매로 요양원에 입원해 있는 민여사의 유언장을 조작해 주식을 가로챈다.
그러나 반전으로, 결정적인 순간에, 민여사의 진짜 유언장을 공개해 지상을 위기에서 구하고, 영랑을 몰락시킨다.
잠깐 의식이 돌아온 민여사의 부탁으로, 홍다미 집안을 뒤에서 몰래 도와주고 있었던 것. 그러다 다미 엄마인 송남주에게 차츰 사랑의 마음을 갖게 된다.
남주에게서 죽은 부인의 환영을 느끼고, 남주를 꼭 살려야겠다고 결심해 온갖 노력을 다한다.
결국 백방으로 뛰어다닌 끝에, 남주에게 신장을 이식해줄 사람을 찾게 되고, 이식하는 날 수술실에 환자복을 입은 승재의 모습이 보이는데..
채영랑이 가장 자기편이라고 믿었던 심복이었다가, 채영랑의 가장 무서운 적이 되는 인물.
루이강 : 미용실 원장.
코믹 캐릭터지만, 다분히 감성적인 면모가 많은 인물.
최고의 패션 감각을 자랑하고, 몸에 꽉 끼는 체크무늬 슈트에 나비넥타이를 즐겨 입는 멋쟁이.
멋진 옷 모양새와는 달리,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가 최대 단점이다.
사투리를 숨기려고 애써 서울말 쓰려고 하는 게 안쓰러울 정도.
정이 많고 수다스럽지만, 직원 관리에 엄격한 노총각.
헤어 아티스트로서 자부심이 강해, 불성실한 태도나 문란한 사생활은 참지 못하고, 직원들에게 늘 프로의식을 강요한다.
다미가 손재주에 남다른 재능이 있음을 가장 먼저 알아채고 눈여겨본다.
처음엔 다미를 괴롭히는 것처럼 혹독하게 훈련시키지만, 다미에게 누구보다 애정을 갖고 다미의 성공을 뒤에서 도와준다.
미용실을 떠나는 걸 망설이는 다미를 위해, 일부러 다미를 해고시켜, 다미가 부성악기에 입사하는 기회를 마련해 준다.
다미가 떠난 후, 다미엄마인 송남주에게 미용 기술을 가르쳐 자신의 미용실에 취직시켜준다.
연상의 여자인 남주를 여자로 사랑하지만, 끝까지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동료로서 남주 곁을 지켜준다.
나이가 들어도 남자여자가 진정한 친구로 남을 수 있음을 증명해 보이는 사람.
신도리 : 홍다미의 절친한 친구. 미용실 시다.
다미의 오빠 홍우진을 사랑하는 여자.
미용기술은 영 신통하지 않으면서, 사사건건 남의 일에 나서기 좋아하고, 정도 많고 눈물도 많은 캐릭터.
코믹한 인물이지만, 사랑만큼은 절절하다.
우진에게 순애보를 다하지만, 우진은 사랑 따윌 생각할 만큼 한가하지 않다.
김은우 : 루이강 미용실의 수석 미용사.
질투심이 강해서, 늘 원장한테 사랑받는 다미를 괴롭히고 시기한다.
다미가 편한 꼴을 못 보고, 어떻게 하면 골탕먹일까 늘 연구하는 밉상 여자 캐릭터.
한때 루이강의 후원으로 미스코리아를 꿈꿨으나, 대회 일주일 전 루이강의 실수로 다리에 화상을 입어 미스코리아의 꿈을 접었다.
그 후, 루이강이 책임을 느껴 미용 기술을 가르치고, 곁에 두며 아꼈다.
마음으로 루이강 원장을 남몰래 사모하지만, 루이강이 여자로서 곁을 주지 않자, 더 비뚤어진 모습을 보인다.
명품을 좋아하고, 늘 부잣집 딸처럼 행세하지만, 사실은 고아원에서 외롭게 자란 상처를 갖고 있다.
7. 줄거리
국내 기업 중 다섯손가락 안에 들 만큼 재정이 탄탄하고, 건설과 유통 분야에서 독보적 선두를 지키고 있는 부성그룹의 대표 유만세 회장. 술과 여자를 좋아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평생을 자유롭게 살았다.
그리고 그의 부인 채영랑. 남편의 사업에 일체 관심이 없고, 대외 행사에 거의 얼굴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조용한 성품. 오로지 유회장에 대한 내조와 집안일에만 헌신하는 현모양처형 재벌가 안주인.
명문여대를 졸업하고, 피아니스트를 꿈꾸며 미국 유학을 떠났으나, 아버지의 죽음으로 집안이 파산하자 서둘러 귀국. 자신의 후견인이었던 재벌 유회장과 결혼했다. 한때 신데렐라로 유명세를 치르며 화제의 인물이 되기도 했던 여자다.
그러나 결혼 후, 평생을 유회장의 그늘에 가려, 그가 저지른 여자사건의 뒤처리 해결사로 그림자처럼 움직이며, 희생적인 내조자로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 살았다. 채영랑의 하루일과는, 까다롭기 이를데없는 시어머니 수발들기, 유회장 보내고 맞기, 아들 인하와 시간보내기, 요리하고 뜨개질하기, 그리고 조용하게 유회장이 건드린 여자들 해결하기로 채워졌다.
남의 식구들을 가리는 유회장의 성격 탓에, 비서들과 식모들은 출퇴근을 원칙으로 했고, 밤이 되면 영랑 혼자서 녹초가 되도록 식구들 시중을 들어야 했다.
채영랑은 거의 표정 변화가 없었다. 늘 다소곳하게 순종하고 시어머니 민여사가 온갖 투정을 다해도 모든걸 다 참고 받아줬으며, 남편의 폭언과 모욕에도 이렇다 할 말대꾸가 없었다.
남편이 어느날 갑자기 밖에서 낳아온 자식이라며, 지상을 집에 들였을 때도, 자신의 운명인 것처럼 모든 것을 속으로 삼키고 자신의 자식으로 키웠다. 심지어 그 아들을 제자식이랑 공평하게 따뜻하게 보살피고, 아껴줬다. 누구는 그런 채영랑을 살아있는 부처라고 부르며 존경했고, 누구는 돈에 팔려온 노예라고 무시했다.
채영랑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하나는 자신이 직접 낳은 금쪽같은 아들 유인하고, 또다른 하나는 남편이 밖에서 낳아 데려온 아들 유지상이다.
영랑은 자신의 피를 이어받아 피아노에 재능을 보이는 인하가 마냥 대견스러웠다. 인하는 신통하게도 자신이 가르치는 것 이상으로 뭐든 잘 흡수시켰다. 결혼한 후, 남편이 사업 끝빨 망친다며 못 치게 하던 피아노를 인하 때문에 다시 만질 수 있다는 것만도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인하에게 대적할 수 없는 강적이 나타났다. 그의 형 유지상! 단 한번도 피아노를 배워본 적 없는 그가, 오로지 인하의 어깨 너머로 익힌 음들을 귀신같이 기억해 내고 틀린 음을 잡아낸다.
별 연습없이 나간 콩쿠르에서도, 손가락이 다 헤지도록 연습한 인하를 따돌리고 대상을 움켜쥔 건 지상이었다. 웃는 듯 우는 듯 묘하게 일그러지는 영랑의 얼굴..
영랑이 품었던 거대한 꿈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있었다. 남편의 아들인 유지상.. 어쩌면 평생 자신의 아들한테 걸림돌이 될지 모르는 위험한 존재였다. 거기다 지상은 타고난 싹싹함과 영특함으로 시어머니와 남편한테 무한한 사랑을 받고 있었다. 남편은 지상을 피아노 천재라고 자랑하고 다녔고, 시어머니는 불쌍하게 자랐다며 인하보다 지상을 더 아끼고 감쌌다.
사실 영랑은 무서운 집념과 야망이 있는 여자였다. 가슴 깊숙한 곳에 무시무시한 칼을 숨기고 때를 기다리고 있는 여자였다. 영랑이 남편한테 받는 모든 설움을 죽을힘다해 참아내는 유일한 이유는, 아들 인하 때문이었다. 언젠가 남편의 회사를 온전히 아들 몫으로 물려주리라, 그날이 올 때까지는 개처럼 끌려다녀도 웃어주리라, 하늘에 대고 맹세했었다.
영랑에게 가장 치욕은, 남편의 부정이 아니라 가난이었다. 남부럽지 않은 가정에서 유복하게 학창시절을 보냈지만, 사업이 망하고 아버지가 빚만 남기고 죽었을 때, 세상은 철저하게 그녀를 외면했다. 한순간에 집을 잃었고, 친구를 잃었고, 미치도록 사랑하는 남자를 잃었고, 피아노를 향한 꿈을 잃었다.
아버지가 남겨준 건, 지독한 가난과, 철없는 동생들과, 사치스러운 계모뿐이었다. 계모의 성화에, 사랑하던 남자와 헤어져, 부성그룹 오너이자 문화재단 후견인이었던 유회장과 결혼을 했고, 결혼한 후에야 남편이 지독한 여성 편력이 있는 바람둥이임을 알았다. 매일 밤 남편한테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다시 동생들을 길바닥으로 내몰 자신이 없었다. 그러다 인하가 태어났다.
인하가 태어난 이후, 그녀에겐 새로운 꿈이 생겼다. 인하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로 키우겠다는 꿈. 가장 좋은 가정에서 자라게 하고, 가장 좋은 엄마가 돼 주고, 부성그룹의 오너로 성공시키겠다는 꿈! 그러기 위해선 털끝만큼도 자신의 가정에 흠집이 나면 안되는 일이었다. 속은 곪아터졌더라도, 겉은 완벽한 가정이어야 했다.
