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수가...... .”
CT단층촬영과 MRI 자기공명영상의 결과에도 특별한 단서를 찾아내지 못한 박사의 한마디였다. 그리고는 함께 있던 의사들에게 말했다.
“엠알아이에서도 말야, 생각을 해보라구. 선생님은 칠판에 글씨를 쓰고 학생들이 열심히 노트에 따라 적고 있는데, 누군가 교실 뒷문을 꽝 하고 열었다 닫았다 치자 이거야. 그럼 학생들 대부분의 반응은 뒤를 돌아보지 않겠나? 한데 게 중에는 꼭, 전혀 관심 없이 글씨만 쓰고 있는 학생들이 있지. 아냐. 초미니 스커트를 입은 늘씬한 미녀가 거리를 지나고 있다 이거지.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녀의 다리로 눈이 쏠리지 않겠나? 한데 꼭 한 둘쯤은 전혀 관심이 없는 남자들이 있어. 바로 그 특별한 것들을 잡아내는 데는 엠알아이를 따라갈 게 없는데도 잡아내지를 못한다니까. 나이 55세. 이름 김민호. 증세 심장박동 분당 6회. 체온 정상. 현재 의식불명. 그리고 우리가 아는 게 뭐가 있나? 알 수가 없어...... . 벌써 백 팔 일째라니까. 그런데도 머리와 손톱은 정상적으로 자라고 있고, 혈색은 건강한 사람보다 좋은 데, 소 대변 등의 생리활동은 거짓말처럼 정지되어 있다니까. 이건 분명 의학의 한계야 한계...... .”
그러면서 박사는 다문 입술을 내밀며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그러한 모습은, 병원이 생긴 지난 3년 이래 온갖 별스런 환자들을 다 겪었어도, 미동의 변화조차 잘 보이지를 않았던 박사에게서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의사들이나 간호사들에게도 민호는 아무런 대책도 세워지지 않는 가장 황당한 환자였다.
2.
“어디서 많이 본 모습인데......, 그럼 여기가 인도의 석가 부족이 사는 곳?”
민호는 가비라위성의 정반왕과 마야 부인이 있는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3천 여 년을 거슬러 왔단 말이지?’
민호는 뭔가에 홀린 듯한 기분이면서도 살을 꼬집어보며 어떻게든 자신의 정신을 다독거렸다.
그 때였다.
가비라위성에서 나오는 사람들은 저마다 밝은 표정이 되어 성 안의 일을 얘기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주고받는 사람들의 얘기는 모두에게서 같은 내용이었는데 그것은, 50세의 나이였던 정반왕과 40이 채 되지 않았던 마야부인 사이에서 태자가 태어났다는 것이다.
“하늘과 땅이 요란하게 진동하고 갈라지면서 육아백상이 찬란하게 내려와 마야 부인의 품에 안기는 태몽을 꾸셨다지?”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민호 곁을 지나며 나누는 얘기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가비라위성 안에 있던 신하들이 나오며 말했다.
“그 날, 우리가 모셨다니까. 해산을 위해 친정이신 구리성으로 가시던 도중이었어. 룸비니 동산에 이르렀는데 별안간에 산기가 있으신 거야. 어떻게 해 볼 겨를도 없이 태자를 낳으셨다니까. 신하들도 모두 당황하여 급히 산모와 태자를 가비라위성으로 모셔 왔지. 정반왕께서 어찌나 기뻐하셨는지 몰라. 그 날 동행했던 모두에게 금과 은을 하사하셨다니까.”
민호는 가비라위성을 오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훔쳐들으며 성 안으로 들어섰다.
가비라위성 안은 마야 부인이 출산한 태자의 소식에 연일 경축의 기쁨으로 가득했고, 나라 안이 온통 들뜬 상태로 며칠이 지나고 있었다.
늦은 나이에 태자를 얻은 정반왕은 그런 태자의 이름을 한시라도 빨리 지어 주고 싶은 마음에 인도의 관상과 작명은 물론 예언의 대가인 아사다 선인을 불러들였다.
“왕이시여, 부르셨나이까.”
“어서 오시오.”
아사다 선인은 자신이 불려온 이유를 벌써부터 알고 있는 듯 머리를 조아린 채 정반왕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선인을 상대로 정반왕 역시 긴 말이 필요 없었다.
“우리 태자의 이름을 부탁하오.”
“왕이시여! 소인은 이미 왕궁에 들어서기 전부터 태자님의 이름을 실달타라 지어왔나이다.”
“실달타?”
정반왕은 잠시 태자의 이름에 대한 생각에 잠기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아사다 선인! 내 알기로는 이름의 뜻이, 원하는 바를 성취한다는 뜻 아닌가. 태자야 당연히 나의 뒤를 이어 왕위를 물려받을 테고, 이 왕국 또한 태자의 것이 될 것인데 그렇다면 그저 평범한 이름이 아니던가.”
정반왕은 나라 제일의 예언자인 아사다 선인에게서 만족할만한 태자의 이름이 지어지지 않자 실망이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아사다 선인은 땅바닥에 머리만 처박고 있을 뿐 일언의 변명도 없었다.
“그래, 그대는 이 나라 제일의 선인이니 다 생각이 있을 터, 책하지는 않겠네. 그러나 이번에는 만족할만한 대답을 해주게나.”
정반왕은 아사다 선인에게 태자의 상을 관상토록 했다. 그러면서, 앞전에 있었던 작명의 일이 불만이었던지라 재차 당부를 하는 것이었다.
“선인은 조금의 실수도 없이 태자의 상을 봐주게나.”
정반왕의 말에 아사다 선인은 태자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아사다 선인의 그러한 행동은 왕에 대한 예의에 의한 것일 뿐 실은, 왕궁에 불려오기 전부터와 모든 것을 다 보았던 것이다. 하지만 태자의 관상을 보고 난 아사다 선인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있었다.
“이런 답답한 일이 있나, 어인일인가! 우리 태자에게 안 좋은 상이라도 있단 말인가? 아사다 선인은 본 대로 말하라.”
답답해진 정반왕은 잔뜩 긴장이 되어 물었다.
“왕이시여!”
아사다 선인은 바닥에 쓰러지듯 두 손바닥을 땅에 짚더니 별안간 울음을 쏟아내는 것이었다.
“저런......, 더욱 답답할 수밖에. 내 그대를 탓하지는 않을 테니 속 시원히 알게 해주게.”
속이 탄 정반왕은 옥좌에도 앉아 있지를 못했다. 왕의 표정은 금방이라도 선인에게 다가가 재촉하고 싶은 모습이었다. 그런 왕 앞에서 한참을 쏟아내던 울음을 그친 아사다 선인이 천천히 고개를 들며 입을 열었다.
“왕이시여! 황공하오나 태자께서 장차 왕위를 물려받으시면 천하의 인류를 통솔하시게 되지만, 출가를 하시어 입산수도를 하시게 되면 대성붓다로서 일체중생을 구제 제도하시게 될 것이옵니다. 그러나 태자님께서는 모든 부귀영화와 왕위를 버리시고 대성붓다가 되실 것이옵니다. 원통하게도 소신은 이미 늙었으니 성도하신 태자께서 대법 강설을 하실 때에는 법은을 입을 인연이 없는 것을 슬퍼하여 우는 것이옵니다.”
전혀 뜻밖의 대답이었다. 아니, 믿기지 않는 예언이었다. 그래 온몸의 힘이 빠지며 옥좌 위로 털썩 주저앉는 정반왕이었다. 하지만 아사다 선인이 누구던가. 이제껏 단 한 번도 예언이 빗나간 적 없는 선인이 아니던가. 그렇지만 정반왕은 선인의 말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지금 뭐라 했는가! 출가라니......, 잘 못 볼 수도 있으니 그대는 다시 한 번 태자의 상을 보라. 어떻게 얻은 왕자인데......, 이번만은 그대가 잘못 보았을 걸세. 그러니 다시 한 번 보게나. 왕위를 버린다니. 왕위를...... .”
정반왕은 옥좌에 몸을 기대며 이마를 짚었다. 그러나 아사다 선인에게서 더 이상 입은 열리지 않았다.
그 날 이후, 왕에게는 기쁨과 시름이 함께하는 시간이 계속 되었다. 이러한 정반왕의 속사정과는 달리 백성들은 연일 축제의 분위기였다.
그러나 호사다마라 했던가. 실달타 태자가 태어난 지 칠일 째 되던 날 정반왕의 부인인 마야부인이 세상을 떠났다. 이제 어미 없이 자식을 키워야 하는 정반왕의 슬픔은 부인을 잃은 것만큼이나 큰 것이었다.
3
‘저 여인이 마하바사바제 님이시군.’
가비라위성으로 들어서고 있는 여인을 보며 민호가 중얼거렸다. 실달타 태자의 이모인 여인은 한눈에 보아도 알아 볼만큼 마야부인의 모습 그대로였다.
‘가엾은 태자님, 어머니의 모습도 기억 못하며 자라야 하다니...... .’
민호는 저만큼 사라져 가는 마하바사바제 일행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난 지 7일 만에 어머니를 잃은 실달타 태자는 이모인 마하바사바제에 의해 온갖 정성 속에서 자라고 있었다.
“일문천오의 태자님이십니다. 바라문교의 학문을 정통하시다니요. 소신은 더 이상 가르쳐 드릴 것이 없사옵니다.”
태자의 나이 열한 살이었다. 더불어 승마, 궁술, 검술에 이르기까지, 앞날의 국왕으로서의 문무에 걸친 각각의 스승들이 있었지만 나이 어린 태자를 감당해 낼 수가 없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는 정반왕의 기쁨은 날로 더했고 아사선인의 예언도 이제는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이었다.
‘됐어. 문무에 걸쳐 우리 태자만 하면 이 세상 어느 왕국을 물려준다 해도 최고의 왕이 될 거야. 허허, 우리 태자에게 더 이상 가르칠 학문이 없다니. 게다가 더 이상의 무술을 가르칠 스승도 없다하지 않는가. 이 모두가 왕국의 복이로고...... .’
정반왕은 요즘 태자만 보면 나이를 거꾸로 먹으며 자꾸만 젊어지는 기분이었다. 아니, 세월 가는 줄 모른다는 표현이 맞을 지도 모르겠다.
가비라위성의 곳곳이 꽃망울로 터지고 있었다. 성 밖은 소리도 없이 산으로 들로 나와 앉은 파릇한 풀잎들로 싱그러웠다. 어느 곳을 보아도 세상은 온통 봄소식뿐이었다.
‘무슨 일이지?’
민호는 궁궐 밖으로 움직이고 있는 정반왕과 실달타 태자의 행차를 보고 있었다.
‘혹시...... .’
그러고 보니 연중행사인 춘경제였던 것이다. 민호의 관심은 실달타 태자에게로 집중되어 있었다.
‘빠른 세월이야.......’
민호는 태자의 나이를 짚어 보았다.
‘열두 살!’
태자에게서는 어느새 왕자로서의 기풍이 또렷했다. 민호는 그런 태자 옆에서 춘경제의 파종식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윽고, 잘 생긴 소가 끄는 쟁기를 정반왕이 밀고 나가는 것을 시작으로 춘경제에 참석했던 모든 사람들의 함성이 쏟아졌다. 그리고는 왕국의 모든 농민들도 한해의 농사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를 지켜보는 정반왕과 실달타 태자의 마음에는 큰 영화가 느껴졌다.
그러나...... .
해는 길고 햇살은 뜨겁기만 한 땅이었다.
온몸을 적시는 땀과 싸우며 쟁기질을 하고 있는 농부들의 알몸은 햇빛을 이겨내지 못하며 고통스러웠다. 땀에 범벅이 된 온몸은 먼지며 흙투성이였고, 쟁깃날을 끌고 가며 밭을 가는 소들 역시 고달프기는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소들은 채찍을 얻어맞고 멍에에 목을 졸린 채 코에는 고삐로 꿰어 피가 흐르고, 가죽과 살 어느 한 곳 터지지 않은 곳이 없지 않은가. 그 뿐이 아니었다. 쟁깃날에 허리가 끊어진 지렁이며, 그것을 쪼아 먹고 있는 까마귀, 까치 떼들의 잔인한 모습, 그리고 독수리에 의해 다시 잡아먹히는 까마귀와 까치의 처참한 모습이 태자를 깊은 충격 속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세속의 모든 중생들이 이리 극심한 고통과 괴로움을 받고 있다니...... .’
혼자 중얼거리는 실달타 태자는 충격에서 헤어나지를 못하며 사색에 잠긴 걸음을 염부수나무 아래로 옮겨 놓고 있었다.
춘경제가 끝난 뒤에야 태자의 모습이 사라진 것을 안 정반왕이 행방을 찾아냈을 때는 실달타 태자가 염부수나무 그늘 아래 앉아 선정에 잠겨 있을 때였다.
‘저럴 수가...... .’
정반왕이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태자의 몸에서 발하는 광채며, 시간에 따라 움직여 가야 할 그늘이 태자 주변에 머물고 있는 염부수나무의 조화 등을 직접 보고 있는 정반왕이었기 때문이다. 그제서야 아득한 1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아사다 선인의 예언을 떠올리는 정반왕의 시름은 깊어만 갔다.
‘안 돼, 태자는 내 뒤를 이어 왕위를 물려받고 세상에서 가장 존경받는 왕이 되어야만 해. 이대로 보고 있을 수만은 없지. 태자를 막으려면 뭔가 묘안이 있어야만 하는데......, 아니지. 묘안이 없다면 만들어 내기라도 해야지.’
왕은 식음까지 전폐해 가며 오직 묘안 찾기에만 긍긍하고 있더니 충직한 신하 하나를 불렀다. 연로한 신하가 급히 와 허리를 조아렸다.
“부르셨나이까.”
“긴히 명할 것이 있느니라.”
“분부만 하소서. 그대로 따르겠나이다.”
신하는 연신 허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그대도 기억할 줄 아노라. 태자에 대한 아사선인의 예언 말이다.”
“생생하게 기억하나이다. 부왕께선 그 일로 인해 불편하신 것도 아옵니다.”
“그래, 좋은 묘안은 없겠는가?”
아이가 어머니에게서 꼭 듣고 싶은 대답을 기다리듯 정반왕의 눈빛이 빛났다.
“왕이시여! 신에게 묘안이 있사옵니다.”
“그래?”
“얼마나 기뻤던지 자리에서 일어난 정반왕은 신하의 두 손을 덥석 쥐었다.
“말해 보라. 나의 충직한 신하여!‘
“태자님의 나이 열둘이시면 비를 맞이하실 나이옵니다.”
“비? 비라...... .”
“그렇사옵니다. 태자께서 바깥 세상에 마음 쓰실 시간이 없도록 여럿의 비를 맞이하는 것이옵니다.”
“여럿이라 했는가?”
“신의 생각으론 네 분의 비를 두심이 좋을 듯싶습니다. 비에게는 각각의 궁전들을 화려하게 지어 드리고...... .”
“자세하게 말해 달라. 넷씩이나 되는 비는 무엇이며, 각각의 궁전이라니 이해가 되지 않노라.”
“왕이시여! 모든 계절 별로 잘 어울리는 각각의 궁전을 짓는 것이옵니다. 그 궁전들 각각에는 왕국 최고의 미인들로 비를 삼으시어 태자의 마음을 붙드는 것이옵니다.”
“오라! 일리가 있노라. 참으로 묘안이로다. 나의 충직한 신하는 지금 즉시 그 모든 일들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시행토록 하라.”
그렇게 찾아낸 묘안이 봄, 여름, 가을 , 겨울, 사시사철 따듯하고 아름다운 사시전(四時殿)을 지어 뜰에는 온갖 기화요초들을 가꾸고, 각각의 궁전에는 제일의 미인들을 비로 들여 태자의 마음을 달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첫 번째 지어진 봄의 궁에는 천하의 미인 구리성주의 장녀인 야수다라를 태자의 비로 맞아들였다. 그리고는 태자비이자 며느리인 야수다라에게 왕자의 마음을 꽉 붙들어 놓을 것을 신신당부 하였고, 여름의 궁에는 구리라는 비를, 가을의 궁에는 녹이라는 비를, 겨울의 궁에는 고란이라는 비를 차례로 들여 며느리로 삼았다.
그러다보니 일 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에 가비라윗성에서는 비를 맞이하는 대경사가 네 차례나 거행이 되었고, 온 백성들도 나라의 경사에 기쁨과 축하로 동참을 했다.
그러나, 넷씩이나 되는 며느리를 들이면서까지 태자로 하여금 왕궁의 호화스런 생활과 여자들과의 성에 빠져 출가의 꿈을 꾸지 못하게 하려는 정반왕의 모습은 차라리 애처롭기까지 한 것이었다.
그래도 뜻이 하늘에 닿았는지 정반왕의 처방대로 실달타는 마음을 잡는 듯 했고, 사시전에서의 생활과 부부생활 또한 원만한 듯 하더니 첫째 부인인 야수다라에게서 라후라라는 손자까지 보고나서야 마음을 놓는 정반왕이었다. 하지만 정작 실달타의 마음은 시간이 갈수록 사색에만 빠져들었고, 왕궁의 생활에는 점점 흥미를 잃고 있었다.
사시전에 밤이 오고 있었다. 뜰에서는 풀벌레들이 목청껏 울어대고 있었다. 그건 가을밤의 별빛과 어우러진 노래였다. 멜로디였다.
