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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 이름: 오스카 레오폴트 아달베르트 리터 폰 에렌코펜(Oscar Leopold Adalbert Ritter von Ehrenkofen)
- 약칭: 오스카 에렌코펜(Oscar Ehrenkofen)
- 생년월일: 1878년 10월 13일
- 출생지: 바이에른 왕국 파사우
- 모국어: 독일어(남독일 방언)
- 구사가능언어: 프랑스어, 영어, 라틴어(조금)
- 정파: 사회민주당(SPD)
- 직위: 국군부 장관
바이에른 왕국과 이중제국령의 접경지대에 위치한 파사우의 하급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오스카 폰 에렌코펜은 1898년 뮌헨의 전쟁학교를 졸업해 소위로 임관한 뒤 곧바로 전쟁대학에서 참모과정을 이수해 엘리트 군인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의 가문은 비텔스바흐 왕가에 대대로 충성해왔고, 따라서 바이에른군 참모부에서 복무하는 것은 가문의 영광으로 여겨졌죠.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면, 오스카가 - 엘리트 장교로서는 매우 이례적으로 - 어느 시점부터인가 사회주의와 민권운동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남서아프리카 총독령군에 파견되어 중대를 이끌다 헤레로족의 기습에 큰 부상을 입은 그는 오랜 기간 야전을 떠나야 했고, 주비엔나대사관 무관으로서 ‘붉은 비엔나’의 영향을 받은 탓이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또는, 매사를 탐구하거나 참견하기 좋아하고 천성적으로 오지랖이 넓은 그가 독일 노동계급이 겪는 문제를 남 일처럼 여기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수도요.
1914년 대전쟁이 발발하자 루프레히트 왕세자가 이끄는 제6군의 보병참모로 참전한 오스카는 서부전선의 끔찍한 참호전을 목도했습니다. ‘자신은 진흙밭에서 죽어나갈 일이 없는’ 일반적인 참모장교들이 인명을 그저 통계수치로만 여길 때, 오스카는 그러한 행태에 깊은 환멸과 혐오감을 느꼈습니다. 루덴도르프가 국내의 자원을 더욱 착취하면서까지 마지막 총공세에 몰두할 때쯤, 의회와의 조율을 담당하는 최고육군사령부 정치국에 몸담던 그는 비밀리에 사민당, 중앙당 등 정치권 인사 및 노동조합원들과 접촉했습니다. 비이성적인 1인독재자에 의해 인명과 자원이 무분별하게 소모되는 체제에 부역하는 것은 애국이 아니며, 오로지 인민의 민주적 의사에 따라 생산과 분배의 의시결정이 이루어지는 체제만이 독일국의 국체를 보존해줄 수 있었으니까요.
오스카가 새로 만난 동료들과 후일을 도모하고 있을 때 들린 킬 군항에서의 총성은 앞으로 그의 인생 행로를 결정지을 것이었습니다…
1.
- 이름: 도리나 이다 리하르츠슐러(Dorina Idda Richartz-Schuller)
- 플레이어: 렌지파일
- 성별: 여성
- 생년월일: 1884년 8월 3일
- 출신지: 독일 제국령 엘자스로트링겐, 메츠
- 모국어: 독일어(엘자스 방언)
- 구사가능언어: 프랑스어, 스페인어(조금)
- 종교: 루터파 개신교
- 능력치:
통솔(2)/선전(5)/강압(3)/조직(0) || 호신(2)/탐지(0)/경영(2)/공작(0) || 인사(3)/위조(4)/모색(3)/논변(2)
- 트레잇:
[진실의 힘, 거짓의 매력] 전파매체를 이용한 선전선동행위 일체에 +2
- 잔여 경험치:
매력(2) || 기술(4) || 지식(0)
- 정파: 자유민주당(FDP)
- 직위: 독일방송공사 사장
- 배경:
프랑스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도리나는 어렸을 때부터 연극배우의 삶을 시작한 전업 배우였습니다. 벨 에포크 시대의 수혜를 받아 연극이 급격히 성장하고 영화라는 새로운 매체가 등장하자, 배우이자 극작가로써 보수적인 독일 사회에서도 어느 정도 인지도를 갖추고 있던 도리나는 영화 예술의 태동에 빠르게 참여했습니다. 프랑스와 미국 등에서 활동하며 초기 영화의 흐름에 맞춰 희극적인 내용을 영화로 풀어내는데 집중한 도리나는 예술가로써의 길을 계속 걷게 될 듯 싶었습니다. 촬영을 갔던 불가리아에서 2차 발칸 전쟁에 휘말리지 않았다면 더욱 그랬겠지요. 눈먼 포탄 한 발에 자신과 오랜 시간 함께해 온 촬영 스태프들 대부분이 떼죽음을 당하자, 나름 시대의 선구자라 자부하던 도리나는 빠른 기술발전이 군사 분야에서도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비극을 통해 꽤나 빨리 눈치챘습니다.
