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화 ‧ 현진건 81주기 합동 추념식
일시 : 2024년 4월 25일 오후 4시
장소 : 대구 달서구 대곡동 19-65 상화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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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1년 4월 25일, 민족문학가이자 독립유공자이며 어린 시절부터 세상을 떠나는 그날까지 절친한 벗이었던 대구의 이상화와 현진건 두 분이 1943년 4월 25일 같은 날 세상을 떠난 일을 기려 한국문학사상 처음으로 ‘이상화 ‧ 현진건 합동 추념식’을 열었습니다.
올해 2024년 4월 25일에 네 번째 ‘이상화 ‧ 현진건 합동 추념식’이 열립니다. 관 지원 없는 순수 민간 차원 행사입니다. 이상화와 현진건의 민족정신을 본받고자 하는 수십 명의 시민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추념식 주요 내용
1. <이장가 시집> 봉정 : 민족시인 이상화의 할아버지 이동진과 큰아버지 이일우는 좋은 시를 많이 남겼습니다. 독립운동가인 형 이상정도 대구 최초의 현대시조 시인이었습니다(《개벽》 1922년 7월호 등단). 이동진과 이일우를 중심으로 네 분의 시 48편을 한 권으로 묶은 책이 오는 4월 25일 발간됩니다. 이동진 부자의 시를 읽어보면 이상정 ‧ 상화 형제의 시재詩才와 민족정신이 가문의 전통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시인 최영, 김규원, 김형근 등 ‘빼앗긴 고향’ 동인들은 <이장가 시집>을 이장가문화관에 봉정해 영원히 역사에 남기려 합니다. (문의 - 이원호 01040508055)
2. <현진건 중문 소설집> 봉정 : 김미경 중국민간문학박사(대구대 강사)가 현진건의 주요 단편소설 8편을 중문으로 번역해서 출간했습니다. 책에는 ‘玄镇健 小说集 <好运气的一天>’라는 제목이 붙여졌습니다. 우리말로 되옮기면 ‘현진건 소설집 <운수 좋은 날>'이라는 뜻입니다. 중문으로 옮긴 까닭은 현진건이 중국 후장대학에 유학했음을 기리는 데 있습니다. 책은 지난 1월 중국을 방문해 그곳의 여러 대학 도서관에 기증함으로써 연구자료가 되도록 했으며, 지난 3월 6일 개관한 현진건기념도서관(서울) 등에도 비치되었습니다. 오는 4월 25일 현진건 생애의 벗이었던 상화 기념관에 봉정하려 합니다. 두 분이 생전에 워낙 관포지교와 백아절현의 죽마고우였던 만큼 <이장가 시집> 옆에 <현진건 중문 소설집>이 나란히 전시될 만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문의 - 김미경 01067817532)
* <현진건 중문 소설집>은 출간되었지만, <이장가 시집>은 인쇄 중입니다. 우선, 표지만 보내드립니다.
3. 추념 음악 공연 : 서용덕 상화오케스트라단 단장
4. 서사시 ‘나는 현진건이다’ 발표 : 최영 시인
5. 이상화 ‧ 현진건 81주기 합동 추념식에 부치는 시 : 김규원 시인(전 경북대 부총장)
6...... : 그 외 추념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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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화 ‧ 현진건 81주기 합동 추념식에 부치는 시
김규원 반성
관포지교管鮑之交*와 백아절현伯牙絶絃**
남들 얘기라서 참 부러웠던 고사
하지만 그대들은 벌써 알고 있다
우리 대구 땅에도 그 못지않은 자랑 있음을,
빙허憑虛 현진건과 무량無量 이상화 사이는
한국문학의 길, 소설과 시를 통해
빼앗긴 고향을 되찾고자
절치부심한 생애를 함께 걸어갔음을
오죽했으면 해방 못 보고 같은 날 운명했을까
이토록 빙허는 무량에게, 무량은 빙허에게
한평생 서로 어떤 사람이었을까
눈빛만 봐도 뭘 원하지를 알 수 있는 사람
무뚝뚝하게 말해도 깊은 정을 느끼는 사람
가까이 있으면 말 건네고 손잡고 싶은 사람
멀리 떨어져 있으면 곁에 다가서고 싶고
눈에 보이지 않으면 그리움에 속 태우는 사람
오래 사귈수록 늘 향기로운 사람이 드문데
나는 누구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본 적 있었던가
* 관포지교: 중국 춘추전국시대 사람 관중管仲은 “나를 낳아준 사람은 부모, 나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鮑叔”이라 했다. 관포지교는 아주 돈독한 우정을 상징하는 관용적 사자성어이다.
** 백아절현: 춘추전국시대 거문고의 달인 백아伯牙는 벗 종자기鍾子期가 죽자 거문고 줄絃을 끊고絶 연주를 그만두었다. 이제 내 음악을 알아줄 사람이 없다는 뜻이었다.
이장가李庄家의 뜻과 문학 재능
이동진李東珍(1836∼1905)은 3세에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와 극빈하게 살아가던 중 자주성가로 큰 재산을 모아 논밭 1254두락을 소유하게 됩니다. 그는 1894년 땅 230두락을 인척들에게 나눠주고, 다시 480두락을 출연해 가난한 이들의 혼인 ‧ 상례 ‧ 구휼 경비로 사용되게 합니다. 모두 810두락(162,000평)의 땅을 사회에 환원한 것입니다. 그 이후 사람들은 이동진 집안을 이장가李庄家라 불렀습니다.
이동진과 그의 아들 이일우李一雨(1870∼1936)는 학교 겸 도서관 우현서루友弦書樓를 설립해 민족교육에 매진했습니다. 우현서루는 경술국치 후 일제에 의해 강제로 폐쇄되었습니다. 이동진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민족시인) 이상화의 할아버지이고, 이일우는 큰아버지입니다.
이동진과 이일우는 훌륭한 시를 많이 남겼습니다. 이는 이상화의 뛰어난 시재와 민족정신이 가문의 전통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해줍니다. 이상화의 형 이상정 독립운동가 또한 대구 최초의 현대 시조시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