야수다라는 속이 드러나 보이는 엷은 옷차림으로 야한 화장을 하며 거울 앞에 앉아 있었다. 삼시전을 혼자 거닐며 사색에 머물다 돌아올 실달타의 마음을 빼앗기 위해서였다. 뽀얀 젖가슴이 살짝 드러나도록 단추도 슬쩍 풀러 놓고 남자의 후각을 자극할 수 있는 최고의 향수도 뿌려 두었다. 궁전 침실의 분위기도 황홀하게 빠져들게끔 핑크빛에 빨간 등도 켜 두었다. 야수다라 스스로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아도 세상에 더 이상의 아름다운 여인은 없었다.
태자가 침실로 돌아온 것은 축시가 넘어서였다.
모든 단장을 하고 기다리던 야수다라는 쓰러져 잠이 들어 있었다. 태자의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은 부인인 야수다라의 아무렇게나 잠들어 있는 모습이었다.
야수다라의 엷은 치마는 잠버릇에 의해 엉덩이의 일부를 드러내 보이며 올라가 있었고, 단추가 풀려져 있는 상반신의 옷은 어깨 아래로 흘러내려 있었다. 게다가 침을 질질 흘리고 자는가 하면 이까지도 가는 것이 아닌가. 화려하게 치장했던 환한 날의 아름다움은 찾아 볼 수가 없고, 그런 야수다라의 모습이 태자에게 유혹으로 될 리가 없었다. 그건 여성의 미를 모두 포기해 버린 그저 고깃덩어리 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여인의 그런 모습은 첫째 아내인 야수다라에게서 뿐만 아니라 둘째 아내인 구리, 셋째 아내인 녹야와 넷째 아내인 고란과 궁 안의 궁녀들에게서도 똑같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쾌락, 그게 다 뭐란 말인가!’
태자에게 있어 성도 쾌락도 사람이 추구해 가는 극의 목표는 절대 아니었다.
‘찰나에 타오르다 꺼져버리는 불꽃과 같은 거야. 쾌락, 그런 거 말고 영원한 만족을 구할 수는 없단 말인가!’
실달타는 더한 의문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4.
민호가 보기에도 정반왕의 심기가 많이 불편해 보였다. 하루가 다르게 핏기가 없어지는 것 같았다. 오늘 따라 정반왕의 모습이 안됐다 싶으리만치 야위어 보였다.
‘바깥세상 바람을 한번 쏘이도록 해볼까?’
정반왕은 혼자 중얼 거렸다. 그리고는 충실한 신하 하나를 불렀다.
‘지금 곧 태자와 함께 사문 밖을 다녀오도록 하라. 그리고 태자가 어떤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는지 사실 그대로 고하라!’
왕의 명이었다.
젊은 신하는 머리를 조아리고 태자에게로 가 사문 밖으로 나갈 채비를 서둘렀다.
그 첫 날, 신하가 태자를 안내한 곳은 평화로운 들길이 이어지고 있는 동문 밖이었다. 잘 가꾸어진 성 안의 모습과는 달리 작은 돌 하나, 이름 없는 풀 한 포기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태자의 마음을 빼앗지 않는 것이 없었다. 그런 들길을 지나 한참을 유람했을 때였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집 앞에서 노인 하나를 만났다. 머리가 하얗게 새고 허리가 심하게 구부러진 모습의 노인은 걷는 것조차 힘에 겨운 듯 지팡이에 몸을 겨우 의지하며 태자의 앞을 지나갔다.
“저건 무엇이냐.”
처음 보는 모습에 태자가 물었다.
“노인이옵니다.”
신하가 허리를 굽히며 대답했다.
“노인이라? 우리와 같은 사람이란 말이지?”
믿기지 않는 듯 말하는 태자였다.
“태자 마마. 모든 사람은 반드시 늙게 되고 노인이 되는 것이옵니다. 게 중에 젊은 날의 고생 등으로 인해 더러는 저리 몸이 굽기도 하옵지요.”
“그렇다면 부왕이신 아버님이나 왕자인 나도 저리 될 수가 있단 말이냐?”
“태자 마마. 어떠한 신분으로도, 어떠한 힘으로도 사람이 늙는 것은 피해 갈 수가 없는 것이옵니다.”
신하의 말에 태자의 표정이 굳어지고 있었다.
둘째 날은 남문 밖으로의 유람이었다.
농사 일이 바쁜 때문인지 성문 밖은 인적이 드물었다. 논밭이 펼쳐진 곳에 이르러서야 여럿의 사람들을 보았지만 일에만 정신을 쏟을 뿐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태자가 신하와 함께 산 아래 옹기종기 모여 있는 가옥 앞에 이르렀을 때였다. 노인 소리를 듣기에는 아직 이를 것 같은 남자 하나가 피골상접이 되어 신음 소리를 내며 방문 앞에 겨우 기대어 있었다. 죽음이 임박한 듯 양미간 사이에는 검은 빛이 도는 게 같은 사람으로서도 똑바로 바라볼 수 없는 두려운 모습이다.
“저것은 어찌된 일이냐.”
걸음을 멈춘 태자가 물었다.
“병자 이옵니다.”
신하는 대답과 함께 다시 물어 올 태자의 입을 쳐다봤다. 아니나 다를까 태자가 재차 물었다.
“병자라? 한데 왜 저리 고통스러워하는가.”
“태자 마마, 사람의 몸에는 아주 작은 가시 하나만 박혀 있어도 행동이 부자연스러운 것이옵니다. 또한 몸의 한 부분이 아프면 고통을 동반하는 것이옵니다. 그리고 저 병자처럼 큰 병에 시달릴 때는 사는 것 자체가 아무런 희망도 동반하지를 못하는 것이옵니다.”
“나는 처음 보았구나. 그렇다면 내게도 저럴 수가 있다는 것이냐?”
“태자 마마!”
셋째 날이었다.
신하와 함께 서문을 나서고 있는 태자의 걸음은 무거웠다. 향락적인 데다 사치스럽고 부족함을 모르는 왕궁의 생활과는 전혀 달리 또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까악, 까악, ’까마귀 떼가 울며 날아가고 있었다.
‘그래. 오늘은 저 까마귀 떼를 따라가 보자.’ 태자는 새 떼가 날아가고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넓은 내 하나를 지나고 작은 산 하나를 넘었다. 저 멀리로 마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이상한 물체가 움직이는 앞뒤로 사람들이 줄지어 오는 것이 보였다. 태자의 걸음이 어느 정도 다가가자 여인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태자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여인들의 울음소리였다.
“저건 또 무슨 일이냐.”
걸음을 멈춘 태자는 자신들이 있는 쪽으로 오고 있는 사람들과 물체를 바라보며 물었다.
“상여 이옵니다. 태자 마마.”
“상여?”
“예, 태자 마마. 사람이 죽었을 때 실어 나르는 것이옵니다.”
“사람이 죽는다?”
“ 예, 태자 마마. ”
“나도 죽는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 이옵니다. 태자 마마.”
상여가 자세히 보일 거리까지 가차와지고 있었다.
태자의 눈에 연화대가 보였다. 그리고 연화대 위에 눕혀져 있는 시체의 모습이 보였다. 태자는 상여가 한참을 지나칠 때까지도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그리도 슬프게 울 수가 없는 여인들의 울음소리도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후세의 사람들이 사문유출(四門遊出) 또는 사문유관(四門遊觀)이라 말하는 성 밖의 일을 목격한 그날 밤, 태자는 한잠도 눈을 붙일 수가 없었다.
인간은 왜, 그러한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고통을 당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밤새도록 떠나지를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왕도, 태자인 나도 아니다. 장생불사 할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사람은 기세만장하게 부귀공명을 떨치다가도 빈부귀천이 바뀌고, 어제까지도 천하를 호령하던 명문명리의 대가도 하루아침에 슬픔으로 변하는 것이 인생의 무상이요 고통이 아닌가! 그렇다면......, 과연 사후의 세계는 어떻게 된단 말인가!’
태자의 이러한 의문과 비관은 다음 날의 북문 유람을 나설 때까지도 계속되고 있었다.
이른 아침.
태자와 신하가 북문을 나서자 까치가 반겨주고 있었다. 울음소리도 까마귀와는 달리 힘이 있고 경쾌하기까지 했다.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것만 같은 출발이었다.
사람의 예감은 무서운 것이었다.
태자와 신하가 사문을 만난 것은 점심 무렵의 들길에서였다. 태자가 만난 사문의 얼굴에선 아무런 집착이나 번뇌 같은 건 아예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바로 저 모습이야.’
태자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사문의 모습을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사문의 행색은 누더기 옷에 머리는 어깨까지 덮고 있었지만 모습은 너무도 당당하고 의젓한 데다 눈에서는 밝은 기운이 돌았고, 지금껏 그 어디서도 본적이 없는 아주 평온하고 행복한 모습이었다. 그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희망이라 할까.
태자는 자신도 모르게 사문 앞에 정중히 허리를 굽혀 예를 갖추며 물었다.
“당신은 무엇 하는 분이시오?”
사문이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출가사문 입니다.”
“출가사문이라...... .”
“내가 가는 길은 세속에 물들지 않는 평안의 길이지요. ”
사문의 말에 태자가 다시 물었다.
“단지, 평안의 길이더이까?”
사문이 맑은 눈으로 웃었다.
“어떠한 경우에도 무너지지 않는 것이지요. 영원한...... .”
사문의 말을 듣고 있는 태자의 마음에 희망의 빛이 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저 사문의 길이야 말로 자신이 찾고 있는 길이라는 마음을 굳히고 있었다.
‘어떠한 경우에도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절대적인 행복 즉 열반, 그렇다. 오욕락(五欲樂)의 순간적인 즐거움이 아닌 영원한 행복열반을 찾아야만 한다.’
태자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신하와 함께 왕궁으로 돌아 왔다.
5.
첫째 부인인 야수다라와 둘째 부인인 구리, 셋째 부인인 녹야와 넷째 부인 고란이 태자를 기다리고 있는 사시전 각각의 궁에는 색색의 화려한 불들이 밝혀져 있었다. 하지만 태자는 자정이 넘도록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태자는 지금 풀벌레들이 가을밤을 애달게 만들고 있는 궁궐의 뒤뜰을 거닐며 ‘인간의 고뇌는 속박의 굴레로부터 벗어나는 해탈의 도를 닦지 않고는 지금의 자신이 갈등하고 있는 모든 부분들에 대한 의문을 해결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가슴속에서 용솟음치고 있었다.
최근, 사문유관을 통해 경험한 생로병사에 대한 성 밖의 모습과, 권력과 성, 넘쳐나는 풍요와 오락 등의 오욕락에 휩싸인 궁궐에서의 생활에 대한 비교는 전체적인 중생이라는 의미에서의 실상으로 하여금 태자에게 출가의 뜻을 더욱 부채질하는 것이었다.
그로 인해 부왕인 정반왕은 어떻게든 태자의 마음을 궁궐의 생활에 붙들어두기 위한 몸부림으로 세상에서 가장 유혹적인 조건들을 쥐어주었지만, 마치 연꽃이 썩은 물로 고인 연못과 진흙 속에서 피어나지만 그 모습이 청결하듯, 모든 오욕락에 물들지 않았고 오히려 출가의 기회만을 엿보고 있는 태자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다.
실달타 태자는 부왕인 정반왕이 잠들어 있는 궁중의 침전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런 뒤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는 마음을 굳힌 듯 침전 안의 부왕을 향해 배례하며 속으로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무거운 걸음을 네 명의 부인들이 있는 사시전으로 향했다.
태자는 먼저, 겨울을 위해 지어 놓은 궁전으로 들어가 넷째 부인인 고란에게로 갔다. 그러고 보니 한 달도 넘은 걸음이었다. 침실 안에는 술상이 놓여 있었고 궁녀 하나와 함께 잠들어 있었다. 얼마나 마셨는가는 알 수가 없었지만 술이 사람을 넘쳐 쓰러뜨린 것만은 분명했다. 그런 상태에서도 고란의 손은 궁녀의 가슴에 가 있었고 두 사람의 상의가 다 파헤쳐져 있었다.
‘부인, 미안하오.’
태자는 한마디를 남기고 고란의 침실을 나와 세 번째 부인이 있는 가을 궁전의 녹에게로 갔다. 녹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태자의 모습을 그린 그림 하나를 미완성으로 남겨 놓은 채 잠이 들어 있었다. 오늘의 그림에서는 태자의 모습에 미처 상의를 입히지 못한 모습이 미완성으로 남아 있었다. 밤마다 태자를 그리워하며 부군의 모습을 그려놓다가 이상하게도 꼭 한 곳씩을 미완성으로 남겨 놓는 녹이었다.
“미안하오. 부인..... .”
궁전을 나온 태자는 세 번째 궁전으로 걸음을 옮겼다.
여름을 위해 지어 놓은 사시전에는 두 번째 아내인 구리가 잠들어 있었다. 구리에게 역시 한 달이 넘어서의 걸음이었다. 구리는 고란이나 녹과 달리 글로 외로움을 달래 오고 있었던 듯 침실에는 그녀가 써놓은 글들이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태자가 무심코 집어든 종이 위에는 구리의 모습만큼이나 고운 필체로 시가 적혀 있었다.
야속해라 꽃잎이여 / 어쩌자 내 님 모습 가려 놓는가 /
야속해라 풀잎이여 / 어쩌자 내 님 걸음 막아 섰는가 /
궁전 뜰에는 온통 / 나를 질투하는 것뿐인데 /
오늘 밤에도 야수다라 님 / 불 밝힌 침실에는 /
웃음소리 들리네 / 내 님 그림자 흔들리네 /
야윈 모습 달 하나가 내 맘처럼 /
방황하는 것 같더니 /
오늘은 살이 차서 / 백옥으로 곱구나 /
손꼽아 보니 / 또 한 번의 달이 가는데 /
이 밤도 내님은 / 아니 오시는가 /
시를 읽고 있는 태자의 입에서 절로 한숨이 쏟아지고 있었다. 태자는 구리의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다가는 다시 한 번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침실을 나와 봄을 위해 지어 놓은 궁전의 야수다라가 잠들어 있는 침실로 들어섰다.
야수다라는 태자의 아들인 라후라를 가슴에 안고 편안한 모습이었다. 태자에게서는 또 다시 깊은 한숨이 쏟아졌다. 자신만을 믿고 의지하고 있는 네 명의 아내와, 첫 번째 아내와의 사이에서 난 외아들인 라후라를 생각하며 한 인간으로서 만감이 교차하는 한숨이었다. 그러나 이미 뜻을 정한 태자는 냉정을 되찾으며 속으로 말했다.
‘야수다라여! 나는 이미 출가를 결심했소. 지금 이 방을 나가면 왕궁을 떠나 깊고 깊은 산중으로 떠날 것이오. 내가 원망스럽겠지만 용서 하오. 죄 많은 나를 대신하여 부왕을 잘 받들어 모시고 라후라를 건강하게 좋은 아들로 잘 키워 주시오. 부인들끼리도 서로 위로하며 지내시고, 궂은 날, 힘든 날들을 잘 이겨내 주오.’
이렇게 속으로 말하고 있는 태자의 눈에는 절로 이슬이 맺히고 있었다.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어쩔 수 없는 눈물이었다.
잠시 뒤, 야수다라의 침실을 나온 태자는 마부인 차익을 불러냈다. 그리고는 백마 건척을 내어 성을 나갈 준비를 하라 일렀다. 태자가 아홉 살 되던 해에 선물로 받은 백마를 지키며 태자와 함께 했던 마부였으니 오늘 성을 나간다는 의미를 짐작하고도 남는 차익은 태자의 결심이 단호한 것을 느끼고는 급히 백마 건척을 끌어 와 태자를 태우고 왕궁을 나와 어둠길을 향했다.
6.
태자 실달타의 나이 열아홉 살이었다.
태자는 마부 차익이 끌어 주는 백마를 타고 아버지인 왕과 네 아내가, 그리고 아들이 사는 궁을 빠져나왔다. 밖은 아직도 여명 이전이었고 말발굽 소리 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아무리 뜻을 굳히고 떠나는 길이긴 했으나 지난 세월을 함께 했던 모든 것들이 등 뒤로 끈질기게도 따라붙고 있었다. 태자는 얼굴을 쳐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맑은 달 하나가 어디로 가는 지 정처 없이 떠가고 있었다. ‘너는 어디로 가고 있느냐’는 듯 잔별들도 눈을 껌벅이며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눈앞으로 세상의 정경들이 펼쳐지며 다가왔다. 그 때까지도 굳게 입을 다물고 있던 태자가 입을 열었다.
“차익아, 처음 보는 것이로구나. 저것이 강이라는 것이더냐?”
넓게 펼쳐진 강이었다. 새벽안개가 가득 피어오르며 왕궁의 무희들 보다 더 아름다운 춤을 추고 있었다.
“참으로 곱구나. 이 곳도 사람이 사는 세상, 저 곳도 사람이 사는 세상이라니...... .”
혼의 절반은 빼앗긴 듯 중얼거리는 태자였다.
새벽 강가에서 백마와 함께 목을 축인 태자는 여러 날이 지난 해질녘이 되어서야 차익의 안내를 받으며 바라문의 수행자들과 사문들이 사는 곳에 도착을 할 수가 있었다. 그 곳은 빔비사라 왕이 이끄는 작은 나라의 땅이었다. 그 곳에서 태자와 마부 차익이 걸식을 하며 며칠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사람들은 그 빼어난 모습과 기품 있는 행동을 보고 그가 카필라 왕국, 가비라위성의 태자임을 첫눈에 알아보고는 삽시간에 소문이 퍼졌다. 그런 것을 알 리 없는 태자는 판다바 산 동쪽 사문들이 모이는 곳을 찾아가 자리를 잡고 앉아 명상에 잠겨 있었다.
