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편 강해 / 이레교회 새벽기도회 20110725 月曜日 정인준 목사]
사도신경 찬송가 420(212) ‘너 성결키 위해 늘 기도하며…’
말씀 봉독(시편 1:1-6), 설교(15분),
◈ 오늘부터 시편 강해를 시작합니다.
짧은 시는 하루에 한 편을 다루고, 조금 긴 것은 나누어서 살피겠습니다.
◈ 시편을 가리켜 4세기의 신학자 아다나시우스(Athanasius)는
‘성경 전체의 축도’라고 불렀습니다.
같은 시대의 가이사랴 감독인 바실(Basil)은
‘모든 신학의 요약’이라고 말했습니다.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시편을 ‘작은 성경’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시편에는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 모든 종교적 진리가 다 설명되어 있다”고 말씀한 성경학자도 있습니다.
◈ 신학자 제롬은 시편 1편을 가리켜
“시편 전체에 대한 성령의 서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시편 1편을 읽으면, 시편 전체의 주제가 파악이 됩니다.
시편 1편은 분명히 ‘복 있는 사람’이 주제입니다.
그런데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이 뚜렷이 구분되는 것과,
또, ‘인간의 현재 삶의 상황과 궁극적인 운명’을 다루는 것을 봅니다.
이 두 가지 큰 주제가 시편 전체를 꿰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겁니다.
시편 기자는 마치 예수님께서 멸망에 이르는 넓은 길과,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길을 가는 사람들에 대해서 말씀하실 것을
미리 내다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본문과 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는 예레미야 17장 5-8절을 찾아봅시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아멘.
성경이 말씀하는 ‘복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을 의지하며 의뢰하는 그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럼 ‘악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 대신 사람을 믿으며,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떠난 그 사람”입니다.
주의할 것은, 이른바 성도 가운데에도 하나님보다 사람을 의지하고,
마음이 세상에 기울어져 있는 분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몸은 교회에 드나들어도, 성경은 그런 분들을 ‘복 없다’고 말씀합니다.
◈ 본문 맨 처음에 “복 있는 사람”의 ‘복’은 ‘잘 되어간다’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에 힘입어 잘 되어간다’는 뜻으로 쓰인 단어입니다.
◈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습니다.
‘악인들’은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볼 때 ‘경건하지 못한 사람’을 가리키며
그 ‘악인들의 꾀’는 ‘도덕적으로 방종’하는 길로만 향합니다.
세상에서 손해 보지 않고 살려는,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잔꾀입니다.
예를 하나만 들어볼까요?
운전면허를 따고 처음 차를 몰고 나갈 때 듣는 충고가 있습니다.
사고를 내더라도 절대 ‘미안합니다.’ ‘내 잘못입니다.’라고 하지 말랍니다.
그러면 손해를 본다는 겁니다.
그래서 무조건 ‘나는 잘못 없다.’며 우겨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잘못은 잘못이라고 인정해야 옳은 것 아닙니까?
◈ “복 있는 사람”은,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습니다.
‘죄인’은 하나님 말씀을 구체적으로 범하는 ‘행위가 가득한 사람’입니다.
‘죄인들의 길’이란,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길에서 벗어나는’ 길입니다.
그런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으며 패거리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 “복 있는 사람”은,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오만한 자들’은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경멸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심지어 하나님을 모욕하기도 합니다.
스스로 잘났다고 생각하며, 무례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입니다.
◈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사랑하지도 않고, 존중하지도 않는 세상사람,
그들과는 walking하지도, standing하지도, sitting하지도 않는다는 말씀은,
한 마디로, 이 세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산다는 말입니다.
어원을 따져 본다면 “복 있는 사람”은 ‘똑바로 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날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는 사람의 삶은
결코 비뚤어질 수 없습니다. 반드시 똑바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이 그러하기를 축원합니다.
◈ 그래서 2절이 말씀합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한동안 라디오 방송을 듣다 보면 자주 나오던 카드 광고가 있습니다.
“아버지는 말하셨지, 인생을 즐겨라♪” 이런 가사로 시작하는 노랩니다.
‘인생을 즐겨라’- 이것이 바로 세상의 속삭임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즐겨야 할 것이 ‘인생’이 아님을 단호히 말씀합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겨라. 그 율법을 밤낮 암송하라.”
성경에서 ‘묵상’이란 단어는 ‘읊조리다’, ‘암송하다’라는 뜻의 의성업니다.
‘연애할 때는 누구나 시인이 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사랑에 빠지면 갑자기 시집들을 사서 달달 외우는 젊은이들을 봅니다.
조병화의 ‘공존의 이유’, 유안진의 ‘지란지교를 꿈꾸며’…
구구단도 제대로 못 외우면서, 사랑 타령은 얼마나 열심히 외우는지.
◈ 하나님과 사랑에 빠지면 그의 말씀인 성경을 외우고 싶어지게 됩니다.
그분의 말씀을 밤낮으로 사모하며 중얼거리게 된다는 말입니다.
외우는 것이 금세 되지 않는 것 아시지요? 시간이 걸립니다.
찬송가 420(212)장 영어 가사는 “Take time to be holy”입니다.
“거룩하게 되기 위해서 시간을 드려라”- 그런 의미인 줄 압니다.
“복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비결은 단 한 가지, 짬 내어 하나님 말씀을 즐기며 외우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3절에 이어집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여기에서 “시냇가”는 비가 올 때만 물이 있는 자연의 강물이 아니라,
물이 계속 공급되어 사시사철 흐르는 인공 ‘관개수로’를 가리킵니다.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찬송가 384(434)장 가사처럼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한다는 겁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이 그러하기를 축원합니다.
그러한 삶은 6절 말씀대로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는 삶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신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돌보아 주시고 지켜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아름다운 삶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은혜의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