발칸 전쟁의 참극을 찍어 온 영상들이 불온 선전물 취급을 받아 상영 금지를 당한 뒤, 기어이 대전쟁이 발발하자 도리나는 프로이센 종무교육부에서 일하라는 제안에도 불구하고, 보통선거권조차 거부하는 폰 트롯 장관 밑에선 일할수 없다며 전쟁을 극렬히 비난한 뒤 스위스로 망명했습니다. 도리나는 특별히 반체제적인것도 아니었고, 프랑스와 미국의 영향을 받긴 했지만 사회주의자 수준으로 급진적이지도 않았습니다. 기껏해야 문화예술 자유화 운동과 자유주의 운동에 몸담은 정도였죠. 그랬기에 독일 정부에서도 도리나를 고깝게 보긴 했지만 큰 관심을 두지는 않았습니다.
스위스에서 지금의 남편인 스페인 망명객인 보구밀 리하르츠와 결혼한 뒤, 1916년 진보인민당 인사들의 초청을 받아 독일로 돌아온 도리나는 순순히 선전영화를 만드는 듯 싶었습니다. 필름을 이리저리 짜집기해 만든 '진짜' 전쟁터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 민간에 몰래 풀리고, 그 배후가 도리나로 지목되기 전까지는 잘 나갔지요. 그러나 독일 정부는 '어떠한' 이유로 도리나를 긴급체포하려 하였고, 킬 군항의 수병들이 일으킨 반란이 아니었다면 체포는 이뤄졌을 것입니다...
2.
- 이름: 구스타프 폰 뵐러(Gustav von Wöhler)
- 플레이어: dear0904
- 성별: 남성
- 생년월일: 1880년 12월 3일
- 출신지: 프로이센 왕국 동프로이센 주, 타넨베르크
- 모국어: 독일어(고지 프로이센 방언)
- 구사가능언어: 폴란드어, 러시아어
- 종교: 무신론
- 능력치:
통솔(5)/선전(1)/강압(1)/조직(3) || 호신(4)/탐지(4)/경영(2)/공작(2) || 인사(0)/위조(0)/모색(4)/논변(1)
- 트레잇:
[설탕 입힌 빨간 약] 반대파에게 “좌익적”이라고 평가받는 정책 및 통치행위의 정당성을 주장할 때 +2
- 잔여 경험치:
매력(1) || 기술(0) || 지식(3)
- 정파: 사회민주당(SPD)
- 직위: 재무부 장관
- 배경:
타넨베르크에서 태어난 융커출신의 구스타프는 차자로 태어나 군인이 되기 위해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는 매번 상위권을 놓치지 않는 유망주였지만, 대전 초반에는 동부 전선으로 발령되는 비운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오히려 행운이었습니다. 자기 손으로 고향을 지켜내는 영광적인 자리에 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이후 수뇌부의 판단은 참으로 기이했습니다. 완승을 거둔 상황에서 서부전선에서 꾸역꾸역 전력을 빼서 이곳으로 보낸다니 이게 무슨 어처구니 없는 상황일까요. 더할나위 없는 출신성분에도 불구하고 군부 엘리트 집단 내에서 검은 양 취급을 받았던 구스타프는 오히려 그렇기에 모순성을 더 빠르게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기묘한 상황들이 몇번이고 일어나면서 꾸역꾸역 4년이 흐른 지금, 그는 명백히 지금 상황에 대해 이해 하고 있습니다. 황제, 융커, 엘리트 관료들이 지배하는 현 체제는 매우 불안정하며, 인민 대중이 이를 바로 잡을 균형적 체제가 필요하지만... 인민 대중은 매혹되기 쉬우므로 국가가 올바른 교육을 단행 해야 한다. 는 마음 가짐을 가졌죠. 그리고... 동 프로이센을 지켜야 한다는 "애향심 깊으신" 귀족님들, "다분히 편향적인" 군부와 법조계 또한 당연히 숙청 해야 제대로 된 국가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동지?
