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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계약_노아와 홍수 심판
창세기 9:8~17
8. 하느님께서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또 말씀하셨다.
9. "이제 나는 너희와 너희 후손과 계약을 세운다.
10. 배 밖으로 나와, 너와 함께 있는 새와 집짐승과 들짐승과 그 밖에 땅에 있는 모든 짐승과도 나는 계약을 세운다.
11. 나는 너희와 계약을 세워 다시는 홍수로 모든 동물을 없애버리지 않을 것이요, 다시는 홍수로 땅을 멸하지 않으리라."
12. 하느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너뿐 아니라 너와 함께 지내며 숨쉬는 모든 짐승과 나 사이에 대대로 세우는 계약의 표는 이것이다.
13. 내가 구름 사이에 무지개를 둘 터이니, 이것이 나와 땅 사이에 세워진 계약의 표가 될 것이다.
14.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 구름 사이에 무지개가 나타나면,
15. 나는 너뿐 아니라 숨쉬는 모든 짐승과 나 사이에 세워진 내 계약을 기억하고 다시는 물이 홍수가 되어 모든 동물을 쓸어버리지 못하게 하리라.
오늘은 사순절 첫째 주입니다. 사순절은 부활절 전까지 여섯 번의 주일을 제외한 40일 동안의 기간을 말합니다. 이기간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금식과 특별기도, 경건의 훈련을 하는 시간으로 보냅니다. 성경에는 '40'이라는 숫자와 관련된 사건이 많이 등장합니다. 노아의 홍수 때 밤낮 40일간 비가 내렸고(창7:4),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거친 광야에서 생활했으며(민14:33), 예수께서 광야에서 40일간 금식 후 마귀의 시험을 받으시기도 하셨습니다(마4:1). 여기서 보듯, '40'이란 고난과 시련, 인내를 상징하는 숫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 가톨릭이나 영국 국교회에서는 '사순절'을 '대제절'이라고 불렀습니다. 3세기 초까지는 절기의 기간을 정하지 않고 이틀이나 사흘 정도 지켰으나, A.D.325년 니케아 공의회 때부터 40일간의 기간이 정해졌습니다. 교회는 사순절 기간 동안 회개와 기도, 절제와 금식, 깊은 명상과 경건의 생활을 통해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며 그 은혜를 감사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사순절 기간은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가 서로 달랐습니다. 동방교회는 600년경부터 7주간을 지켰고(토요일과 주일을 제외하고 부활주일만 포함하여 36일을 지킴), 서방교회는 6주간(주일을 제외하고 36일을 지킴)을 지켰습니다. 예루살렘교회만 4세기 때처럼 40일을 지켰죠. 그러던 것이 교황 그레고리 때부터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을 사순절 시작일로 지정하여 40일을 채우게 되었습니다.
초기 기독교에서는 이기간 동안 '사순절 식사'(Lent Fare)라고 하는 고기를 제외한 채소 중심의 단순한 음식을 먹었다고 합니다. 하루에 한끼 저녁만 먹되 채소와 생선, 달걀만 허용되었습니다.
사순절 첫째 주의 구약성서 일과는 노아의 홍수와 무지개 계약에 관한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그 진위나 해석에 있어서 논란이 많은 이야기입니다.
우선 노아의 홍수 이야기의 전말을 간단히 살펴볼까요?
아담으로부터 10대째에 해당하는 노아 시대에 하느님은 무법천지가 되어 버린 세상을 홍수로 심판하기로 작정합니다. 세상이 사람의 죄악으로 가득 찼고, 사람마다 못된 생각만 하는 것을 보시고 후회하신 것입니다. 야훼께서는 "내가 지어낸 사람이지만, 땅 위에서 쓸어버리리라. 공연히 사람을 만들었구나. 사람뿐 아니라 짐승과 땅 위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모조리 없애버리리라. 공연히 만들었구나!(창 6:5-7)" 하고 탄식하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 중 노아만은 마음에 들어하셨습니다. 그 당시에 노아만큼 올바르고 흠없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죠. 성경은 노아가 하느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창 6:9).
