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충식의
'클래식은 영화를 타고'
< 지옥의 묵시록 : 리덕스 - Apocalipse Now
Redux >(2001)
1969년 적진 깊숙한 곳에서 특수임무를 마치고
사이공의 숙소로 귀환한 벤저민 윌러드 대위
(마틴 신 분).
고향에 들렸다가 아내가 내민 이혼장에 도장을
찍은 그는 도의적 혼돈과 막연한 갈망에 시달린 채,
술과 마리화나에 절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거울을 부술 정도로 정신적으로는 만신창이
상태입니다.
윌러드는 침대에 누워 천장의 선풍기 날개가
돌아가는 것을 바라보며 무연스레 푸념하죠.
" 망할! 아직도 ×할 사이공에 있다.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떠오르는 건 정글뿐... 첫 귀국 땐 더 심했다.
일어나면 공허해지고...
이혼에 합의할 때까지 아내와 한 마디도 안 했다.
사이공에선 집에 가고 싶고, 집에 가면 정글로
돌아올 궁리만 했다."
이 시퀀스는 극중 내내 화면 속 헬기의 날개, 그리고
폭격으로 불바다가 되는 정글의 이미지로 번갈아
비춰지지요.
다낭 사령부 고위 장교 루카스(해리슨 포드 분)는
반실성 상태로 넋이 나간 윌러드를 거의 끌고
오듯이 데려옵니다.
윌러드는 부대를 이탈해 미군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있는 월터 E. 커츠 대령(말론 브랜도 분)을 암살하라는
작전 명령을 하달받죠.
"극단의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처치하게
(Terminate with the extreme prejudice)!"
커츠 대령은 미국 웨스트 포인트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한국 전쟁을 비롯한 여러 전투에서
눈부신 활약상을 보인, 차기 참모총장감의
전쟁 영웅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베트남 이중첩자들을 살해한 죄로
체포되기 직전에 공수특전 부대를 이끌고 캄보디아
접경에서 홀연히 종적을 감춘 뒤, 밀림 속에다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했죠.
윌러드 대위는 커츠 대령의 녹음된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 난 보았다. 달팽이가... 면도칼 위로 기어가는 것을.
이건 꿈이다. 끔찍한 악몽... 날카로운 칼날이라
아슬아슬했지만 달팽이는 살아남았다."
" 우린 그들을 죽여야 한다. 다 태워 버려야 한다.
돼지들도, 소들도, 마을도, 군인들도 전부.
그들은 날 살인마라 부른다. 우습다. 살인마가
살인마를 비난하다니. 그들은 역겨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린 이 가증스런
거짓말쟁이들에게 관대해야 한다.
그 고위직 놈들, 난 그들을 증오한다. 미치도록
증오한다!"
반쯤 미쳐가던 윌러드가 완전히 미쳐버린(?)
커츠로부터 받은 전언인 셈으로 사령부 장군
코만(G.D. 스프라들린 분)은 얘기하죠.
" 윌러드 대위, 이 전쟁에선 모든 가치가 무너지고
있다네. 권력, 이상, 도덕적 가치, 또 군대의
필요성조차도...
그러나 원주민들과 있으면 유혹을 받게 되지.
신이 되려고 말일세. 그러면서 합리와 비합리
사이에서 갈등을 겪게 된다네.
'선과 악' 의 싸움에서 항상 선이 이겼던 건 아냐.
때로는 링컨이 말했던 것처럼 사탄은 '인간 본성의
천사' 를 물리치지.
모든 인간에게는 파괴 지점이 있어. 자네와
나에게도 말일세. 커츠는 그 지점의 한계에
도달했어. 이젠 그는 누가봐도 정신이상자야!"
이성과 본능, 진실과 거짓, 정의와 부도덕 사이에서
첨예한 갈등과 혼란을 겪다가 끝내 미쳐버렸다는
커츠 대령의 이미지는 그렇게... 드라마 전체를
꿰뚫는 상징적인 존재가 됩니다
윌러드는 되뇌죠.
"다들 자신이 원하는 걸 얻기 마련이다. 임무를
받길 원한 건 나였으니 결국 일을 맡은 건 나의
업보다.