3.
- 이름: 막시밀리안 폰 프렌츨라우(Maximillian von Prenzlau)
- 플레이어: 하일레 셀라시에
- 성별: 남성
- 생년월일: 1883년 10월 27일
- 출신지: 프로이센 왕국 브란덴부르크 주 프렌츨라우
- 모국어: 독일어
- 구사가능언어: 프랑스어, 영어
- 종교: 루터파 개신교
- 능력치:
통솔(4)/선전(0)/강압(4)/조직(3) || 호신(3)/탐지(3)/경영(0)/공작(5) || 인사(0)/위조(0)/모색(2)/논변(2)
- 트레잇:
[민주주의의 비수] 자유민주주의(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반하는 국외 세력 또는 정부를 상대로 한 공작에 +2
- 잔여 경험치:
매력(1) || 기술(2) || 지식(2)
- 정파: 자유보수당(FKP)
- 직위: 해군청장
- 배경:
프로이센 융커 출신 장교인 막시밀리안은 가업에 따라 군인의 길에 접어들었습니다. 1차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막시밀리안은 기꺼이 최전방에 자원하여 참전했습니다. 운이 좋게도, 서부전선이 아닌 동부전선에 배속되어 야전 지휘관으로 활약하다가 러시아 제국과 강화 조약이 체결되자 얼마간 폴란드 지역을 방어하는 임무를 맡다가, 서부전선에 도착했습니다. 러시아 제국을 상대할때까지만 하더라도 전쟁을 열렬히 지지하던 그는, 몇달 정도 서부전선의 참혹함과 막막함을 느끼다가 팔에 부상을 입어 쾰른으로 후송되었습니다. 그리고, 우연히 쾰른의 시장이었던 콘라트 아데나워를 만나 짧은 대화를 나누었고 조금씩 공화정으로 마음이 옮겨집니다.
막시밀리안은 전선과 총참모부에서 이해할 수 없는 비합리적 행태로 인간의 목숨을 내다버리던 소위 ’왕족’들을 숱하게 봐왔고, 이는 그가 공화주의적 신념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보수주의자이자 민족주의자이며, 공화국에 대한 충성이 곧 공화국의 모든 요소에 대한 찬동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4.
- 이름: 빌헬름 루트비히 요제프 슈타들러(Wilhelm Ludwig Joseph Stadler)
- 플레이어: 차들어 홍차야
- 성별: 남성
- 생년월일: 1880년 3월 30일
- 출신지: 스위스 취리히
- 모국어: 독일어(저지 독일어)
- 구사가능언어: 영어, 프랑스어
- 종교: 루터파 개신교
- 능력치:
통솔(0)/선전(1)/강압(3)/조직(4) || 호신(1)/탐지(4)/경영(0)/공작(2) || 인사(0)/위조(2)/모색(4)/논변(3)
- 트레잇:
[패스파인더] 의도와 목적을 공개한 정보수집 작업 일반에 +2
- 잔여 경험치:
매력(0) || 기술(3) || 지식(5)
- 정파: 기독교민주연합(CDU)
- 직위: 통상부 장관
- 배경:
함부르크 출신의 무역상인 알베르트 슈타들러의 아들로 태어난 빌헬름은 그의 아버지가 일을 위해 스위스로 출장을 왔었던 취리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상인 답게 실리적이고 실용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고, 자식들에게도 늘 '실용주의'와 '현실주의'를 강조하였습니다.
당시 유럽의 많은 젊은이들이 그렇듯. 빌헬름 역시 민족주의와 애국주의에 깊게 심취하여 독일 국가에 대한 충만한 애국심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그의 장례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독일 제국의 이름을 국제무대에서 드높이고 싶다는 야망을 가지고 외무부에 들어간 것이었죠. 하지만 외교관 생활은 그의 이상과 달리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빌헬름 2세의 세계정책으로 인해 독일은 국제사회에서 깡패와 같은 위치에 있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빌헬름과 같은 실무진이 야근과 격무를 빵먹듯이 해야 했습니다. 똥을 싸는건 카이저인데 치우는건 자신과 같은 관료라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제정에 대한 반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적극적인 대외개입에 반감을 가지게 된건 덤이고요.