노아는 재앙을 피하라는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방주(方舟를 만듭니다. 이 방주는 목재로 된 직사각형의 배로, 길이는 135m, 폭은 23m 높이 14m의 삼층 구조로 지어졌습니다. 심판 때가 다가오자 하느님은 방주에 식재료 외에 짐승과 새 등을 암수 2쌍, 정결한 동물은 7쌍씩 싣도록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노아가 600세 되던 해에 호우가 시작되어 40일간 계속되었습니다, 방주는 물에 떠오르고 땅은 물로 가득찼습니다. 높은 산들이 모두 물에 잠겼다고 성경은 말하죠.(창 7:19) 물은 150일 동안 땅을 뒤덮었습니다. 방주는 흘러 흘러 아라라트(아르메니아 방면의 북방 지역을 막연히 가리킨다)산에 도착합니다. 그리고는 150일 동안 물이 서서히 빠지죠. 산봉우리가 보이자 노아는 까마귀에 이어 비둘기를 날려 보냅니다. 비둘기가 올리브의 어린잎을 물고 돌아오자 물이 빠진 것을 알았습니다. 이후에 다시 비둘기를 날려 보냈더니 물이 다 말라서 돌아오지 않았으며, 노아와 가족들, 동물들은 아라라트산 정상의 방주에서 나오게 됩니다.
노아는 120년 걸려 완성한 방주에 가족(아내와 세 아들 내외)과 짐승 새를 싣고 1년 10일 동안을 그 안에서 지내며 재앙을 피했습니다(창 6-8, 히 11:7). 방주에 탄 8명의 사람과 동물들은 살아남았지만, 그 밖에 모든 생물들은 홍수로 멸절되었을 것입니다.
방주에서 내린 노아는 하느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렸고, 야훼는 "내가 다시는 물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겠다"라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노아에게 약속의 징표로 무지개를 만들어주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신 하느님께서 노아와 동물들, 그리고 그 후손들에게 새로운 계약을 세우는 장면입니다. 새 출발을 축복하며 다시는 홍수로 땅을 멸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죠. 그러면서 그 증표로 무지개를 보여주신 겁니다.
사실 지구상의 생물이 모두 멸절하는 그런 큰 홍수를 겪고 생명을 보존한 방주의 사람과 동물들은 트라우마에 휩싸여 있었을 것입니다. 땅을 뒤덮는 홍수 속에서 겨우 살아남은 8명의 노아 식구들은 이제 하늘이 어두어지고 새까만 먹구름이 일면 공포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습니다. 무시무시한 홍수 심판을 겪었기 때문에 비가 올 조짐만 보여도 ‘혹시나 그 비가 과거의 홍수처럼 자기들을 완전히 집어삼키게 되지는 않을까?’ 생각하며 새하얗게 질릴 수밖에 없었던 거죠. 그런 이들을 위해 하느님은 구름이 낄 때 무지개를 보내서 물로 죽이지 않겠다는 약속의 증표로 삼으신 것입니다.
무지개는 햇빛과 물, 공기의 합작품입니다. 무지개가 뜨려면 앞에는 물방울과 뒤에는 반드시 해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무지개가 뜬다는 것은 해가 뜬다는 것이며 다시는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신호인 것입니다.
본문 14~15절에 보면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 구름 사이에 무지개가 나타나면, 나는 너뿐 아니라 숨 쉬는 모든 짐승과 나 사이에 세워진 내 계약을 기억하고 다시는 물이 홍수가 되어 모든 동물을 쓸어버리지 못하게 하리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구절은 하느님이 살아남은 피조물들과 그의 후손들을 위해 자신에게 한 다짐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무지개가 피조물들에게만 계약의 약속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에게도 약속의 증표가 되어 그것을 꼭 지키도록 하는 장치가 된다는 것이죠.
노아의 홍수와 무지개 계약 이야기는 진위 여부와 의미에 있어서 아직까지도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먼저 진위 여부에 관해서 창조과학자들은 노아 홍수의 증거를 제시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터키의 아라라트 산에서 방주의 파편을 발견하였다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방사성 동위원소 측정결과 기원후 이후의 시기로 판명되기도 하였습니다. 또 동물 종을 다 태웠다는 주장도 있으나 성경에 어류나 수중생물 등의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이 주장도 크게 신빙성을 입증할 수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노아의 홍수 이야기는 창세기의 6에서 9장까지 할애하는 방대한 설화로 구약성경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기록입니다. 현대 주류 기독교계의 구약신학에서 노아와 방주는 사회악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을 보여준다고 봅니다. 즉 방주는 단순한 선박이 아니라 죄로 가득 찬 세상에서 하나님의 정의를 따르는 이들을 보호하는 하나님의 활동에 대한 증거로 봐야 한다는 것이죠.