지령은 마치 룸서비스처럼 방으로 배달되었다.
내 죄에 합당한 아주 특별한 과업이었고, 그게
끝난 후 어떤 일도 맡지 않았다."
캄보디아 오지에 자신만의 제국을 구축한...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길을 택했던 커츠 대령은
그렇게, 암살 대상 1호로 지목됩니다.
윌러드 대위와 그를 캄보디아까지 수행하는 4명의
병사들은, 불온분자로 찍힌 커츠 대령을 제거하는
임무 실행을 위해 하천 초계정(PBR)을 타고 전장의
심장부를 관통하게 되죠.
이렇듯 윌러드 일행이 커츠 대령을 처단하기 위해
실재하지 않는 허구의 강 지명인 '넝강' 상류를 향해
나아가는 장면은,
베트남전이라는 현실에서 신화의 영역으로 영화의
무대적 시공간을 옮겨가는 여정의 장(場), 곧
신화적 로드 무비로 조명됩니다만...
이러한 일련의 패시지는 베트남의 현재(베트남
전쟁)에서 식민지 시대(프랑스인 농장), 또 과거
전근대적 시대(신적 지도자가 지배하는 마을)로
거슬러 올라감을 암유(暗喩)하죠.
윌러드는 그 길이 피할 수 없는 지옥행의 험로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집에 갈 방법은 두 가지뿐! 전사하거나
승리하거나(Death or Victory)..."
작전 중 처음 만난 빌 킬고어 중령(로버트 듀발
분)은 카드놀이를 하듯 시체마다 카드를 꽂고
번호를 매기는 걸 즐기면서 적에게 휴머니즘을
베푸는 척하는 위선적인 인물이죠.
" 9사단 1대대는 기병대 출신으로 말을 헬기로
바꾼(?) 다음 베트남인들을 쫓아다녔다. 단순히
겁만 주면 되는데 그들을 광폭하게 쫓아내기
시작했다.
한데, 대대장 킬고어는 이른바 '나쁜' 지휘관은
아니었다. 부하들을 사랑했고 부하들도 그를
든든해하는... 주위에서 이상하게 돋보이는
인물이었다."
전쟁이고 작전이고 간에 공무는 뒷전이고
‘서핑’ 이라면 환장을 하는 킬고어는,
2미터 높이의 파도가 있다는 말 한마디에 적지인
해변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립니다.
눈에 거슬린다며 숲에 네이팜탄을 투하하고...
폭탄이 떨어지는 위험천만한 해변에서 그토록
엽기적인 취미(?)를 광적으로 즐기는 킬고어를,
윌러드는 '몸에 벌집을 내고 반창고를 붙여주며
호들갑을 떠는 인간' 으로 표현하죠.
" 킬고어 중령의 지휘가 저런 식이라면 과연 커츠
대령과 다를 바가 뭐가 있겠는가. 왜 커츠만
죽이라고 하나?" 라고 자문하던 윌러드.
그는 결국, " 오직 지옥에서 해방시켜주기 위하여
커츠를 죽이는 것뿐야" 라고 애써 합리화합니다.
한데, 킬고어 중령은 "베트콩놈(Charlie)들은 서핑을
안하잖나!" 라며, 황당하게도 '냄새'(Smell) 얘기를
꺼내죠.
"냄새가 나나? 냄새가 느껴지냐고? 네이팜 말야.
이 세상 다른 무엇도 저런 냄새가 나지 않지.
난 아침의 네이팜 내음이 좋아. 그 냄새는... 승리의
향기지. 이 전쟁도 곧 끝날 거야."
윌러드 일행이 사이코 킬고어의 서핑보드를 빼았아
달아난 뒤 정글에서 숨어 웃음을 터트리는
장면은,
아직까지는 그들이 인간적인 동료애를 나누고
있는 대목으로... 머잖아 그들에게 닥칠 비극적인
운명과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이어 도착한 연료 보급기지에선 화려한 불빛 속에
플레이보이 잡지의 바니걸들이 벌이는 위문공연을
보게 되죠.
하지만 공연을 시작하자마자 죽음의 냄새에
취한 병사들의 난입으로 무대는 일순간에
난장판이 돼버리고... 바니걸들은 도망치듯
헬기를 타고 떠나갑니다.