그렇게 외교관으로서의 일에 집중하던 1914년 5월 빌헬름은 워싱턴의 주미독일대사관의 참사관으로 발령받았습니다. 대전쟁이 터졌지만 중립국인 미국에서 자신의 일에 집중하며 지냈습니다. 1917년에 그 일이 터지기 전까지는 말이지요. 치머만 전보 사건이 터지고 주미독일대사관은 비상이 걸렸고. 빌헬름도 국무부에 해명하러 다니느라 발에 물집이 잡힐 정도로 바빴습니다. 그러한 대사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치머만 장관이 자신의 소행임을 자백하는 바람에 모두 수포로 돌아갔지만.
미국이 참전하고 양국간 외교관계가 단절되면서 빌헬름은 중립국인 네덜란드를 통해 독일로 귀국했습니다. 그러나 조국의 상황은 참혹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본국에는 빵, 감자, 고기, 소시지 등 음식이라고 할건 하나도 없어서 사람들은 순무로 하루를 버티고 있었으며. 아버지의 회사는 영연방, 미국과의 무역이 단절된 여파로 인해 파산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귀국 후 한동안 보직대기 상태로 있다 독러 강화협정에 실무진으로 동행하게 되었고 얼마 안가 빈 주재 독일 대사관으로 발령받았습니다. 빈에서 이중제국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게 되었고 얼마 후엔 킬 군항의 반란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5.
- 이름: 게오르크 치머만(Georg Zimmermann)
- 플레이어: 통장
- 성별: 남성
- 생년월일: 1885년 8월 5일
- 출신지: 프로이센 왕국 라인란트 주 도르트문트
- 모국어: 독일어(라인란트 방언)
- 구사가능언어: 프랑스어, 네덜란드어
- 종교: 루터파 개신교
- 능력치:
통솔(4)/선전(2)/강압(0)/조직(4) || 호신(0)/탐지(3)/경영(3)/공작(0) || 인사(4)/위조(0)/모색(1)/논변(4)
- 트레잇:
[위대한 정책통] 내치 문제에서, 아이디어를 정책으로 실체화하는 행위 일반에 +2
- 잔여 경험치:
매력(2) || 기술(2) || 지식(0)
- 정파: 자유민주당(FDP)
- 직위: 공화국의회 경제재정특별위원회 위원장 겸 자유민주당 원내총무
- 배경:
게오르크 치머만은 도르트문트의 전통적인 목수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삶은 조상들과는 다른 궤적을 그었습니다. 독일의 급속한 산업화 시기에 성장한 그는, 대대로 목수 일을 해온 가문에서 가업을 이어받을 인재로 낙점되었습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 도르트문트 촐레른 광산 지지대 사업은 가장 중요한 수입원이었고, 게오르크 역시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광산을 드나들며 광산의 가능성과 노동자의 삶을 가까이에서 경험했습니다.
아버지가 사업 확장을 위해 그를 공과대학에 보냈지만, 게오르크는 오히려 그간 봐온 광산 산업의 잠재력에 더욱 매료되었습니다. 졸업 즉시 그는 광산기술자의 길을 선택했고, 아버지의 묵인 속에서 루르 공업지대의 광산전문가로 입지를 다져나갔습니다. 이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전쟁은 그에게도 지옥 그 자체였습니다. 다행히 기술자로서 공병에 징집되어 루르 지역에 머물 수 있었지만, 그가 목격한 참혹한 풍경과 전우들의 죽음은 그의 영혼에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그러나 살아남은 그는 이제 광산기술자이자 전쟁 생존자로서 도르트문트에서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지역 신문에 칼럼을 기고하며 전문가로서의 삶을 이어가려 했습니다. 하지만 국가의 끊임없는 소요사태를 목격하며, 그는 정치에 뛰어들기로 결심했습니다.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말입니다.
그는 배후의 중상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미 전쟁을 겪고 라인란트의 실상을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카이저 체제 역시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실행한 전쟁의 참혹한 결과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유일한 믿음은 전쟁을 막을 방법이 존재한다는 것이었고, 만약 그 방법이 없다면 다시 전쟁의 참혹함을 겪어야 한다는 생각은 그에게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주었습니다.
결국 그는 해결책을 정치에서 찾기로 결심했고, 놀랍게도 그는 선거에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6.