인하만 행복할 수 있다면, 남편의 여자쯤 열이고 백이고 상대해 줄 자신이 있었다. 부성그룹이라는 동아줄을 붙잡고, 악착같이 조강지처의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했다. 아들이 자라서, 남편의 그 많은 재산을 고스란히 물려받기 전에는, 의심스런 어떤 행동도 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그런데 어느 날, 느닷없이 남편의 손을 잡고 눈앞에 나타난 유지상! 다른 여자가 낳았다는 초등학생 지상은, 인하보다도 두 살 형이었고, 아이답지 않게 예의바르고 반듯한 녀석이었다. 거기다 피아노를 만져보지도 않았다는데 청음 실력은 가히 천재였다.
바람둥이였어도, 다른 여자한테는 자식을 얻지 않는다는 철칙을 지녔던 유회장이었는데, 제대로 뒤통수를 맞았다. 어느 순간 집안의 장남이 바뀌어 있었다. 시어머니는 대놓고 자신의 재산을 지상한테 남기겠다고 선언했다. 훗날 지상이 장남으로 인정받고, 부성그룹의 후계자가 되기라도 한다면.. 모든 게 끝이었다.
그렇다고 지상을 구박한다면, 그 동안 철저하게 현모양처로 쌓아온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거였다. 영랑은 속으로 피눈물을 삼키며, 지상을 자식으로 품기로 결심했다. 인하랑 똑같이, 아니 남앞에서는 인하보다 더 살뜰하게 챙겼다. 옷을 사와도 인하보다 좋은 걸로, 인하보다 더 많이 사다 입혔다. 그런 영랑을 남편은 완벽히 믿는 눈치였다. 그럴수록 영랑은 지상이 미워서 죽을 거 같았다. 졸지에 외동아들에서 밀려나 천덕꾸러기가 된 인하가 가엾어 미칠 거 같았다. 미안해 인하야.. 좀만 더 참아줘.. 엄마가 언젠가 다 보상해 줄게.. 하나도 빼먹지 않고 다 기억하고 있다가 모든 걸 다 돌려놓고 말거야..!!
홍수표와 송남주는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사는 금슬좋은 부부였다. 남주는 대학생 때 봉사모임에서 청각장애인인 홍수표를 만나, 그를 도와주다 사랑을 하게 되고, 결혼까지 했다.
극심한 집안의 반대가 있었지만, 수표의 맑고 진실된 마음에 반해 그와 인생을 함께 하겠다고 일생일대의 용기를 냈다. 결국 친정과 의절까지 하면서 사랑을 택했고, 아들딸 둘을 낳아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
아들 홍우진. 딸 홍다미. 두 아이는 착하고 예쁘게 잘 커갔고, 남주의 뱃속엔 셋째아이가 자라고 있었다. 남편은 조그만 포장마차에서 호떡장사를 하며, 다정하면서도 든든한 가장의 역할을 다했다. 가난 말고는 부족함이 없는 행복이었다.
그런 수표에게 한 할머니가 자꾸 장난을 걸어왔다. 갑자기 포장마차로 뛰어들어와 호떡 몇 개를 훔쳐서 부리나케 도망쳐 버렸다. 틀림없이 돈없고 배고픈 독거노인이리라.. 수표는 생각했다.
그때까지 수표는 전혀 알지 못했다. 호떡을 훔치던 할머니가, 그를 찾아헤매던 비서들의 손에 이끌려 최고급 리무진을 타고 대저택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할머니는 배고픈 독거노인이 아니었다. 부성그룹 유회장이 끔찍하게 여기는 하나뿐인 어머니였고, 채영랑의 시어머니였다. 조금씩 치매기를 보이던 민여사는, 틈만 나면 대문을 빠져나가 온가족이 애를 태우고 있었다.
유회장의 과잉보호 때문에 민여사는 답답증에 걸려 미칠 거 같았다. 그 좋아하는 골프도 못 치게 하고, 쇼핑도 못 가게 하고, 24시간 집안에 가둬놓고 당뇨식으로 밥을 주는 통에, 사육당하는 애완견이 되는 거 같았다.
사실 민여사는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의 맏딸로 자란 탓에, 평생 식탐을 달고 살았다. 당뇨고 뭐고간에, 배고픈 것은 못 참는 성격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민여사 눈에, 동네 어귀에 있는 호떡 포장마차가 눈에 들어왔다. 시집오기 전엔, 배고픈 동생들을 먹이려고 허구한 날 시장통에서 풀빵을 훔쳤었고, 그 오래된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충동적으로 홍수표의 포장마차에서 호떡을 훔쳐냈다.
장난삼아 시작한 일이, 호떡장수가 번번이 자신을 놓치자, 민여사는 점차 재미가 들렸고, 매일같이 호떡 훔치기 놀이를 하기 위해 집을 빠져 나왔다. 그러다 결국 홍수표에게 붙잡히게 되는데.. 자신을 우악스럽게 파출소로 끌고갔던 옛날의 풀빵장수와는 달리, 홍수표는 민여사에게 따뜻한 호떡을 내밀었다. 수줍은 듯 웃으면서 홍수표가 종이에 끄적거린 글씨는.. “할머니, 따뜻한 게 더 맛있어요..” 였다.
민여사는 그날로 수표가 마냥 좋아졌다. 청각장애인이면서도 진실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수표를, 어떻게든 내 자식처럼 도와주고 싶었다.
그래서 수표의 딸이 피아노 치는 걸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누가 버린 걸 주워왔다고 거짓말하며, 며느리의 오래된 피아노를 수표에게 줘버렸다. 며느리가 끼지 않는 반지며, 옷이며, 집안에 굴러다니는 이것저것 살림들을 하나씩 퍼나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민여사의 이런 모든 호의는, 며칠 후 수표에게 치명적인 독으로 돌아왔다.
사건은 지상의 생일날 벌어졌다. 유회장은 지상을 자신의 호적에 올린 날을 생일날로 정하고, 대대적으로 손님 초대를 해서 지상을 집안의 장남으로 알리는 공식 행사를 했다. 하루종일 손님들 뒤치다꺼리 하느라 녹초가 된 영랑은, 유회장의 뜻밖의 행동에 초조해지고..
밤늦게 유회장은 은밀하게 최변호사를 불러, 지상을 부성그룹 후계자로 지정하고, 지상에게 막대한 주식을 증여한다는 유언장을 다시 작성했다. 서재 밖에서 유회장의 말을 엿들은 영랑은 기겁하고.. 그 일로 유회장과 처음으로 격렬하게 부딪쳤다.
영랑의 원대한 꿈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부성그룹의 후계자라니..! 굴러온 돌한테 박힌 돌이 뿌리채 뽑히도록 내버려둘 순 없었다. 누가 뭐래도 조강지처는 채영랑 자신이었다. 근본도 모르는 여자한테 얻은 자식이 장남이 될 순 없었다.
영랑은 유회장에게 무섭게 대들었다. 유언장을 찢고 난동을 부렸다. 십년동안 꼭꼭 숨겨 왔던 속마음이 한꺼번에 봇물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갑자기 변한 영랑의 모습에 유회장은 격분하고,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바닥에 패대기쳐졌던 영랑은 유회장을 있는힘껏 밀쳐내고. 그 순간, 유회장은 책상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치고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바로 그 때, 거실에선 치매 걸린 시어머니가 생일케이크를 놓고 촛불놀이를 하다 신문지에 불이 옮겨붙고, 순식간에 불길이 집안으로 퍼져갔다.
정신을 잃고 쓰러진 남편을 보자 당황한 영랑은, 황급히 서재를 뛰쳐나오고, 화마가 덮친 거실을 보고 경악하는데!
순간 영랑의 머리가 무섭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지금껏 숨겨왔던 모든 계획이 들통난 이상, 무서울 게 없었다. 화재신고를 못하도록 전화선을 끊어버렸다. 남편이 있는 서재방의 문고리가 고장났다는 사실을 기억해내고, 남편을 방밖에서 가둬버렸다. 서재는 도망칠 창문 하나 없다는 걸 영랑은 알고 있었다. 불꽃이 가재도구와 커튼에 옮겨붙으면서, 거실은 금세 유독가스와 연기로 숨을 쉴 수가 없을 만큼 지옥이 되었다.
그제야 벼락처럼 아들 인하가 2층에서 잠들어 있다는 걸 깨달은 영랑은, 미친듯이 불길을 뚫고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화염과 연기로, 한치앞도 보이지 않는 위태로운 상황에서, 인하를 살려야겠다는 무서운 모성만이 불길보다 거세게 휘몰아쳤다.
목숨을 걸고 2층 거실로 뛰어들어간 영랑은, 소파에 엎드려 신음하고 있는 인하의 모습을 연기 사이로 어렴풋이 확인했다. 그리고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인하를 자신의 옷으로 감싸안은 채 불길을 뚫고 달렸다. 자기 목숨 따윈 어떻게 돼도 상관없었다. 우리 인하만 살 수 있다면.. 하나님. 우리 인하만 살려주세요!
잠시 지상의 방문 앞에서 머뭇하지만, 기둥이 무너지고 전등이 떨어지면서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서재에선 기절했다 깨어난 남편이 문을 부술듯이 방문을 때리고 소리를 지르는데, 귀를 틀어막고 도망쳐 나와버렸다.
영랑이 인하를 안고 현관을 빠져나오자마자, 엄청난 굉음을 내며 집안 한귀퉁이가 불길에 주저앉았다. 살았구나.. 싶은 맘으로, 옷안에 싸여진 아이 얼굴을 확인한 순간, 영랑은 죽을듯이 비명을 내질렀다. 영랑이 옷으로 감싸안고 나온 아이는 친아들 인하가 아니라, 남편의 자식 지상이었다!
지상은 겁에 질린 듯 울고 있었다. 지상이 인하의 잠옷을 입고 있는 바람에, 지상을 인하로 착각했던 것이다.
영랑은 정신이 혼미해오면서, 인하가 갇혀있을 집을 향해 무작정 돌진했다. 그 순간 소방대원이 출동하고, 미친듯이 몸부림치며 울부짖는 영랑을 강제로 끌어냈다. 우리 아들이 저 안에 있어요. 내 아들 좀 살려줘요. 내 아들이 죽는다구요!