이 소문을 들은 빔비사라 왕은 기쁜 맘에 즉시 태자를 만나기 위해 신하들과 함께 찾아갔다. 태자는 자기를 찾아온 사람이 비록 작은 나라의 왕이기는 했지만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히 맞이했고, 빔비사라 왕도 태자를 수행자에 대한 예로써 인사를 했다.
"태자께서 출가하였다는 소문을 듣고 심히 놀랐다오. 그래 부왕께서는 얼마나 가슴 아파하실까. 태자께서 귀하신 몸으로 사문이 되어 고생한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오. 이제라도 마음을 돌리시고 우리나라에서 사는 것이 어떻겠소? 마음에 드는 땅은 물론 원하시는 모든 것을 다 드리어 편히 살 수 있도록 해드리겠소."
빔비사라 왕은 정성을 다해 태자를 설득했다. 그러나 태자 싯달타는 ‘늙고 병들고 죽는 괴로움에서 벗어나 내 자신과 이웃을 구하고자 이미 세상의 욕심을 버리고 출가한 몸입니다.‘라며 정중하게 사양을 했다.
"정말 대단한 뜻입니다. 그래 그것을 이룰 수가 있겠소?"
"되고 안 되고는 해보지 않고는 모릅니다. 저는 이루기까지 죽어도 물러서지 않을 각오입니다."
태자의 의지는 아주 단호했다. 이러한 태자의 높은 뜻과 굳은 결심을 본 빔비사라 왕은 크게 감동했고 마음속으로 태자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믿음직한 젊은이라 생각했다. 저런 인물이 왕이 되어 나라를 다스린다면 백성들은 태평한 세월을 누릴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어디 왕 분이랴. 태자 싯달타를 만나본 사람이면 누구나 그 인품과 정신력에 크게 감동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싯달타는 자기를 찾아온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은 가비라윗성에서 정반왕이 보낸 사신들이었다. 사신들은 태자가 떠나온 뒤, 가비라윗성과 나라가 온통 슬픔에 잠겼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그 중에서도 부왕과 태자의 첫째 부인인 야수다라의 비탄은 차마 곁에서 볼 수 없다며 왕궁으로 돌아갈 것을 간절히 애원하였지만 그 어떤 소식으로도 태자의 뜻을 굽힐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내 본래의 뜻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죽어도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이별과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 생사를 두려워하고 있는 한 사람들은 불행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나의 이 수행은 내 자신만이 아니라 부왕과 이모와 아내와 그 밖의 모든 사람들을 구하려고 하는 뜻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러니 나의 수행을 방해하지 말고 어서 돌아들 가거라."
그러면서 태자는 그 동안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자신을 지켜주었던 마부 차익과 백마 건척을 사신들과 함께 부왕이 있는 가비라위성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사신들과 돌아간 마부 차익이 태자와 함께 머물며 보고 들은 사실들을 정반왕께 모두 고하고 있을 즈음, 태자 싯달타는 라자가하를 떠나 바라문의 수정주의자 중 최고의 선인인 아라라 칼라마가 있는 곳에 이르렀다. 아라라는 나이가 많았으나 아직도 건장했다. 그는 싯다르타를 기꺼이 맞이했다. 늙은 아라라 선인은 차근차근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싯다르타는 이 백발의 선인에게서도 역시 아쉬움 같은 것을 느꼈지만 그래도 얻을 것이 많다는 것을 알고 기뻐했다. 오랜만에 스승을 만난 것 같아 흐뭇했다. 그는 그 곳에 머물며 아라라 선인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기로 했다. 그것은 마음의 작용이 정지된 무념무상의 상태에 이르는 수행이었다. 그는 밤잠을 안 자고 열심히 수행을 계속했다. 그때 아라라 스승에게는 수백 명의 제자가 있었다. 그러나 싯달타는 다른 제자들이 도저히 따를 수 없는 정열과 용맹심을 가지고 수도에 열중했다. 마침내 싯달타는 스승이 가르쳐 준 경지에 이르고야 말았다. 스승은 깜짝 놀랐다. 그러나 싯달타는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보다 높은 경지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무념무상의 상태가 그 위에 없는 열반의 경지가 아님을 알았던 것이다. 싯달타는 스승과 하직하고 보다 높은 수행을 위해 다시 길을 떠났다. 그 뒤 웃다카 라마풋타라는 선인을 찾아가 그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 웃다카는 칠백 명의 제자들을 거느리고 사유를 초월하고 순수한 사상만 남는 비상 비비상천의 경지에 이르는 길을 가르치고 있었다.
싯달타는 얼마 안 되어 또 웃다카 스승의 경지에도 이르게 되었다. 웃다카는 젊은 수도승인 싯달타를 두려워하면서 그 이상의 높은 경지는 없다고 했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자기가 출가한 궁극의 목적이 여기에 있지 않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더 이상 그곳에 머물지 않고 다시 길을 떠났다. 세상에서라면 불완전한 스승도 용납될 수 있지만 진리의 세계에 있어서는 용납될 수가 없다. 그래서 그는 보다 완전한 스승을 찾아 여기저기 헤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싯달타의 지나친 욕심이었다. 이 세상에서 완전무결한 스승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뒤늦게야 알게 되었다. 어디를 찾아가 보아도 그럴 만한 스승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무렵 인도에서 제일가는 수행자로 아라라와 웃다카 두 선인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싯다르타는 외로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것은 더 이상 의지하고 배울 스승이 없다는 허전함이었다.
‘ 이제는 내 자신이 스승이 될 수밖에 없구나. 그렇다, 나 혼자 힘으로 깨달아야만 한다.' 싯달타는 지금까지 밖으로만 스승을 찾아 헤매던 일이 오히려 어리석게 생각되었다. 가장 가까운데 스승을 두고 먼 곳에만 찾아 헤맨 것이다. 이제는 내 자신밖에 의지할 데가 없다고 생각을 돌이키자 자기 자신의 존재 의미가 새로워졌다.
싯달타는 우선 머물러 도를 닦을 곳을 찾아야 했다. 마가다나라의 가야라는 곳에서 멀지 않은 우루빈다 촌의 숲이 마음에 들었다. 아름다운 숲이 우거진 이 동산 기슭에는 이련선하의 강이 잔잔히 흐르고 있었다. 태자 싯달타는 이곳을 수도장으로 정했다.
7.
“뭐라? 우리 태자가 그리 결심을 했단 말인가! 이런 안 되겠다. 태자가 내게 어떤 왕자 인데, 아무래도 지켜 줄 사람들을 보내야겠다. 게 아무도 없느냐! 우리 왕족 중에서 세 명을 선출하고, 야수다라 측에서 둘을 선출하여 급히 보내도록 하라. ”
태자에게서 돌아온 마부 차익에게서 모든 일들을 소상하게 전해들은 정반왕은 급히 일을 서둘렀다. 그렇게 해서 선출 된 교진여 등의 오 명을 왕명에 의해 출가를 시키며 태자를 잘 보살피는 속에서 함께 수행할 것을 명령했다.
이리 하여 태자의 곁으로 합류하게 된 교진여 등 다섯 사람으로 인해 태자는 더욱 더 자신감을 갖고 수도에 정진하게 되었다.
태자는 남쪽의 이련선하를 건너 우루빈다 촌에 있는 고행림으로 찾아 들어가 수행의 자리를 정했다. 태자만의 새로운 방법에 의한 고행의 시작이었고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어서 다른 고행자들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것이었다.
태자가 고행의 방법으로 제일 먼저 실천한 것은 식사량을 줄이는 것이었다. 하루에 깨 한 톨과 쌀 한 알만을 식량으로 삼으며 바르고 참된 도를 닦기 위해 심신을 깨끗이 하고 모든 계율을 지켜갔다. 그런 속에서도 구걸하는 사람을 만나면 자신의 식량을 내주어 보시했다.
그러나 태자는 분명한 사람이었다.
고행의 날이 감에 따라 몸이 극도로 쇠약해지기 시작했고 뼈와 살가죽만 남은 모습에, 배와 등은 서로 달라붙는 지경이었다. 그런가 하면 목욕 한 번 안 한 몸은 심한 악취와 함께 파리들이 달려드는가 하면 박혀 있는 힘이 없어진 팔다리의 털들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러고도 해탈에 이르지 못하자 이제는 아예 하루 한 톨의 식량도 끊어 버리고 단식으로 들어가는 태자였다. 위광에 빛나던 태자의 몸은 검게 변하기 시작했고, 눈은 해골처럼 움푹 들어간 모습에 등뼈마저 굽어 혼자서는 일어서지도 못한 채 네 발 짐승처럼 기어야만 했다. 또 어떨 때는 고행을 이겨내지 못한 심신으로 인해 실신의 상태에 이르면, 보다 못한 사람들이 물방울이라도 목으로 넘겨주려 했지만 이 마저도 거부하는 태자였다. 태자의 이러한 고행의 실천은 삽시간에 모든 수행자들에게로 소문이 퍼져갔다. 자연, 모든 고행자들이 태자의 수행을 최고의 모범으로 받아들이며 존경하고 따랐다. 그런가 하면, 태자의 잠자리 주변에는 온통 짐승들의 뼈로 가득했다. 태자가 그것들로 잠자리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수행자들에게는 존경의 대상이었던 태자의 독보적 고행 수도의 모습이었지만, 출가자들이 아닌 세속의 사람들에게는 미친 사람처럼만 보이는 것이었다. 그런 태자에게 어느 날은 목동들이 지나가며 침을 뱉기도 하고 오줌을 갈기고 가기도 했다. 그러나 태자의 마음은 요지부동인 채 수행을 계속해 갔고 끝내는 극심한 영양상태로 인해 빈사 상태에 이르고 있었다.
바로 그 무렵이었다.
이련선하의 민촌에서는 민요 하나가 불려지고 있었다.
거문고 줄이 세어지면 끊어지고
줄이 늘어지면 소리가 울리지 않으며
완급을 고르게 박자를 맞춰야 어깨춤이 절로 추어 진다
는 노래였다.
빈사 상태에 이르러 있던 태자에게 들리는 민요의 가사는 그야말로 하늘이 들려주는 노래였고 인도였다. 그것은 고행자들이 닦고 있는 극도의 수행이나 수정주의자들이 생각하는 세속의 쾌락은 대도를 성취하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태자로 하여금 확실하게 깨닫도록 해 주는 울림이었던 것이다. 태자는 마침내 고행림에서의 6년 고행을 스스로 버려야만 했다. 그리고는 죽을힘을 다해 다시 이련선하로 내려와 강물에 목욕을 하고는 가죽과 뼈만 남은 몸으로 강 언덕의 넓은 반석 위에 허리를 펴고 앉았다. 그러나 태자의 상태는 실눈조차 뜨지 못할 만큼 전보다 더한 빈사 상태였다. 우루빈다 촌의 목장의 딸인 선생이란 촌녀가 태자 앞을 지나게 된 것은 이 때였다. 선생이란 처녀는 아비의 목장에서 목신 앞에 바칠 우유 젖을 가지고 가던 중이었다. 그런 선생이 지나던 길에 빈사 상태에서 헤매고 있던 태자를 발견하고는 급히 달려 왔다. 그리고는 태자를 안아 자신의 무릎 위로 몸을 누이고 말을 걸었지만 태자에게는 이미 산 사람으로서의 정신이 없었다. 다급한 김에 그녀는 목신에게 바칠 성스러운 우유죽을 죽어 가는 태자의 목에 천천히 축였다. 그러기를 한 시각, 가는 신음을 내며 태자의 정신이 돌아 오더니 가늘게 눈을 떴다. 그러자 자신의 일인 양 기뻐하며 선생이 말했다.
“성자시여! 그런 몸으로 어찌 도에 이르나이까. 살아야 도도 있는 것일 진데, 제발 저희 집으로 가시어 다만 기운이라도 차리시고 다시 정진 하소서”
선생 처녀의 간곡한 청이었다. 태자는 전에 들은 민요의 가사를 떠올려 보았다.
거문고 줄이 세면 끊어진다는 가사가 꼭 지금의 자신의 몸을 비유한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래 아무 말 없이 선생이란 처녀의 부축을 받으며 그녀의 목장이 있는 집으로 따라 갔다.
그러나 이런 사정도 모르는 교진여 등 다섯 사람은 오해를 하여, 태자가 이제는 수행을 포기하고 목장 집의 딸과 눈이 맞아 타락했다 하며 크게 비웃고는 자신들의 수행만이라도 지키기 위해 태자를 버리고, 베나레스성이 있는 녹야원으로 옮겨 고행을 계속했다.
그리고 며칠 뒤, 선생 처녀의 집에서 몸을 보양하여 기운을 차려 돌아온 태자는 교진여 등 다섯 사람이 자신을 버리고 떠난 줄도 모르는 체 가야산으로 들어가 필발라수 아래에 길상초를 펴 깔아 놓은 뒤 금강보좌에 가부좌를 맺고 앉아, ‘이 자리에서 대도를 이루기 전에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겠다’며 비장한 각오를 했다.
8.
“아니, 저럴 수가?”
벌써 일주일 째 모든 생리활동을 멈춰 놓고, 필발라수 아래에 가부좌를 틀고 있는 태자의 몸에서는 연화 색 색체가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몸의 주변으로는 색으로 말할 수 없는 광채가 온몸을 감싸듯하고 있었다. 어디 그 뿐인가. 필발라수의 나뭇잎은 물론 주변의 다른 나뭇잎들까지도 마치 사람의 생명처럼 기쁜 빛이 역력했다. 이 모든 것을 본 민호는 감격스런 가슴을 달래며 합장을 하며 ‘부처님!’ 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태자가 일주일 간의 깊은 사색에서 깨어 눈을 뜬 것은 바로 이 때였다.
“아! 내가 알지 못하는 미래의 분이시구려.”
민호로서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벌써 25년이란 세월 동안 태자의 그림자처럼 따라다녔어도 알지 못했던 태자가 지금 민호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래 민호는 다시 합장을 하며 예를 갖추고는 말했다.
“부처님! 지난 칠일 동안을 사색만 하셨습니다.”
민호의 말에 태자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미래의 분께서 오신 세상에선 그리 부르는가 보오. 그대 말씀처럼 난 여행을 했소. 아득한 옛날로의 여행과, 아득한 미래로의 여행과, 사람의 행, 불행을 결정짓는 모든 원인과 그 해결책을 다 알고 돌아 왔다오.”
“부처님께서 여행하신 그 과거가 어디까지며, 그 미래 또한 어디까지 입니까.”
“아무리 지혜가 뛰어난 미래의 분이라 한들 어찌 알겠소. 무량무변 백 천만 억 나유타 겁(無量無邊百千萬億那由佗劫)의 과거요, 오백진점겁의 과거요. 아 멸후 후의 오백 세의 미래였소. 상상이 되오?”
“너무 어려워 모르겠습니다. 겁은 어느 정도인지, 후(後)의 오백세(五百歲)는 무엇인지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잘못은 아니오. 비유하자면 1 겁이라 함은, 사방 천 리의 돌산이 있다오. 삼천 년에 한 번 씩 지상으로 내려오는 하늘의 여인이 있어 엷은 옷자락을 바람에 날리며 바위산을 스치고 가는데, 그리 삼천 년에 한번씩 바위산을 스치어 산 하나가 다 닳아 없어지는 세월이오. 쉽게는 그러하나 일, 시로는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이라오. 후 후 오백세의 미래라 함은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하던 내 육신이 흙에 묻히고 난 뒤 오백 년씩 다섯 차례를 지나간 미래였소.”
“부처님의 비유에 이제 조금은 상상이 갑니다. 그러나 아직도 알고자 하는 것만 가득합니다.”
“무엇이 그리도 궁금하오. ”
부처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웃었다.
“그리 아득한 과거라면 이 세상이 온 때와 이치가 맞지 않음이 첫째 의문이오며, 후 후 오백세까지의 미래가 의문입니다.”
“당연하겠으나 그게 어찌 의문이 될 것이오. 우리가 생명으로 오고 감을 어찌 이 우주에만 한정하오.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라)는 대우주요. 그 속에서 우리는 나고 죽으며 이 세상까지 오게 된 것이오. 다만, 미래를 봄에 무종의 세월까지는 내가 오고 가는 이유가 아닌 듯 멸후, 후의 오백세까지로 멈추었소. 그러나 미래의 분들은 실로 대단하신 분들이오. 그 분들의 지혜는 나조차도 상상이 가지 못하오.”
“궁금합니다. 부처님! 미래의 사람들은 어떠한 지요. 그들에게는 행복한 세상인지요. 불행한 세상인지요.”
“내가 죽은 멸후 최고의 가르침을 놓고 서로 옳다 싸울 것이오. 그러나 아 멸도 후, 후의 오백세에 이르러 나의 가르침은 힘이 없어지며 행복으로 안내하지 못하오. 나의 가르침의 효력은 시와 때를 다 하기 때문이오. 그러나 사실을 아는 자들조차도 바르게 안내하지 않을 세상이오.”
“부처님의 말씀이 사실이라면 미래의 사람들은 어찌 길을 찾는 지요. 지혜롭기가 부처님께서도 상상이 가지 않는다 하셨으나 그 지혜만으로 행복의 길을 찾겠는 지요.”
“다, 복이오. 오백진점겁의 아득한 옛날에 내가 수행하여 부처될 수 있었던 그 가르침을 처음엔 일인이 따르겠지만, 시와 때에 맞는 정법의 증거로 일염부제(一閻浮堤) 온 세상에 유포될 것이오.”
“그 법이 무엇인 지요. 실로 궁금합니다.”
