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나무 같이 사는 삶
남진원
화로에 불이 달아올라 최고조에 이르면 파란 불꽃이 일어난다. 그것을 노화순청爐火純靑이라 한다.
여러 가지 전문적인 일에서 최고도의 경지에 이른 사람을 일컬을 때 쓰는 말이다. 특히 ‘무예’에서 최고의 경지를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무예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기로 하자.
무는 한자로 武이다.
오랜 옛날 사람들이 이땅 위에 살고 있을 때이다. 사람들은 천지 자연의 품에서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다른 인간들이 쳐들어와 약탈과 살인 등으로 인해 목숨의 위협을 받기 시작한다.
그래서 방어를 하기 위해 창을 든다. 사람들은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수련하고 연마를 했던 것이다. 자신과 가족 더 나아가 부족을 지키기 위해 창을 들었던 것이‘武’인 것이다.‘武’는‘바를 정’자에‘창 과’란 한자가 합해진 글자이다.
이 武에는 세 단계가 있다. 1단계는 무술武術 2단계는 무예武藝 3단계는 무도武道이다. 무술의 단계는 재주만 앞서는 단계이고 무예는 무술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예술의 경지까지 올라간 단계이다. 최고 단계는 도의 경지에 오른 무도이다. 이 무도의 단계에서 수련을 하여 최고의 상승 단계까지 오른 상태가 노화순청의 단계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높은 단계가 있는 줄을 대부분 모른다. 진짜 최고의 단계인데, 반박귀진返朴歸眞의 단계이다. 무예로 치면 검을 쓰지 않고도 상대방을 제압시키는 경지이다.‘반박귀진’은 원래의 순박한 때로 돌아가서 참된 것을 회복한다는 의미이다. 날카로움에서 벗어나 원래의 참다움을 회복할 때 검을 가진 자들이 검을 버리고 스스로 무릎을 꿇게 한다는 뜻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이 말은 전국시대 제나라 왕인 선왕과 안촉이라는 사람의 일화에서 생겨난 말이지만 도가나 무도에서의 가장 심오한 경지에 도달한 상태를 일컫기도 한다.
전국시대 제나라 선왕은 대의명분에 앞서는 군주였다. 기인이사奇人異士를 만나 배우기를 즐겨하고 뛰어난 문사가 있으면 나라의 관리로 채용하여 부국강병을 이루려고 하였다. 어느 날 초야에 묻혀 사는 한 기인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불렀다. 그 사람은 안촉이라는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마주 앉아 대화를 하다가 왕이 그를 더 가까이 오라고 하였다. 그러자 안촉은 “왕께서 이리 오시오.” 하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신하들은 “어찌 감히 왕이 오라고 하는 데 신하인 처지에 왕을 오라고 하다니 무례하지 않은가?” 하고 꾸짖었다. 그러자 안촉이 대답하였다.
“내가 왕에게 다가가면 권세를 쫓는 탐욕스런 인간이 되지만 왕이 내게로 오면 인재를 알아보는 분으로 존경을 받지 않겠소이까.”
그러자 선왕은 불쾌한 빛을 애써 감추며 또 물었다.
“왕이 귀한가, 현사賢士(지혜롭고 어진 선비)가 귀한가?”
“당연히 현사가 귀하지요.”
선왕이 그 이유를 물었다.
“진나라가 제나라를 침략했을 때지요. 진나라는 유하계(춘추시대 노나라의 현자. 당시 흉악한 도둑인 도척의 형이라고도 함)의 무덤 오십 보 안에서 나무를 하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나라 왕의 목을 취하는 자는 일만호에 봉하고 상금 천일千鎰을 준다고 했습니다. 살아있는 왕의 가치가 죽은 현사의 무덤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말에 선왕이 불쾌한 빛을 풀지 않자, 안촉은 꾸준히 다른 예를 들어가며 설명하였다.
나중에야 선왕은 기쁜 낯색을 하며 안촉에게 정중하게 말했다.
“과인이 현사를 경시하는 잘못을 저질렀으니 부디 제자로 삼아 주시오. 그리고 함께 궁으로 들어가서 최고의 맛있는 요리를 먹고 외출할 때엔 함께 수레에 오릅시다.”
안촉은 이 말을 듣고 그리 할 수 없다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귀한 옥도 산을 떠나오면 그 빛이 퇴색되는 법입니다. 그 옥이 귀함을 잃어버린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욕심에 의해 그대로 보존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선비는 벼슬을 하고 싶은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이로 인해 자신의 본래 모습을 잃기가 쉽습니다. 산해진미를 맛보기 보다는 소박한 음식을 먹고, 화려한 수레를 타는 대신 걸어다니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대신 청빈한 삶을 누리고 싶습니다. 저를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하여 선왕과 하직하고 향리로 내려온 안촉은 평화롭고 욕되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 전한다. 왕의 말에도 흔들림 없이 통나무처럼 순박함으로 일관된 삶을 산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겠는가. 부귀영화를 누리는 삶이나 청빈한 삶이나 선택하는 것은 본인의 몫이다. 그러나 행복하게 살았느냐 불행하게 살았는냐는 겉모습을 보고는 알지 못한다.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마음속으로 참다운 행복을 느끼며 살면 최고의 삶이라고도 할 수 있다. 청빈한 삶도 마음속으로 진정한 행복을 누리면 그것 또한 최고의 삶이라 할 수 있다.