방주는 노아의 순종이 새로운 세계 질서, 즉 창조질서의 회복을 의미하며, 방주에 들어가는 것은 아담 이후 두 번째 창조의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물이 걷히고 방주에서 나온 생존 피조물들을 향해 하느님께서는 아담에게 해 주었던 하느님의 동역자 지위를 허락해 줍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을 다스리라는 것이죠.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게 하셨고 짐승과 곡식을 양식으로 삼으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아담에게 선악과를 따먹지 못하게 했던 것처럼 노아에게도 피가 있는 고기를 금하고 사람의 피를 흘리는 것은 금하였습니다(창 9:4-6). 그리고 나서 1절에 이어 7절에서 또다시 “너희는 많이 낳고 불어나거라. 땅 가득히 퍼져 땅을 정복하라"고 말씀하시죠.
지금 인류는 지구 역사상 가장 큰 위기에 봉착해 있습니다. 야생초 편지 저자로 유명한 황대권 선생은 지금의 위기를 3가지로 규정합니다. 그것은 기후위기, 전쟁위기, 불평등의 위기라는 것입니다. 이 위기는 서로 연결되어 있고 이것들의 뿌리는 국가와 자본주의입니다. 국가와 자본의 결합은 필연적으로 제국주의의 길을 따르게 하고 이것은 종종 전쟁으로 귀결됩니다. 신자유주의로 세계를 평정한 자본은 대량생산 대량소비라는 패턴으로 인류를 욕망 속에 가둡니다. 이것이 환경파괴를 가속화 하고 불평등을 심화시켜 또다시 기후위기와 전쟁위기로 재생산되는 것이죠.
세계의 인구는 2022년 11월 15일 기준으로 80억 명을 넘어섰습니다. 2057년이 되면 100억명이 넘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농경문화 시대인 BC 4000년에 세계인구는 1,500만 명이었습니다. BC 1000년 철기문명시대에 1억 명을 돌파했죠. 예수 탄생을 기점으로 하는 기원년에 인구는 2억 명이었습니다. 그러다 AD 1,700년대 산업혁명 시대에 10억 명에 도달하였죠. 그리고 200년 후 AD 1,900년 경 20억이 됩니다. 1959년 30억 명으로, 1974년 40억 명, 1987년 50억 명, 1999년 60억명, 2011년 70억 명을 돌파합니다. 최근에 들어서는 매 10년 마다 10억 명씩 인구 폭발이 있었던 것이죠. 산업혁명 이후 생산성 향상과 대량생산, 대량소비는 폭발적 인구 증가를 가져옵니다. 그러니 지금의 인구 증가는 인간의 욕망의 크기에 비례해 온 것입니다.
인구 증가와 대량생산, 대량소비로 인한 기후위기로 인류는 6차 대멸종기를 맞고 있습니다. 지구온난화로 해수면이 상승하여 해안지대가 침수되고, 내륙지역은 사막화되면서 식량위기가 닥치게 됩니다. 동토가 녹으면 수만 년 동안 얼음 속에 갇혀 있던 각종 병원체가 풀려나와 인류가 경험하지 못했던 전염병이 창궐할 수 있습니다. 이 기후위기는 붚평등과 차별로, 결국 분쟁과 전쟁으로 비화되어 인류를 멸망으로 끌고 갈 것입니다.
인류가 직면해 있는 위기 상황은 인간이 스스로 자초한 것입니다. 인간 때문에 망가진 세상을 바라보는 창조자의 마음은 어떨까요?
