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29일 주일대예배 설교문 / 마가복음 14:43-72 / 베드로의 눈물
할렐루야! 사랑하고 축복하고 존경합니다.
오늘은 평생 어부로 살았는데 예수님을 만나서 인생 수지맞은 베드로에 대해서 함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보통 성경을 공부하자면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한 장 한 장 읽어가며 장별로 공부하는 방법입니다. 이렇게 장 중심으로 읽다보면 특별한 장이 발견되는데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장,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장, 마가복음 13장은 소묵시록 등등 이렇게 이름을 붙여가며 내용을 파악하고 공부하는 방법입니다. 둘째는 주제별로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구원론, 경제론, 사랑론 등 관심 갖는 주제에 예수의 구원론, 성경의 경제론 이렇게 이름을 붙여가며 성경의 주제를 파악하는 방법입니다. 셋째는 인물로 공부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셀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어있습니다. 이 인물들 중 관심을 가질 만한 인물들의 행적을 파악하고 그들을 통해서 행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공부할 때 알아야 할 것은 성경을 연구의 재료로 삼지 말라는 것입니다. 연구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성경을 연구해야 합니다. 정확한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려고 연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말씀을 연구재료로만 삼아서 남들에게 얼마나 자기가 성경을 알고 있는지 자랑거리로 삼으려 한다면 말씀의 능력은 나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연구해서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깨달아 알아야 하고요, 나아가서 내가 먹는 영의 양식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 영의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4: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무엇보다 영의 양식은 연구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아멘’ ‘아멘’ 잘 받아먹어야 합니다. 또 음식을 먹고 힘을 내서 운동도 하고 일도 해야 건강해지듯이 영의 양식도 아멘으로 받고는 삶에서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때가 되면 말씀의 열매, 영의 열매를 주렁주렁 맺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동문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영의 양식이 풍족해서 세상을 이기는 영의 능력이 충만하며 합당한 때에 복되고 아름다운 열매를 주렁주렁 맺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오늘은 세 번째 방법인 인물공부 중 베드로를 통해서 영의 양식을 얻게 되고, 더 성숙한 자리로, 더 변화되는 자리로 나아가길 원합니다.
베드로는 누구일까요? 예수님의 수제자. 여기계신 분들 중 베드로를 처음 들어보신 분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어부였다가 예수님의 택함을 받아 수제자가 된 사람.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라고 신앙고백한 사람.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할 때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사람. 성령 받아서 초대교회를 세운 사람 등등...
인물공부를 통해 영의 양식을 먹으려면 먼저 그 인물에 대해서 자세히 아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더 깊이 들어가서 나와 어떤 연관이 있나 연결고리를 찾게 되고 결국 베드로가 내가 될 수도 있음을 알게 되고 이때 ‘내 말씀’ ‘내 영의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먼저 베드로는 원래 이름이 시몬이었습니다. 시몬은 듣는 자. 듣는 자 시몬이 예수님의 부름을 받고 나서는 예수께서 베드로라 이름을 붙여 주셨습니다. 베드로는 반석. 원래 잘 듣는 사람이 팔랑귀가 많잖아요. 그러니까 주님께서 “남의 말을 듣는 것은 좋은데, 상황과 조건에 따라서 너의 믿음이 흔들리지 말고 큰 바위같이 견고히 서 있으라.” 이런 뜻으로 베드로(반석, 큰 바위)라고 지어준 것 같습니다. 그는 근본 학문이 높지 않은 갈릴리 어부출신이었으나 열두제자중 수제자의 자리에 오르더니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성령세례를 줄 때에 그도 성령 받고 초대교회의 최고 지도자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감옥에 갇혀서는 천사가 구출해주었고요, 성경에는 안 나오지만 전승에 의하면 네로황제 박해 때 로마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순교했다고 합니다.
먼저 로마서의 몇 구절을 읽고 나서 베드로에 대해서 계속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로마서 6: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이 말씀 기억나시지요? 제가 누누이 강조했던 말씀이기도 한데요... 우리는 이미 2천 년 전에 예수님의 십자가와 함께 죽은 자로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6: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십자가에는 예수님만 죽으시고 난 영광만 받아야겠다.” 이런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는 다는 의미는 하나님과 닮은 영적 삶을 살라는 뜻이듯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묵상하고 찬양하며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는 것은 나도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처럼 죽어야 함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 중의 복음은 이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을 때 나도 같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이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너무 죽으려고 노력하지 마십시오. 죽으려고 한다고 죽어집니까? 로마서 6장 11절은 분명히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미 죽은 자로 여길지어다.”
따라합시다. “나는 2천년전에 예수님과 함께 이미 죽었다.”
이럴 때 부활과 승천의 영광에 참여한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베드로는 언제 예수님 죽으실 때 함께 참여한 자가 되었을까요?