다음 어느 외딴 부대에 다다른 윌러드 일행은
비가 내려 질퍽거리는 진흙 탕 속에 지휘관도
없고 군기도 없이 막사만 보이는 그곳에서
연료 부족으로 고립된 바니걸들을 다시 만나게
되죠.
"그깟 '이달의 플레이걸' 과 연료랑 바꿔요? " 라며
따지는 함장 필립에게 윌러드는 답하죠.
" '올해의 플레이걸' 일세!"
이렇듯, 그들은 헬기를 움직일 수 있는 연료
'두 통' 과 이 여자들을 즐길 수 있는 '두 시간' 을
맞바꾸며...
도덕적 위선을 뒤집어쓴 미국 베트남전 개입의
불편한 이면적 진실을 마주하게 합니다.
윌러드는 틈틈이 커츠의 자료를 읽는데 몰두하죠.
"커츠의 부대는 캄보디아에서 신출귀몰했다.
베트콩들은 그의 이름만 들어도 겁을 먹었다..."
다음날 미군 최전선으로 캄보디아 국경인 넝강
상류의 '도 룽(Do Lung)교' 까지 다다른 그들은,
지옥도 이보다는 낫겠다며 지휘관도 없이
아무 곳에나 M2 브라우닝 기관총을 갈겨대는
병사들에게서 집단적인 광기를 체감하죠.
진지에서 "여길 지휘하는 건 누구냐?" 고 묻는
월러드에게 무명의 병사는 반문합니다.
"대위님 아니십니까?"(Ain't you?)
어느덧 여정의 중반부...
윌러드 대위는 70 년간이나 개발해온 가족
농장이기에 어떤 전쟁이나 난리 통에서도 결단코
이곳을 사수할 수밖에 없다는 프랑스인들의
자경단과 조우합니다.
자체적으로 무장을 하고 6명의 미군까지도 사살한
이들은 아직도 제국주의적인 결기를 품고 있는 듯
여겨지죠.
2차세계대전과 알제리 전투, 그리고 인도차이나
전쟁 모두에서 패배했지만 결코 이곳에서만은
다시 물러날 수가 없다는 위베르의 말이
그러합니다.
그들은 바이올린으로 미국 국가를 조롱하듯
연주하며, "우리 프랑스인들을 베트남에서
몰아내려고 미국이 베트콩을 키우지 않았냐' 고
비아냥대죠.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 이유가 프랑스인들
주장만큼이나 억지임을 빗대는 장면입니다.
전쟁 미망인 록샌느는 아편을 같이 하고서
윌러드와 몽환적인 정사를 나누며 얘기하죠.
" 남편은 화를 내다가도 엉엉 울곤 했어요.
난 그에게 말했죠. '당신에겐 두 가지 얼굴이
있어요. 하나는 신이 되려는 얼굴, 또 다른 하나는
사랑을 하는 얼굴요.'
그러자 남편은 '난 내가 신인지 짐승인지
모르겠어' 라고 대답하더군요.
당신도 남편을 닮았어요. 살인을 하는 동시에
사랑을 하는..."
코폴라는 베트남전의 시공간을 빌려 한 쪽에서는
살육과 파괴를, 다른 한 쪽에서는 사랑과 헌신을
베푸는 이중적인 인간의 존재에 대해 중의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죠.
밀러와 필립스, 병사 두명을 잃고 천신만고 끝에
커츠 대령의 제국에 도착한 윌러드 대위는
마을 전체를 휘감은 괴기함 속에서도 이상한
동질감을 느낍니다.
그곳엔 시체들이 매달려 있고 여기저기 해골이
굴러다니는.... 입구에서부터 벌써 광란의
센티멘트로 가득하죠.
윌러드는 '우리는 다 커츠의 자녀들' 이라고 그를
극찬하기 바쁜 사진기자(데니스 호퍼 분)로부터
커츠의 실체적인 면모를 듣게 됩니다.
" 그는 시인의 마음을 가진 군인입니다. 어쩌다
마주치면 모른 척하고 지나가다가 느닷없이
어깨를 붙잡고 이렇게 말하죠.
