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계신 우리 엄마
지난 주말 디어레이크 옆에 있는 쉐볼트 소극장에서 극단 하누리가 공연하는 연극 “I miss you”를 보았다. 소소한 이민가정의 일상을 담담하게 풀어간 극이었다. 주인공 엄마는 어느 날 몸이 안 좋아 병원에 갔다가 종양이 발견되었다는 청천벽력같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 암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좀 더 정밀검사를 해야 되겠다는 의사의 말에 정신이 나갔다. 온몸에 기력이 다 빠져나가고 울적해지는 마음을 어쩌지 못했다.
“왜 하필이면 나일까? 아이들도 다 크고 이제 쉴만한 나이가 되니까 그만 살라고 하니 이런 법이 어디있나. 나는 아직 더 살아야 하는데..”
암에 걸려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사로잡히니까 지나온 세월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태어나서 평생에 무슨 큰 낙을 누려본 적이 있던가. 지금까지 하루 삼시세끼 남편 끼니 챙겨주고, 그로서리 비즈니스하면서 세 남매 돌보느라고 정작 내 자신을 돌아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불현 듯 들었다. 눈물이 자신도 모르게 두 뺨에 흘러내린다. 멈출 수 없는 설움이 북받쳐 오른다.
갑자기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간절해진다. 엄마가 곁에 계셨으면 잘 해드렸을 텐데 멀리 있다는 핑계로 뭐 제대로 한 가지도 해드린 게 없다. 그래도 엄마는 나를 원망하고 계시지는 않겠지 하고 생각해 본다.
“엄마, 하늘나라에서 잘 계시지요? 내가 암에 걸려 죽을지도 모른대요. 나 지금 죽고 싶지 않아요. 고생만 하다가 지금 죽으면 너무 억울해요. 엄마는 하느님과 함께 계시니까 내 대신 하느님께 사정 좀 해봐 주세요.”
즐거울 때는 생각 안 나던 엄마가 외롭고 힘들 때는 저도 모르게 떠오른다. 엄마는 언제나 내 편이고 언제나 내가 힘들다면 도와줄 수 있는 존재라고 여겼다. 돌아가신 엄마가 하늘에 계시고 내가 원하는 걸 말하면 언제나 들어주신다고 여겼다.
산 자와 죽은 자는 마음속에서 기억함으로 인하여 소통하게 된다. 마음속에 살아있는 사람은 육신이 죽어도 죽은 게 아니다. 내가 기억하는 한 그는 내 마음속에 살아있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부탁한 사정 이야기가 통했는지 주인공은 암이 아닌 걸로 검사 결과가 나왔다.
연극을 보면서 내내 떠오른 생각은 임현숙 시인의 <엄마의 빨랫줄>이라는 시였다. 왜냐하면 이제는 곁에 없는 엄마를 그리며 옛 추억에 잠기는 어린 소녀의 천진함이 배어 있기 때문이었다.
시인은 빨랫줄을 연결 고리 삼아 이제는 돌아가고 안 계신 엄마와 소통하고 있다. 이 시는 일상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말들을 골라 곱게 나열하며 무척이나 시각적인 표현을 자연스럽게 전개하고 있다.
“돌판 위에 얹어 놓고, 탕탕 방망이질을 해댔다”
널어놓은 빨랫줄 사이로 나비처럼 나풀대며 뛰어다녔다는 소녀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훈풍에 펄럭이는 빨래를 마음속으로 회상하며 엄마를 떠올린다. 엄마는 따뜻함이고 그리움이다. 언제나 품에 안기면 소롯이 잠들 것 같은 포근함이다.
엄마가 그리워지면 “먼저 가신 하늘에 빨랫줄을 매어 놓고, 엄마의 호박꽃 미소를 널어 본다.” 바람에 펄럭이는 빨래를 보듯이 거기 엄마의 둥근 미소를 바라보는 시인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돌아가신 엄마는 시인의 가슴 속에서 언제까지나 빙긋이 미소 짓고 계신다.
엄마의 빨랫줄
임현숙 시인
그 시절 엄마는
아침 설거지 마치고
이불 홑청 빨래를 하곤 했다
커다란 솥단지에 푹푹 삶아
돌판 위에 얹어 놓고
탕탕 방망이질을 해댔다
고된 시집살이에
마음의 얼룩 지워지라고
부아난 심정 풀어보려고
눈물 대신 그렇게 두드렸을까
구정물 맑아진 빨래를
마당 이편에서 저편으로
말뚝 박은 빨랫줄에 널어놓으면
철부지는 그 사이로 신나서 나풀댔다
부끄러운 옷까지 대롱대롱 매달린
울 엄마 늘어진 빨랫줄은 마음의 쉼터
옹이 지고 구겨진 마음이
훈풍에 펄럭이고 있었다
엄마가 불쑥 그리운 날
먼저 가신 하늘에 빨랫줄 매어 놓고
엄마의 호박꽃 미소를 널어 본다.
첫댓글 선생님, 재삼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누군가의 격려는 큰 힘이 되어 창작열을 고취시킵니다.
더욱더 좋은 글을 쓰기에 노력하겠습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