“나는 그 법의 주인이 아니기에 말 할 수가 없소. 아 멸도 후, 후의 오백세 중에 주인이 와 가르쳐 주실 것이오.”
“실로 모를 일입니다. 그렇다면 부처님께서 보신 현재는 어떤 것이었는지요.”
“현재는, 그리고 천 년은 더 나의 가르침으로 세상에는 평화를, 사람에게는 행복의 길을 안내할 수 있는 시기요. 실로 많은 사람들이 따르게 될 것이오.”
말을 마친 부처는 눈을 지그시 감으며 사색의 세계로 다시 들어갔다.
9.
부처가 사색에서 나와 눈을 뜬 것은 반나절은 지난 시각이었다.
“부처님, 무슨 사색을 그리 깊이 하시는 지요.”
“나의 깨달음을 어찌 쓸 것인가에 대해 사색해 보았소.”
“길이 보이시던 지요.”
“그 길을 가야겠소.”
부처가 가부좌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곳을 떠나시는 것이옵니까?”
민호의 말에 미소를 남긴 부처가 걸음을 옮겼다. 민호보다 몇 걸음 정도를 앞서 걷고 있는 부처의 몸에서는 보통의 사람들에게서는 느낄 수가 없는 위광이 감싸고 있었다. 부처의 걸음이 옮겨지고 있는 방향은 에나레스성 밖에 있는 녹야원 쪽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모두들 저쪽을 보시게나.”
목장 집 딸인 선생 처녀와의 일을 오해하여 부처를 버리고 떠난 교진여와 그 일행이 녹야원 근처 숲에서의 고행을 잠시 멈추고 수군거렸다.
“태자 맞지? 뻔뻔하게 여긴 왼 일이야. 이미 여자 품에 빠져 타락한 사람인데 아는 체 할 일도 없잖나? 우리가 이 곳까지 와 이리 고생을 하는 것도 다 누구 때문인가 말야.”
교진여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를 했다. 그러나 부처가 이들 가까이 왔을 때는 전혀 상황이 달랐다. 부처는 그들이 아는 태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위엄이 높은 것은 물론 도광에 빛나는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저절로 허리가 조아려지는 것이었다. 그래 일행은 언제 약속을 했었냐는 듯 모두들 허리를 조아려 예를 표하고 있는 속에서 교진여가 한 발작을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그동안 혼자서 얼마나 고생을 하셨나이까? 너무도 큰 죄를 지은 까닭에 고개를 들 수가 없나이다. 부디 저희를 용서 하소서.”
교진여의 말에 부처가 일행을 둘러보며 미소를 보내고는 입을 열었다.
“그래, 너희들은 수행의 결과로 어떤 도를 이루었는가.”
부처의 말에 누구 하나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다면 내 말을 잘 들어라. 나는 인간에게 있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근본문제인 생로병사와 여기에 따르는 네 가지 괴로움과 여덟 가지 괴로움인 사고팔고(四苦八苦)에 대해 체득했다. 또한, 영원한 생명을 깨달았으며 생명의 인과율은 물론 사제의 진리와 삼천대천세계 대우주근원의 법칙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깨달은 부처가 되었다. 그러니 너희들은 마땅히 에로서 나를 따라야 할 것이니라. 알았느냐?”
예전과 달리 위광에 찬 부처의 말에 교진여 등이 합장하여 예를 갖추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에게 설법을 해주소서. 법은을 입은 뒤에는 잘 지키고 반드시 실천하겠나이다.”
교진여 일행은 자신들의 과오를 뉘우치고 진실로 법은을 구하고 있는 자세였다. 부처가 이에 부드러운 웃음을 보내며 말했다.
“나의 벗이여! 사람의 생에 있어서는 반드시 생. 노. 병. 사가 찾아오게 마련이며 그 누구도 피해갈 수는 없는 것이니라. 그러기에 마주칠 때가 되면 사람들은 불안과 공포에 떨게 되며 마음을 크게 동요하는 것이 정해진 것이니라. 어떤 종류의 사람이라도, 어떤 위치의 사람이라도, 타인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 늙어가는 것이며, 자기 자신이 병드는 것이며, 자기 자신이 죽는 것이다. 바로 그렇게 자신이 모면할 수 없는 생. 노. 병. 사에는 그림자처럼 틀림없이 따르는 사고팔고라 하여 사고에는 생고와 노고, 병고와 사고 등이 있으며, 이 사고에 애별리고와 원증회고, 구부득고와 오성음고(五盛陰苦)의 네 가지를 더해 팔고라고 하느니라.
이를 바꾸어 말하면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가지고 있는 매우 큰 괴로움을 말하는데, 애별리고(愛別離苦)라는 것은 죽음이나 갖가지의 상황으로 인해 육친이나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지 않으면 안 될 때 뼈를 깎는 듯한 아픔을 겪어야만 하는 가장 큰 고통을 말하는 것이니라. 두 번째는 원증회고(怨憎會苦)라는 괴로움으로서, 자신이 가장 미워하고 원망에 있는 사람을 만나거나 혹은 그런 사람과 함께 있거나 그런 사람과 함께 살아야만 하는 괴로움을 말하느니라. 그 세 번째가 구부득고(求不得苦)로서 아무리 구해도 구해지지 않는 괴로움이며, 아무리 많은 노력을 쏟았어도 그에 대한 과를 얻지 못해 괴로움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는 것을 말하느니라. 그 마지막이 오음성고(五陰盛苦)라 하여 인간의 심신을 형성하고 있는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의 오음으로서 이 오음은 인간의 온갖 번뇌를 일으키는 근원이며, 육체와 정신상의 괴로움을 총칭하는 것이니라. 다시 말하자면, 색. 수. 상. 행. 식의 오음은 번뇌를 일으키는 근원이며, 괴로움의 근원이 되는 오음성고라는 괴로움이 노. 병. 사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있고 그 속에 있는 것이니라. 사고팔고란 이러하나니 친애하는 나의 벗이여! 이 세상에는 지극히 즐거운 행복과 낙을 가지려는 사람도 있고, 조촐한 행을 닦아 천상락을 받으려고 금욕생활로 극단의 고행을 하는 수행자도 있느니라. 그러나 내 단언해 말하지만 이 두 가지의 극단의 수행 모두는 성자의 올바른 수행이 아니니라. 나는 그것을 체험에 의하여 이 양극단을 초월하였으며, 순세주의의 낙관생활이나 염세주의의 비관생활 모두를 물리치고 정도를 깨달은 것이니라. 그러니 너희들은 마땅히 내가 깨달은 바를 따라야 할 것이며 무지에 쌓여 불행에 우는 이 세상에 반드시 알려나가야만 할 것이니라. 알았느냐?”
시성정각(始成正覺)으로서의 부처가 처음으로 설한 초전법륜(初轉法輪)의 이 날, 부처에게서 전도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느끼고 있는 민호였다.
10.
부처와 민호는 다시 팔발라수 나무 아래로 돌아와 있었다.
부처가 맨 처음 법을 설했던 자리에 함께 있었고, 해탈 수계와 함께, 불보(佛寶), 법보(法寶), 승보(僧寶)의 삼보(三寶)가 구성되어지며 최초의 불교 교단이 세워지던 자리에 함께 한 교진여 등 다섯 제자는 자리에 없었다. 최고의 바라문 학자들과 왕과 왕족들을 상대로 전도를 떠났기 때문이었다. 얼마 뒤면 부처의 법은을 입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팔발라수 앞으로 모여들 것이었다. 그리 되면 민호와 부처와의 대화도 곤란을 겪게 된다. 그래 민호는 부처에게 합장하고는 구도를 하는 것이었다.
“또 묻고 싶은 게요. 이젠 절로 알겠소.”
민호가 입을 열지도 않았지만 부처가 먼저 알고 있었다. 자비로운 웃음을 띠고 있는 부처로 인해 더없이 편안해진 민호가 구도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지금, 열반의 도리를 어떻게 설해야 좋을까를 사색하고 있소. 내가 설하고자 하는 것은 오직 하나, 이 세상에 온 이유요. 그러나 지금의 세상 누가 알아듣겠소. 그에 대한 괴로움이 가장 크오. 내가 도달한 이 법은 깊으며 보기 어렵고 깨닫는 것 또한 어려우며 고요하고 숭고한 것이오. 이러한 가르침을 말로 전달해야 하는 어려움에 대해서도 나는 깊이 사색하오. 다음은 나의 법을 처음 듣게 될 이 세상 사람들의 기근이오. 내가 전하고자 하는 것을 세상 사람들이 전혀 못 알아들을 것도 문제지만, 지금의 최고 지성들의 생각으로도 전혀 미치지 못하는 것 또한 문제요. 자신이 최고의 것을 가지고 있고 또 그것을 안다고 하는 자들을 파절하지 못한다면 나의 깨달음은 그저 나 혼자만의 것으로 끝날 것이오. 한 때나마 나의 스승이었고, 이 세상 최고의 지성을 자부하던 알라라 칼라마와 웃타카 라마풋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오. 그러나 그들이 가르친 학문은 여전히 최고의 것으로 알려져 있고 배워 가는 학자들 또한 큰 무리를 이루고 있소. 나는 그들과 그들을 따르는 최고의 자들을 먼저 파절해 나의 가르침 안으로 들어서게 할 작정이오. 그래 최초의 것을 세상에 내놓는다는 건 이리 어려운 것이오. 이제 전도를 떠난 제자들이 사람들을 이끌고 이 곳에 모이게 되면 그 첫 걸음을 걷게 될 것이오. 나는 이미 그 법을 정해 놓았소.”
그 법이라는 것!
민호는 부처가 말하는 것이 미래세에서 말하는 화엄경(華嚴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처의 일생에 걸쳐 설하게 되는 모든 가르침의 경전 중에서 법화경(法華經) 다음의 경인 화엄경이 아니던가. 지금의 사람들 기근에야 당연히 아함경(阿含經)의 가르침이 맞지 않은가. 그런데 방등경(方等經)도 반야경(般若經)도 아닌 화엄경인 것이다. 그래 의문이 생긴 민호가 부처에게 물었다.
“부처님! 이제 곧 최고의 사람들이 모이게 되면 설하시게 될 그 법을 사람들이 알아듣겠나이까.”
민호의 말에 부처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모두들 크게 당황할 것이오. 그들로서는 당연히 상상도 못했던 깨달음의 가르침이 될 것이며, 그들이 최고라고 믿으며 확신해왔던 지식들을 비롯한 학문의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무릎을 꿇게 될 것이오. 그들은 겨우 아주 부분적인 것에서만 나의 가르침을 알아듣겠지만 결국에는 만심과 오만함에서 스스로의 작고 초라함을 알고 내 가르침 안으로 귀의할 것이오.”
부처의 목적은 파절에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파절시킨 그 위에 불종의 씨를 심으려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민호도 부처의 설법 순서와 관련한 의문 하나를 풀어내고 있었다.
11.
부처는 팔발라수 아래서 이십 일일 간에 걸친 화엄경의 설법을 해나갔다.
이 때에 베나레스 성내에는 장자의 아들인 야사라는 청년이 있었는데, 5백 명의 제자들을 거느리고 있던 그가 부처 앞에 무릎을 꿇으며 교화를 청했다. 그 뒤를 이어 나제가섭이 그의 형인 마하가섭의 절복에 의해 3백 명의 제자와 함께 귀의했으며, 나제가섭의 동생인 가야가섭 또한 제자 2백 명과 함께 귀의를 했으니 처음 설법을 하였던 일주일 사이에 부처의 제자 수는 무려 일천을 헤아리게 되었다.
그 일 이후, 가섭 등 세 형제의 가르침을 최고로 여기며 외호해 주고 있던 왕사성의 성주인 빈바사라 왕이 부처를 찾아뵙게 되었다. 그리고는 부처의 법문에 감복되어 무릎을 꿇고 구도하며 왕궁으로의 초대와 함께 공양의 기회를 간청하는 것이었다.
빈바사라 왕의 간절한 소망이었다. 부처는 그런 왕의 마음을 고맙게 여기며 청을 수락했다.
“왕이시여, 감사하고 감사하오. 내 그 뜻을 기쁘게 받아들여 꼭 그리 하겠소.”
부처는 빈바사라 왕의 마음을 고맙게 여기며 청을 수락했다. 그리고는 왕의 손을 따듯하게 감싸 쥐며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약속된 날이 되었다.
부처는 교진여 등의 제자들을 데리고 빈바사라 왕의 궁전으로 향했다. 왕은 성에서 십 리 앞까지 나와 부처를 마중했다. 소문을 듣고 부처가 지나는 길가에 섰던 빈바사라 왕의 백성들도 모두가 합장을 하며 부처를 진심으로 환영했다. 부처가 들어선 궁 안에는 빈바사라 왕이 여러 날 동안이나 정성을 다 해 준비한 설법의 자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이윽고, 부처가 자리에 앉았다. 뒤를 따라 교진여 등이 좌우로 자리를 했고, 그 앞으로 빈바라사 왕과 모든 신하들과 설법을 들어 법은을 입기 위해 입궁한 백성들이 가득 자리를 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 데 모였지만 구도심으로 불타는 궁내에서는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만큼 고요가 흐르고 있었다.
“부처님께 약속한 대로 공양을 올리겠나이다.”
빈바라라 왕이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을 하며 말했다.
“이 나라에서 가장 훌륭한 숲인 죽림원을 감사의 마음으로 공양하나이다. 부디 받아주시옵고 저와 백성들에게 법은의 기회를 주소서!”
빈바라사 왕의 공양이 있자 대중과 함께 있던 최고의 장자 가란타가 일어나 공양을 했다.
“저는 죽림원에 부처님께서 가르침을 펼 수 있는 집을 지어 공양하겠나이다.”
장자인 가란타는 60 채의 집을 지어 공양할 것을 부처 앞에서 약속했다.
이들의 공양을 받은 부처가 자비의 웃음을 띠며 입을 열었다.
“이 나라의 왕과 장자께 깊이 감사드리오. 왕께서 공양해 주신 숲은 더없이 큰 공양이오. 나 역시 전생에는 비둘기였고 사슴이었고 원숭이였으며 나무의 신이었던 때도 있었소.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과거에는 숲의 은혜를 입으며 살았던 적이 있었던 것이오. 숲은 그만큼 소중한 곳인데 죽림원을 공양해 주니 기쁨을 말로 표현할 길이 없소. 장자의 공양 또한 대단한 것이오. 나를 비롯해 모든 수행자들은 동굴과 묘지를 찾아다니며 수행을 했었는데,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들을 생각하면 너무도 큰 장애였으나, 이제 장자의 공양으로 바람을 막아주고 비를 막아주고 한다면 그 얼마나 좋은 일이오. 나는 두 분의 공양을 받아 그 곳을 죽림정사라 칭하고 더욱 더 교화에 힘쓸 것이오. 감사하오. 감사하오.”
빈바라사 왕과 장자의 공양정신이 힘이 된 이 날의 설법으로 인해 궁 안에 밀집해 있던 사부대중 모두가 순수하게 교화되고 있었다.
그리고 후세에 있어 팔발라수 아래서의 최초 21일 간의 설법인 화엄의 가르침 이후 12년간에 걸친 부처의 행동과 제자들과의 문답 등을 엮어 경전으로 전해지고 있는 아함경 속의 세계에 민호는 부처와 함께 하고 있었다.
12.
십 여 년의 세월이 흐르고 있었지만 부처 가까이에는 늘 구도자들과 제자들이 몰려 민호가 대화를 해본 기억이 가물가물한 상태였다. 그러던 중에 오늘은 부처의 수년 간에 걸친 피로를 생각하여 주변으로부터 모두가 물러가고 조용한 때였다.
“어서 오시구려.”
민호를 본 부처가 미소를 띠웠다.
“안 그래도 보고 싶었소. 그러고 보니 단둘이 있었던 시간도 꽤 되었구려.”
“네, 부처님.”
합장하는 민호에게 다시 미소를 보내는 부처였다.
“오늘은 내가 미래세의 분에게 묻고자 하오.”
생각도 못했던 부처의 말에 민호가 당황하며 합장을 했다.
“불자의 최대 목표는 무엇이라 아오?”
“부처님, 깨달음에 이르고자 하는 길이 아니옵니까?”
“그렇담 그 깨달음의 경지란 어떤 것이라 아오?”
민호의 대답이 막히고 말았다. 그러자 부처가 다시 물으며 웃는다.
“미래를 예견하고 도술이라도 부릴 수 있도록 그런 신비로운 것을 깨닫는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으셨소?”
“....... .”
“그러나 아니오. 깨달음이란, 그런 신비로운 게 아니라 자신과 이 세상을 바로 보고 바르게 보며 바른 실천에 옮기는 지극히 사람다운 일이라오. 그 동안 보았지 않소. 바로 나 자신도 갈등을 느낄 때가 있었으며 병들어 누워 있었을 때도 있었잖소. 내 제자가 죽었을 때는 나 또한 슬퍼서 눈물을 흘렸소. 어디 그 뿐이겠소. 고향 땅 왕궁에 계시는 아버지와, 모습 한 번 기억할 틈도 없이 돌아가신 어머니와, 나를 길러주신 유모와, 두고 온 자식이 그리워 혼자 울었던 적도 수없이 많았소.”
“부처님!”
합장하는 민호는 부처의 인간적인 모습에 절로 눈물이 맺히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지난 십여 년 간을 가르침의 자리에 함께하는 동안에 보고 들었던 부처의 모습들이 영상으로 스쳐갔다.
