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 존 르 카레 (스포일러 많아븜.)
우편 배달부는 벨을 두 번 울렸어. 이후로 사건 추적이 아닌 다른 형식으로 된 소설들을 많이 읽고 있습
니다. 스파이 소설도 확 땡겨서 데스몬드 베글리의 질주랑 이 작품을 읽었습니다.
두 작품 모두 재밌었습니다. 질주는 적절히 수수께끼도 있었고, 추운나라...는 왠지 모르게 계속 읽게
되는 희한한 매력을 지녔습니다.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질주에 비해 추운나라...는 다소 정감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질주에 보면 처음 주인
공 잭 스튜어트가 자기 얘기를 하는데, 자기가 위에서 지시를 받고 사람을 죽였다. 나중에 보니 자기편이
더라 하는 게 나옵니다. 왜 위에서 죽여라고 시켰냐 하면 적 내부에 주인공과 그가 죽인 사람, 둘을 심어
놨는데, 누가 더 잘하는지 보고 한 명을 고르고 남은 사람은, 적 내부에서 지위와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주인공이 죽여버리도록 한 것입니다.
전체 줄거리에서도 보면 주인공은 소모품으로서 죽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근데 워낙 잭 스튜어트라는
양반이 불세출의 영웅이라 죽어라 해도 안죽고 살았던 겁니다. 질주 이후에 바로 추운나라...를 집어 들
었는데 질주를 보고 아...스파이 세계가 이런 거구나 감을 잡고 들어갔습니다. 근데 추운나라...에선 마
지막에 주인공을 구해줍니다. 뭐 이런저런 변명이 있습니다만 이녀석은 우리편이니 살려준다. 이런 식의
느낌을 받았습니다. <질주>같았으면 주인공은 국경까지 갈 것 없이 죽었을 거라는 게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반전은 이 작품이 오래 전 작품이고 또 고전인 만큼 아무래도 마이클 바조하의 <죽음의 문서>가 이것을
따라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먼저 본 것은 죽음의 문서인데요. 이것도 재밌습니다. 주인공과 가장 대척점
에 있는 인물을 이용한 니편내편 식의 반전이 나옵니다. 그래서 사실 추운나라...에서도 적 중에서 주요한
인물이 바로 주인공 나라(영국)의 아군(그러니까 스파이)이구나. 하는 것은 미리 감 잡고 있었습니다. 비
유를 하자면 이건 읽어보신 분이 이해할 수 있는데요. 마치 만화 김전일을 먼저 보고 시마다 소지의 <점성
술 살인사건>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만화를 무시하는 건 아닌데..피래미 때매 정작 중요한 트릭을 미리
알아버리는 사태가 발생하는 겁니다.
뭐 스파이 소설이야 다른 재미도 있으니까 그리고 추운나라...는 반전만으로 읽는 소설은 아니니까 상
관은 없지만 특히 트릭이 생명과도 같은 정통추리의 경우 머리가 좋아서가 아니라 다른 데서 먼저 봐서
트릭을 알아버린 다는 건 좀 불쌍한 겁니다.
마지막 결말이 인상적입니다. 필자가 비극을 좋아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왠지 인간에 관한 깊은 통찰을
보여주나? 뛰라니까 안뛰고 말안듣더니 하여간 죽습니다. 워낙에 스파이 소설이 비정하고 냉혹한 세계라
주인공과 여자가 나누는 사랑이 더 극적으로 보이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추리의 본고장이 영국이라지만 그리고 추리가 융성한 곳이 영,미,일이라지만 특히나 영국 배경으로 한
작품 중에서 귀족 나오는 것은 보기도 싫습니다. 도로시세이어스의 <나인테일러스>볼 때도 윔지 귀족이
하인 데리고 다니면서 움직이는 거 보니 흥미가 반감되더군요. 그래서 이젠 정통을 봐도 영국 건 안 볼려
합니다. 다인 씨나 퀸 같은 미국 사람거를 보려 합니다.
더불어 세계에서 제일 문제 많고 범죄 많은 앵글로 색슨 계, 게다가 미국도 아니고 한물 간 영국.이 세
계가 어쩌고 저쩌고 정의로운 일들을 하네마네 하는 것은 좀 꼴불견이었습니다. 스파이 소설이 재밌긴
한데, 원래 스파이 소설이 발생한 곳이 영국이라 어쩔 수 없이 보기는 해야합니다만. 조금 웃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