- 이름: 카를 루트비히 도미니크 폰 뢰벤슈테른(Karl Ludwig Dominik von Löwenstern)
- 플레이어: 로콘
- 성별: 남성
- 생년월일: 1875년 12월 27일
- 출신지: 러시아 제국 리보니아 현 리가
- 모국어: 독일어(발트 독일인 방언)
- 구사가능언어: 러시아어, 프랑스어
- 종교: 프로이센 연합교회
- 능력치:
통솔(0)/선전(2)/강압(3)/조직(2) || 호신(3)/탐지(3)/경영(0)/공작(0) || 인사(3)/위조(0)/모색(4)/논변(4)
- 트레잇: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기독교에 명백히 적대적이지않은 인물에게 기독교적 가치에 기반한 논리를 설파할 때 +2
- 잔여 경험치:
매력(2) || 기술(0) || 지식(4)
- 정파: 기독교사회연합(CSU)
- 직위: 교육부 장관
- 배경:
카를은 나폴레옹 전쟁에서 세운 전공으로 알렉산드르 1세에게 공작 작위를 하사받은 러시아의 발트 독일계 귀족 가문의 후계자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카를의 아버지가 카를의 사촌 쿠노 폰 베헤가 팔아치운 농지를 사들여서 민족의 조국인 독일로 이주하기로 결정하면서 어린 카를도 함께 독일로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지주 아버지의 지원으로 유복하게 성장한 카를은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에 진학했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정치학을 전공하면서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마르크스주의, 자본주의등의 현대적인 사상들을 접했고 이를 깊이 연구하면서 귀족 친척들의 수구적 관점에서 벗어나 현대적인 시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즈음 비행기 추락 사고로 죽은 아버지에게서 공작 작위와 장원을 상속받은 카를은 계속 정치학을 전공하면서 박사과정을 밟았고 1913년, 자신의 독실한 기독교적 신앙과 민주주의의 조화를 모색한 기독교 민주주의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얻었습니다.
카를은 이 논문에서 기독교 민주주의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의 일환으로 독일의 준입헌군주제를 영국식의 민주적 입헌군주제로 개혁해야 된다는 대담한 주장을 펼쳤습니다. 덕분에 카를은 보수주의자들의 강력한 비판과 함께 당국의 엄중한 감시를 받게 되었고 이런 고초를 겪으면서 카를은 군주제 자체에 대해 환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카를은 조국 독일에 대한 애국심, 그리고 이 기회에 고초에서 벗어나자는 마음으로 육군에 병사로 자진해서 입대하여 서부전선에 투입되었습니다. 카를은 용감하게 싸우면서 여러 전공을 세웠는데 포탄에 맞은 아돌프 히틀러 상병의 목숨을 구해준 공으로 2급 철십자 훈장을, 여러발의 총탄에 맞아서 중상을 입었음에도 아돌프 히틀러 상병을 비롯한 아군이 구하러 올때까지 홀로 적 중대를 막아낸 공으로 1급 철십자훈장을 받았습니다.
카를은 1급 철십자 훈장을 받았던 전투에서 입은 부상이 다 낫기전에 병상에서 11월 혁명을 맞았고 정부의 탄압이 사라지자 카를은 완치 후 기독교인민당(CVP)에 입당하고 훔볼트 대학에서 자유보수주의 성향의 정치학 교수로 일했습니다.
카를은 사회주의와 자유지상주의 그 어디에도 경도되지 않는 균형적 자본주의와 기독교 민주주의를 지지했기에 CVP가 기독교사회인민당(CSVP)으로 좌경화되는 것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CSVP가 기독교 민주주의 정당의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기고문들을 썼습니다.
하지만 교수 개인의 주장으로는 아무것도 바뀌는게 없었기에 무력감을 느끼다가 정계에 입문하기로 결심한 카를은 1921년 6월 총선에서 베를린 선거구로 당선, 정계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
보관소.
1.
- 이름: 쿠노 에른스트 프리드리히 폰 비르켄-호니히스에센(Kuno Ernst Friedrich von Birken-Honigsessen)
- 플레이어: 로콘
- 성별: 남성
- 생년월일: 1875년 3월 12일
- 출신지: 프로이센 왕국 라인란트 주 에센
- 모국어: 독일어(라인란트 방언)
- 구사가능언어: 러시아어
- 종교: 로마 가톨릭
- 능력치:
통솔(3)/선전(2)/강압(0)/조직(4) || 호신(3)/탐지(2)/경영(4)/공작(1) || 인사(1)/위조(0)/모색(2)/논변(2)
- 트레잇:
[기벨슈타트의 쿠노] 공화국에 적대적 결과를 의도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영향받는 대상의 권익 수호를 위한 대중동원 및 대중 대상의 선전선동행위에 일괄적으로 +1.