'인간의 중심 단어가 마약이라는 걸 아나? 만약
모두가 널 비난해도 침착할 수 있다면? 만약,
모두가 널 의심해도 너 자신을 믿을 수 있다면?'
이라고 말이오.
난 알아요. 난 그저 소인배이고,
그는 위대하다는 걸!"
유령같이 윌러드를 따라오던 커츠의 신도(?)들은
급기야 그를 결박해 포로로 끌고 가 사교 집단의
교주 같은 커츠를 만나게 하죠.
커츠의 영토는 점령자와 원주민, 문명과 야만,
선과 악, 합리와 비합리, 적과 아군이란 구분이
사라진 신화의 세계라 할 수 있습니다.
처치하러 간 콜비 대위까지 그의 부하가 될 정도로
그곳에서 불가사의한 신적 존재가 된 커츠 대령은,
자신을 살해하라는 임무를 띠고 찾아온 윌러드
대위를 경계하고 의심하기보다는 오히려 담담하게
맞이하죠.
커츠는 이미 괴물이 돼버린 자신의 고통을 끝내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겁니다.
영웅으로 남기 위해 자신을 죽이라고 암암리에
당부하는 커츠는 나이 든 군주의 표상일 뿐...
그를 없애야 하는 숙명의 윌러드는 늙은 왕을
살해하고 그 자리를 대신하는 후계자의 상징으로
은유되죠.
커츠 대령의 침상에 영국 인류학자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의 저서 <황금가지-The Golden Bough >가
놓여있는 것은 우연이 아닌 겁니다.
카메라는 그렇게, 책의 표지를 클로즈업 하죠.
커츠 대령은 윌러드 대위와 선문답같은 대화를
이어갑니다.
"그들이 왜 내 지휘를 끝내고 싶어했는지
말해주던가, 윌러드?"
"전 기밀 임무를 받고 왔습니다."
"더는 기밀이 아니겠지, 안 그래? 그들이 뭐라고
하던가?"
"대령님이 완전히 미쳤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대령님의 방식이 불온하다고 했습니다."
"내 방식이 진정 불온해 보이긴 하는가?"
"제가 보기엔 방식이란 게 없는 것 같습니다."
"언젠간 자네 같은 사람이 올 거라 예상했네. 자네는
뭘 예상했나? 자네는 암살자인가?"
"전 군인입니다."
"자넨 둘 다 아니야. 자네는 청과점에서 외상 받으러
보낸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아."
커츠 대령은 자신과 가장 닮아있는 유형의 인간이라
단정한 윌러드 대위에게 나지막이 공포의 실체에
대해 들려줍니다.
" 진정한 자유를 생각해 본 적이 있나? 타인의
자유뿐만 아니라 자신의 자유까지 포함해서 말일세.
난 '공포' 란 놈을 봤지. 자네도 봤을 거야. 자넨
날 살인마로 부를 권리는 없어도 날 죽일 권리는
있어.하지만 날 죽일 권리는 있어도 날 심판할
권리는 없다네.
말로는 도저히 불가능해. 공포가 뭔지 모르는
사람들한테 말로 설명하기란... 공포, 공포는
얼굴이 있어. 그 놈과 친구가 되어야 해.
친구가 되지 않으면 가장 무서운 적이 돼.
특전대에 있을 때가 생각나는군. 아주 까마득한
옛날였던 거 같아.
부대원들이 마을 아이들에게 예방 접종을
마친 후 노인이 우리에게 달려와서 울더군.
말조차 하지 못했어.
우리가 캠프에 다시 갔더니 그들이 와서 예방
접종을 한 팔을 난도질했더라고. 팔들이 쌓여
있었어. 조그만 팔들이...
난 울었어. 마치 할머니처럼 내 이빨을 몽땅
뽑아내고 싶었는데 어찌할 바를 몰랐지. 난
그 일을 절대 잊지 못할 거고, 또 잊고 싶지도 않아.
그 후로 난 깨달았네. 다이아몬드 총알이 내 이마를
관통한 것처럼!
맙소사, 그렇게 한 본성을 생각했지. 본성...
아이들의 팔을 잘라낸 그 의지는 완벽했고,
수정처럼 순수했어.
난 그들이 우리보다 훨씬 강하다는 걸 깨달았어.
