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성 토론이후
인터넷을 접속하여 어떠한 사이트에 가입을 하려면 이름, 주민등록번호, ID, 비밀번호, 주소 등 여러 가지 항목을 채워야 한다. 더불어 눈에 띄는 것은 다름 아닌 닉네임 란이다. 자신의 인터넷 속의 새로운 이름. 회원가입이 끝나는 순간 이 사이트에서의 나의 이름은 사라지고 닉네임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여기서 문제는 나의 이름이 사라지는 동시에 나 자신 또한 사라진다는 것이다. 현실사회에서의 도덕과 법 윤리에 갇혀있던 내면속의 자아가 새로운 사회에서 나타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우리는 항상 일탈을 꿈꾸는 존재이므로 현실의 억압에서 벗어 나 현실에서의 일탈로서 인터넷에서 평소와는 다른 자아를 가지게 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 기사나 홈페이지 리플, 게임에서의 대화, 인터넷 거래까지 닉네임이라는 벽 뒤에서 우리는 자신을 숨기며 인터넷속의 자아를 조종한다. tv예능 프로 중 ‘뜨거운 형제들’이라는 프로가 있다. 이 프로에서는 출연자가 ‘아바타(조종 당하는 쪽)’과 지시자로 나뉘어 소개팅을 하거나 아르바이트 등의 생활을 한다. 지시자는 아바타를 화면으로 보면서 지시를 내리고, 아바타는 지시자의 말에 따라 행동하고 말한다. 이 프로에서 지시자는 일상적인 행동이 아닌 돌발적이고 난해한 지시를 내려 아바타가 실행하게 함으로써 웃음을 자아낸다. 평소 자신이 하지 못하는 이야기나 행동을 하면서 아바타를 이용해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도 하고 원하던 일들을 하기도 한다. 여기서 지시자는 인터넷을 하는 우리라고 한다면 아바타는 인터넷속의 닉네임의 나를 의미한다. 이처럼 상대가 나를 알지 못한다는 이점이 있다면 우리는 평소 나의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있다.
문제는 이를 악용 한다는 것이다. 인터넷 익명성은 명예회손, 모욕, 성희롱, 스토킹, 음란물 등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문제를 낳았다. 나는 익명성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이다. 익명성을 옹호하는 입장에서는 익명성을 지킴으로서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준다고 한다. 물론 전 세계적으로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위한 노력은 먼 옛날부터 존재 했고 그 덕분에 지금의 인간과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중요시하게 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현실 사회에서의 인과응보라고 생각한다. 현실세계에는 법이 있고 윤리와 도덕이 존재하여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줄 의무가 있다. 하지만 인터넷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아직 인터넷에서 우리는 자유롭다. 그 자유를 우리는 모욕과 사기의 무기로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지금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위해 익명을 요구하는 것은 모순이 된다고 본다.
또한 익명성은 개인이 사회를 비판하고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만약 정말 사회를 위한 비판이라면 과연 자신을 들어내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생각을 말하는데 구지 숨어서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분명 그것에 자신이 있고 자신에 대한 신념을 가진 것이라면 구지 익명성을 구하지 않고도 떳떳할 수 있다. 과연 자신을 숨기면서 하는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 있을까? 오히려 실명제로 자신의 의견을 내고 지적한다면 더 큰 파급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인터넷의 익명성에 우리가 길들여지면 자아 정체성의 혼란뿐 아니라 정체성의 성립조차 힘들 수 있다. 과연 나는 누구인가? 이것은 현실의 하나의 나에서도 얻기 힘든 답이다. 인터넷상의 나와 현실의 내가 다른 상태라면 이는 불 보듯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처럼 나는 익명성은 자신을 감추는 것이라고 보는 입장이다. 점점 인터넷 또한 하나의 사회의 모습을 갖추어 가는 만큼 이 부분에 있어서도 현실과 맞추어가는 방향이 되었으면 한다.
과 mt로인해 월요일에 출석을 하지 못하여 토론 참여를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익명성에대한 저의 의견을 적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