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금동대향로.
위로 힘차게 날아오르려는 용이 활짝 핀 연꽃을 떠받들고 있는 듯한 모습의 향로.
몸체와 뚜껑으로 구분된 이 향로는 높이 61.8㎝, 무게 11.8㎏이다.
연꽃 모양 몸체에는 호랑이를 비롯해 목을 앞으로 길게 빼고 있는 새, 무예 동작을 취하고 있는 사람, 코끼리,
상상 속 동물 등이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뚜껑은 23개의 산이 4~5겹을 이루고, 위에는 봉황이 위엄을 드러내며 앉아 있다.
“백제 문화의 정수가 담긴 유물” “볼수록 신비한 작품”으로 “연꽃잎 한 장, 산봉우리 하나마다 생생하게 담긴
86개의 얼굴을 들여다보면 백제인이 꿈꾼 이상세계의 평온함과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백제 금동대향로
향로는 밀랍주조법으로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벌집과 소기름을 섞은 밀랍덩어리를 녹여 그림을 그려넣거나 붙인 틀(주형)을 흙으로 감싸 거푸집을 만든 후
녹은 청동을 부어 만드는 방식이다. 연기 구멍은 총 12개가 있다.
공기를 빨아들이는 구멍 5개와 연기를 뿜어내는 구멍 7개로 이뤄져 있다.
이 가운데 일부 구멍은 크기를 수정했다는 점에서 정교함을 자랑한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중국 한나라 때 유행한 ‘박산향로’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공예기술과 창의성이 훨씬 뛰어나다는 게 중론이다.
현재의 기술로도 똑같은 향로를 만들기 쉽지 않다고 한다.
백제 금동대향로
특히 이 향로는 거의 ‘원형 그대로’ 출토됐다는 데 의의가 있다.
충남 부여 능산리 절터 아래에 묻혀 있던 향로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건 우연한 계기였다.
1990년대 초, 백제의 왕릉급 무덤이 모여있는 충남 부여 능산리 고분군(현재 부여 왕릉원)을 찾는 관광객이
늘면서 주변에 주차장 조성을 위한 정비에 나섰다.
본격적인 작업 전 진행한 문화재 시굴조사에서 뚜껑과 몸체가 분리된 향로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향로는 금속품과 유리구슬 등을 만든 것으로 추정하는 공방 터에 있던 아궁이에 있었다.
향로 발굴 당시 모습. 국립부여박물관
발견 당시 물이 흥건한 진흙투성이에 있던 향로는 약 1500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영롱한 모습을 자랑했다.
1994년 4월19일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 향로가 전시되자, 약 2주 동안 6만8000명이 방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