그들은 강한 거지, 괴물은 아니야. 그들은 신념을
바쳐 싸우는 정의의 부대지. 그들에게는 사랑하는
가족과 자식들을 뛰어넘는 불가사의한 힘이 있어.
나에게 그런 병사들이 10개 사단만 있었어도
이곳에서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을 아주 빨리
끝냈을거야.
도덕적이면서도, 감정, 열정, 판단력 없이 원시적인
본능으로 살인을 할 수 있는 병사들이 필요해.
판단력 없이... 우린 그 판단때문에 패배한 거야."
도저히 미치지 않고서는 이길 수도 끝낼 수도 없는
전쟁.... 그 깊은 절망 속으로 빠져 버린 커츠 대령을
윌러드 대위는 조금은 이해하게 됩니다.
결국, 자유의 몸으로 풀려난 윌러드는 암살자
역할을 충실히 실행하며 작전 임무를 완수함과
동시에 커츠의 소망 또한 실현시켜 주죠.
커츠는 숨을 거두며 힘들게 부르짖습니다.
" '공포'(The horror). '공포'(The horror)..."
그의 절규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공포', 그 '순수함의 본성' 을 되찾게되어
외치는 감탄사, 곧 기쁨의 탄성으로 들려오죠.
코폴라는 커츠 대령을 통해 인간들이 전쟁으로
자신들의 본능(공포심)을 잃은 채 서로를 죽이며
미쳐가고, 죽어서야 비로소 그 본성을 찾을 수
있게되는 나약함... 비극적인 패러독스를 표현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영화의 종결부에서 '공포' 의 메아리는 다시금
처연히 울려퍼지죠.
"공포. 공포."
윌러드는 커츠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남겼던 마지막 지령을 보게 됩니다.
"폭탄을 투하해 전부 몰살하라!"
커츠의 유언 격인 이 메모는 광기의 결실인
자신의 왕국이 결국 실패했다는 메시지인 동시에,
신이 창조한 만물에 폭력과 살륙이 난무한다면
그건 실패작일 수 밖에 없다는 코폴라의 화두인
게죠.
그럼에도 윌러드가 커츠의 당부를 따르지 않은
것은 아직 인간에게도 희망이 남아있다는 해석으로
다가옵니다.
그런데... 커츠를 죽이고 나타난 윌러드를 향해
왕국의 무리들은 모두가 머리를 조아리며
그를 둘러싸죠.
순간 윌러드는 자기 자신이 또다른 커츠가 되어
버린 것을 알게됩니다.
그는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자신과 같은 암살자에 의하여 또다시
제거되어져야 할 대상으로 변해져간 것이죠.
윌러드는 제정신이 아닌 랜스를 데리고 섬을
빠져나와 경비정에 올라, 계속 "응답하라" 는
상부의 무전기를 끊어버립니다...
1. 영화 < 지옥의 묵시록 : 리덕스 -
Apocalypse Now Redux > 트레일러
https://youtu.be/bzz-8HMPeso0
< 지옥의 묵시록 >(1979)은 아카데미 어워드에선
8개 부문 후보에 올라 촬영상과 음향상을 안겨주며
생색이라도 냈지만...
그랑프리를 수상한 칸영화제와 감독상을 거머쥔
골든글로브 어워드에선 상영시간이 너무 길고
난해하다는 이유로 일부 장면이 삭제돼야 했죠.
그 후 22년 만에 코폴라가 재편집한 < 지옥의
묵시록 : 리덕스 >(2001).
이 < 리덕스 > 버전은 49분 분량의 시퀀스
부활과 함께 무려 199분의 런닝타임 동안,
문명적 체제라 할만한 모든 시스템이 붕괴돼버린...
전장터를 헤메는 윌라드 대위 일행을 좇고, 또
보여주는데 집중합니다.
영화는 코폴라가 자신의 의도를 완전하게
되살렸다고 자평한, 새로운 걸작으로 자리하게
되죠.
