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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들 "공부 못해도 괜찮아…학원 안가도 돼"
20·30대 "내 아이는 행복하게 키울 것"
전문가 "죽음 상상…내 곁의 가족 생각"
(서울=뉴스1) 권혜정 기자 = "속 썩여도 좋아. 엄마는 아들이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 함께 행복하자."
고등학교 3학년 자녀를 둔 이모(50·여)씨는 요즘 들어 아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게 됐다.
자는 아들의 얼굴을 몇 번이고 들여다 보며 "내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라고 속삭이기까지 한다.
불과 얼마전까지 어머니는 아들의 시험성적이 좋지 않으면 화가 났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라고 했다.
"공부 좀 못하면 어떤가. 우리 아들이 행복하면 됐지."라며 오히려 감사함을 느낀다고 그는 말했다.
아들과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 수백명이 세상을 떠난 후 어머니 이씨는 조금 '달라'졌다.
아직도 차가운 물 속에 남아있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리다는 그는 "속 썩여도 아들새끼가 옆에 있는 것이 고맙다"며 "볼 부비며 아들과 함께 행복하고 싶다"고 말했다.
수학여행을 간다던 안산 단원고 학생, 시민 등 476명(범정부 사고대책본부 확인기준)을 태운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지 어느덧 한달이 지났다.
시간은 흘렀으나 꽃 같은 아이들 20명 남짓은 여전히 차가운 바다 속에 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학생 100여명의 생명을 일순간 앗아간 세월호 참사는 우리의 삶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세월호 여객선 침몰 사고 30일째인 15일 서울광장 희생자 분향소 옆으로 추모의 글귀가 담긴 종이배가 놓여 있다. © News1 한재호 기자 |
자녀를 둔 어머니는 아들 딸에게 "학원 안가도 돼", 결혼을 앞둔 20대 여성은 "나중에 내 아이는 행복하게 키울거다" 등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하는 세상이 됐다.
세월호 침몰 사고 후 침통한 분위기에서 맞은 지난 8일 어버이날, 대학생 A씨(25)는 날이 날인만큼 카네이션과 케이크를 사들고 늦은 오후 집으로 향했다.
초도 꽂혀 있지 않은 보잘 것 없는 케이크에 A씨의 아버지는 "자식과 함께해서, 너희가 있어서 참 고맙다"고 말했다.
무뚝뚝한 성격에 술 한잔 걸쳐야만 '닭살 돋는' 말을 건네던 평소 아버지의 다른 모습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사온 카네이션을 한참이나 바라보다 "세월호 사건도 있는데 케이크에 촛불은 켜지 말자"고 나지막이 말했다.
세월호 참사 후 찾은 서울 광진구의 한 초등학교 앞 커피숍에는 학교를 마친 뒤 부모와 함께 커피숍을 찾은 아이들이 몇 있었다.
한 어머니는 초등학생 아들에게 "이번 국어 성적 잘 나왔어?"라고 묻다가 이내 "에이, 성적이 중요한가"라며 화제를 바꿨다.
학원에 가기 전에 친구들과 조금 더 놀아도 되겠느냐는 딸의 질문에 또 다른 어머니도 역시 "당연하지, 하고 싶은대로 해"라고 답했다.
안산의 한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둔 B(43·여)씨는 이처럼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뒤부터 동네 놀이터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더 많이 볼 수 있게 됐다고 했다.
그는 "세월호 사건 이후 '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라는 생각이 엄마들의 머리 속에 자리 잡은 것 같다"며 "예전에 아들이 컴퓨터 게임을 하겠다고 하면 화부터 났는데 이젠 오히려 '재밌게 해라'는 말이 나온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또 아이들을 여러 학원에 다니게 하던 '학원 뺑뺑이' 문화도 많이 바뀌었다고 했다.
그는 "그렇다고 완전히 학원을 안 다니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보다 많이 줄었다"며 "'성적'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던 엄마들이 이제는 자녀와 함께 하는 '행복'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2학년과 3학년생 두 딸을 키우고 있는 아버지 김모씨도 역시 "자식들이 건강하게, 별탈 없이 지내는 것이 최고"라고 전했다.
세월호 여객선 침몰 사고 30일째인 15일 서울광장 희생자 분향소를 찾은 학생들이 헌화하고 있다. © News1 한재호 기자 |
그는 "최근 '딸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두 딸이 변을 당한 그 아이들, 딱 그 나이라 짠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고 착잡해 했다.
변한건 어머니와 아버지들만이 아니다. 결혼을 앞두거나 자녀를 낳아 길러야 하는 20·30대 '어른'들 생각도 바뀌었다.
결혼을 앞두고 있는 20대 여성 박모(26)씨는 미래에 '내 아이를 어떻게 키울까'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변했다고 말했다.
이전에는 아이를 낳으면 남 부럽지 않게 비싼 영어학원도 보내고 싶었다던 그녀는 이제 "하루 아침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세상"이라며 "미래 자녀들에게 행복을 찾아주고, 더불어 내 행복도 함께 찾고 싶다"고 전했다.
결혼 적령기인 이모(33)씨도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닌 아이들을 말도 안되는 일로 잃었다는 것이 개탄스러울 따름"이라며 "어린 친구들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사회에서 내 아이들이 안전하게 커갔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전문가는 세월호 참사를 통해 '죽음'을 현실처럼 생각하게 됐고 이 결과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는 "그동안 무수한 사건사고에서 우리는 대부분 죽음을 '생소하게' 받아들였다"며 "그러나 세월호 참사의 경우 장기간 사건에 노출되면서 죽음을 직접 상상하고 '만약 내 일이라면'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보통 진실된 자세를 가지게 되는데, 이번 사건으로 국민들이 죽음을 가깝게 여기며 진정 삶에 있어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표적인 것이 내 곁에 있는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고 내 자녀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보통 우리는 '핑곗거리'를 찾으며 죽음을 다소 먼 것으로 생각해왔으나 한순간에 수백명의 아이들이 목숨을 잃는 이번 사건으로 더 이상의 '핑곗거리'를 찾을 수 없게 됐다"며 "이에 따라 대충 생각할 수 없고 이들의 죽음에 다른 이유를 댈 수 없게 된 것"이라고 전했다.
jung9079@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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