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옛날 이야기 -94-
1988년에 중국땅을 밟고.. (10)
해질 무렵 쟈무스(佳木斯)에 도착하였다.호텔을 정하고 그앞에 조선족 식당이 있어 저녁을
사먹었는데 알고 보니 주인은 중국인이고 종업원 아가씨만 조선족이어서 실소를 하였는데
역시 음식 맛이 별로였다. (사기당한 기분....)
다음날 아침 일찍 쟈무스(佳木斯) 바로 밑의 장발(長發)역에 갔다. 이 장발(長發)은 옛날 해
방 전에 내가 다녔던 중학교가 있었던 곳이다. 그때는 고등학교가 없었고 중학교 4년을 졸업
하면 대학을 갔었다. 나는 이곳을 졸업하여 新京(지금의 長春)의 수의과 대학에 진학하여 수
의사가 되어서 만주벌판에 멋진 큰 농장주인 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 꿈은 깨졌지만.....)
역사 동쪽 언덕 밑에 있던 크고 넓던 학교와 축사들은 온데간데없고 모두 밀밭이 되어 있었
다. 역무원에게 물었더니 학교는 해방 후 바로 헐렸으며 작년에 일본사람 한사람이 와서 나
와 같이 옛날 학교에 대하여 묻더란다. 아마도 나의 동문 중 한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때 이 학교는 일본인, 조선인 그리고 중국인 이렇게 3개국 사람들이 함께 공부하였던 곳이
다. 그 사람이 누구였을까 이름도 성도 남기지 않았으니 알 길이 없었으나 그도 나와 같은 심
정으로 여기를 왔을 것이다. 언덕에 앉아서 옛날을 회상하니 공연히 가슴이 뭉클하여 반백년
세월의 무상함을 곱씹어야 했다.
몇 사람이나 살아남아 있을까? 격동기의 한복판에 살아야 했던 우리 세대들만이 겪어야 했던
한많은 세월들이 주마등같이 떠올라 학교자리를 내려다보며 몇 시간을 하염없이 앉아 있었다.
저 아래 밭 한가운데는 교실이 있었고 바로 우측에 돈사와 양을 기르던 축사가 있었다. 이 돈
사는 2학년이 되어 축사당번을 친구와 둘이서 먹고 자면서 했던 곳이다. 돼지는 의외로 깨끗
하고 영리한 동물이라는 것을 알았다. 같이 수영을 할 때 다가가서 억센 솔로 박박 닦아 주면
눈을 지그시 감고 기분 좋아 하는 모습에 무척 흐뭇하였던 기억이 난다.
수백 마리의 닭을 기를 때 나는 병아리의 부화하는 방법 및 암수의 구별법과 수탉의 거세 술
을 배웠다. 수탉을 거세하면 성질도 순해지고 살도 찌고 고기 맛도 좋아진다 하였다. 그래서
귀국후 농사일을 할때 병아리의 부화를 시험해보기고 하고 숫닭의 거세도 해보고 한때는 영
농자가 되고자 했었는데.....
여름에는 이곳도 30도가 넘었다. 그래서 오전에는 축사당번이 아닐 때는 밭에 나가 농사짓는
실습이라고 밭일을 하고 오후에는 교실에서 공부를 하였다.
10월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다음해 5월까지 눈이 녹질 않는다.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불면
높은 데서 얕은 데로 눈이 모여 하얀 평지로 변하였다. 한겨울에 눈이 하얗게 덮이고 바람 없
는 날 전교생이 들판에 나가 함성을 지르며 꿩을 잡던 일도 눈에 선했다
교실이 너무 추워서 책상위에 춤을 뱉어서 얼음 기둥을 만들며 강의를 듣던 일, 겨울에 등교
한때 바람이 너무 세게 불면 뒷걸음질하며 등교 하던 일, 16살 조그마한 어깨에 장총을 메고
영하 30도의 새벽에 군사훈련을 받았던 일이며 학교 밭에서 한여름 뜨거운 태양빛 아래서 긴
호미로 줄을 서서 밭일을 하던 일, 소련군이 밀려와 우리가 남쪽으로 피난가며 축사의 짐승
들을 밭에 풀어 주었던 그때 그 일들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반백년이 흘렀으니....
그리고 반백년이 지난 오늘 나는 이곳을 찾아왔으나 보이는 것은 바람에 넘실거리고 있는 밀
밭뿐이 아닌가. 그때는 그렇게도 절망적이고 또 고생스러웠던 기억인데 왜 그리움으로 떠오
르는 것일까. 가슴이 뭉클해지며 목이 메이고 눈앞이 흐려졌다.
꿈 많던 소년시절 품었던 푸른 꿈을
순식간에 앗아 갔던 그때 그 시절
그래도 그리워
백발이 다 되어 다시 찾아 이곳에 오니
강산은 여구하나 다니던 학교는 흔적도 없네.
언덕에 홀로 앉아 옛일을 회상하니
그리운 옛 친구 얼굴마저 흐릿하여
세월의 무상함에 눈앞이 흐려지며 목이 메이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