유만세회장의 저택은 전소되고, 인하는 불길이 잡힌 후 기적적으로 피아노 밑에서 발견됐지만,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꼬박 1년을 미이라처럼 온몸에 붕대를 감은 채 어둠속에서 지새운 끝에, 간신히 혼수상태에서 벗어났다.
그 날의 화재로, 두명이 목숨을 잃었다. 서재방에서 숨진 유만세회장과, 무너진 2층 계단에 깔린 채 발견된 호떡장수 홍수표.
민여사는 아들과 홍수표의 죽음을 확인하고는, 갑자기 정신을 놔버린 듯 중증치매 증상을 보였다. 사람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어린시절로 돌아간 듯 해맑게 웃기만 했다. 끔찍한 기억을 되살리고 싶지 않은 듯.
사실 홍수표가 유회장집 화재현장에서 발견된 이유는, 민여사 때문이었다. 불길에 놀라 집을 빠져나온 민여사는, 대문앞에서 우연히 장사를 마치고 귀가하던 홍수표와 맞부딪쳤다. 민여사는 홍수표를 붙들고, 자기 아들을 살려달라고 고함을 쳐댔고, 홍수표는 얼떨결에 유회장 집으로 뛰어들어갔다 변을 당한 것이다.
수표는 불길을 뚫고, 이방저방을 뛰어다니며 유회장을 찾았지만 그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 때, 영랑이 한아이를 끌어안은 채 현관 밖으로 뛰쳐나가는 모습이 보였고, 연이어 어린아이가 울면서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그 순간, 굉음과 함께 2층 계단이 무너져내렸다. 수표는 본능적으로 몸을 날려 어린아이를 구하고, 자신은 계단에 깔린 채 정신을 잃었다.
응급실로 옮겨진 수표에게 식구들이 달려왔고, 수표는 힘겹게 종이에 ‘고마워’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과 이별했다.
청천벽력처럼 남편과 아빠를 잃은 남주와 아이들은 오열했고, 그들의 슬픔과는 상관없이 화재원인에 대한 수사가 시작됐다.
경찰은 서재방 문고리가 고장나 있었던 점과, 숨진 유만세회장의 머리에 타박상 흔적이 있던 점, 찢겨진 유언장이 발견된 점 등을 들어, 가정불화로 인한 방화에 초점을 맞춰 영랑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영랑은 점차 혐의가 자신에게 집중되자, 홍수표가 절도를 위해 자신의 집에 침입했고, 남편에게 발각되자 남편를 해치고 방화를 저질렀다고 거짓 진술을 했다. 결국 홍수표 집으로 경찰이 급파됐고, 수표 집에서 영랑의 다이아반지와 옷가지들이 발견되면서, 졸지에 수표는 절도범에 방화범으로 몰렸다.
영랑은 점차 대담하고 집요하게 다이아반지를 도난당했다고 주장했고, 가족의 항변에도 불구하고, 죽은 자는 말이 없었다. 치매 걸린 할머니가 오천원짜리 가짜반지라며 홍수표에게 준 반지가 수천만원짜리 진짜다이아반지라는 사실에, 송남주는 속절없이 당해야만 했다.
죽은 남편은 순식간에 파렴치한 범죄자가 되었고, 똑똑하고 착한 아이들은 학교에서 범죄자 자식으로 불려졌다.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따돌림을 받으며 이사를 다녀야 했고, 엄청난 생활고가 남주의 집에 들이닥쳤다.
거기다 남편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미친듯이 뛰어다니다, 뱃속의 아이까지 사산되면서, 급격히 신장에 이상이 오고 건강까지 잃어버렸다.
그렇다고 누워있을 수도 없었다. 금쪽같은 새끼들을 굶어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죽을힘을 다해 식당일이며 파출부일이며 온갖 허드렛일에 뛰어다녔다. 남편의 억울한 죽음을 언젠가는 꼭 밝혀줘야 된다고 이를 악물었다. 이렇게는 도저히 남편을 떠나보낼 수가 없었다. 그 착한 남자가 누구보다 아름답게 살다간 이 세상이, 그를 버리지 않았음을 반드시 증명해 줘야 된다고 결심하고 또 결심했다.
남주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는 것과 달리, 영랑의 인생은 완전히 새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화재 현장에서 친아들을 놔두고, 바람둥이 남편이 데려온 아들을 구했다는 미담이 알려지면서, 남주는 일약 위대한 성인으로 불려졌다.
유회장의 바람기를 참아내면서 꿋꿋이 가정을 지킨 현모양처에, 치매 시어머니를 깍듯하게 봉양한 효성 깊은 며느리에, 핏줄을 안 가리고 자식을 사랑하는 공정한 어머니로, 영랑은 모든 이에게 존경과 찬사를 받았다.
그녀의 올라간 위상 덕분에, 긴급이사회를 통해 당당하게 부성그룹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영랑의 인생 2막이 시작되었다. 그토록 고대하던 부성그룹의 실권을 움켜잡았고, 이제 모든 것이 인하의 것이 되는 거였다.
혼수상태로 신음하던 인하의 병상을 지키면서, 영랑은 수천번 다짐했었다. 남은 인생은 오로지 인하의 행복을 위해서만 살겠노라고. 불길에서 인하를 구하지 못한 어미로서의 죄책감을 평생 갚으며 살겠노라고. 인하를 괴롭히는 그 무엇과도 싸워서 인하를 꼭 지켜주겠다고. 절대 지상에게 단 하나도 뺏기지 않겠다고!
그러나 인하는 몇 번의 재수술과 재활훈련을 통해 거의 모든 기능은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끝내 화상을 입은 왼손 새끼손가락이 움직이지 않는 후유증을 보였다. 그것은 최고의 피아니스트를 꿈꿨던 인하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되었다.
17년의 세월이 흘렀다.
고등학교 때 미국유학을 떠났던 인하가 갑자기 귀국한다는 소식에, 영랑은 실의에 빠졌다. 화상을 입은 왼손 때문에 피아니스트를 포기하고, 작곡과로 대학 진학을 했던 인하는, 재능의 한계에 부딪쳐 결국 귀국길에 오른 것이다.
그에 반해 지상은 탄탄대로를 걷고 있었다. 별다른 어려움 없이 명문대 작곡과에 합격한 후, 대학원에서 저명한 하윤모 교수 밑에서 가르침을 받고 있었다. 지상이 작곡한 피아노협주곡이 유럽의 국제작곡경연대회에서 최연소 대상을 차지하면서, 천재 작곡가로 유명세를 떨치던 터였다.
영랑에게 지상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지만, 대놓고 그를 미워할 수도 내칠 수도 없었다. 유회장의 유언장은 찢겨졌지만, 남편이 금고에 보관한 마지막 유언장이 발견되면서, 지상은 여전히 부성그룹의 막대한 주식을 보유한 최대주주였다.
더욱이 지상은 엄마라면 끔찍한 효자 아들이었고, 세상 사람들은 그들의 아름다운 모자관계를 아직도 칭송하고 있었다. 화재에서 지상을 구해준 덕분에, 영랑은 많은 것을 쉽게 얻었고, 부성그룹 회장 자리를 지키는데 아직도 지상이 필요한 존재였다.
또한 유회장이 죽은 후, 영랑이 부성그룹의 새로운 계열사로 설립한 부성악기가 지상의 도움을 받아 국내 정상 수준으로 급성장했다. 지상의 절대음감은 악기제조에도 뛰어난 감각을 발휘했다. 미묘한 음과 울림의 차이를 귀신같이 잡아냈고, 지상이 연주회에서 부성피아노만 연주한다는 사실도, 회사로서는 득이 되는 일이었다.
지상은 영랑을 절대적으로 믿고 따랐다. 친아들 인하를 놔두고, 그 위급한 상황에서 자신을 구해줬다는 것만으로도 평생 갚을 수 없는 빚을 졌다고 생각했다. 지상은 영랑에게서 처음으로 엄마라는 존재를 느꼈다. 알에서 깨어난 병아리가 처음으로 눈을 맞춘 이를 엄마라고 믿는 것처럼.
아름답고, 지적이고, 품위있는 영랑을, 지상은 너무도 사랑했다. 다른 여자가 낳은 원수의 자식을 목숨걸고 구해내다니.. 자신같은 애는 감히 그 마음을 상상도 할 수없는 위대한 분이었다. 그런 엄마를 위해서는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말은 못했지만, 화재가 난 근본적인 이유가 자기 탓이라고 생각했다. 할머니가 생일케이크 놀이를 하고싶다고 조르길래, 케이크에 불을 붙여준 게 지상 자신이었던 것이다! 할머니 혼자 있을 땐 케이크에 촛불을 켜면 안된다는 아버지 명령을 어긴 게 두고두고 죄책감으로 남았다.
아버지의 죽음도, 동생 인하가 피아니스트를 포기한 것도, 모두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면, 평생 마음 깊은곳이 아팠다.
지상에게 가족의 존재는 절대적이었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 자신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인하가 고등학교 때 미국유학을 떠났을 때도, 자신은 엄마 곁을 지키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미국유학이라는 좋은 기회도, 피아니스트로서의 출세도, 엄마에 비하면 다 하찮은 것들이었다.
그런 지상이 인하는 더 싫었고 두려웠다. 언제나 자신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형이 끔찍할 만큼 미웠다. 어린 시절, 단한번도 피아노 배틀에서 그를 이겨본 적이 없었다. 손가락이 없어지도록 밤을 새서 연습을 해도, 콩쿠르에서 대상은 늘 형 차지였다. 악마와 거래를 해서라도, 형이 우리집으로 들어오지 않을 때로 돌아가고 싶었다.
거기다 화재사고로 왼손에 화상을 입은 순간부터, 형에 대한 미움은 극으로 치달았다. 내엄만데.. 나 대신 형을 먼저 구했다. 엄마에 대한 배신감과 질투심으로 사춘기를 방황과 반항으로 일삼다, 결국 유학을 택하고 집을 떠났던 것이다.