오랜 세월을 넘어선 걸작의 풍모는 여전하고,
초현실적인 내면의 여행을 둘러싼 광기어린
아우라는 더욱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윌라드 일행이 킬고어의 서핑보드를 훔치는 컷,
연료교환 조건으로 바니 걸들과 섹스를 나누는
장면,
자신들의 플랜테이션 농장을 고수하려는
프랑스인과의 저녁식사 신,
월라드 대위와 커츠 대령이 나누는 대화 장면 등이
다시 돌아온 < 리덕스 > 편에 추가된 주요
부분이죠.
이 시퀀스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다름아닌 베트남 전쟁의 신화성입니다.
< 지옥의 묵시록 > 을 각색하면서 코폴라가
염두에 둔 것은 웅장한 서사극이자 신화의
탐구였던 게지요.
영화는 지옥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우리의 현실
속에서 숱하게 일어나고 있지만, 너무나
비일상적이어서 신화적으로 느껴지는 사건들에
대한 내밀한 고백으로 다가옵니다.
영화 전체에서 흐르는 윌러드의 독백은 사적인
감성의 토로가 아니라, ‘현대 사회’ 에 대한
철학적인 분석이자 시구로 울려오지요.
< 지옥의 묵시록 : 리덕스 > 판은 그렇게, 전율이
휘감아 오는... 20년이 흘러도 여전히 끔찍한
'현대의 묵시록’ 으로 스며져오며,
감독이 말한대로 1979년 판과는 다른 영화임을
알게 해줍니다.
주인공이 더 이상 커츠 대령만이 아니었던 터...
무기력하게만 보였던 윌러드 대위는 킬고어
중령의 서핑보드를 훔친다던가,
바니 걸들과의 매춘 협상, 그리고 남편을 잃은
프랑스 여인 록산느와의 정사를 통하여 주도적인
행동을 하는 인물이 되어있지요.
커츠 대령은 어둠 속이 아닌 대낮의 배경을
등에 지고 앉아서 타임지를 읽는 장면이
추가됨으로써 그가 얼마나 냉철한 이성을 지닌
인물임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서핑보드에 집착하는 킬고어 중령은 그의 이름이
의미하는 (Kill & Gore) 캐릭터가 되었으며
감독이 의도한대로 주제의식이 또렸해졌죠.
모호함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 리덕스 > 는
감독이 의도한대로 누가봐도 반전영화가 된
겁니다.
코폴라 감독은 인터뷰에서 < 리덕스 > 탄생의
배경을 이렇게 말한 바 있죠.
" <지옥의 묵시록 > 을 편집하고 있을 때 특히
미국의 비평가들로부터 영화의 성공 가능성에
관하여 회의적인 시각이 대두되고 있었기에,
우리는 편집에 있어서 오히려 덜 잘라내는
방어적인 자세를 취했고, 그들의 예측이 틀렸음을
입증하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관객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모호한
시퀀스들을 자르고 전체적인 상영시간을
군형잡히게 만들었다.
이제 이 영화는 고전의 반열에 올라있어
비평가들로부터의 걱정이나 근심, 혹은
관객수로부터 어느정도 자유로운 편집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이미 성공을 거둔 영화이므로 보다 더 영화 자체에
대하여, 그리고 영화의 주제를 생각하는 편집을
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 평하였죠.
"영화 < 지옥의 묵시록 > 은 악몽 같다..."
윌러드 대위는 영화 초반부터 '교통 딱지를 떼듯이
사람을 죽이는 전쟁' 에 회의적인 시선을
거두지 못하죠.
이렇듯 도덕적인 가치관의 모순어린 '혼돈' 은
영화의 출발점에 기정 사실의 명제로 섭니다.
지옥같은 전쟁의 도가니 속에서 가치적 혼란에
빠져드는 인간의 악마적 본성과 통제불능한
광기의 우화로 읽혀지는 < 지옥의 묵시록 >...
코폴라 감독은 오프닝 시퀀스에서 “이것은 끝이다.
아름다운 친구, 나의 유일한 친구. 끝이 너를
자유롭게 하리라“ 라는 가사가 담긴 도어스의
노래 '디 엔드(The End) 를 흐르게 하죠.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오프닝 신이나, 바그너의
음악 '발퀴레의 기행' 과 함께 펼쳐지는 UH-1H
휴이헬기, 잠자리 500MD 헬기들의 베트콩 마을
공습장면도 아닌...