- 잔여 경험치:
매력(2) || 기술(0) || 지식(0)
- 정파: 기독교사회인민당(CSVP)
- 직위: 독중철강종합회사(ADC-MG) 회장
- 배경:
쿠노 폰 비르켄-호니히스에센은 라인란트 귀족 아버지와 발트 독일계 귀족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쿠노는 아버지가 사고로 일찍 사망해서 겨우 13세때 나폴레옹 전쟁때의 프로이센군에서 전공으로 공작위를 하사받은 라인란트 귀족 가문인 비르켄-호니히스에센 가문의 공작이 되었습니다.
어린 공작 쿠노를 대신해 비르켄-호니히스에센 가문을 이끌게 된 쿠노의 어머니는 선조들의 방탕한 생활로 생긴 공작가의 막대한 빚을 갚기 위해 장원을 모두 팔아치우는 동시에 소규모 자동차 공장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한푼이라도 돈을 더 벌어야 된다는 현실적인 이유로 귀족적인 의무감, 애국심으로 설득해서 쿠노가 전쟁대학에 입학해 장군참모가 되어 군인의 길을 걷게 만들었습니다.
쿠노는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탄넨베르크 전투에서 전공을 세운 것을 시작으로 동부전선에서 활약했습니다. 그리고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으로 동부전선이 마무리되자 쿠노는 동유럽에서 어머니를 통한 발트 독일계 러시아 귀족들의 인맥을 이용해 러시아 백군을 지원하는 임무를 맡았고 그 과정에서 모국자유수호연합의 보리스 사빈코프와 교류하게 되었습니다.
반동적인 귀족과 사회혁명당 테러리스트는 이념적으로 큰 차이가 있었지만 금권자본주의와 유대볼셰비즘에 반대한다는 공통점(…)덕분에 금새 이념을 뛰어넘어서 친해졌고 쿠노는 사빈코프 덕분에 농본주의적 사회주의를 받아들이고 공화정에 대한 경계심을 덜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쿠노가 병으로 사망한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르고 자동차 공장 사업을 물려받기 위해 잠시 동유럽에서 라인란트로 돌아온 사이 킬 군항의 반란을 시작으로 혁명이 벌어졌습니다. 쿠노는 무능한 군주때문에 구체제가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구체제의 정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공화정과 자유민주주의 같은 시대의 흐름을 수용해야만 한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농본주의적 사회주의라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군주정으로부터 구체제를 지키기로 결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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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논변을 1올리겠습니다.
반영완료
강압과 논변을 1 올립니다.
선전을 1로, 논변을 2로 올리겠습니다.
반영완료
선전을 2로 올리겠습니다.
반영완료
선전 5로 논변 2로 올립니다.
공작을 1로 올리겠습니다.
공작을 4로 올리겠습니다
반영완료
모색을 4로 올리고 공작을 2로 올립니다.
개인 시트에 우선 반영했습니다.
매력에 3 받고, 강압을 2로 올립니다
기술에 3 받아서 탐지를 4로 올리겠습니다.
기술 1, 지식 2를 받아서 (매력 4, 기술 4, 지식 4) 탐지 4, 모색 4로 올리겠습니다. (잔여 포인트 매력 4)
기술 3으로 바꿔서 탐지 2 올리겠습니다.
매력1, 지식 2 받고 조직을 3으로, 모색을 2로 올리겠습니다
반영완료
인사를 3으로 올립니다.
통솔을 5로, 강압을 1로, 공작을 2로 올리겠습니다. (매력 6, 기술 3 소모. 잔여 없음)
논변을 2로 올리겠습니다
선전을 2로 올리겠습니다.
반영완료
매력에 2 받아서 조직을 4로 올립니다.
매력에 2 받고 강압을 3으로 올립니ㅏㄷ
추가로 호신을 1로 올립니다.
매력 1, 지식 1을 받아 선전 1, 논변 1로 올리겠습니다.
자포2는 기술에 쓰고,
논변4, 탐지3으로 올리겠습니다.
자유 2를 기술에 받아서 공작을 5로 올리겠습니다
자유포인트 2를 매력으로 받아서 조직을 2로 올리겠습니다.
반영완료
모색을 5로 올립니다.
논변을 2로 올리겠습니다. (잔여 매력 1. 지식 1)
공작을 2로 올립니다
통솔 1, 조직 3, 경영 1, 위조 2로 올리겠습니다.