밧카리라는 병든 비구가 있었다. 그는 왕사성에 있는 한 도공의 집에서 치료를 하고 있었는데 병세는 조금도 차도가 없어 회복할 기미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그 절망의 순간에서 밧카리는 마지막 소원을 기원했다. 부처님을 다시 뵙고 예배를 드렸으면 하는 것이었다. 병간호를 해오던 시자가 밧카리의 그러한 마음을 부처에게 전했고 부처는 기꺼이 도공의 집을 방문했다. 스승의 방문을 받은 바카리가 병상에서 몸을 일으키려 애썼다. 그러나 스승인 부처는 한사코 만류하면서 제자의 머리맡에 앉았다. 그런 스승 앞에서 바카리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부처님! 저는 더 이상 살아날 가망이 없습니다. 그래 마지막으로 부처님을 뵙고 발에 예배를 드리고자 하는 소원만을 기원했습니다.”
밧카리의 말에 부처는 제자의 손을 꼭 잡아주며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바카리여, 너는 어찌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나의 육신만을 보는 것이냐. 내 육신 또한 언젠가는 썩어 없어질 몸, 그러니 너는 이리 알도록 하라. 법을 보는 자는 나를 볼 것이니 나를 보려거든 법을 보아라.”
민호의 영상 속에는 그 일 이후의 또 하나 영상이 꼬리를 물며 다가왔다.
그 날은 부처가 석가 부족이 살고 있는 한 마을에 머물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시자인 아난다가 부처께 말했다.
“부처님! 깊이 생각해보니 우리가 선량한 친구들과 같이 있는 것은 가고 있는 길의 반 이상을 이르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드옵니다.”
아난다의 말에 부처가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 않느니라. 선우는 이 길의 전부니라. 그리 생각지 않느냐. 너희들은 나를 선우로 사귀었기 때문에 늙지 않으면 안 될 몸이면서 늙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있고, 죽지 않으면 안 될 몸이지만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지지 않았느냐. 그렇다면 착한 벗을 가지고 함께 있는 것은 이 길의 전부일 것이니라.”
그리고 또 얼마 후에는 부처가 왕사성 밖의 죽림정사에 있을 때의 일이었다. 마침 근처에는 지체 높은 바라문이 살고 있었는데, 그 집안의 젊은이 하나가 출가를 하여 부처의 제자가 되었다. 그러자 자기 집안의 수치라 여긴 집안사람들이 부처를 찾아와 노발대발하며 온갖 욕이란 욕은 다 퍼부었다. 그럼에도 부처는 조금의 미동도 않은 채 상대를 안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다 바라문의 욕설이 가라앉은 뒤에야 부처가 반문을 했다.
“그대 집에도 방문객이 찾아올 때가 있을 터, 그 때는 어찌 대접을 하오?”
부처의 말에 집안의 어른인 듯한 자가 나서며 대답을 했다.
“손님 앞에 나가서는 반기고 손님을 안으로 들여서는 좋은 음식으로 대접하오.”
“만약 그 손님이 음식을 들지 않으면 어찌 하오?”
“좋은 음식이니 버리는 일 없이 우리 집에서 다 먹으오.”
“그랬구려. 그런 당신은 내게 온갖 욕설을 다 퍼부었소. 그러나 나는 그 욕설을 하나도 받아먹지 않았소. 그러니 그 욕지거리는 당신 것이 아니오? 만약 내가 그대의 욕설에 대꾸라도 했다면 , 주인과 손님이 같은 음식을 먹었다 할 것이겠으나 내가 하나도 먹지를 않았으니 그대로 남아 있는 욕설을 그대가 다시 먹는 것이 응당 옳은 일이 아니겠소?”
그 날의 일로 인해 바라문 집안의 사람들은 깊이 참회하고 부처의 제자가 되었으니 민호의 기억에도 깊이 자리하고 있는 일이었다.
그런가 하면 공양의 일에 있어서도 그랬다.
어느 날엔가는 설법을 듣고 법은을 입은 사람들이 줄을 이으며 감사의 표시로, 부처가 머물고 있는 주변 가득히 연등불을 밝혀 공양을 했다.
왕사성의 왕은 물론 나라 안의 장자들과 신분이 높은 사람들의 온갖 화려한 등불들이 정사를 환히 밝혔고, 보통 백성들의 등불도 가득 걸리기 시작을 했다. 그러나 빈녀 중의 빈녀 난타라는 한 여인만은 집이 하도 가난하여 그 어떠한 것도 부처를 위해 공양할 길이 없었다. 그래 난타는 스스로를 한탄하여 생각하기를, 전생에 범한 죄가 너무도 커 이리 가난해야 하고, 천한 집안에 태어났으니 부처님을 뵙게 되었음에도 무엇 하나 공양할 것이 없다 하며 그러한 처지를 매우 슬퍼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마냥 슬퍼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 난타는 온종일을 돌아다니며 겨우 돈 한 푼을 얻게 되었고, 걸음을 급히 기름집으로 향했다. 기름이라도 사서 등불을 만들어 공양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 푼으로는 기름을 살 수가 없자 부처에게 보은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을 주인에게 고백하게 되었고 그에 탄복한 주인은 충분한 기름을 난타에게 주었다. 그 길로 돌아온 난타가 온 정성을 다해 등불을 만들어 공양하여 밝히니 다음 날 새벽녘에는 일체 모든 등불이 다 꺼져 있었으나 가장 초라한 등불이었던 난타의 등불만이 그 불을 환히 밝히고 있었다. 그래 민호가 까닭을 물으니 부처가 웃으며 대답을 해주었다.
“그래, 후세의 사람들은 이 일을 가지고 어찌 이해를 하오?”
“장아함경 속 현우경(賢愚經)의 빈녀난타품(貧女難陀品)에 나오는 빈녀(貧女)의 공양이라 합니다 부처님.”
“그랬구려. 그러면 빈자일등(貧者一燈)이란 말은 이해가 되오?”
“부자의 만등보다 가난한 자의 한 등이 낫다는 것으로만 이해를 할 뿐 깊은 뜻은 모르나이다.”
“실은 이리 된 일이오. 나의 설법을 들은 자들 중에서 실로 수많은 사람들이 보시와 공양을 해왔소. 게 중에는 왕도 있었고, 장자도 있었고, 귀족도 있었으며 빈녀와 같은 여인도 있었소. 당연히 공양의 크기에도 천차만별이 있었겠으나 나는 한 번도 빈부의 차이 등을 둔 적이 없었소.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얼마나 진실된 마음으로 정성을 다했는가라는 것이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법은에 있어 차별이 생기게 되니 얼마나 우스운 일이겠소. 그렇다면 이 세상 그 누가 내 가르침을 진실하고 진실하다 여기어 수지할 것인가 말이오. 또 하나는, 삼륜청정(三輪淸淨)이라는 것이오. 보시하는 사람(施者)과, 보시하는 물건(施物)과, 보시를 받는 사람(受者)의 셋 모두가 청정해야 한다는 것이오.”
부처의 말을 듣고 있는 민호는, 댓가를 바라고 있는 유쥬상보시와는 정 반대 되는 무주상보시에 대해 부처가 말하고 있다는 것을 깊이 느끼고 있었다. 그래 합장을 하며 민호가 말했다.
“명심 하겠나이다 부처님. 언제나 자비심을 가지고 아무런 조건 없이 베풀도록 노력을 하겠나이다.”
민호의 말에 부처가 기쁨의 미소를 띠우고 있었다.
후세의 사람들이 아함경, 또는 아함시라 부르고 있는 이 12년의 가르침은 바로 부처의 진지한 대화 모습과 특별한 신적인 존재로서가 아닌 가장 인간적인 모습으로서의 실천행동의 세월이었던 것이다.
13.
부처가 12 년간에 걸쳐, 후세의 사람들이 말하는 아함경의 가르침을 펴는 동안, 부처가 태어나고 자랐던 고향인 가비나위성에 있는 정반왕은 한시도 잊은 적 없는 자신의 아들이, 소국인 왕사성의 빈바사라 왕의 귀의에 의해 죽림정사를 짓고, 그곳에서 가르침을 펴나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신하를 보내 아들 붓다의 귀성을 간절히 청하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뒤, 출가 전의 아버지였던 부왕과의 재회를 위해 붓다의 행렬이 가비나위성으로 도착하고 있었다. 백 여 명의 제자들이 뒤를 따르고 있는 행렬이었다. 이 벅찬 감격에 부왕은 말할 것도 없었지만 왕궁의 사람들은 물론 온 백성들이 생에 최고의 축제분위기로 휩싸이고 있었다.
“아버님, 옥체만안 하셨습니까? 소자, 입산수도하여 득도하였습니다.”
성문 밖에까지 나와 마중하고 있는 정반왕 앞에 부처는 정중하게 인사를 하며 말했다.
“장하도다, 나의 위대한 아들이여! 지난 날 아사다 선인의 예언대로 내 자식이 출가를 한 후, 오직 그리움과 시름으로 세월을 보냈으나, 당당하게 일체중생을 구제하는 부처가 되었으니 지금은 크게 위로가 되는도다. 내 오늘을 위해 이미 궁에다 설법의 자리를 준비했으니 깨달은 바를 나와 궁중의 모든 사람들과 백성들이 함께 듣는 영광을 기대하노라.”
정반왕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부처 일행을 궁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이 날의 설법에 부왕과 궁중의 모든 사람들은 크게 감동하였고, 부처의 아들인 라후라는 열한 살의 나이로 출가를 했다.
14.
20 여년의 세월이 다시 흐르고 있었다. 부처가 팔발라수 아래서 자신이 이 세상에 온 이유를 깨달은 이후, 처음 21일간에 걸쳐 화엄경의 가르침을 펼치며 이 땅에 먼저 있던 최고학문이나 철학의 대학자들과 빈바사나 왕, 교진여 등과 가비라윗성의 부왕을 비롯한 아들까지도 절복하여 자신의 깨달음 속으로 귀의시키고부터 28년의 세월이었다. 가비나위 성을 처음 떠나 수행의 길로 출발했던 것이 19세의 나이였으니 6년의 고행을 더한데다 28년이면 부처도 이제는 쉰을 넘긴 나이였다. 그럼에도 삼십이상 팔십종호를 다 갖춘 부처에게서는 세월이 갈수록 그 위광이 더해가고 있었다.
“미래의 분이시여! 오늘은 어째 말이 없구려.”
평온한 숲 속에 앉아 명상에 잠겨 있던 부처가 민호를 바라보며 웃었다.
“모든 것이 평화롭기만 합니다. 부처님...... .”
가부좌로 앉기가 불편했던 민호는 자신에게 편한 자세로 앉으며 대답했다.
“오직 자연만이 그러하오. 그 품에 있으니 미래의 분도 그리 되어 가는가 보오.”
“부처님!”
“말씀 하시오. 왜 아니 묻나 그랬소.”
“후세의 사람들은 부처님께서 처음 21일 간 가르치신 말씀들을 모아 화엄경이라 부릅니다.”
“그렇다 들었소.”
“사실 그 가르침은 아직도 시에 맞지 않아 설할 수가 없었던 법이 아니옵니까.”
“그렇소. 실은, 20년은 더 지나야 그 때의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것이었소.”
“그럼에도 최초에 설하신 것은, 앞전에 존재하고 있는 그 어떠한 학문이나 깨달음의 철학보다도 우수해야만 부처님의 가르침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까닭과, 현재의 자신들이 최고라고 하는 모든 지도층들을 절복시켜야만 하는 까닭이라 제게 가르쳐 주셨지요.”
“그렇소. 방편이었소.”
“하나, 부처님께서도 목숨에는 한이 있는 것 아니겠나이까.”
“미래의 분께서는 아마, 방편으로 설하는 시기들이 너무 길어 답답하신가 보오.”
“부처님...... .”
“물론 목숨에는 누구에게나 한이 있는 것이오. 당연히 나라 해서 예외는 없소. 그러나 자세히 보면, 이 세상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의 역할이 남았는데 그 목숨이 다하는 것은 없소. 사명이 있는 만큼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사는 것이오. 사람의 생명이란 것, 실로 소우주요. 그러면서도 스스로 알지 못하오. 다, 미혹에 의한 때문이오. 그 미혹과 기근의 껍질을 벗겨 가는데 이리도 세월이 걸리오. 땅 속 깊은 어디에 팔열지옥이 있다 그리 가르치겠소. 물 속에 사는 고기들이 먼저 가보고 거짓이라 할 것이오. 하늘 어디에 불국이 있다 그리 가르치겠소. 하늘을 나는 새가 먼저 가보고 거짓이라 비웃을 것이오. 그러나 사람들은 아직도 먼 세월 동안을 그리 밖에는 알아듣지 못할 것이오. 그래 모든 방편으로서 나는 그들을 내가 원하는 곳으로 유도해 가는 것이오.”
“부처님!”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사람만을 생각하는 부처의 자비심 앞에 민호는 합장을 하며 머리를 숙였다. 그런 민호에게 웃음을 보내며 부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설하게 될 것에 대해 아시오?”
“후세의 사람들은 그 가르침을 반야경(般若經)이라 하옵니다. 22년간이란 아주 오랜 세월동안 설하셨습니다. 부처님!”
“그럴 것이오. 하나, 후세의 사람들이 말하는 그 반야의 가르침 속에도 오직 한 가지만큼은 이 세상 사람들에게 가르칠 수가 없는 것이오.”
“부처님의 십대 제자 분들에게도 아니 되는 것이옵니까?”
“오직 한 사람뿐이오.”
부처의 말에 민호는 십대 제자들 중 그 경을 받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를 그려보았다.
지혜 제일인 사리불의 모습과, 마가다국의 왕사성에 있었던 장자의 아들로 두타제일의 마하가섭과, 곡반왕의 아들이었으며 부처의 사촌동생이었던 다문제일의 아난타와, 사위국의 바라문 지도자의 아들인 해공제일의 수보리와, 역시 바라문의 아들로 태어나 부처의 제자가 되었고 설법제일로 9만 9천 명을 절복한 브루나와, 신통제일이었던 목련과, 부처의 가르침으로 모든 외도의 가르침을 파절함으로서 논파제일이었던 가전연과, 가비라위성 왕의 아들이며 부처의 사촌동생으로, 부처 앞에 앉아 졸다가 꾸지람을 듣고 불면의 맹세를 한 후 맹인이 되었으나 용맹정진에 의해 천안을 얻어 삼천세계를 보기에 이르렀고 부처로부터 보명여래의 기별을 받게 되는 아나율과, 석가족을 섬기고 있던 노예 계급의 출신으로 지율제일이었던 우바리와, 부처의 친아들로서 15세 때 출가를 하여 사리불을 따라 아라한과를 득했고, 계를 훌륭하게 지키며 수행을 인정받아 도칠보화여래의 기별을 받게 되는 밀행제일의 라후라 등 열 제자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상상을 해보아도 부처의 가르침을 혼자 받아가질 제자가 누구인 지는 감조차 잡히지를 않는 민호였다. 그런 것을 눈치라도 챘는지 부처가 입을 열었다.
“늘, 끝이 없구려.”
“네, 부처님!”
도둑질이라도 하다 들킨 것처럼 놀란 민호가 얼른 합장을 해 보이며 웃었다.
“내 너무 힘들게 했나 보오. 내, 반야의 가르침 중 오직 그 한 가지만은 지혜제일인 사리불에게만 전해 줄 것이오. 사람들이 다 모르고 나머지 제자들이 다 모를 것이나 사리불만이 그 가르침을 알아들을 것이기 때문이오.”
“그리 중요한 가르침이옵니까 부처님!”
“그 때 사람들의 기근이나 경애와, 시와 때에 있어는 그러나 그 역시 방편일 뿐이오. 그러나 후세의 사람들이 아는 반야의 모든 가르침 중에서는 가장 심장에 있는 가르침이오.”
부처의 말을 들으며 민호는 그 중요한 가르침이 260 자로 전해지는 반야심경(般若心經)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확인해 구도하지는 않았다. 부처가 인정했듯이 어차피 반야, 화엄 모두가 임시의 거짓 가르침으로 사람을 유도하는 방편이라면 화엄심경이면 어떻고 아함심경이면 어떠며, 방등심경이면 어떻고 반야심경이면 어떻다는 건가 하는 마음에서였다.
15.
한 마리 새가 평화롭게 날고 있는 청명한 하늘이었다.
왕궁의 태자로 온갖 부귀영화 다 가지고 태어났으면서도 모든 것 비운 채 스스로의 고행 길을 택했고, 사람이 가장 행복할 수 있는 가장 사람다운 길을 안내하고자 뜻을 세웠던 19세의 한 사내가 거역할 수 없는 세월 앞에 이제는, 70의 나이를 훌쩍 넘은 모습으로 서있었다. 그 머리 위로 백 연화를 닮은 구름 몇 점이 한가롭게 걸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부처는 어딘지 모르게 외로운 모습으로 서있었다. 어쩌면 민호만의 느낌이겠지만 고독해보이기까지 하는 부처였다. 그런 부처를 바라보던 민호에게서 두 줄기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그것은 인간으로 온 한 사람으로서 사람들을 위해 언제나 최선을 다해 온 위대한 거인에 대한 감동이었고, 곁에서 바라만 보는 것만으로도 더는 감당할 수 없는 행복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도래해 있는 때와 시 속에 자신이 부처와 함께 하고 있다는 최고 영광의 감동들이 온몸을 돌며 폭발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 흐르고 넘쳐나는 눈물로 가슴을 적시며 부처와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수도 없이 합장하며 고개를 숙이는 민호였다.
이제 비로소, 지난 50 여 년 간의 기나긴 방편의 가르침에서 진실로 가르치고자 했던 법화(法華)의 문으로 들어서고 있는 부처였다. 이 세상 그 누가 있어 이 길을 걸어올 수 있다는 말인가.