바로 광란의 종교의식 도가니 속 소를 도살하는
신과 커츠 대령을 살해하는 교차편집 시퀀스일
것입니다.
이렇듯 < 지옥의 묵시록 : 리덕스 > 는 시각적
환상에 몰입케 하는 기묘한 매력의 암유적 코드로
충일하죠.
전쟁에 대한 공포, 증오, 환멸, 지긋지긋함 등
모든 감성적 요소들이 스크린에 녹아들어가 있는,
하여, 빛과 소리로 계속해서 최면을 거는...
시적이고도 초현실적인 작품으로 울려옵니다.
2. 바그너 악극 < 발퀴레 - Die Valkure > 중
3막 '발퀴레의 기행'(Ride of the Valkyries)
https://youtu.be/KlsfM2BmsJU
미군 공수부대의 헬기 10여 대가 진격 나팔과
함께 동틀 무렵 베트남의 창공으로 이륙합니다.
헬기 안에서 부대장 킬고어는 부하들을 돌아보면서
바그너의 음악을 틀라고 지시하지요.
"해 뜰 무렵 낮게 다가간 다음, 1.6킬로미터 앞에서
음악을 틀겠다. 바그너를 틀면 베트콩들이
혼비백산해서 부하들이 좋아하지..."
그가 타고 있는 헬기에는 ‘창공으로부터의
죽음'(Death from Above) 이라는 섬뜩한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북베트남의 붉은 깃발이 걸려 있던 마을은 미군
헬기 부대의 공습으로 처참하게 초토화되고
말지요.
공습은 네이팜탄이 마을 인근의 숲에 투하되면서
절정에 이릅니다만...
지옥의 수라도를 연상케 하는 이 장면에서 흐르는
사운드 트랙이, 바그너의 4부작 악극 < 니벨룽의
반지 > 2부 < 발퀴레 > 3막에 흐르는 ‘발퀴레의
기행’ 속 발퀴레의 유도동기(Leitmotiv) 선율이라는
점은 자못 의미심장하죠.
비록 전쟁 중이라고 하지만 미군의 행동은 거의
무차별적인 테러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그너의 음악 ‘발퀴레의 기행’ 은 그 테러의
잔혹성을 더욱 부각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요,
공격을 당하는 쪽에는 공포심을 유발하고,
공격을 감행하는 쪽에는 스스로 구국의 영웅이
된 듯한 환각을 불러 일으키게 합니다.
냉소적인 시각으로 살육의 참혹함을 부각시킨
이 장면에서 우리는 '반인륜적인 학살과
구국(救國)의 영웅적인 행위 사이에 어떤 차이점이
있는 것일까' 를 반추하게 되죠.
‘발퀴레의 기행’ 은 그 뒤에 숨어 있는
이데올로기를 더욱 그럴듯한 것으로 믿게 만드는
고도로 승화된 음악적 트릭으로 풀어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바그너는 '오페라,' 코폴라는 '영화'
부문에서 창의적인 광기(狂氣)로 가득한 걸작을
창작해냈죠.
- 다니엘 바렌보임 지휘 베를린 필하모니커
https://youtu.be/P73Z6291Pt8
3. < 지옥의 묵시록 > - feat. 도어스 'The End'
https://youtu.be/xpN54k93ugM
영화주제가 격의 'The End' 는 1971년 요절한
짐 모리슨이 그룹 '도어즈'(The Doors) 초기에
만든 사이키델릭 사운드의 명곡입니다.
'Light My Fire’ 가 수록이 된 1967년 1월의
‘The Doors’ 앨범에 함께 수록됐지요.
"낭만의 상실, 고통의 절규, 아이들은 미쳤어“ 라는
가사의 노래입니다.
불타는 정글 화면과 헬기소리가 난무하는
오프닝 신에서부터,
윌러드가 호텔 방에서 거울을 깨면서 전율의
광기를 드러내는 후속 장면에 이르기까지
약 3분 정도 흐르죠.
또 엔딩 시퀀스에 커츠를 죽이고 빠져 나오는
컴컴한 장면에서 사뭇 환각적인 클라이맥스 부분이
약 2분 가량 이어집니다.
- 李 忠 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