유학을 떠나기 얼마 전, 지상이 콩쿠르에서 대상을 받고 꽃다발에 파묻혀 있었을 때, 지상을 바라보던 인하의 눈빛이 섬뜩했다. 그리고 그날 밤, 지상이 잠들어 있던 방의 유리창이 침대로 쏟아져 내렸다.
지상은.. 알고 있었다. 도둑고양이 때문에 일어난 사고가 아니라는 걸. 밖에서 고의로 유리창을 깬 사람이 누구라는 것도.
그러나 지상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인하의 고통이 너무도 이해가 됐고, 가슴이 찢기듯 아팠다. 차라리 깨진 유리창에 자신의 손가락이 부셔졌으면 맘이 편할 거 같은데.. 사랑하는 동생을 위해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렇게 인하는 절망감을 안은 채 유학길에 올랐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인하는 형에 대한 미움이 더 깊어 있었다. 지상이 잘나가는 피아니스트에 작곡가로 명성을 떨치는 모습이 죽을 만큼 보기 역겨웠다. 차라리 그 때 불구덩 속에서 죽었어야 했어! 왜 살려냈어? 왜?
영랑은 인하가 귀국하자마자 부성악기 기획실장으로 입사시켰다. 그러나 그 어떤 지위나 명예도, 인하에겐 부질없는 거였다. 단한번이라도 좋으니, 형을 음악으로 이겨보고 싶었다. 언제나 사람좋은 웃음을 지으며 가족처럼 행세하는 지상의 눈에서 피눈물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인하의 마음을 영랑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영랑이 악기회사를 설립한 것은, 영랑의 오랜 염원이기도 했지만, 인하를 위한 마음이 컸다. 자신의 아들 인하는 원없이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해보고, 꿈을 키워가길 원했다. 그리고 영랑이 지상의 날개를 꺾는 적절한 시기에, 부성그룹을 인하에게 물려줄 생각이었다.
지상이 막대한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이상, 지금 당장 부성그룹을 빼앗아 올 순 없었다. 영랑은 지상을 무너뜨릴 계획을 치밀하게 세워놓고, 지상이 가장 높은 곳에 오를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야 더 고통스럽게, 더 많은 것을 뺏을 수 있다고 믿었으니까.
이제 영랑이 오랫동안 준비해 오던 바로 그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내 자식이, 남편의 자식을 보란듯이 이기고 당당하게 성공하는 그 날이!
영랑은 대학선배인 하윤모 교수가 퇴직을 앞두고, 자신의 후계자를 지정한다는 소문을 듣는다. 함부로 제자도 삼지 않는 하교수가, 후계자를 세운다는 것 자체가 음악계에선 핫이슈가 되었다.
하교수는 괴팍한 성격에 욕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국내에서 가장 실력있고 영향력 있는 작곡가였다. 그런 하교수가 지상의 천재성을 인정하고, 지상에게 특별한 애정을 쏟고 있는 중이었고, 모두들 지상이 하교수의 후계자가 될 거라 믿었다.
그 때, 영랑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학선배인 하윤모 교수를 누구보다 잘아는 영랑은, 하교수의 아픈 손가락을 알고 있었다. 그건 하교수의 외동딸 소율이었다. 깐깐한 예술가 아버지 때문에, 엄마없이 외롭게 자란 소율은 애정결핍이라는 병을 앓고 있었다. 하교수는 소율에 대한 미안함을 또다시 버럭으로 표현했고, 점점 딸과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멀어지고 있었다.
영랑은 부성악기 팀장으로 일하는 소율이 맘에 들었다. 이태리 유학파에, 악기제조에도 유능한 실력파였고, 무엇보다 하교수의 외동딸이라는 타이틀도 욕심났다. 인하의 짝으로 부족함이 없는 아이였다.
영랑은, 인하와 소율을 맺어주자는 말로 하교수의 마음을 잡는 동시에, 지상이 레스토랑에 출품할 곡을 팔았다는 오해를 만들어 하교수의 분노를 사게 했다. 결국 영랑의 계획은 성공해서, 지상은 후계자 지명이 번복되고, 그 자리를 인하가 꿰찬다. 인하가 아픈 새끼손가락으로 건반을 치는 모습에 감동을 받은 하교수가, 인하를 일단 제자로 삼아 가르치겠다고 결정한 것!
국내에 연줄도 없는 인하가 하교수의 제자로 받아들여지자, 음악계가 술렁였다. 영랑은 처음으로 느끼는 승리감에 도취돼 어쩔 줄 모르는데, 그 순간 날벼락 같은 사실이 전해진다. 갑작스런 복통으로 쓰러진 소율을 병원에 데려간 영랑은, 소율이 잘못된 낙태수술로 불임 확률이 높다는 판정을 듣게 된 것.
놀란 영랑은 의사에게, 소율에게는 비밀로 해달라고 당부하고. 은밀히 소율의 과거를 캐기 시작하는데. 소율이 이태리 유학시절, 동거하던 남자가 있었고, 그 남자와 결혼식까지 올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소율이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사실에 경악한 영랑은, 당장 하교수를 쫓아가 결혼 얘기를 엎자고 악다구니를 쓰고 싶지만, 제자 지명이 취소될까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데.
그 때, 소율이 지상을 짝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같이 음대를 졸업한 지상과 소율은 오래전부터 허물없는 친구 사이였고, 소율은 아버지와 달리 다정하고 배려깊은 지상을 보며 사랑을 키워가는 중이었다.
소율의 마음이 지상을 향하고 있음을 안 영랑은 안도하고. 소율이 지상과 결혼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부탁하자, 소율을 이용해 하교수를 움직일 계획을 세운다. 소율이 임신을 할 수 없는 몸이라면, 어쩜 지상의 짝으로 더없이 좋은 선택일지 모른다고 생각한 것.
가장 존경하던 스승으로부터 퇴출당한 지상은 마음의 큰 상처를 입고. 영랑은 지상을 부성그룹으로 불러들여 전략기획팀 본부장 자리에 앉혔다. 부성그룹에서 가장 핵심적인 자리에 경력도 없는 지상이 임명되자, 임원들과 주주들이 거세게 항의를 하고.
영랑은 임원들 앞에서 당당하게 지상을 옹호하면서, 또다시 통큰 여자로서의 면모를 발휘한다. 겉으론, 상심한 아들을 위해 엄마가 모성애로 감싸안은 것처럼 보였지만, 영랑의 진심은 다른 데에 있었다. 지상을 완벽하게 빈털터리로 만들어 세상 밑바닥 개골창에 처박기 위해, 사자굴로 그를 불러들인 것이었다. 가장 비참하게 추락하기 위해선 본부장만한 좋은 자리가 없었으니까.
지상은 죽은 남편의 분신이었다. 남편한테 평생 당한 굴욕을, 또다시 내 자식이 되풀이 당할 순 없는 일이었다. 오직 지상의 파멸만이, 자신의 인생과 인하의 아픈 손가락을 보상해주는 길이라고 믿었다.
영랑은 계획한 대로 하나씩, 지상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빼앗기 시작했다. 신임받던 학교에서 쫓아내고, 지상이 가진 막대한 유산을 가로채고, 표절 작곡가로 영원히 음악계에서 퇴출시키고, 공금횡령의 혐의를 씌워 자신을 키워준 엄마를 배신한 패륜아로 만들 작정이었다. 영랑이 만든 덫에, 지상은 속수무책으로 빠질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홍다미는 거의 독학으로 피아노를 배웠다. 어린 시절, 아빠가 집에 가져온 낡은 검은색 피아노 한 대.. 너무도 신기하고 흥분돼서 며칠동안 잠도 안자고 쳐다만 봤다. 친구들한테 동냥처럼 피아노 건반을 알았고, 피아노를 치는 동안은 자신이 동화책의 신데렐라가 된 거 같았다.
사랑하던 아빠가 절도범으로 죽고, 학교에서 친구들한테 놀림을 당해 혼자 교실에서 울고 있었을 때. 이름도 모르는 한 남자아이가 쳐주었던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변주곡. 그 아름답던 피아노 음이 오랫동안 다미에게 위로가 돼 주었다.
그 후, 유명 피아니스트의 비디오테이프를 수백번 돌려보거나, 학교 선생님의 공짜 레슨 정도로, 어려운 곡들을 소화해 냈다. 천재는 아니었지만 지독한 노력파였고, 무엇보다 곡을 이해하는 감정과 편곡 능력이 뛰어났다. 같은 음을 쳐도, 다미가 내는 피아노 소리엔 묘한 울림이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음대 진학을 목표로 몇년 동안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하루를 48시간처럼 뛰어다니며 무슨 일이든 다했다. 그리고 꿈에 그리던 대학에 합격해, 늦깎이 대학생이 될 날이 얼마남지 않았을 때, 신부전증을 앓던 엄마가 쓰러졌다.
그렇게 고스란히 다미의 대학등록금은, 엄마의 병원비로 쓰여졌고, 다미는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사실 다미에게 대학은 꿈같은 얘기였다. 아픈 엄마를 대신해 자신이 생계를 짊어져야 될 처지였고, 의대생인 오빠의 등록금도 자기밖엔 만들 사람이 없었다.
마음 한켠에 쓰라린 미련은 남았지만, 예의 그 씩씩함으로, 다미는 미용학원에서 미용기술을 배웠다. 어린 시절, 엄마가 아빠의 머리를 잘라주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보였고, 자기도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꼭 머리를 잘라주고 싶다고 생각했던 탓이었다.
다미는 첫 직장으로 루이미용실에 취직했다. 루이강이 원장으로 있는 루이미용실은 청담동에서 내노라하는 부유층 사모님들이 단골로 있는 고급헤어살롱이었다.