이 가슴 벅찬 감동 앞에서만은 실컷 울어도 좋았다. 행복해 울다가 두 줄기 물줄기에 뺨이 다 닳고 눈두덩이 다 닳아 두 알 안구만이 남는 모습이래도 좋았다. 아니다. 가슴까지 다 닳고 뼈만이 허공에 남는다 해도 좋았다.
16
부처로부터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법은을 입고자 하는 수많은 중생들이 왕사성의 동북쪽으로 걸음을 향하고 있었다. 독수리가 많이 산다고 하여 영추산이란 이름이 붙여진 곳이었다. 그러나 영추산은 이름과 달리 영산이었다. 나무들도 구름도, 독수리들도 바람도, 마치 자신들도 구도하고자 하는 중생인 양 모든 움직임을 멈춘 채 평온하기만 한 분위기를 만들어 놓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부처가 있는 앞으로 모든 사람들이 눈귀와 마음을 기울이며 구도의 준비를 하였고, 그 속에는 미륵보살과 문수사리보살, 대장엄보살의 모습도 보였다.
이윽고 때가 되자 영추산에 모여 있는 비구중들을 대표하여 대장엄보살이 계로서 부처를 찬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찬탄하던 계 속에는 후세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34의 비로서
/그 몸은 유(有)도 아니고 무(無)도 아니며/인(因)도 아니고 연(緣)도 아니고 자타(自他)도 아니며/방(方)도 아니고 원(圓)도 아니고 단장(短長)도 아니며/출(出)도 아니고 몰(沒)도 아니고 생멸(生滅)도 아니며/조(造)도 아니고 기(起)도 아니고 위작(僞作)도 아니며/좌(坐)도 아니고 와(臥)도 아니고 행주(行住)도 아니며/동(動)도 아니고 전(轉)도 아니고 한정(閒靜)도 아니며/진(進)도 아니고 퇴(退)도 아니고 안위(安危)도 아니며/시(是)도 아니고 비(非)도 아니고 득실(得失)도 아니며/피(彼)도 아니고 차(此)도 아니고 거래(去來)도 아니며/청(靑)도 아니고 황(黃)도 아니고 적백(赤白)도 아니며/홍(紅)도 아니고 자(紫) 종종의 색도 아니며/
라는 불신(佛身)에 대해서 거듭 찬탄을 했고, 부처는 대장엄보살 등에 대하여 무량의(無量義)를 설한 뒤, 40여년 미현진실(未顯眞實)을 고백하며 이제까지 설해온 모든 것은 다 거짓으로 가르친 방편이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법화경(法華經)을 수행하게 되면 불가사의한 열 가지 공덕이라 하여 십 공덕이 나온다는 것을 설했다.
그러고 나자 부처가 법화경을 설하게 되면 반드시 나타나게 되어 있다는 여섯 가지 서상인 육서가 나타나니, 의문을 일으킨 미륵보살이 대중을 대표하여 문수보살에게 질문을 했다. 그에 문수보살은 무량무변불가사의아승기겁이라 하는 과거세에 일월등명불의 설법 화도에 대해 말하며 현재와 똑같은 현상이 그 때도 있었음을 들려주고는 그 증거로 보아 지금의 부처 역시 반드시 법화경을 설할 것이 틀림없노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함께 들은 비구중들이 그 속뜻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을 알고는 부처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또한 나는 지금까지 모두의 각각에 따라 성문(聲聞), 연각(緣覺), 보살승(菩薩)승의 삼승(三乘)을 설해 왔었다. 하나 그것은 나의 진의가 아니었노라. 나의 진의는 삼승에 있었던 것이 결코 아니었으며 오직 일불승(一佛乘)에 있었느니라. 이는 모두가 부처로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생명의 내부에 갖추고 있음이며, 그것을 열어 나타내는 것이 나의 진의요 모두의 대 목적이 될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니라. 내 다시 제법(諸法)의 실상(實相)에 대하여 설하노니 여시상(如是相). 여시성(如是性). 여시체(如是體). 여시력(如是力). 여시작(如是作). 여시인(如是因). 여시연(如是緣). 여시과(如是果). 여시보(如是報). 여시본말구경등(如是本末究竟等) 하여 십여시(十如是)니, 이 세상 어느 생명에 있어 한 가지라도 빠트린 생명이 있으리오. 만약 그럴 수 있다면 모두가 허상에 지나지 않으리라. 그런가 하면 이 십여시야 말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인 제법의 실상이 아니겠느뇨. 그러므로 또한 이를 십여실상(十如實相)이라고 하느니, 더 깊은 의의는 나의 멸후에 밝혀 전해지리라. 또한 나의 제자 사리불이 제법실상의 묘리를 영혜하고 환희하니 내 미래세 성불(成佛)의 기별을 주노라. 그러나 나의 법설로 깨닫지 못하는 자들이여, 이제는 잘 새겨들으라. 타국의 어느 마을에 5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거느리고 사는 장자가 있어 그 재산과 집이 실로 대단하였느니라. 하나 그 집은 너무 오래 전에 지어졌던 것이니 어느 날 갑자기 화재가 나며 불에 타고 있었느니라. 때마침 장자의 자식들 30여 명이 불타는 집안에 남아 있었으니 아비인 장자가 어찌 놀라지 않았으리오. 그런 줄도 모르고 아이들은 장난만 치며 놀고 있었으니 그 아이들은 화재가 무섭다는 것도 모르기 때문에 놀라지도 않으며 두려워하지도 않았느니라. 애가 탄 아비는 빨리 나오라며 자식들에게 소리쳤지만 그 아이들은 아비를 쳐다보면서도 나올 줄을 몰랐느니라. 알지 못하는 화재에 대한 두려움보다 한눈을 팔며 자신들의 놀이에 열중하는 것이 더 좋았기 때문이니라. 그럴수록 불길은 점점 더 아이들을 향해 퍼져나갔으니 아비인 장자는 최후의 지혜로 방편을 써 소리쳤느니라.--나의 사랑하는 아이들아 빨리 나오너라. 아비가 너희들을 위해 아주 진귀한 노리개를 주려고 하느니라. 문밖에는 지금 양이 끄는 수레와 사슴이 끄는 수레와 소가 끄는 수레가 너희들을 위해 준비가 되었으니 빨리들 나와 가지고 놀려므나. 누구든지 먼저 밖으로 나오는 사람부터 원하는 것을 줄 것이니라.- 하니 장자의 자식들이 서로 좋아하는 것을 차지하고자 순식간에 앞 다투어 불길 속을 빠져나왔느니라. 그리고는 저마다 자기에게 좋은 것을 달라며 내미는 손에 장자는 과연 어찌했겠느냐. 장자가 아이들에게 준 것은 양거도 아니요 녹거도 아니요, 우거도 아닌, 대백우거라는 아주 훌륭한 수레를 모두에게 똑같이 주었으니 그 대백우거는 높고 넓었으며, 칠보로 장식되어 있었고, 사방에는 방울이 달렸으며, 우산 모양의 천개가 쳐져 있었으며 더구나, 대백우거를 끌고 있는 소는 털이 희었고, 털의 윤택은 깨끗하고 좋으며 아름다운 모습에 수레를 끌고 앞으로 달려가도 크게 흔들리지 않으며 빠르기는 바람과 같았으니, 아비인 장자에게서 대백우거를 받아 자유자재로 즐기며 행복했으니 어찌 그 대백우거를 백 대의 양거에 비하리오. 녹거에 비하리오. 우거에 비하리오. 그러나 안타깝도다. 나의 이 말을 모두에게 들려주었으나 사성 외에 또 누가 있어 알아듣겠느뇨. 그나마 더 깊은 의의는 또한 나의 멸후에 밝혀지리라."
후세의 사람들이 말하는 삼거화택(三車火宅)의 비유를 들어 설법을 들려준 부처는 일체의 사람들을 자비로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 때였다. 사람들과 함께 설법을 듣고 난 사대성문, 수보리. 가전연. 가섭. 목련 등 네 제자가 크게 환희하며 자신들이 이 자리에서 비유를 듣고 깨달은 요지를 하나의 비유를 들어 설명했다.
“아주 옛날, 어느 부잣집의 아들이 부모의 슬하를 떠나 여러 나라를 방황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50년의 세월이 흐르고, 가난에 시달린 아들은 음식이나 옷을 얻기 위해 사방으로 돌아다닙니다. 그 반면에 부친은 나라 안에서도 제일 부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무량의 재보를 가진 아버지는 50년 전에 집을 나간 자식을 생각하며 크게 걱정을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리고 그리워해도 집을 나간 아들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빈궁하기만 한 아들은 걸식을 하며 방황하던 끝에 자신의 나라까지 오게 되었고 아비가 사는 거대한 주택에까지 도착을 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마주쳤습니다. 그러나 자식은 너무도 훌륭한 아비의 모습에 친아비인지도 모르고 그만 두려워서 달아나 버립니다. 자식은 부모를 잊어도 부모는 자식을 기억한다지요. 아비는 이 불쌍한 걸인이 그토록 오랫동안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하며 애타게 찾았던 자식이라는 걸 알고는 겨우 불러들였지만 자식은 겁을 먹은 채 몸만 떨고 있었습니다. 너무 오랜 세월이었던 것입니다. 아비는 하는 수 없이 자식을 놓아주어야 했습니다. 그리고는 하인을 시켜 자식에게 청소부로 시키도록 명령했습니다. 그러고서야 자식은 안심하여 작은 오두막집에서 생활하면서 부잣집에서의 청소부 역할을 아주 부지런하게 열심히 하였습니다. 그러자 장자인 아비도 허름한 옷을 입고 자식의 곁으로 가서 말했습니다. --내 그동안 자네를 보아 왔지만 게으름 피우지 않고 정말 착실하게 일을 잘 하네. 그래 내 자네를 친자식으로 알고 소중히 여길 터이니 앞으로도 열심히 일을 잘해주게나.“ 그렇게 하여 대단한 신뢰를 얻게 된 자식은 주인인 장자를 위해 더욱 더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장자 밑에서 그렇게 일을 한지도 어느 새 20 년, 자식은 이제 두터운 신용을 얻어 장자의 재산가지도 관리를 해주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중요한 일을 맡겨도 자식은 언제나처럼 허름한 오두막에 살면서도 부정이라고는 조금도 저지르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장자는 그가 이미 아주 우수한 자신의 후계자로까지 성장한 것을 인정하고, 나라의 왕족들과 친척들과 사람들을 초청해놓고 -이 사람이야말로 나의 자식입니다. 그러하니 나는 전 재산을 물려줄 것입니다-라며 선언을 하였습니다. 그제서야 50년이나 떠돌며 거지생활을 했었던 자신이 진짜로 대부호의 아들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크게 기뻐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대성문이었던 수보리와 가전연, 가섭과 목련존자의 이야기가 끝나자 가장 크게 기뻐한 것은 역시 부처였다.
“맞도다. 맞도다. 자랑스러운 나의 제자여! 과연 그러하느니라. 이 또한 너희들은 알았으되 또 누가 깨달았겠느뇨. 그 깊은 의의 역시 나의 멸후에 때가 이르러 바르게 전해지리라. 그러나 나의 제자들로 인해 크게 기뻐하며 설하노니, 다른 사람들 또한 지혜의 문을 열기 바라노라.”
자비로운 부처의 음성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내 이미 가르침의 목적이 삼승의 법을 설하기 위함이 아니라 일불승의 법에 있다는 것을 각각의 예를 들어 설했으나, 사람에게는 각각의 기근에 따라 차이가 있음을 어찌 모르리오.
그래 각각의 기근 차이에 따라 삼승에 인계(人界)와 천계(天界)를 더해 오승으로 나누어 설했으나 나의 제자 가섭 등을 비롯 남은 사람들의 이해가 부족하느니 내 다시 설하노라. 세상에는 강과 산, 골짜기와 대지 위에 자라는 온갖 초목과 숲, 약초 등은 그 종류가 수도 없으며, 이름과 형태 또한 각각 다르니, 그 모든 것들 위에는 두터운 비구름이 가득 퍼져 일시에 비를 내리느니라. 그리고 골고루, 평등하게 내린다 알지니라.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의 대 소, 상. 중. 하에 따라 비를 받는 바가 각각 다르다는 것 또한 알리니라. 하지만, 하나의 구름이 내린 비에 의해 초목은 각각의 성질에 따라 자라는 것이며, 각각에 맞는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이니라. 나의 사랑하는 제자 가섭 등이여, 마땅히 알지니라. 여래 또한 동일한 것이니 이 세상에 출현하는 것은 커다란 구름과 같으며, 대음성을 가지고 널리 천, 인, 아수라에 미치게 함은 그 거대한 구름이 골고루 국토를 덮고 차별 없이 비를 내리는 것과 같은 것이니라. 이제야 가섭 등 일부가 다시 나의 말을 이해하여 환희할 것이나 더욱 깊은 의의는 나의 멸후에 때가 되어 알게 되리라. 그러나 우선하여 지금의 의의를 깨달아 환희한 나의 제자 사대성문과 가섭에까지 그리고 백의 제자들에게 당래작불의 기별을 주노라.
그리하며 지금부터 숙세의 인연을 나는 설하노니, 나와 이 자리에 있는 모두와의 인연은 어떤 것이뇨. 실로 아득한 나의 과거세 무량무변겁을 생각건대 불량족존이 있어 대통지승이라 일컬었으니 또한 사람이 있어 삼천대천의 토를 갈아 무량겁이니라. 하니 그 과거의 단위를 어찌 짐작이나 하리오. 믿기 어려우리라. 그러나 사실이며 우리의 인연은 무량무변의 장엄한 과거의 시였느니라. 그 때 그 시의 부처를 대통지승불이라 하였으니 그 부처가 죽은 후에 16명의 왕자가 법화경을 설하였느니라. 그 때 16의 왕자가 지금의 나였으니 나의 제자들이여, 그대들은 바로 그 때 과거세에 내가 화도했던 사람들이었느니라. 알아듣겠는가, 믿어지는가. 하나 과거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인연의 의를 더는 어찌 이해를 시키리오. 다만, 나의 멸후에 있어서만은 바르게 알리라. 그러나 지금의 때에 더 이상 어이 하리오. 나의 제자 부루나여, 내 너에게는 법명여래의 기별을 주노라. 또한, 나의 제자 교진여와 우루빈나가섭과 수리반특을 비롯한 오백의 제자들 모두에게는 보명여래의 기별을 주노라.”
부처로부터 수기를 받은 오백의 성문들은 크게 환희용약 하였다. 그리고는 비유로서 스승인 부처에게 답하였다.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 남자는 어느 날 친구의 집으로 놀러갔습니다. 친구는 술을 대접하며 오랜만에 만난 남자를 반겨주었습니다. 주거니 받거니 술잔을 기울이던 중에 남자는 술이 먼저 취해 잠이 들었고, 친구는 공무가 있어 급히 나가야만 했습니다. 하도 오랜만에 만난 친구여서 깨워 인사라도 하고 싶었지만, 남자는 너무 깊은 잠에 취해 있으니 친구는 어쩔 수 없이 남자의 옷 뒷면에 보주 하나를 꿰매주었습니다. 친구가 남자의 옷에 꿰매준 보주는 값으로도 따질 수 없는 아주 소중한 보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술에서 깨어나 친구의 집을 나온 남자는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른 채 여러 나라를 떠돌며 유랑하였고 일자리도 구하지 못한 채 의식을 얻기도 힘들 정도로 가난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수년의 세월이 흐르며 유랑을 계속하던 끝에 남자는 다시 친구의 집에 도착하여 재회를 하였습니다. 그 때 남자의 몰골은 말할 수 없이 비참함 그대로였습니다. 그런 모습을 본 친구가 너무도 놀라 ‘자네는 옷 뒤쪽에 보주가 있다는 걸 몰랐단 말인가’ 하며 물었습니다. 그제서야 자신에게 세상에서 제일가는 보주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남자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크게 뉘우치며 부끄러워했습니다. 그 뒤 남자는 그 최고의 보물로 인해 소원대로의 만족한 나날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비유의 이야기를 말한 오백 제자들은 자신들도 이 남자와 같이 어리석었다 하며 크게 부끄러워했고 부처 앞에서 진실로 참회를 하는 것이었다.
이에 부처는 크게 기뻐하며 그들의 깨달은 바를 칭찬하고 나서 아난과 나후라를 비롯해 학무학의 이천에게 수기를 밝히는 것이었다. 부처는 우선 , 제자인 아난에게 산해혜자재통왕불의 기별을, 나후라에게는 도칠보화불의 기회를 주었으며, 동류동성의 사람들인 학무학 이천인에게는 동일명호인 보상여래의 기별을 주었다. 그리고는 부처의 멸후에 법화경을 홍통하기 위한 여래의 의. 여래의 좌. 여래의 실 등 비유에 의해 삼종의 방궤를 설하였다.
17.
칠순의 부처가 영추산에서의 설법을 시작한지도 수년의 세월이 흐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부처는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자신의 최고 가르침이자 사람들에게 꼭 전하고자 하는 마지막 설법인 법화경을 설해가고 있었다.
수년의 세월이 그렇게 가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영추산에 모여 설법을 듣고 있던 사람들에게 있어 지금까지는 자신들의 귀를 의심해야 했었다면, 이번에는 눈을 의심해야 할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땅이 갈라지며 이 세상의 반만이나 한 상상도 할 수 없는 거대한 보탑이 솟아나 허공으로 떠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다 이 보탑은 금과 은, 유리와 차거, 마노와 진주, 매괴라는 일곱 가지 보물들로 가득 장식되어 빛나는 것이었다. 어찌 설명할 수도 없는 보탑의 출연에 모든 사람들이 합장을 하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부처의 소설은, 모두 이는 진실이니라...... .”