여러분. 이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죽음이 있고 나서 부활도 오고 승천도 오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과 함께 죽었을 때 예수님과 함께 부활하고, 성령도 받고 십자가에 거꾸로 죽는 순교의 영광에도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1. 신앙고백 했을 때(8:29) ➟ 8:33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계시를 받았다. / 사탄의 형상이 드러남(자연인으로서의 사람, 자아, 자의지, 생각, 사상)
2. 주의 만찬 직후(14:29) ➟ 14:30
다들 예수님을 떠날 것을 경고하실 때 나는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다. / 새벽 닭이 울기 전 세 번 부인하리라
히브리인의 닭은 새벽 12시 30분, 1시 30분, 2시 30분으로 새벽닭 시간을 구분. 로마인들은 새벽 3시에 닭이 운다고 정함.
즉 이 밤이 지나기도 전에(주민등록증에 잉크도 마르기 전에) 너는 나를 부인하리라.
3. 겟세마네 기도(14:34) ➟ 14:37
너는 여기서 깨어 기도하라고 기도부탁을 받은 베드로(영광) / 조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베드로
4. 체포되시는 순간 칼을 들었을 때(14:47) ➟ 마태복음 26:52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그의 귀를 잘라냄 / 귀를 다시 붙여줌.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
마태복음 26:52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5. 주 예수 부인(14:66-71) ➟ 14:72
세 번이나 부인하는 베드로 / 통곡하여 움.
마태복음 26:75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베드로가 죽음의 과정을 갖는 결정적인 사건은 바로 5번입니다.
절대 부인하지 않겠다던 베드로는
68절 1차 부인 – 나는 네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한다.
70절 2차 부인 – 또 부인하더라
71절 3차 부인 – 저주하며 맹세하면서 부인
베드로는 예수님의 예언대로 새벽닭 울기 전 세 차례나 부인하였고 그 결국은 자신의 한계를 절감하고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압니다. 베드로가 이후에 회개하고 성령받고 얼마나 놀라운 일들을 해내었는가?
그러나 예수님의 수제자요 자랑스러운 신앙고백의 사람 베드로도 살인의 영, 음란의 영, 거짓의 영으로 대표되는 악한 영에 자신의 영혼조차 빼앗겨 악성, 독성, 죄성으로 가득차 예수님을 저주하며, 맹세하며 부인할 수밖에 없는 나약하고 죄된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죄의 본성을 죽여야 합니다. 내가 죽어서 다시 태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천연적인 태생으로는 결코 주님을 좇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또 다른 생명과 인격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베드로처럼 우리가 어떤 생각과 의지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베드로가 직면한 것처럼 우리 자신도 자신을 온전히 드러낼 시험이 올 것이고 그때마다 우리는 실패와 좌절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ex1) 청년부를 담당했을 때의 일:화장실에서 식사기도하는 청년, 회식자리에서 고민되는 청년
ex2) 요즘 코로나라고 교회 안다닌다고 말하는 직장 크리스천.
모두다 예수님 배반하고 나서 크게 울었을 것입니다. 저도 이 일에 부끄러운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인생의 수많은 착오와 패배를 경험하면서 다시 주님 앞에 돌아왔습니다. 제가 다시 돌아왔을 때의 고백은 단 하나입니다. 오직 예수로 살리라!
갈라디아서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열심과 충성을 내었으나 결과는 여전히 잘못된 것을 보면서 우울에 빠지지 마십시오. 자신을 무능력자, 실패자라고 낙인찍으면서 하나님도 나를 떠나실꺼라는 오해를 하지 마십시오. 혹여 길을 잘못 들어서 배신자가 된다 할지라도 다시 돌아올 길이 있음을 믿으십시오. 그것은 베드로처럼 회개와 애통과 자백의 길입니다. 나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로 살았던 모든 혼의 삶을 내려놓고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었음을 선포하십시오. 그리고 이제 내가 사는 것은 오직 주인되시는 주님으로 인해 살고 있음을 믿으십시오. 그렇다면 주인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에 접붙임바 되어, 영의 사람으로 변화될 줄 믿습니다. 주님은 결코 베드로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통곡하여 우는 베드로에게 찾아오셔서 고기를 구워주셨고요, 성령을 주셨습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손만 대어도 병이 고쳐졌고, 죽은 사람도 살아났습니다. 또한 복음전하다 갇힌 베드로를 일으켜 세우셔서 감옥을 나오게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코로나로 말미암아 참으로 황망한 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처럼 자신의 무능력을 놓고 울며 자복하며 통곡하며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 동참하는 우리에게 부활과 승천의 영광이 함께하여 베드로의 승리가 내 승리가 될 줄 믿습니다.✞-동문교회 강순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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