늘 체크무늬 슈트에 멋스런 스카프를 매고, 독특한 독수리 염색머리를 하고 다니는 멋쟁이 원장은, 외모만 봐서는 완벽한 차도남의 이미지지만, 입을 열기 시작하면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로, 보는 이를 무장해제 시키는 묘한 매력을 지닌 남자였다. 헤어디자이너에 대한 자부심이 너무 커서, 부친상을 당한 날도 손님과의 약속을 지켰다는 소문은 미용업계에선 유명한 일화다.
늘 심각하게 직원들을 닦달하지만, 본인은 엉뚱하고 허술한 면이 많아 도무지 미용실 기강이 잡히지 않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리고 그런 원장에게 다미는 왠지 정이 갔다.
미용실 시다로서 새인생을 시작한 다미에겐 매일매일이 사건과 설움의 연속이었다. 손님들 머리감기기, 바닥청소, 수건 빨기, 커피타기, 선배님들 시중들기로 녹초가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재벌가 사모님들의 말도 안되는 컴플레인과 선배들의 고의적인 괴롭힘, 심지어 도둑 누명까지 맘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도 다미는 늘 웃고 다녔다. 고맙습니다. 죄송합니다. 를 입에 달고 살았다. 엄마를 위해, 오빠를 위해, 그깟 억울함 따윈 아무것도 아니었다. 피아노를 친 덕에 손재주가 있어, 다른 사람보다 미용기술을 빨리 배우는 것도 재미난 일이었다. 밤 12시에 미용실 청소가 끝나면, 혼자 마네킹 가발을 앞에 두고 드라이 연습을 하고 또 했다.
잠을 자는 시간을 아껴서 연습한 공도 없이, 선배들의 질투는 점점 더 심해졌고, 루이강 원장도 유독 칭찬에는 인색한 분이었다. 손님들의 억지에도 늘 머리를 조아리고 죄송합니다를 외쳐야댔고, 아침부터 들이닥치는 연예인들의 머리를 감겨주기 위해 매일밤 부족한 잠에 쫓겨야 했다.
그런 다미에게 특별한 즐거움은, 새벽 시간에 혼자 달리는 자전거 산책이었다. 해가 뜰 이른 새벽에 일어나, 루이강 원장의 자전거를 빌려 한강둔치를 돌다보면 모든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듯 정신이 맑아졌다. 다만 브레이크 레버가 고장난 원장의 자전거는 발로 세워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다미가 타본 자전거 중에 가장 고급의 멋진 모델이었다.
다미와 지상은 그렇게 한강둔치에서 새벽녘에 처음 만났다. 신나게 한강변을 쌩쌩 달리던 다미는, 반대편에서 달려오던 지상의 자전거와 정면충돌하고. 지상과 다미는 그대로 바닥에 나자빠진다. 두사람은 각각 미용기술이 적힌 종이와, 작곡 악보가 적힌 종이를 보느라 한눈을 팔고 있었던 것.
그 바람에, 다미의 티셔츠가 제대로 찢겨지고. 놀란 다미는 얼른 찢겨진 티셔츠를 부여잡고, 허겁지겁 그 자리를 떠났다. 근데.. 뭔가 이상하다. 자전거가 너무 매끈하게 잘 나간다. 찬찬히 보니.. 같은 기종의 같은 모델이었지만, 자전거가 바뀌어 있었다. 놀란 다미가 얼른 뒤돌아 쫓아가지만 지상의 모습은 벌써 보이지 않는다. 어쩌지.. 그 자전거는 브레이크 레버가 작동을 안하는데..!
다미가 생각한 순간, 지상은 앞에서 달려오는 아이를 피해 브레이크 레버를 잡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자전거가 멈춰서질 않는다. 당황한 지상이 버벅대는 사이, 자전거는 계단을 굴러 고꾸라지고. 그 바람에 지상의 손목이 삐끗했다. 어쩌지.. 내일 중요한 연주회가 있는데..! 지상은 가슴이 덜컥했다.
부랴부랴 미용실로 돌아온 다미는, 자전거 바스켓에 들어있던 악보를 발견하고, 누구의 곡인지 궁금해 한다. 처음 보는 곡인데, 이상하게 가슴을 뒤흔드는 마력을 가진 피아노 소나타였다.
그리고 그날 밤, 지상과의 두 번째 만남에서, 다미가 미용실에서 쫓겨날 또다른 사건이 터졌다. 영업시간이 종료한 후, 다미 혼자 매장 청소를 하고 있는데, 다급하게 지상과 소율이 뛰어들어와 커트를 해달라고 요구했다.
미용실 시다는 커트를 할 수 없다고 완강하게 거절했지만, 이미 루이원장과 얘기가 됐다고 막무가내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망설이던 다미는 결국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가위를 집어들었고, 그렇게 지상은 다미의 생애 첫 번째 손님이 되었다.
다미는 그동안 연습한 대로 신중하게 머리를 잘랐지만, 어디서 스친 듯한 지상의 얼굴을 기억해 내다가 그만, 지상의 얼굴에 생채기를 내는 대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그 순간, 루이원장이 보낸 은우가 미용실로 들어서고. 놀란 다미가 사과할 새도 없이, 소율은 미용실을 발칵 뒤집어 놓는다. 연주회 전날 피를 보면 연주회를 망친다는 지상의 징크스를, 소율이 알고 있었던 것.
다미가 시다 신분으로 손님커트를 했다는 사실이 루이원장한테 알려지고, 다미는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울고불며 잘못했다고 빌었지만, 선배들의 태도는 완강했다. 다미의 짐가방이 밖으로 내던져지고, 다미의 옷들이 무참히 짓밟히는 순간에도, 다미는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었다. 도둑 누명까지 쓰고도 버텼던 직장이었다.
해고를 당한 이후에도 다미는 계속해서 출근해, 세탁실에서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며 용서를 기다렸지만, 루이강과 직원들은 그런 다미를 투명인간처럼 대할 뿐 눈길도 주지 않았다.
엄마한테 생활비도 못 드릴 처지가 되자 다미는 점차 초조해지는데..
그 때, 음대생인 다미의 친구가 급하게 다미를 찾아오고. 자기 대신 일주일만 레스토랑에서 피아노 아르바이트를 해달라고 부탁한다. 친구는 레스토랑 주인에게 다미를 한국대 음대생이라고 소개하고, 돈이 필요한 다미는 어쩔수없이 레스토랑 아르바이트를 맡게 된다. 그리고 그 레스토랑에서, 귀국해서 방황하고 있는 인하와 첫만남을 갖는다.
다미는 레스토랑에서, 바뀐 자전거 바스켓에 들어있던 악보를 편곡해서 피아노로 쳤다. 다미의 피아노 연주에 인하는 심장이 멎을 듯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토록 절절하고, 연주자의 감정이 배어있는 연주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레스토랑 주인한테 다미가 한국대 음대생이라고 알게 된 인하는, 다미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매일같이 레스토랑을 찾아와 다미의 피아노 연주를 기다렸다. 그녀가 쳐주는 피아노 소리가 자신의 처지를 위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쓰러진 송남주를 병원으로 옮겨준 인연으로 다미와 가까워지게 되고. 남주와 다미의 애틋한 모녀 관계를 보며, 점차 다미에게 호감을 느낀다. 엄마에게 신장을 이식시켜주고 싶어, 자신의 각막을 내놓겠다는 홍다미라는 저 대책없고 정많은 여자.. 누군가한테 엄마는 저렇게 목숨처럼 대단한 사람이구나.. 가슴이 뜨거워졌다. 늘 죽고싶다고 생각했는데.. 사는 게 재미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다미를 만나고부터 살아있다는 것이 그토록 소중하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레스토랑에서 다미가 가짜 음대생이란 게 밝혀지며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다. 주인은 손님들 앞에서 다미를 사기꾼으로 몰고, 모욕을 주며 끌어내는데. 그 때 인하가 나타나 위기에 처한 다미를 도와준다. 다미는 가짜 음대생이 아니라, 자기와 같이 미국 음대에서 공부한 유학생이라고.
그렇게 지상은 다미를 미용사로 만났고, 인하는 가짜 음대생으로 다미와 인연을 맺었다.
송남주의 큰아들 홍우진은 의대 본과에 재학중이었다. 그 흔한 과외 한번 안받고 고등학교 내내 전교 일등을 놓친 적이 없는 수재였고, 남주가 그토록 원하던 명문대 의대에 척하니 합격해서 남주를 기쁘게 해줬다.
누구보다 엄마에 대한 애잔함과 효성이 깊은 우진은, 가난한 집의 장남이면서도, 집안에 아무 보탬이 안되는 자신의 처지를 늘 미안해했다.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던 아버지 홍수표를 화재사건으로 잃은 게, 사춘기 중학생 때였다.
청각장애인이지만, 아버지처럼 진실되고 따뜻한 사람은 세상에 없다고 믿었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최고의 인격자였고, 멘토였고, 세상 전부였다. 그런 아버지가 하루아침에 절도범에 방화범이 되어 너무도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 장례식조차 하지 못하고 아버지를 화장해 보내야 했다. 아버지를 기억할 한뼘짜리 묘조차 없는 것이 두고두고 한으로 남았다.
그런 괴로움을 우진은 미친듯이 공부에 쏟아부었고, 엄마가 바라던 대로 의대에 진학했다. 그러나 모든 게 허무했다. 신부전증이라는 지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파출부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엄마와, 음대 진학을 포기하고 미용사로 취직한 여동생 다미를 생각하면, 무능한 자신이 용서가 안됐다. 아빠는 이미 이 세상에 없는데.. 아빠의 억울한 죽음을 밝힐 능력도 없는데.. 그깟 의사가 되면 뭐하고, 출세가 무슨 소용이냐 싶었다.