실로 대음성이었다. 그러나 처음에는 그 누구도 들려오는 대음성이 보탑 안에 자리하고 있는 다보여래의 음성이라는 것은 알지 못했다. 상상도 못할 일이 계속 될수록 모든 사람의 의문이 증폭되고 있는 속에서 부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두 번이나 바꾸어 청정케 하였고, 마지막으로 이백만억나유타의 국토를 모두 바꾸어 일불국토로 만들어 놓은 뒤, 부처 자신의 분신으로 흩어져 있던 시방제불의 분신들을 모두 불러들였다. 그런 뒤, 닫혀 있던 보탑의 문을 열고 들어가 다보여래와 나란히 이불병좌를 하고는 다시 신통력을 통하여 모든 사람들을 허공으로 들어 올려놓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사람들을 향하여 세 번에 걸쳐 엄숙하게 권하며 명하는 것이었다.
“누가 능히 이 사바국토에 있어서 널리 묘법화경을 설하겠는가. 나의 멸후에 법화경을 호지하는 자는 서언을 말하라.”
“누가 능히 이 사바국토에 있어서 널리 묘법화경을 설하겠는가. 나의 멸후에 법화경을 호지하는 자는 서언을 말하라.”
“누가 능히 이 사바국토에 있어서 널리 묘법화경을 설하겠는가. 나의 멸후에 법화경을 호지하는 자는 말하라.”
부처가 이리 세 번씩이나 권하고 명하는 것은 이제껏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세 차례 째에서는 ‘여타의 경전들은 수지하기가 쉬우나 법화경만은 수지하기가 어렵다’ 하며 그 실제의 예를 들어, 부처의 멸후에 있어 법화경을 수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여섯 가지의 어려운 일과 아홉 가지의 쉬운 일로서 설하기 시작했다.
“마땅히 기억할지니라. 내가 죽은 후에 묘법화경을 수지하는 데는 여섯 가지 어려움과 아홉 가지 쉬운 일이 있어 전하노니 마땅히, 마땅히 기억할지니라. 그 첫째는 *광설차경난*이라 하는 것이니, 나의 멸후 악세 속에서 법화경을 설하는 것이 실로 어려우니 그 것이 첫째요.
둘째는 *서지차경난*이라 하는 것이니, 나의 멸후 법화경을 쓰고 혹은 남에게도 쓰게 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니 그 둘째요. 셋째로는 *잠독차경난*이라 하는 것이니, 나의 멸후에 악세 속에서 잠시라도 법화경을 읽는 것이 어려운 일이니 그 셋째요. 넷째는 *소설차경난*이라 하는 것이니, 나의 멸후에 법화경을 다만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설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니 그 넷째요. *청수차경난*이라 하여, 나의 멸후에 법화경을 맑게 신앙하고 그 뜻을 질문한다는 게 어려우니 다섯째와 여섯째이며, 나의 멸후에 있어 법화경을 수지함에 그 이상 쉬운 일이 없으니 첫째로는 *여경설법이*라 하여, 법화경 이외의 무수한 경을 설하는 것이 쉬운 일의 첫 번째이며. 두 번째로는 *수미척치이*라 하는 것이니, 수미산을 잡고 타방의 무수한 불토에 던져 놓는 일이 쉬운 일의 둘째며. 셋째로는 *세계족척이*라 하는 것이니, 발가락으로 대천세계를 움직여 멀리 타국에 던져 놓는 일이 또한 쉬운 일의 셋째이며. 넷째로는 *유정설법이*라 하는 것이니, 색계로는 형태가 있는 세계의 최상에 위치하며, 무색계로는 유상. 무상을 모두 떠나 유무에 치우치지 않는, 범부의 지혜로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경지에 올라 무량의 여경을 설하는 것이 쉬우니 그 넷째이며. 다섯째로는 *파공유행이*라 하는 것이니, 손에 허공과 대공을 잡고 날아다니며 유람하는 것이 쉬운 일의 다섯째요. 여섯째로는 *족지승천이*라 하는 것이니, 대지를 발톱에 올려놓고 하늘로 오르는 것이 쉬운 일의 여섯째며. 일곱째로는 *대화불소이*라 하는 것이니, 마른 풀을 등에 짊어지고 큰 불속으로 들어가도 타지 않는 것이 쉬운 일의 일곱째며. 여덟째로는 *광설득통이*라 하는 것이니, 팔만 사천의 법문을 연설하여 듣는 자로 하여금 모든 것을 득하게 하는 것이 쉬운 일의 여덟째이며. 마지막 아홉 번째로 쉬운 일이란 *대중난한이*라 하는 것이니, 무량의 사람들에게 아라한 위를 득도시켜 육신통을 갖추게 하는 것이 나의 멸후에 법화경을 수지하는 것보다 당연히 쉬운 일이라는 것이니라. 그런 즉 너희들은 마땅히 나의 말을 기억할지니라. 다만, 이 거대하고 눈부신 칠보의 보탑이 왜 대지에서 솟아올랐으며, 나는 왜 허공의 보탑 안에서 설법을 해야 했는가 하는 것과, 내가 설하고자 하는 법화경의 가르침이 진실임을 왜 다보여래께서 해야만 했는가, 또한 보탑의 문이 최초에 닫혀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며 그 문을 내 손으로 여는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나의 멸후 때가 되어야만 알게 되리니 더는 말하지 않겠노라. 또한 모두는 더욱 지혜의 문을 열라. 모두가 알고 있는 제바달다는 누구뇨. 나의 제자로 알고 있으리라. 나를 헤하려 한 악비구로 알고 있으리라. 맞다 맞느니 제바달다는 나의 사촌형제였으며, 나의 아내 야수다라를 놓고도 다투었으며 부왕을 교사하기도 했으니 어찌 아니다 하리오. 그러나 알라. 과거에, 과거에 내가 그 때도 국왕으로 태어났으나 대승을 위해 왕위를 버리고 법을 원해 수행을 하였느니, 그 때 나는 실로 묘법을 가지고 있는 아사타 선인을 만났느니라. 나는 과실을 따오고, 물을 긷고, 나무를 해다 밥을 짓는다. 이렇게 천 년을 시중들며 고행하는 속에서 아사선인이 가지고 있던 그 묘법을 구했느니 그 때에 나를 부처가 되게 해주었던 아사타 선인이었으니 그가 누구뇨. 제바달다니라. 그가 또한 제바달다였느니라. 그러나 악인으로 옴은 또 무슨 연휴인가고 묻지 마라. 대권의 성자가 업인 감과의 이를 나타내기 위해 스스로가 오역의 모습을 보이고, 현신으로 지옥에 떨어졌지만 묘법의 공력에 의해 천왕여래의 기별을 받게 되리니, 제바달다의 그 깊은 의의를 너희는 알라."
부처는 잠시 설법을 쉬고 있었다.
이때에 법화경의 설법을 듣고 있던 용의 여신인 여덟 살의 용녀가 크게 환희하며 즉신성불 하여 ‘ 나는 대승의 교를 열어서 중생을 도탈케 하겠나이다’며 서원하는 것에, 부처의 제자 지혜제일의 사리불이 ‘그럴 리가 없다. 법기가 아닌 오장의 여신이 성불한다고 한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다’ 며 크게 의문했으나 엄연한 실증 앞에서는 입을 다물고야 말았다.
부처가 다시 입을 연 것은 그때였다.
“그렇다. 현증한 대로이니라. 용녀가 성불한 데에는 더 깊은 의의가 있으나 이 또한 나의 멸후에 있어 바르게 전해지리라.”
그랬다. 영추산과 허공에서의 법화경을 설하기 전까지 부처는 그래왔지 않은가. 자신의 해탈에만 집착하고 이웃을 이롭게 하는 데는 결여되어 있는 성문, 연각계의 이승은 영구히 성불할 수가 없다고. 또한, 여인과 악인 역시 성불할 수가 없다고 설해 왔지 않은가. 그러나 부처는 그 모든 가르침들을 법화의 자리인 지금에 와서 모두를 뒤집어 놓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그 까닭을 부처는 지난 오랜 세월의 모든 가르침을 방편이라 했고, 보탑 안의 다보여래는 법화경만이 진실이라며 부처의 말을 증명해 주었지 않은가. 게다가 과거로부터의 제바달다와 부처의 인연과, 즉신성불의 모습을 현증한 용녀의 서원에 부처의 제자들은 이제야 겨우 지혜의 문을 열어가며 다투어 서원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부처가 웃음을 띠며 다시 설했다.
“너희들은 알라. 너희들은 알라. 누구든지 나의 멸후에 있어 법화경을 설하게 되면 반드시 이리 되리라 알라. 반드시 삼류의 강적이 나타나리니 그 첫째는 속증증상만이라 법화경을 설하는 사람을 악구매리 하여, 그 행자를 나쁘게 말할 것이며 그 행자에게 욕을 퍼 불 것이며, 그 행자를 크게 괴롭힐 것이며 칼과 곤장 등으로 행자를 해치려는 불법에 무지한 속세의 자들을 만나게 될 것이니라. 그리고 두 번째는 도문증상만이라 하는 것이니 그들은 자신만을 믿으며 남에게 자랑하기를 좋아하며 거드럭거리니 그 만심이 실로 강하고, 그들의 지혜는 비뚤어져 있으며 올바르지 못한 지혜이나 오직 그러한 사지만이 뛰어난 승려들이니 그들은 모두 불법을 아는 자들로서 그러나 법화경의 행자를 해치려 할 것이니라. 그리고 세 번째는 참성증상만이니 그들은 모두 성자인 듯이 자신을 꾸미어 세상으로부터 존경받고 있겠으나 실은, 자신들의 이기적인 욕심에 집착하며 법화경의 행자에게 악심을 품고, 행자를 나쁘게 말하며, 권력을 이용하여 법화경 행자를 유죄와 사죄에까지도 박해를 가하는 적인이 반드시 나타날 것이니 너희들은 알라. 누가 있어 나의 멸후에 법화경을 행하겠느뇨.”
부처의 말에 모두가 입을 다문 채 조용해져 있었다. 그리고 잠시의 고요가 흐른 뒤 부처의 제자들과 이만의 보살들과 오백의 아라한들과 팔천의 학무학들과 육천의 비구니들은 차례로, 자신들이 나서 다른 땅에 법화경을 홍교하겠다는 서원을 했다. 그러나 부처는 아무 말 없이 팔십억나유타의 보살들을 보고는 그 보살들에게 법화경의 홍교를 권하였으니, 보살들이 일제히 환희하며 서원하기를 - 부처 멸후의 어떠한 삼류의 강적이 있다 해도, 우리는 마땅히 법화경을 위해서는 신복수종할 것이며, 세상의 비판이나 중상모략에 대해서는 모든 역경을 용감하게 개척해 갈 것이며, 또한 일체법공의 경지에 설 것이며, 대자비의 마음으로 법화경을 설하겠나이다-서원하는 것이었다. 이에 부처는 자비로운 웃음을 띠며 다시 말했다.
“너희가 알겠느뇨. 어찌하여 나의 제자들도 아니며 이만의 보살들도 아니며 오백의 아라한들도 아니며 팔천의 학무학들도 아니며 육천의 비구니들도 아니며, 어찌해 팔십억나유타의 보살들인가를 어찌 알겠느뇨. 그 깊은 의의가 나의 멸후에야 밝혀지리라. 또한 이 법화경은 제불여래의 비밀의 장이며, 일체경 중에 있어서 가장 위에 있도다. 그 이유 또한 누가 알겠느뇨. 누가 알겠느뇨."
18.
말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대우주의 모든 빛이 영추산의 대지 위를 비추는 듯 했다. 그 빛을 받으며 대지가 갈라지고 있었다. 그리고는 위광세력에 빛나는 당당한 모습으로 네 보살을 상수로 한 육만항하사의 지용의 보살이 그 대지로부터 용현하고 있었다.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일체대중의 의문을 대표해서 미륵보살이 나서 그 인연을 부처에게 물었다.
“대체 어찌된 영문이옵니까. 저희는 도저히 모르겠사옵니다.”
부처가 다시 미소를 띠웠다. 그리고는 자비로운 음성으로 말했다.
“마땅히 너희는 알라. 나는 실로 구원부터 지금까지 이들 대중을 교화시켰느니라.”
그러나 부처의 말에도 대중의 의문은 다 풀릴 수가 없었다. 그러자 미륵보살이 다시 말했다.
“아버지는 젊고, 자식들은 늙었나이다.”
미륵의 말에 부처가 다시 미소를 띠며 말했다.
“너희가 몇 번을 청하여 의문한들 지금에 어찌하리오. 다만 앞에 내가 설한 대로 알라. 내, 여래비밀신통지력에 대해서도 설했으나 지금에 어찌하리오. 지금에 어찌 하리오. 나의 멸후에 있어 남김없이 밝혀지리라. 그러나 너희가 거듭 청하고 또 청하니 내 다시 말하노라. 너희는 마땅히 믿어 알라. 나는 실로 오백진점겁이라고 하는 아주 먼 옛날에 보살도를 행하여 부처가 되었느니라. 그 이후 항상 중생들이 거주하는 세계에 머물면서 종종으로 법을 설하여 중생들을 교화해 왔느니, 그 때마다 나는 연등불로서 나타나고, 내가 입멸한다는 것 등을 설해왔으나 이는 모두가 방편으로 설한 것이었느니, 부처에게는 실로 멸하는 것이 없으며 멸도 했다는 것 역시 방편에 불과 하느니라. 그래 내 다시 설하노니, 지혜가 매우 총명하고 약의 처방에 통달하여 수많은 병을 치료하는 양의에게 백 명의 자식이 있었느니라. 그러던 어느 날, 양의에게는 일이 있어 머나먼 타국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으니, 그 사이 아이들은 남이 권하는 독약을 먹고 너무나 고통스러움에 몸부림치며 땅에 뒹굴었느니라. 다행히도 그 때에 이비인 양의가 여행에서 돌아 와 그 모습을 보고 놀랐으니 금히 양약을 조제하여 아이들에게 주었느니라. 아이들은 본심을 잃지 않고 약을 받아먹은 자는 완쾌가 되어 살아났으나, 독기에 퍼져 본심을 잃은 아이들은 아비가 주는 양약을 보고도 의심하여 받지 않으니 아비인 양의는 어쩔 수 없이 방편을 써 --이 약을 여기에 놓아두마. 너희들은 잊지 말고 이 약을 마시도록 하라.--는 말을 남기고는 타국으로 여행을 가버렸느니라. 그리고는 사자를 아이들에게 보내, 아비는 벌써 죽고 이 세상에 없다고 알리도록 했느니, 본심을 잃었던 아이들은 여러 날을 슬퍼하며 탄식하고서야 독기에서 눈을 떠 아비의 양약을 마신 뒤 병을 치료하였고, 양의인 아비는 그 소식을 들고는 바로 아이들 곁으로 돌아왔느니라.”
부처가 비유를 들려주는 동안 일체의 보살대중들은, 후세의 사람들이 말하는 구원실성의 의와 개근현원의 의 그리고 법화경에 의한 공덕력에 대해 조금은 이해를 했으니 그에 환희하여 여러 공덕을 받게 되었으며, 부처의 공덕에 대한 설법이 계속되었다.
“또한 이 경에 의한 공덕을 너희들은 알리니, 나의 멸후에 누가 있어 법화경의 위대함과 우월성에 마음으로부터 수의하고 환희하며 이 법화경을 신수하겠다는 마음을 일으켜, 법화경을 내가 갖고, 법화경을 남에게 전하고, 그 법화경을 전해들은 도 다른 사람이 신수하게 되어 또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그렇게 전해져서 50번째 사람에게까지 전해지게 되니 마지막 사람에게 법화경이 전해졌을 때는 내용 자체도 처음과 똑같게 전해지지는 않으리라. 그러나 알라. 그 50번째의 사람이 그 중에 알아듣고 가질 수 있는 게 다만 법화경의 일게여서 그것만을 알아듣고 수희하는 공덕일지라도, 80년간이나 무수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온갖 물건을 다 공양하고, 아라한과라는 불교의 한 가지 깨달음을 얻게 하는 공덕보다도 백 천 만 배나 더 우수하리라. 마지막 50번째 사람의 공덕이 그러하거늘 맨 처음 다음 사람에게 법화경을 전하여 신수하게 한 사람의 공덕이야 내 어찌 가르치리야. 또한, 법화경의 수지. 독. 송. 해설. 서사의 오종을 행하는 사람은 법화경의 힘에 의해서 육근의 종종의 공덕을 받게 되리니 그 육근이 청청하게 되어 짐을 너희는 알리라. 또한 너희는 알리니, 나의 과거세에 아득한 과거세에 위음왕불의 멸후, 불경보살이 있었으니 그 상불경보살의 입에서는 다만 한 시도 -나는 깊이 그대들을 존경하며 절대로 경만하지 않노라. 왜냐하면 그대들은 모두 보살의 도를 행해서 응당 작불을 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니라--는 24문자의 예배 행을 계속했느니라. 그 결과로 불경보살은 법화경의 공덕에 의해서 육근청정을 득하여 성불했노라. 여기에 또한 깊은 의의가 있으니 나의 멸후에야 바르게 전해지리라. 또한 이제부터 내, 법화경을 그 주인들에게 부촉하려고 하노니 모두는 그리 알고 찬탄하여라.
