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장국집에서 아침을
최은경
밤을 새워 쓴 글들을 휴지통에 처박은 새벽. 깡 소주 두어 병은 퍼부은 듯
불이 난 속을 달랠 해장국을 찾아 나선다. 낙엽과 함께 어둠도 쓸어 모으는
환경 미화원을 공짜 모델로 쓰는 해장국 집의 뻑뻑한 문을 밀고 들어간다.
기름기로 끈적이는 나무 의자에 옹이 박힌 엉덩이를 대고 앉아 컬컬한 목소리로
뼈다귀 해장국 한 그릇을 시킨다.
여기저기 붙은 소주 광고 모델들을 꼼꼼히 흩다보면 뼈를 가득 품고 바글대는
검은 뚝배기가 내 앞에 놓인다. 수저를 들이밀다 보니 분화구처럼 시뻘겋게
들끓는 뚝배기 속이 어째 밤과 새벽을 낭비한 내 속만 같다. 울적한 마음에
반주로 콧물 한 번 들이 마시고 들깨 향이 진한 해장국 한 수저를 입에 넣는다.
뜨거운 인두가 되어 입천장부터 홀랑 벗겨낸 해장국이 목과 가슴을 지나 저 밑의
미주알까지 쭈욱 다림질을 한다. 한참동안 다림질을 하다가 제법 살이 두툼히 붙은
뼈다귀를 맹렬히 물어뜯는다. 무슨 대단한 노동이라도 하는 것처럼 땀을 뻘뻘 흘리며
우윳빛 연골에 붙은 초라한 한 점 살까지 알뜰히 떼어 매끈해진 위로 구겨 넣는다.
뼈다귀에 붙은 살을 다 발라먹고 보니 등뼈의 한 가운데 뚫린 동그란 틈 속에 몸을 숨긴
돼지의 척수가 보인다. 둥근 그 틈에 젓가락을 집어넣어 충치를 긁어내는 치과 의사처럼
섬세하고 정교하게 노골거리는 척수를 억지로 끌어내 날름 먹어치운다.
어느 새 휴지통에 내던진 글은 다 잊고 척수에만 집중하는데 유리창을 뚫는 급정거 소리.
놀라 유리창 너머를 보니 초록불이 켜진 횡단보도를 흰 소형차 한 대가 짓밟고 있다.
고작 쓰레기봉투 속으로 들어갈 낙엽만 몇 마리 치어 죽였기에 다시 척수에 집중하려다가
선득 가슴이 뭉그러진다. 척수 몇 점 빼먹겠다고 이리 젓가락으로 집요하게 찌르고
긁어대면서 왜 이 해장국을 벌어 준 글에는 그 반도 집요하지 못했을까.
부끄러워 벌게진 낯으로 마시지도 못하는 소주 한 병을 시킨다.
내가 버린 글에게 한 잔을, 글이 버린 내게도 한 잔을 붓고 묵념을 올린다.
아침 해는 떠오르는데 애도의 사이렌 소리는 그칠줄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