날마다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은 자신의 마음가짐에 있는 것이 아닐까. 인생의 성공에 대한 기준은 부자나 권력가로 사는 데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행복하게 살았느냐에 있을 것이다. 통나무 같이 사는 삶은 부자도 가난한 자도 그렇게 노력하면 살 수가 있다. 무엇이든지 만들어질 수 있는 통나무로 산다면 언젠가는 명품으로 이름을 얻게 될 것이고 빛나는 이름 앞에서 스스로 그칠 수 있는 지혜도 필요할 것이다.
앞에서 제선왕과 안촉에 대한 이야기는『전국책 戰國策, 제책齊策 」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도덕경 28장에는 「樸散則爲器」라는 말이 나온다.
‘박(樸)’은 ‘통나무,‘순박하다’라는 뜻이다. 통나무가 쪼개지면 필요한 기물이 되는 것인데, 순박함을 잃지 않고 살면 여러 가지 쓸모가 있는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통나무를 쪼개면 우선 불을 피우는 연료가 될 수 있고 어떤 것은 아름다운 장식장의 가구가 되기도 한다. 사람도 ‘박’같은 인물이 되면 이처럼 쓸모가 있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32장에서는 夫亦將知止, 知之可以不殆 라고 하여 위태로움을 말하고 있다.
아무리 좋은 기물이라도 이름을 얻고 앞으로 나가게 되면 위태로움에 빠진다는 것이다. 잘 나갈 때 그침을 알면 위태로움이 없다는 것. 좋은 일에는‘반드시’ 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환난이 숨어 있다. 이를 경계하고 잘나갈 때 내려오면 화를 피할 수 있고 안분낙도安分樂道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좋은 가르침인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살펴보면 바로 위태로운 지경에 와 있는 것이다. 죽기살기로 앞으로만 나가고 있으니 극도의 위태로움에 처하게 되었다. 질병은 창궐하고 공기는 연일 미세먼지로 숨쉬기가 힘들다. 어디 그 뿐인가. 정치판은 연일 상대방 헐뜯기에 혈안이 되어 정쟁으로만 치닫는 파국을 눈앞에 보고 있다. 최고의 국정책임자를 뽑아야 하는데 최악의 책임자를 뽑을 것 같다면서 조소 섞인 말들이 오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감히 말하노니, 어찌하여 사람들은 편리만을 추구하여 인공지능이니 로봇이니 하여 사람의 역할을 기계에 의탁시키려고만 하는가. 이것이야말로 인류 멸망의 단적인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하여, 옛날 사람들의 시조 작품이 더욱 돋보이는 이유이다.
샛별 지자 종다리 떴다 호미 메고 사립나니
긴 수풀 찬 이슬에 베 잠방이 다 젖거다
이희야 시절이 좋을 새면 옷이 젖다 관계하랴.
- 이명한 -
이명한은 조선시대 4대 문장가의 한 분인 이정구의 아들이다. 이 시조는 자유뷴방한 자유로움과 질박한 일상의 행복을 노래하였다. 호미를 들고 사립문을 나설 때의 기분은 만 땅이다. 샛별이 지고 새소리가 즐겁다. 긴 수풀에 옷이 다 젖어도 오히려 좋다. 옷 젖는 것을 상관할 일이 아닌 것이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무욕의 즐거움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지금처럼 미세먼지가 가득한 날에다가 코로나 19, 오미크론 감염의 상태에서도 이런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까. 좋은 환경 속에서야 행복도 배가될 수 있는 것이다. 이익과 편리만을 따라가다 보니 우리는 지금 즐거워할 수 없는 비탄의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다. 노자의 무위와 불가의 공 사상에 대한 중요성이 더 없이 크다고 여겨지는 까닭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세상이 힘들어도 노자가 말한 통나무 같은 삶, 다음과 같은 선조들의 시조에서 보듯이 넉넉함과 여유로움으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
나비야 청산 가자 범나비 너도 가자
가다가 저무러든 꽃에 들어 자고 가자
꽃에서 푸대접 하거든 닢에서나 자고 가자
- 무명씨 -
- 본인의 졸고拙稿인 시조 한 편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시조]
산다는 멋
남진원
이 세태 꼴 좀 보게 이야기 좀 나눠 보세
인생이 무엇인가 산다는 멋 뭐냐 말이여
즐겁고 또 고달픈 길, 그게 바로 아니것소
병들어 아플 때 누가 같이 앓겠는가
죽을 땐 누가 같이 손잡고 갈 것인가
혼자서 훠이훠이 가는 길 외롭고도 외론 길
천만 기쁨 들어설 땐 천하가 내 것 같다가
억만 슬픔 다가오면 정신줄도 놓고 살지
그러다 우리 인생사 해지듯이 지는 거야
내 것 네 것 같았지만 누구 것도 아닌 것들
욕심을 붙들다간 허망하게 가지 않나
그렇네, 무욕을 배워 저물도록 즐기세
(2021년 12월 22일 동짓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