창세기 6장 12-1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 보시기에 세상은 속속들이 썩어, 사람들이 하는 일이 땅 위에 냄새를 피우고 있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노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세상은 이제 막판에 이르렀다. 땅 위는 그야말로 무법천지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저것들을 땅에서 다 쓸어버리기로 하였다.“
17절에는 ”내가 이제 땅 위에 폭우를 쏟으리라. 홍수를 내어 하늘 아래 숨 쉬는 동물은 다 쓸어버리리라. 땅 위에 사는 것은 하나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노아와 그의 가족, 그리고 짐승과 새들을 종류대로 살려 두신 것은 홍수로 쓸어버린 이전 세계와는 다른 세상을 재창조하시려는 의도였을 겁니다. 하느님께서는 재창조에 대한 약속의 증표로 무지개를 주시죠. 무지개의 계약은 다시는 홍수로 세상을 멸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 무지개 계약은 첫 번째 창조와는 달리 인간뿐 아니라 살아 숨 쉬는 모든 생명을 향한 것입니다. 모든 차별을 없애고 피조물들을 동등하게 생각하는 생명 존중의 두 번째 창조였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14-15절에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 구름 사이에 무지개가 나타나면, 나는 너뿐 아니라 숨 쉬는 모든 짐승과 나 사이에 세워진 내 계약을 기억하고 다시는 물이 홍수가 되어 모든 동물을 쓸어버리지 못하게 하리라“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이는 하느님처럼 되려고 한 인간들로부터 배신당한 아픔을 통해 새로운 결심을 한 결과입니다. 첫 창조의 실패를 인정하고 재창조를 통해 창조의 의미를 완성시키겠다는 것이죠. 다시는 생명을 멸하지 않겠다는 약속은 모든 생명을 끝까지 사랑하겠다는 것이고, 보듬어 안아 구원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사순절 첫 주 복음서의 성서 일과는 마가복음 1장 9절에서 15절 말씀입니다. 그 내용은 예수께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공생애를 시작하는 장면이죠.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며 가장 먼저 한 행위는 요단강으로 요한을 찾아가 세례를 받으신 일입니다. 세례를 받는 순간은 장엄한 신비를 보여주는 카이로스의 시간이었습니다. 현실이 영원을 만나는 순간이었던 거죠.
예수께서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막 1:10-11).
세례의 징표를 가지고 예수는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광야로 나갑니다. 그리고 40일 동안 그 금식하며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죠. 사탄의 시험을 이긴 예수는 갈릴리로 가서 복음을 전파하십니다. 그 복음의 내용은 "때가 다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으라(막 1:15)" 는 것입니다.
공생에의 첫 가르침인 이 말씀은 전혀 다른 새 세상이 시작될 것인데 그 출발은 회개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새 세상의 내용인 복음은 이사야 예언서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눅 4:18-19)"는 것입니다.
그러니 무지개 계약으로 하느님이 약속한 재창조의 완성은 해방과 자유의 세상, 은총의 해라는 것입니다. 모든 피조물들이 온갖 압제로부터 해방되고,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하느님의 창조 원리가 구현되는 그런 나라라는 것이죠.
모든 피조물들은 하느님의 재창조의 약속이 이뤄지길 기다립니다. 그것을 기다리지 않는 것들이 있다면 그것들이 바로 적그리스도인 것이죠. 우리 사회에 위기를 조장하는 모든 것들이 적그리스도에 속하는 것입니다. 기후위기를 조장하고, 호시탐탐 전쟁을 일으키며, 모든 불평등을 조장하는 세력들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세력들과 싸우며 모든 피조물의 해방과 자유를 위해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 고난의 길을 어린양처럼 묵묵히 걸어가신 것이죠. 그의 고난과 십자가는 그것으로 인해 오게 될 새 세상을 완성하는 힘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헬조선이라고 불리우는 그런 사회입니다. 기후위기, 전쟁위기, 불평등의 위기를 조장하는 자들이 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느님이 보시기에 아마 노아의 시대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다시는 물로 멸망시키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셨지만 창조자의 속은 또다시 타들어 가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많은 방법으로 사탄의 세력들을 심판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죄악이 차고 넘칠 때마다 의인들은 세상을 바꾸어 왔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변혁이나 혁명이라고 부릅니다.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은총의 해가 다가오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출발이 이번 4월 10일 총선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는 주님의 은총의 해가 임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