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당의 교육방법
서당의 교수방법은 강(講)이 주된 것이었다. ‘강’이란 이미 배운 글을 소리 높여 읽고 그 뜻을 질의응답하는 전통적인 교수방법이다.
강은 대개 순강(旬講)·망강(望講)·월강(月講) 등으로 나누어지지만, 서당에서는 일강(日講)이 위주였다. 강에는 배강(背講)과 면강(面講)이 있다. 배강은 암송낭독이고 면강은 교재를 보면서 읽는 임문강독(臨文講讀)이다.
강을 하고 난 뒤에 전개되는 질의응답은 기계적인 기억에 빠지기 쉬운 함정으로부터 건져주었으며, 또 1 대 1의 대면(對面)학습이기 때문에 능력별 수업이 가능하였고, 교사와의 인격적인 교류가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강을 하는 데는 일정한 절차가 있어서 이를 강의(講儀)라고 하였다. 서당교육에서도 곳에 따라서는 서원의 강의와 같이 백록동규(白鹿洞規)나 향약을 낭독하기도 하고, 사석(師席)에 대한 엄숙한 의식이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서당에서는 진퇴에 있어서 정중한 배례와 동접간의 읍례(揖禮:읍을 하는 예의) 정도였던 것 같다. 강은 날마다 학동의 실력에 맞게 범위를 정하여 배우고, 그날의 학습량은 숙독하여 서산(書算)을 놓고 읽은 횟수를 센다. 보통 1회의 독서량은 100독(百讀)이었다.
1일의 독서량을 그 이튿날 배송(背誦)하며 합격한 다음에 새로운 학습으로 나아갔다. 이는 학동의 능력에 따라 서로 달랐으므로 일종의 완전학습의 형태와 같은 것이다.
만일 배송을 하지 못하는 경우 그의 학업성취도가 달성될 때까지 반복시켜 완전히 이해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따라서 개인의 능력에 따라 학습진도가 달라지게 마련이었다. 또한 야독(夜讀)을 장려하여 자정이 넘도록 등불 아래서 글을 읽는 소리가 마을에 퍼졌다.
학습교재의 순서는 대개 ≪천자문≫·≪유합 類合≫ 같은 책으로 기초 한문자를 가르치고, 다음에 ≪동몽선습≫ 등으로 글자를 붙여서 소리내어 읽는 방법을 가르쳤다.
글의 뜻[文理]을 깨치는 방법으로는 먼저 구두(句讀)의 문리에서 출발하여 일장(一章)의 문의(文義)로 나아가는 점진적 방법으로 가르쳤으며, 마침내 스승 없이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지경으로 이끌도록 하였다.
원래 옛 교육에서의 글공부란, 먼저 글의 뜻을 명백히 하고 응용에 통달할 것이며, 한갓 장구(章句)에 얽매여 문의를 견제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서당교육의 문자학습은 대체로 구두의 문리를 통달하는 선에서 그치는 것이어서 ‘일장의 문의’를 말할 수준은 아닌 것이다.
그리고 서당교육에서는 계절학습에 관한 것이 특색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즉 계절과 학습의 내용 및 방법을 조화시켰던 것이다.
예컨대, 겨울에는 경사(經史)와 같은 어려운 학과를 하게 하고, 여름에는 시율(詩律)과 같은 흥미본위의 학습을 시행하였으며, 봄·가을에는 사기나 고문과 같은 글을 읽게 하여 선비로서의 뜻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되게 하였다.
봄·가을에는 밤이 짧기 때문에 야독이 없는 대신에 사율을 짓게 하였으며, 글을 읽고 난 다음의 오후에는 서예를 익히게 하여 졸음과 게으름을 쫓아버리도록 배려하였다.
또한 하과와 같은 피서교육 또는 계절학습이 있었다. 하과는 원래 고려시대 최충(崔冲)이 설립한 문헌공도(文憲公徒)에서 시작되었다.
그 뒤 십이도(十二徒) 전체가 매년 여름철이면 고요하고 시원한 산방(山房)을 빌려 시회(詩會)도 열고 조촐한 잔치를 가지게 되었는데, 이를 일명 하천도회(夏天都會)라 부르기도 하였다. 서당에서의 하과는 이와 같은 격식은 차리지 않았으나 유사한 유풍이 전승되었다.
계절학습과 함께 서당교육의 방법으로 빠뜨릴 수 없는 것은 유희학습 또는 여가선용의 학습이라 할 수 있다. 서당의 학동은 연령상으로 보아 한창 놀이를 즐기는 시기이므로 학습보다는 유희나 악희(惡戱)에 더욱 관심을 가지는 것이 당연하였다.
서당교육에서는 아동의 이러한 심성을 활용하여 놀이를 통한 학습방법을 시행하였다. 예컨대, 쌍륙(雙陸·雙六)놀이를 이용한 ‘종정도(從政圖)놀이’로서 경외관직명(京外官職名)을 익히도록 하는가 하면, ‘고을 모듬’이라 하여 8도의 각 고을 이름을 외우도록 하였다.
또는 ‘초(初)·중(中)·종(終) 놀이’를 통하여 옛 사람의 시구(詩句) 한 구절을 부름으로써 그 대구(對句)를 찾는 일종의 시공부 놀이를 하기도 하였으며, 조금 정도가 높은 학동들에게는 ‘화승작(火繩作)’이나 ‘각촉부시(刻燭賦詩)’와 같은 글짓기겨룸의 놀이도 하였다. 그리고 이따금 투호(投壺)를 하게 하여 심신의 집중과 한가함을 아울러 맛보게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