그리 선언한 부처는 곧 10종의 신력을 시현하며 부촉에 대한 준비를 하였으니, 그 신통력의 처음은 토설상이라. 범천까지 달하는 긴 혀를 내밀어보임으로서 부처의 말은 거짓이 없다는 불망어를 나타냈으며, 두 번째 신통력으로는 통신방광이라. 온몸의 모공에서 빛을 발하여 널리 십방세계에까지 비춤으로서 부처의 지혜는 널리 모든 것에까지 미치는 것을 나타냈으며, 법을 설할 때에 크게 헛기침을 하는 것으로서 성해라 하니, 진실을 낱낱이 열고 보여주어 막힘이 없는 것을 나타내니 그 세 번째요, 네 번째는 탄지라 하는 것이니, 손가락으로 튕기는 것으로서 불법에 수순하여 환희의 생명이 용현함을 나타내니 그 네 번째요, 지육종동이라 하는 것이 그 다섯째 신통력이니, 대지가 6종으로 진동하였으며, 초심에서 후심에 이르러 그 여섯 번째에 무명을 타파하는 것을 나타내니 그 다섯째요, 시방세계의 모든 중생이 영생회를 보고 환희하는 것을 보견대회로 나타내니 여섯째요, 그 일곱 번째 신통력으로 공중창성이라 하는 것이니, 제천이 허공에 있어서 시방세계의 대중을 향하여 부처가 설하는 법화경에 마음으로부터 수희하여 공양할 것을 소리쳐 외치니 이는 부처가 죽은 뒤의 미래세에 이 법화경이 널리 유통된다는 것을 나타내니 그 일곱 번째요, 그 때에 공중창설을 듣고 중생 모두가 부처에게 귀의를 하니 함개귀명이라. 이는 미래에 이 법을 수지하는 사람들로 국토가 충만하다는 것을 나타내니 여덟 번째요, 제 아홉은 요산제물이라 하는 것이니, 시방에서 부처에게 공양하는 재물이 구름처럼 제불의 땅을 가리니 이는, 미래에 이 교법을 근본으로 수행하는 행법만으로 나타나는 것이 그 아홉째요, 시방세계 모두가 일불토라고 하는 시방통동이니, 이는 미래의 수행에 의해서 일체중생의 불지견이 개시되어 그 진리가 국토에 미친다는 것을 나타내니 열 번째 신통력이었다.
부처는 그 의를, 앞의 오 신통력은 자신의 제세시를 위해 그리고 뒤의 오 신력은 멸후를 위한 것이라 설했다. 그리고는 심법을 부촉하는 의식에 들어가니 후세의 사람들이 말하는 결요부촉이었다. 그 뒤를 이어 무량한 보살들의 머리를 부처가 세 번 쓰다듬고 묘법화경을 부촉하니 후세의 때와 시에 이르러서야 밝혀지는 마정부촉이었으며 총부촉 이었던 것이다.
19.
19.
부처의 설법이 영추산과 허공회 두 곳의 장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동안 수년의 세월이 다시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설법의 장소는 이제 허공으로부터 영추산으로 다시 와 있었다. 부처는 지금, 약왕보살이 과거세에 일체중생희견보살로서 일월정명덕불로부터 법화경을 들었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자신의 팔꿈치를 태워 부처에게 공양했던 인연을 들려주며 법화경 수지의 공덕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설법하고 있었다. 그리고 약왕품 십이유의 비유로서 법화경의 이익을 설해 밝힌 뒤, 화타유통 중의 수법의 제자를 도와주기 위한 설법을 해나갔다. “묘음보살은 과거의 운뢰음왕의 세에 10만 종의 기악과 8만 4천의 칠보의 발을 부처에게 공양한 공덕에 의해서 정광장엄국에 태어나 갖가지의 신통력을 득했으며,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그 기근에 따라 34종의 부처로 변신하며 법화경을 설했느니라. 그러나 여기에는 또한 깊은 의의가 있으나 이해하기 어려우리라. 또한 묘음보살은 몸을 육도로 나누어 일선을 홍선하므로 몸에 정형은 없으니, 이는 나 멸후의 중생으로서 불도를 수행 하는 바 일체의 인법에 대하여 경천하는 생각을 갖지 말 것이며, 법화경을 행하는 자는 보현색신삼매를 성취하리라는 것을 알지니라.
또한 관세음보살이 삼십삼신의 보문시현의 묘용을 나타내 보이고 중생을 제도하는 것 또한 이와 같이 알리니, 깊은 의의가 있으나 지금의 너희들은 알기 어려우리라.
너희들은 또한 알지니 나의 멸후 악세 중에 법화경을 홍통하는 자에게는 오번의 신주가 있어 그 행자를 수호할 것이라, 약왕보살, 용시보살, 바사문천왕, 지국천왕, 십나찰녀, 귀자모신 등이 서원했으니 만약 그대로 지키지 않는다면 두파칠분 되기를 아리수의 가지와 같이 되리라고 알리라. 너희는 또한 알지니, 약왕보살의 과거는 어떠했느뇨. 그 때에 두 명의 왕자 중 정장이라 있었으니 그 왕자가 바로 약왕보살이었으며, 그 때에 정덕부인은 바로 묘음보살이었고, 이들 세 명이 외도의 부친인 묘장엄왕을 법화경에 귀복시켰느니라. 불법을 만난다는 것은 실로 이리 오랜 인연이로다. 참으로 어려운 일이로다. 실로 우담파라화를 만나는 것과 같으며, 일안의 거북이 망망대해에서 부목의 구멍을 만나는 것과 같으니라. 나의 멸후에 법화경을 만나고 수지하기란 실로 이처럼 어려우니라. "
부처가 법화경을 설하기 시작한지 7년도 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였다. 그럼에도 임종정념의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으며 이리 설법을 해나가고 있음은 자비의 마음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러한 때에 동방보위덕상왕불의 나라에 보현보살이 이 사바세계에서의 부처가 법화경을 설하는 것을 듣고 왔다. 그리고는 부처의 멸후에 있어 이 법화경을 어떻게 수지해가야만 하는가를 묻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부처는, 사법성취를 설하였으며, 이에 보현보살은 서원을 세워 후 오백 세의 오탁악세에 법화경을 수지하는 행자를 수호하여 악마, 마민, 구만다 등의 두려움을 방지하고, 법화경을 스스로 독송하면서 다라니주를 설하여 수호할 것을 서약하며 법화경을 지킬 것을 서약했다. 이리하여 8년간에 걸친 부처의 법화경 설법이 모두 끝나니 보살, 성문, 천, 용, 인비인 등, 한자리에 모여 있던 모든 대중은 크게 환희하며 부처의 가르침을 수지하고 영추산을 떠나는 것이었다
20.
부처는 팔순 노인의 모습으로 숲 속을 거닐고 있었다. 열아홉의 나이로 처음 가비라위성을 나와 고행의 길을 출발했던 숲 속이었다. 어느 날엔 목장의 딸인 선생 처녀의 우유죽 공양으로 목숨을 구했던 앞으로 강이 흐르고 있는 그 숲 속이었다.
깨달음 이후에도 언제 맘 편히 쉬어 본 적이 있었던가. 길에서 길로, 한 사람이라도 사람이 있는 곳이면 오직 법을 전하기 위해 맨발로, 또 맨발로 걷고 걸었던 부처였다. 그 부처가 이제 비로소 잠시 쉬어가자며, 강이 내려다보이고 망고나무 우거진 언덕에서 자신이 걸었던 길들을 돌아보면서 지난 여정을 되짚어보고 있는 것이었다.
서너 걸음 쯤 뒤에서 민호가 함께 걷고 있었지만, 부처도 민호도 말이 없었다. 부처의 걸음은 선생 처녀를 만났던 이련선하의 강가에서 멈추었다. 굳은 살 박힌 부처의 맨발 앞으로 강물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 흘러가는 물결의 모양이 현세를 지나 미래세로, 미래세로 향해가는 부처의 가르침만 같았다. 작은 새 한 마리가 날아와 물 한 모금을 쪼더니 부처에게 합장이라도 하듯 날개를 잠시 멈추었다가는 먼 하늘로 사라지고 있었다.
‘물 한 모금이었어.’
부처와 몇 걸음을 뒤에 서있던 민호가 새를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저 높고 먼 하늘을 비행하는데 필요했던 건 더도 아닌 꼭 물 한 모금이었던 것이다. 더불어 살고자 했던 최고의 인간 부처와 함께 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각각의 모습이면서도 서로 어울리고 함께 하며 더 이상 없는 평화를 만들고 있었다. 그런 속에서 한참만에야 부처가 강의 하류 쪽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걷는다기보다는 걸음으로도 사색을 하고 있다는 게 맞는 모습이었다. 강의 상류를 과거라 한다면, 하류는 미래가 아니던가. 그 뒤를 따라 걷고 있던 민호가 부처의 두어 걸음 뒤까지 따라붙으며 입을 열었다.
“준비하시는 것이옵니까, 부처님!”
부처는 걸음을 계속 옮겨 놓으며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이젠, 나의 때가 다한 것 같으오. 방편 같은 헤어짐이오. 미래의 분과도 서로 다른 별에서 머물겠지만 기억할 것이오. 기억할 것이오.”
“혼자 가시려면 외롭지 않으시겠나요, 부처님..... .”
민호의 말에 부처가 웃었다.
“그래도 좋지 않소? 조용하고 여유 있고, 재촉하는 자도 붙드는 자도 없을 테니 말이오.”
“부처님!”
“서운해 어쩌려오.”
“......?”
“늘, 알고자 하는 게 많으셨는데 말이오.”
“부처님!”
“괜찮으오. 가는 사람이라 생각 마시고 궁금한 것일랑 후회 없이 물어 보오.”
“부처님..... .”
그랬다. 지난 60여 년을 부처의 주위에서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며 모든 설법의 자리에서 떠난 적이 없었던 민호였다. 하면서도 지혜가 미치지 못하였으니 늘 궁금하여 알고 싶었던 것투성이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후세의 사람인 자신에게 언제나 벗인 양 대해주었던 부처였다. 그런 부처가 이별을 준비하고 있는데 민호에게 다른 무슨 생각이 더 있었겠는가. 그런 마음을 부처가 모를 리 또한 없었다. 그럼에도 물으라 한다. 부처는 마지막까지도 그토록 배려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니다. 청년시절과 장년 시절과, 노년시절을 함께 했던 미래세의 사람인 민호를 벗으로 하는 눈물겨운 우정이었다. 그래 민호는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꾸역꾸역 삼켜내며 사색한 끝에 구도를 했다.
“부처님! 참으로 모르겠습니다. 영추산과 허공에서 법화경을 설하실 때에 대지로부터 용현한 상행보살, 무변행보살, 정행보살, 안립행보살 등의 사 보살과 육만항하사의 지용의 보살들이 있었고 부처님께서는, 이련선하의 모래알 숫자보다도 많은 수의 지용보살들의 최고 상수인 상행보살에게 묘법화경을 별부촉 하셨으며, 지용의 보살들에게는 총부촉을 하시었습니다. 또한, 부처님 가신 후 후의 오백 세라 하시며 그 때에 묘법화경을 유통하라 하시었습니다. 또한, 오백진점겁의 아득한 과거세로부터 인연을 성하시오며 그 때에 이 묘법을 구도하여 부처가 되셨다 하셨사옵니다. 그러나 참으로 모르겠사옵니다. 부처님을 득도케 한 그 묘법화경은 무엇이며, 부처님 가신 후의 후 오백 세는 어느 때이며, 지금의 사리불 등 너무도 훌륭한 제자들과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들과 모든 보살들과 모든 대중들을 제켜두고, 현재의 사람들이 아닌 미래세의 상행보살 등과 지용의 보살들에게 그 묘법을 부촉하신 까닭이 무엇이옵니까, 부처님.”
“역시 미래세의 분이시구려. 그대가 의문하고 있는 것은 내 지난 60여 년을 맨발로 걸으며 설해온 모든 것의 결과이며 내가 이 세상에 온 목적이었던 것이오. 그러나 내 어찌 하리오. 이 세상의 모든 부처를 되게 하는 그 묘법은 나조차도 주인이 아니기에, 시와 때에 이르지 않고서는 묘법의 이름을 부를 수가 없으니 주인이 아닌 내가 어찌 어길 수가 있으리오. 원래의 주인에게 그 법을 돌려드렸으나 후세에 이르러 서로 주인이며 묘법의 부처라 주장하여, 그 때의 중생들이 제일의 지혜로도 정과 사를 구별하기가 실로 어려울 것이니 내 그래 삼류의 강적 등을 설함으로서, 그 때의 부처이며 묘법의 원래 주인이신 부처의 일생을 증거로 하기 위한 예언으로 남겨놓은 것이오. 미래의 분은 틀림없이 그 때에 연이 있으니 이쯤으로 서둘지 마오.”
부처는 인자한 눈빛을 보내며 잠시 걸음을 멈추고는 민호에게 손을 내밀었다. 삼십이상 팔십종호를 다 갖춘 부처였지만 80을 넘은 사람인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런 부처의 손 등 위로 주름이 역력했다. 민호는 허리를 굽혀 예를 갖추며 두 손을 공손히 내밀었다. 부처의 손이 민호의 손을 감쌌다. 참으로 따스한 손이었다. 부처의 체온이 온 몸으로 전해지며 민호의 마음이 하늘을 나는 새처럼 평화로웠다. 이것으로 좋았다. 더는 알아 무엇 하겠단 말인가. 그래 민호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며 감동으로 쏟아지는 눈물을 입으로 삼키고 있었다. 그런 민호에게 부처의 따스한 목소리가 들렸다.
“미래의 분은 참으로 약한 분이시오. 이제 눈물 거두고 남은 길 함께 벗이나 해주오. 저 하늘처럼 밝게 웃어보시오.”
부처의 말에 민호가 하늘을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다. 부처도 민호처럼 웃었다. 그리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미래의 분은 지금 달이 보이시오?”
부처의 갑작스런 말에 하늘을 둘러보는 민호였다. 그러나 빛나는 태양만 보일 뿐, 하늘 어느 곳에도 달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찾아지지를 않사옵니다. 부처님.”
“그럴 것이오. 지금은 태양의 시와 때이니 그럴 것이오.”
“......."
"그러나 분명히 저 하늘에 달은 있다오.“
“...... .”
“달이나 태양이나 세상을 밝혀 주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태양이 뜨게 되면 달의 힘은 거의 쓸모가 없소.”
“...... .”
“그렇다 해서 이 우주에 달빛이 필요 없느냐 하면 또한 그렇지를 않으오.”
“...... .”
“둘 다 반드시 존재하고 있으며 필요한 것이되, 태양의 빛이 비교도 할 수 없이 밝으며 세상에 득을 준다는 것이오.”
“...... .”
“그러나 태양은, 동에서 떠올라 서쪽으로 지오.”
“...... .”
“생각해 보오. 그 동쪽이 어디요. 실로 여러 나라일 것이오.”
“같은 시와 때에 같은 동에서 각각의 국토 위로 태양이 떠오르니, 서로가 다툴 것이오. 그 모든 혼동으로부터 막기 위한 나의 법화경이었으니, 태양의 묘법에 비교하면 내 법화경도 실은 방편이었소. 달빛이었소. 오직, 묘법이요. 오직, 묘법이오.”
“...... .”
“또한, 내 살아 있는 동안 마지막 설한 법화경이니 자식으로 말하면 부모의 유언 같은 게 아니겠소.”
“...... .”
“그러나 나의 멸후, 후 오백 세 중에는 내 가르침을 전한다는 자들이 스스로 사람들의 지도자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정작 아비의 유언은 따르지 않는 자들이 서로 옳다 투쟁언송 할 것이니, 그 때의 가여운 사람들을 어찌하오. 어찌하오.”
“...... .”
“참으로 다행인 것은, 내 이 세상에 온 이유로 설한 마지막 가르침 속의 예언들이 멸후 후 오백 세 중에는 단 한 가지도 틀림이 없이 그대로 증명이 될 것이니, 그 때에 가서 처음엔 이 세상의 흙을 다 손톱 위에 올려놓는다 해도 그 위에 얹혀질 수 있는 복운만큼이나 실로 귀하게 정법을 만날 것이나, 미래세 중에 반드시 일염부제에 유포될 것이니, 내 이 세상에 왔다 감이 하나도 헛되지 않음을 기쁘게 알고 가오. 기쁘게 알고 가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수고 많으셨네요.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한자어가 조금 필요한 부분들이 있는 것 같은데 ...그러면 더 빛날 것 같아서요^^ 제 관심어린 투정입니다. ^^
글동네에는 진짜 소설가 님들이 많으시기에 제가 못 보는 부분들을 꼭 보아주시리라 믿고 올렸습니다.~~지적해 주시고 의견 주시는 모든 부분들을 잘 새겨서 수정해 가는 데 도움 받겠습니다.~~감사 드리며....~~
모나리자 님! .. 휴대폰 전화번호를 알고 싶습니다 ...
비룡님~~011--1703--2357 인데, 5월 경에나 사용하게 될 것 같네요.~~ 머니는 못 벌고 딸 아이 대학 가츠치려니 장학생으로 다녀도 이리 거덕거린답니다.~~^*^
다 읽지 못했지만 끝까지 읽고싶은 글입니다. 참으로 대단한 글입니다. 이런글은 마구잡이로 나오는 진실이 아니라는 걸 나는 압니다. 참으로 존경 스럽습니다.
아직은 많은 문제점들을 내포하고 있는 초안의 상태이지만 후 편의 발판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해 볼 생각입니다.~~
불새 님의 많은 도움과 지적 주시어 제 모습을 갖출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항상 건강하시며 좋은 작품 많이 낳으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