우진이 마지막으로 본 아빠는 시꺼먼 얼굴로 응급실에 누워 있었다. 아빠가 마지막으로 힘겹게 종이에 쓴 글자는 ‘고마워’였다. 평생 장애인으로 차별받으며 살았던 그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말이 고맙다니. 남의 집 불붙은 문짝에 깔려서 소리 한번 못 질러보고 억울하게 죽게 된 그가 대체 뭐가 고맙다는 건지! 소방관이 도착했을 때, 아빠가 살려달라고 말만 할 수 있었다면 구조될 수도 있었을 텐데. 이런 엿같은 세상이 어딨어!!
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글씨는, 가족들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간절한 절규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우진의 인생을 바꿔놓을 중요한 편지 한 장이 그에게 배달됐다. 편지에는, 사진 한 장이 동봉돼 있었는데, 사진 속에서 아버지 홍수표와 부성악기 채영랑 회장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17년이 지났지만, 우진은 채영랑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엄마와 우진이 아버지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채영랑 회사 앞에서 밤을 새며 기다리던 날. 채영랑은 차 안에서 비서에게 수고했다며 봉투 하나를 내밀고 사라졌다. 그 얼음장 같던 얼굴을 단 하루도 잊은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날 밤, 엄마는 채영랑 비서에게 밀쳐져서 뱃속의 아이를 사산했다.
바로 그 채영랑이, 그 옛날 호떡 포장마차 앞에서 아버지와 사진을 찍었다. 단 한번도 아버지를 만난 적이 없다고 주장하던 영랑의 진술은 거짓이었다는 게 증명된 것이다. 채영랑이 왜 거짓말을 했는지.. 왜 우리집을 이토록 파탄냈는지.. 그리고 이 사진을 자신에게 보낸 사람이 누군지도..
무엇보다 채영랑의 입으로 진실을 실토하고, 아버지의 억울한 누명을 반드시 풀어줘야 했다. 그러려면 영랑이 스스로 입을 열도록, 영랑의 가장 결정적인 치부를 손에 쥐어야 했다.
그 날부터 우진의 움직임은 빨라졌다. 가족들 몰래 의대를 자퇴하고, 본격적으로 채영랑의 뒤를 캐기 시작했다. 부성그룹 주변을 뒤지다보니, 태양건설과 사업적으로 엮여있는데 뭔가 미스테리한 면이 많았다. 우진은 혼자 힘으론 채영랑을 이길 수 없음을 깨닫고, 태양건설에 다니는 친구에게 은밀하게 도움을 청했다. 그렇게 우진은 어둠의 세계로 빠져 들어갔다.
우진의 친구는 태양건설이라는 간판으로 걸고 활동하는 태양파의 조직원이었다. 태양파는 보스 김정욱이 1인자로 있는 폭력조직으로, 김정욱은 머리좋고 주먹도 쓸만한 우진을 첫눈에 맘에 들어 했다. 우진도 김정욱이 자신의 복수에 뭔가 도움이 될만한 사람임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결국 우진은 태양파의 조직원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채영랑을 향해 복수의 칼날을 세우기 시작했다. 태양건설의 실무진 자격으로 부성그룹을 자유롭게 드나들면서 영랑의 약점을 노렸고, 다른 한편으로 이미 잊혀진 홍수표 사건을 들추어 영랑을 위협해 갔다.
영랑은 죽은 홍수표가 살아난 듯 조금씩 불안감에 휩싸였고, 무언가 서늘한 정체가 천천히 자신의 목을 죄여옴을 느끼고, 무섭게 대응을 시작하는데..
태양파 보스 김정욱은, 우진처럼 뜻하지않은 계기로 조직에 발을 디딘 사람이었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건너간 김정욱은, 돈은 없고 패기만 넘치는 청년사업가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피아노 유학을 온 채영랑과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졌다. 정욱은 영랑을 목숨처럼 사랑했다. 한때 부잣집 딸이었던 영랑은, 순수하면서도 정열적인 꿈을 갖고 있는 전도유망한 피아니스트였다. 영랑도 정욱을 진심으로 믿고 사랑했다. 그녀의 집안이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완전히 파산나기 전까지는.
영랑은 정욱과 결혼까지 약속했지만, 소녀가장이 되자 동생들을 책임져야 된다며 유학을 포기한 채 한국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리고 얼마 후, 영랑의 후견인이던 부성그룹의 유회장과 서둘러 결혼을 했다.
영랑의 배신은 정욱에겐 죽음같은 고통이었다. 삶의 모든 의욕을 잃어버린 정욱은 자살을 결심했고, 자살을 감행하려던 순간, 우연히 미국에 도피중이던 태양파 조직의 보스 김회장의 목숨을 구해주면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다. 죽고싶어서 대신 총을 맞은 것인데, 결과적으로 김회장의 목숨을 살려주게 된 것!
김회장을 구해준 인연으로, 정욱은 그의 양아들이 되었고, 김회장이 죽자 조직의 1인자로 등극했다. 보스가 된 이후로 정욱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여자엔 전혀 관심도 보이지 않았고, 여자라는 존재를 믿지도 않았다. 조직을 확장하고, 돈을 버는 일에만 미친듯이 매달려 살았다. 말수가 없고, 좀처럼 표정을 드러내지 않는 정욱은, 조직을 배신하는 사람에겐 잔인한 보복을 서슴지 않는 냉혈한이 되었다. 조직원 누구도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고, 정욱 또한 누구와도 마음을 터놓지 않았다.
그런 정욱이 유일하게 같이 술을 마시고 싶다고 느낀 사람이 우진이었다.
정욱은 내색하진 않았지만, 우진에 대한 애정과 믿음이 있었다. 젊은 시절의 자신과 닮은 점이 많았다. 그래서 훗날 자신의 후계자로 점찍어 두고 그를 강하게 훈련시키는 중이었다. 우진이 그토록 복수하고 싶어하는 상대를 제거해주고, 그를 자기사람으로 만들 작정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우진이 증오하는 상대가 자신의 첫사랑인 채영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고민에 빠진다.
정욱의 회사인 태양건설은, 부성그룹이 건설수주를 따내도록 뒤에서 돕고, 깔끔하게 뒤처리를 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정욱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은 채 영랑의 사업파트너로 주위를 맴돌며, 그녀의 인생을 짓밟아 줄 날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도 배신의 상처가 뼛속깊이 곪아있었다.
그러니 우진이 채영랑에게 복수의 칼날을 내민다 해도, 차라리 반길 일이었다. 자기 대신 피를 묻혀주니, 고마워해야 할 일이었다. 근데 이상하게 마음이 안 편했다. 태양건설의 실무진으로 활동하는 우진이 점차 깊숙이 영랑의 치부로 다가서고, 영랑이 위기에 몰릴수록 초조하고 불안해 미칠 거 같았다.
우진의 복수를 도와주겠다 약속하고 우진을 조직으로 데려왔는데.. 그 약속을 지킬 자신이 없어진다. 우진은 자신이 아끼는 후계자인데, 그깟 계집년이 뭐라고..!
허락없이 커트를 한 죄로 미용실에서 짤린 다미는, 다음 날 지상을 찾아가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지상은 징크스 때문에 연주회를 망치고, 엉망인 기분으로 다미에게 날카롭게 대한다.
간곡한 다미의 사정에도 지상이 차갑게 외면하자, 순간 욱한 다미는 연주회를 망친 건 얼굴에 난 상처 때문이 아니라, 연습 부족이 아니냐며 따박따박 지상에게 훈계하고. 미용일도 예술인데, 기분에 따라 잘하고 못하고는 없다며, 밥벌이 자세가 잘못됐다고 망신을 준다. 지상은, 다미의 당돌한 모습에 어이가 없고.
티격태격 하던 끝에, 결국 같이 저녁을 먹게 된 두 사람. 식사를 하던 중, 문득 악상이 떠오른 지상은 냅킨에 악보를 그려내는데, 종업원의 실수로 냅킨은 버려지고. 지상은 냅킨을 찾겠다고 레스토랑을 발칵 뒤집어놓는다.
그 때 다미가 지상이 그린 악보를 정확히 기억해 내면서, 지상은 다미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다미가 늘 귀에 꽂고 있던 이어폰으로, 라흐마니 피아노협주곡을 듣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다미의 꿈이 피아니스트였음을 눈치 챈다. 자신한테는 피아노 치는 일이 당연한 일상이었는데, 누군가한테는 이룰 수 없는 절실한 꿈이었다는 생각에 지상은 묘한 감정에 빠진다.
며칠 후, 다미는 손님들의 거센 요구로 루이미용실로 다시 복직이 된다. 손님들이 너도나도 할거없이 모두 다미를 찾고 있었던 것. 헤어디자이너보다도, 머리 감겨주는 다미의 야무진 손놀림을 그리워했고, 싹싹하고 부지런한 다미를 불러오라고 성화를 부렸다. 다미에게 도둑 누명을 씌었던 재벌가 사모님이 가장 강력하게 다미를 요구하고 나섰다.
다미가 정식으로 미용실에 컴백한 날, 지상이 다시 미용실을 찾아오고. 다미가 선배들한테 갖은 구박을 받으면서도 씩씩하게 참아내는 모습을 보며 강한 인상을 받는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또다시 다미한테만 머리를 자르겠다고 고집을 부려 미용실 식구들을 기함시켰다. 저 여자 아니면 다른 미용실로 가겠다고.. 꼭 저 여자야만 한다고..
지상은 다미의 끝없는 밝음이 좋았다. 가난했지만 비굴하지 않았고, 고졸이었지만 음대생을 뛰어넘는 열정을 가졌고, 손님들 머리만 감기는 미용사 시다였지만 어떤 예술가보다도 자기 일을 사랑했다. 피아니스트의 손만 귀한 것이 아니라, 머리를 감겨주는 손도 귀하다는 걸, 다미를 통해 처음 알았다.
부자 부모를 만난 덕에, 최고의 물질적 대우를 받으며 자란 지상이 알지 못하는 또다른 세상을 만난 느낌이었다. 음악을 하면서 배고파 본 적이 없었고, 돈을 벌려고 음악을 한 적도 없었다.
