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1. 중국, 세계를 발견하다, 개빈 멘지스, 조행복 옮김, 사계절, 2004.
이 책은 그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내용을 담은 책이다. 단적으로 서양인의 신대륙발견과 세계일주 이전에 이미 이런 일을 한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중국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 사실을 몰랐을까 ?
그 이유는
저자인 개빈 맨지스는 영국 해군 장교 출신의 아마추어 역사 연구자다. 그가 이 책에서 내세우는 주장들은 하나같이 파격적이지만, 그렇다고 그냥 헛소리로 넘길수 없는 무게있는 사실들이다. 그는 역사학자들이 갖고있지 못하면서 그만이 갖고 있는 최고의 장점인 해도를 정확히 보고 천문을 읽을 줄 알며, 뱃사람의 생활을 했다는 것, 대영제국의 해군 장교로서 세계 도처의 수많은 자료들을 열람할 수 있었으며 실제 여러 역사적 장소들을 견학했던 경험을 갖고 이 책을 썼다.
저자가 갖고 있는 이런 점들은 일반 사학자나 역사 연구자, 지도 연구자가 결코 누릴 수 없는 그만의 장점이었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은 보지못하는 전문성에 근거한 시각을 갖고 자료들을 연구/분석하여 발간한 책이 바로 이 책이다.
============================================================================================== 10여 년 전 어느 날 저자 개빈 멘지스는 옛 해도 한 장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거기에는 ‘1424년’이라는 연도와 ‘주아네 피치가노’라는 서명이 적혀 있었다. 피치가노 해도는 지금의 카리브 해에 있는 푸에르토리코와 과들루프를 상세히 묘사하고 있었다.
이 지도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실제의 모습과 같이 매우 정확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런데 1424년이면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기 전이다. 그렇다면 1492년 콜럼버스가 카리브 해에 첫 발을 딛기 약 70년 전에 누군가 이 섬들을 자세히 탐사해서 지도를 그렸다는 얘기가 된다. 15세기 초에 대규모 항해를 통해 정밀한 지도를 제작했을 가능성이 있는 나라는 어디였을까? 당시 그와 같은 원정을 감당할 수 있는 물적기반과 과학적 지식 그리고 선박 건조와 항해 경험을 갖고 있었던 나라는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중국뿐이었다. 그리고 그 시기는 절묘하게도 중국 명나라 정화 함대의 제6차 원정과 맞아떨어진다. 이 책은 바로 정화의 세계일주와 항해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위성항법이 개발되기 전 자와 컴퍼스를 대고 별을 보며 항로를 그려내던 시절부터 영국 해군에서 훈련을 받았다. 그래서 옛 항해가들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며 그들의 항로를 재구성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고지도와 해도, 항해, 천체관측 등에 대한 전문가적 식견을 갖추고 있었다.
심지어 지도를 그린 사람이 해역을 밤에 지났는지 낮에 지났는지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여타의 역사학자들은 도저히 가질 수 없는 능력을 바탕으로, 저자는 일견 무모하기 짝이 없는 연구를 시작한 것이다.
대항해 시대를 풍미한 세계지도는 피치가노 해도뿐 아니라, 칸티노 지도, 피리 레이스 지도, 진 로츠 지도, 발트제뭘러 지도 등 여러 종이다. 멘지스는 이들을 시대순으로 나열하고 종합한 결과, 각각의 지도가 독립된 작품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지도들을 조합한 것이며, 원 제작자는 바로 중국인이었다고 가정했다. 이러한 저자의 생각은 조선의 학자 권근과 이회가 제작한 강리도(彊理圖)를 접하면서 더욱 확고해진다. 강리도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아프리카다.
그 지도에 아프리카의 동, 서, 남부 해안이 정확히 그려져 있는 것을 볼 때, 누군가가 희망봉을 돌아 아프리카 서부까지 진출했음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유럽인들이 남아프리카에 도달한 것이 60년 이후의 일이란 점과 당시의 지도 제작 기술 등을 감안한다면, 중국의 정화 함대가 희망봉을 돌아 카보 베르데 제도에 도착했음이 확실하다. 이를 토대로, 멘지스는 중국 선단들이 아프리카 서해안에서부터 해류를 따라 각기 북쪽과 남쪽으로 나뉘어져 대서양을 횡단, 아메리카 대륙으로 진출했을 것이라 가정하고 이를 추적해서 서술해나간다.
이 책 후반부에 재미를 더해주는 부분은 콜럼버스의 지도 위조에 대한 내용이다. 콜럼버스는 당시 포르투갈과 경쟁관계로 떠오르던 스페인의 이사벨여왕을 속이기위해 '마르텔루스'라고하는 지도를 위조하였다는 부분이다.
15세기말에 인도와의 향료무역을 위해 쉬운 길을 찾기위한 탐험에서 다가마가 희망봉을 발견하여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인도로 갈 수 있는 길을 먼저 찾아낸 포르투갈, 이와 경쟁관계에 있던 스페인의 이사벨 여왕을 설득하여 원조를 받기위해 콜럼버스는 지도를 위조하게된다. 이미 포르투갈이 차지한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인도로 가는 길보다 더 가까운 길이 서쪽에 있다는 주장을 한것이다. 그런데 이미 당시의 세계지도는 동쪽 항로가 더 가깝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것은 포르트갈 왕궁에 보관된 지도로 이 지도는 서양 항해사에 큰 업적을 남긴 엔리케의 형인 동페드루가 12년간의 여행을 마치고 포르투갈로 돌아올때 갖고왔던 지도였다.
콜럼버스는 이 지도를 보았고 내용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새로운 탐험을 위해서는 이 지도의 사실을 모르는 가톨릭군주를 설득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그 개인의 명예를 높이는 길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콜럼버스는 남아메리카를 돌아가는 길을 아프리카를 돌아가는 길보다 더 가깝게 그린 지도를 만들었다. 결국 이사벨은 이 지도를 보고 콜럼버스를 지원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마젤란도 아메리카를 돌아 태평양을 건너 중국에 도달하는 길을 알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콜럼버스와 마젤란 등은 아프리카를 도는 항로와 아메리카를 돌아 인도로 가는 항로를 모두 알고 있었으며 이때 그가 일고 있는 지식은 이미 1421년-1423년사이에 세계일주에 나섰던 중국인들이 제작한 지도에 근거한 것이었다.
- 강리도 : 조선의 권근과 이회가 제작한 세계지도로 저자가 본것은 1420년 대대적인 수정이 가해진 일본 류코쿠대학의 강리도다.
이외에 다양한 근거들을 제시한다.
1부 : http://thesportstime.com/webfolder/download_file.php?path=L2hvbWUvbW92aWUvMTQyMS0xLmF2aQ (526M) 2부 : http://thesportstime.com/webfolder/download_file.php?path=L2hvbWUvbW92aWUvMTQyMS0yLmF2aQ (791M)
관련사이트 : http://www.1421.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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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스포츠타임 원문보기 글쓴이: 이민표
첫댓글 중복인가요?^^
중복은 아닌데 아는사람은 알고있는 얘기죠^^ 그래도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저 멘지스의 얘기가 그이후 대항해시대가 없었냐 아마 지각변동과 해수면 상승과 연관이 있지않을까 조심스래 글적어보네요
여기는 영문고지도조작에 대한 연구글들을 올리는 방입니다.
글을 아묵리가조선사에 다시 올리시는게 맞을거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