그래서 지상이 작곡한 미발표곡을, 다미가 레스토랑에서 편곡해 쳤다는 걸 알았을 때도, 다미를 몰아세울 수가 없었다. 그 일로 학교에서 퇴출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그 어떤 변명도 하지 않고 다미를 감싸줬다.
지상이 갖고 있던 음악에 대한 괴상한 징크스와 습관들도, 다미를 만나면서 하나둘 극복되기 시작했다. 작곡을 할 땐 집안의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정리정돈 되어 있어야 하고, 하루에도 수백번 손과 이를 닦는 결벽증을 보이다, 연주회 당일엔 머리도 안감고 씻지도 않고, 할머니 민여사가 남겨준 구가다 선글라스를 껴야 마음이 안정되는 이상한 습관들이 그를 괴롭혀왔던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작곡을 할 때, 정리정돈보다 다미 얼굴이 먼저 떠올랐다. 그녀의 기분좋은 웃음소리.. 공손하면서도 할말은 다하는 성격.. 잘 잃어버리고 실수투성이고.. 아무거나 잘먹는 먹성까지도.. 다 예쁘게 보였다.
피아노를 칠 때 느꼈던 희열이, 그녀와 함께 있을 때도 생겨났다. 그리고 그것이 사랑임을 알게 되었다. 다미를 사랑할수록, 다미가 피아니스트의 꿈을 접고 미용사로 살아가는 모습이 안쓰러워 미칠 거 같았다. 허공을 향해 그리운 듯 손가락을 움직이는 다미를 볼 때마다, 언젠가 그녀를 꼭 피아노 앞에 앉히겠노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다미도 집안끼리의 악연을 전혀 모른 채, 지상에게 걷잡을 수 없이 끌리고 있었다. 더이상 피아노에 대한 미련을 갖고싶지 않아 지상에게 도망치고 싶었지만, 지상이 치는 피아노 선율에 모든 시름과 괴로움이 사라짐을 느꼈다. 무엇보다 가족을 사랑하는 지상의 따뜻한 마음이 다미를 감동시켰다.
그렇게 홍다미는 운명처럼, 채영랑의 아들 유지상을 사랑하고 있었고, 홍우진은 유지상의 엄마 채영랑에게 잔인한 복수를 할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상과 다미의 사랑에, 소율과 인하가 끼어들어왔다. 소율은 지상이 가장 존경하는 하윤모교수의 외동딸로, 지상과는 대학 친구였다. 피아노에 대한 지상의 천재성 때문에, 대학 때는 오히려 가까이 하기가 싫었다. 그러다 이태리 유학 시절 만난 남자와 사랑에 실패하고. 귀국해서 다시 지상과 재회했을 때,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여자에 대한 무심한 태도가 되려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소율은 훌륭한 외모에, 부성악기에서 알아주는 실력파 실장에, 재력도 집안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녀는 욕심에 정직했고, 가지고 싶은 것에는 무서울 만큼 강한 집착을 보이는 여자였다. 지상이 소율에게 관심이 없을수록, 소율은 지상을 갖고싶어 미칠 거 같았다. 아버지 하윤모교수가 지상을 버린 이후에도, 지상에 대한 소율의 마음은 점점 더 깊어갔다.
그러나 소율에겐 아버지도 모르는 치명적인 과거가 있었다. 유학 때 만난 남자와 불장난 같은 사랑을 했고, 아버지에 대한 반항으로 과감하게 결혼식까지 올렸다. 그러나 1년도 채우지 못하고 남자가 떠나버렸다.
남자와 헤어진 후 과다출혈로 병원에 실려갔을 때, 자궁외임신이라는 진단과 함께 낙태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그 잘못된 낙태수술이 영원히 엄마가 될 수 없다는, 첫사랑의 가혹한 후유증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소율이 사랑하는 남자에게 병적으로 집착하는 이유는 아버지 때문이었다. 존경받는 작곡가였지만, 욕쟁이에 괴팍한 성격으로, 아버지 옆에는 어느 여자도 붙어있질 않았다. 그 덕에 소율은 어린 시절부터 아빠와 단둘이 살아야 했고, 애정결핍이라는 심각한 병을 앓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소율의 사랑은 절실하고 가여웠다. 초등학교 이후로 그의 생일을 챙겨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늘 혼자였고, 그 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해 피아노에 매달려 살았지만, 단 한번도 아버지한테 칭찬을 받지 못한 열등감을 가졌다.
소율이 집밖에선 무서운 승부욕을 내는 것도, 아버지한테 인정받지 못하는 열등감에서 비롯된 거였다.
하교수는 딸하고 소통하는 방법을 몰라, 늘 소율에게 상처주는 말을 했지만 마음으론 딸에게 끔찍한 아버지였다. 딸에 대한 미안함을 소리지르는 걸로 대신하고, 딸이 하루빨리 좋은 짝을 만나 자신을 버리길 고대하고 있었다. 자신은 딸에게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줄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소율과 비슷하게, 가정에서 불행했던 남자 인하는, 다미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운명이란 걸 느꼈다. 그녀가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피아노를 치고 있다고 느껴졌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웃음이 지어졌고, 지독한 외로움에서 벗어나는 거 같았다. 그리고 다미 때문에 인하의 많은 것이 변화되어 갔다.
영랑과 인하의 모자 관계는, 17년 전 화재사고 이후 재가 된 듯 바스라져 가고 있었다. 친아들인 자기를 구하지 않았다는 원망으로, 단한번도 엄마에게 따뜻한 시선을 주지 않고 살았다. 유학길에 오른 것도, 엄마와 형의 다정한 모습을 보고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미를 만나면서, 엄마에 대한 마음이 조금씩 바뀌어 갔다. 다미의 조언으로, 처음으로 엄마와 마음을 열게 되었고, 드디어 17년 만에 화재사건의 비밀이 벗겨졌다. 엄마가 형을 구해낸 것은, 형이 자신의 잠옷을 입고 있어 착각했던 것이었다. 결국 엄마가 목숨을 걸고 구해낸 것은 형이 아니라, 형의 껍데기를 빌려 쓴 자신이었던 것이다.
엄마에 대한 오해가 풀리자, 영랑과 인하의 유대감은 급속도로 커졌다. 17년 동안 소원하게 지냈던 세월을 보상이라도 하듯 핏줄의 위대함으로 아낌없이 애정을 드러냈고, 지상에 대해 비밀을 공유한 사람들끼리 갖는 동지의식이란 것도 생겨났다. 속은 건 자신이 아니라 형이었다. 얼마나 통쾌한 일인가! 핏줄도 아닌, 원수의 자식을 구해줬다는 감격으로 평생을 빚쟁이로 살아가는 형한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복수인 셈이다.
그런데, 그토록 사랑하는 다미가 형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인하는 질투심에 미칠 지경이 되었다. 처음으로 사랑한 여자였다. 이번만은 양보할 수 없었다. 인하에게 다미는 삶의 이유였고, 다시 피아노를 사랑하게 만들어준 여자였다.
왜 하필 형이야? 왜! 평생을 형한테 다 뺏기고만 살았어! 아버지와 할머니의 사랑도, 엄마도, 천재 피아니스트라는 명성도, 위대한 작곡가의 성공도, 다 형 몫이었어! 이젠 모두 되찾아 올 거야.. 그래야 다미를 뺏기지 않는다면, 형을 완전히 파멸의 구렁텅이로 내몰고야 말겠어!
채영랑도 지상을 파멸시킬 계획을 하나씩 진행해가고 있었다. 음악계에서 인하와 정면대결을 펼쳐서 비참하게 몰락시키고, 가족을 배신한 파렴치한 인간으로 몰아 영원히 부성그룹에서 퇴출시키는 것! 그것이야말로 자기 아버지 죄값을 다 치르고 떠나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었다.
한치의 오차도 없어야 했다. 지상이를 올가미에 가두는 일은 영랑의 몫이었고, 지상의 마지막 숨통을 끊어놓는 것은 인하의 몫으로 남겨줄 참이었다. 그래야 내 자식이 당한 슬픈 세월이 보상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세상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인하가 지상을 짓밟아주고 이겨주는 진정한 해피엔딩이 영랑의 머릿속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영랑은 먼저 요양원에 있는 민여사의 유언장을 조작해, 지상 앞으로 된 유산을 전부 인하 몫으로 돌려냈다. 지상이 대주주가 되지 못하도록 손을 써야 했다. 유언장 조작에는, 영랑의 심복인 최승재 변호사의 역할이 컸다. 최변호사는 영랑의 집안일에 대해선 모든 비밀을 공유한 완벽한 영랑의 오른팔이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철두철미한 성격에, 돈이 될 만한 먹이를 보면 절대 뺏기지 않는 집요함이 최변호사의 최대 장점이었다. 영랑은 그런 최변호사를 유일하게 신뢰하고, 모든 일을 의논하고 맡겼다. 지상이 부성그룹에 입사해, 공금횡령에, 자기를 길러준 엄마를 배신했다는 패륜의 죄까지 덮어씌우려면, 영랑에게 최변호사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였다.
지상은 학교에서 쫓겨나 부성그룹 본부장으로 들어와서도, 나름 회사에 잘 적응하며 지냈다. 특히 부성악기에 공을 들였다. 죽은 나무를 이용해 살아있는 악기를 만든다는 것에 매력을 느꼈다.
뛰어난 절대음악으로 악기 소리의 미묘한 차이를 절묘하게 잡아냈고. 다미를 부성악기에 영입해, 다미와 한팀으로 환상적인 피아노음을 만들어냈다. 또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를 집요하게 설득해, 중요 공연에서 부성피아노로 연주하게 함으로써, 부성악기는 일약 세계적인 악기로 떠올랐다.
인하는 소율과 한팀으로 신악기 개발에 참여했지만, 보기좋게 지상한테 패해서 또다시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거기다 첫사랑이었던 다미까지 잃는다고 생각하니 미칠 것만 같았다.
그러다 결국 때가 왔다! 하윤모 교수의 퇴임식을 기념해,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로 작곡경연대회가 열리고, 그 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자가 정식으로 하교수의 후계자로 지명되는 것이었다.
영랑은 승부수를 던졌다. 다락방에서 지상이 숨겨놓은 작곡노트를 훔쳐와 은밀히 인하에게 건네줬다. 작곡노트를 본 인하는 머리를 둔기로 맞은 듯 충격에 휩싸였다. 온몸이 전율할 만큼 새로운 음의 향연이었다. 가슴이 뛰고, 심장이 터질 것 같이, 그것이 미치도록 갖고싶고 욕심났다. 이 악보만 있으면.. 이 악보만 있으면!
인하는 그때부터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악보를 교묘하게 수정해 피아노 협주곡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작곡콩쿠르에 출전, 대상을 차지했다!
음악계가 발칵 뒤집혀졌다. 혜성처럼 나타난 천재 작곡가에 모든 시선이 몰렸다. 하윤모 교수조차도 인정할 만큼 대단한 작품이었다. 인하는 일약 대스타로 급부상했다. 해외 유명오케스트라가, 인하가 작곡한 피아노협주곡을 연주하겠다고 나섰다.
인하의 인기는 날로 높아지는데, 그 일로 지상은 엄청난 치명타를 입었다. 같은 대회에 같은 곡으로 출전했다, 표절 시비에 휘말리며 음악계에서 영구 제명될 위기에 몰린 것이다. 하윤모 교수는 지상에게 분노하고, 지상의 부도덕성을 문제 삼으며 강한 징계를 요구했다.
인하는 밖으론 지상을 옹호하며 선처를 호소했지만, 자신의 완벽한 승리를 즐기고 있었다. 국내에서 가장 실력있는 작곡가들이 모인 콩쿠르에서 대상은, 명실상부한 작곡계의 거장으로 우뚝 섰다는 증거였다.
지상은 사면초가에 몰렸다. 하교수의 후계자가 될 일념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열정적으로 준비한 대회에서, 인하가 같은 곡을 연주하자 당황한 나머지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하고 무대를 허둥지둥 내려와 버렸다. 전주곡을 바꿨지만, 하이라이트는 부분은 명백히 자신의 곡을 표절했다는 걸, 지상은 대번에 알아차렸다.
순간 미칠 것 같은 분노가 일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무도 자신을 믿어주지 않았을 뿐더러, 자신의 동생한테 칼을 들이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를 위해서도, 인하를 위해서도, 그의 표절 사실을 세상에 알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시련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아버지가 남겨준 주식이 문화재단으로 교묘하게 빼돌려 있고, 다른 재산도 인하의 이름으로 돌려져 있었다. 거기다 인하가 자신의 곡을 연주해 줄 피아니스트로 다미를 지목하자, 지상은 모든 걸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뼛속깊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그 때, 놀라운 진실을 알게 되었다. 영랑이 불길에서 자신을 구해낸 것은 인하로 착각한 실수였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의 아빠와 다미아빠를 죽게 만든 사람이 새엄마라는 사실도! 지상은 걷잡을 수없는 충격 속에, 숨어있는 진실을 하나씩 추적해 갔다. 결국 영랑과 인하가 자신을 파멸시키기 위해, 손을 잡고 모략을 꾸미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패닉 상태에 빠졌다.
그 때부터 지상의 인생 시계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돌아갔다. 처음부터 자식이 아니었던 것이다. 알에서 깨어난 순간, 처음 눈을 마주친 이를 엄마로 믿었었는데.. 그에게 난 가족이 아니었다. 아버지에 대한 미움을, 아버지 아들의 파멸에서 보상받으려고 한, 복수에 눈이 먼 무서운 여자였을 뿐이다.
그렇게 사랑하고,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참고 아낌없이 다 줬는데.. 동생을 위해 사랑하는 여자까지도 포기했었다. 피아노를 못 치게 되면서도 끝까지 동생의 죄를 감싸줬다. 바보여서가 아니라, 가족이기 때문에 져줬던 건데..
완벽한 배신감에 세상이 무너져 내렸다.
인하에게 최고의 엄마가 되기 위해, 자신에게 가장 무서운 모성을 보여준 영랑에게 이제 모든 걸 되돌려 줄 차례였다. 영랑이 준 대로 빠짐없이 그대로! 영랑의 칼날을 돌려, 자신의 자식한테 겨누게 하리라..! 영랑이 자신의 비뚤어진 모성 때문에, 스스로 함정에 빠져 자멸하게 만들리라..!
지상은 민첩하게, 영랑과 인하에게 뺏긴 모든 걸 하나씩 되찾을 준비를 시작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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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이야기..
먼저 작곡가로서 잃어버린 명예를 되찾아와야 했다. 지상은 인하가 자신의 작곡을 표절한다는 걸 역이용해, 일부러 새로운 곡을 인하에게 흘렸다.
냉큼 먹이를 문 인하는, 훔친 곡으로 대대적인 연주회를 준비해 세상에 발표하는데, 그 곡은 외국의 유명한 작곡가의 미발표곡이었다. 외국 작곡가가 인하의 음악회에 나타나 연주를 중단시키면서 연주회는 순간 난장판으로 변하고.
지상은 당당하게 무대 위에 올라 인하에게 피아노 배틀을 청한다. 그동안 네가 발표한 곡이 네 작품이 맞다면, 정정당당하게 곡의 주인을 가리자고!
결국, 조윤모 교수를 비롯한 국내 음악계 거장들 앞에서 지상과 인하는, 표절시비를 가리기 위해 원곡 심사를 받게 되고. 지상은 전주부터 클라이맥스까지 완벽하게 자신의 곡임을 입증해 낸다.
단단히 망신을 당한 영랑과 인하는, 더 이상 머뭇거릴 틈이 없었다. 부성그룹 공금에 손을 댔다는 이유로, 긴급이사회를 소집해 지상을 궁지로 몰았다.
지상은 경찰 조사를 받게 되고, 지상이 공금을 빼돌렸다는 명백한 증거를 가지고 최변호사가 긴급이사회에 모습을 나타냈다. 지상의 몰락을 확신하는 영랑은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지상의 최후를 지켜봤지만, 의외의 결과가 발생했다.
최변호사가 민여사의 유언장이 조작되었음을 밝히고, 공금 횡령을 한 사람은 지상이 아니라 인하라는 사실을 폭로하면서, 회의장은 발칵 뒤집힌다. 최변호사의 진술로,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경찰이 인하를 연행해 가자 영랑은 모든 게 거짓이라고 발악을 하는데.. 그 순간, 휠체어에 탄 민여사가 회의실로 들어서고 모든 진실을 밝히면서 영랑은 그 자리에서 실신하고 만다.
영랑이 치밀하게 준비했던 모든 서류는 결국 인하의 덜미를 잡는 덫으로 작용했고, 지상은 영랑 스스로 제자식의 올가미를 만들도록 역으로 친 것이었다.
최변호사는 아내를 잃은 상처가 치유되지 않아 독하고 냉소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민여사한테 은혜를 입은 과거를 기억하고, 마지막 의리를 지켰다. 민여사의 부탁으로 송남주 집안을 도와주다, 점차 남주를 사랑하게 되면서 루이강과 삼각관계가 되는데..
재앙은 혼자 오는 법이 없고. 영랑은 설상가상으로 홍우진의 공격을 받게 된다. 영랑이 고의로 방화를 묵인해 남편을 죽게 했고, 모든 죄를 아버지 홍수표한테 덮어씌웠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영랑에게 무서운 보복을 감행하는 우진!
영랑이 위기에 처하자, 결정적인 순간에 태양파 보스 김정욱이 나서서 영랑을 구해낸다. 하지만 목숨을 구한 영랑이 마지막 발악으로 우진에게 반격을 가하고, 그 와중에 우진의 공격을 받은 영랑은 벽돌에 깔릴 위기에 처한다.
그 때, 영랑을 밀쳐내고 대신 벽돌에 깔리는 지상.. 지상의 얼굴은 피범벅으로 변하고, 우진의 절규 속에 지상은 앰뷸런스에 실려 병원으로 실려간다. 그 사고로 지상은 청각을 잃게 되고, 절대음감의 천재적 작곡가였던 지상은 자신의 가장 위대한 청각 악기를 잃어버리는 시련을 겪게 된다.
지상을 위해서, 지상에게 가장 맞는 피아노를 제작해 내는데 성공한 다미는, 지상이 자신이 만든 그 아름다운 피아노 소리를 영원히 듣지 못한다는 사실에 오열하고. 지상의 청각을 자신의 오빠가 뺏었다는 자책감으로 가슴이 찢겨진다.
홍우진은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 자신의 모든 인생을 걸었다가, 결국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여동생의 남자를 다치게 함으로써 괴로움에 빠진다.
영랑도, 모든 진실을 알고도 자신을 구해준 지상으로 인해, 지난 세월을 몸부림치며 괴로워하지만 되돌릴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남편에 대한 미움과 복수심 때문에, 자신이 허비한 인생이 통탄스러울 뿐이었다.
그리고 첫사랑 정욱과 다시 만나게 되면서, 순수했던 지난날을 떠올리게 되고. 계모인 나계화로부터 상상하지도 못할 놀라운 진실을 듣게 된다..
모두의 마음을 아프게 하며 지상은 영원히 소리를 잃어버리지만, 다시 오뚜기처럼 작곡가로서 힘차게 일어설 준비를 하고. 인하가 진심으로 그의 손을 잡아준다.
그리고 지상은 다미를 위해 가장 아름다운 곡을 다시 쓰게 되고, 다미는 정식으로 피아노를 공부해서 지상의 곡을 자신이 연주해 주리라 결심한다. 돌아가신 청각장애인 아버지가, 지상의 몸을 빌려 다시 세상에 돌아온 듯 생각되는 순간이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